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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686화 (686/1,108)

686화 대동산 정상에 모인 사람들 (1)

이때 고달은 자신이 날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동산 산허리 푸른 숲에 깔린 옅은 안개를 뚫고 날아오른 그는 공중을 가르며 날아가는 쇠뇌의 석궁보다도 더 위로 날아갔다.

갈수록 높이 날아 멀어지던 고달의 눈에 산 아래 길게 이어진 돌길이 보였다. 붉은 피로 물든 청색 돌길과 나무 사이에 번뜩이는 칼날의 모습, 그리고 돌길 옆에 독사처럼 이어지는 검의 섬광도 보였다.

이후 그는 묵직하게 꽂히듯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얼마나 많은 나뭇가지가 부러뜨렸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숲의 땅이 미끄러워서 하마터면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고달이 ‘끙’ 소리를 내며 체내의 정기를 이용해 충격을 이겨냈다.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그는 다시 일어나 장검 손잡이를 양손으로 꽉 쥔 채 죽음 기운으로 가득한 돌길로 뛰어들었다.

이후 그는 온몸의 뼈가 동시에 부러지는 느낌을 받으며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앓는 소리를 토해냈다. 동시에 그의 코에서 쌍코피가 흘렀다.

다리에 힘이 풀린 고달이 장검에 몸을 지탱해 힘겹게 일어났다. 바로 그때 진흙에 들어간 칼날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무수히 많은 파편으로 부서졌다.

힘없이 쓰러진 고달이 주변에 흩어져 있는 칼날 파편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검의 손잡이를 손에 쥔 채 놀람과 공포가 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처량했다.

그의 검은 한 사람에 의해 산산이 조각난 것이다.

범한의 친위병인 고달은 8품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예전에 북제 궁정에서는 위풍당당하게 한 번의 일격으로 적을 물리친 일도 있었다. 이처럼 궁정 호위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인 그가 한 번의 일격에 모기처럼 힘없이 날아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돌길에 펼쳐진 검광을 바라보던 그는 마음이 우울해졌다.

범한을 따라 멀리 담주까지 온 일곱 명의 호위들은 폐하를 따라 이곳 대동산까지 오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반란군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호위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황제 폐하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었다. 고달은 작은 범 대인이 절벽을 기어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다른 여섯 명의 호위를 이끌고 궁정 호위병 대열에 참여해 좁은 돌길 위해서 살면서 가장 두려운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이치대로라면 백여 명의 호위의 방어망을 뚫고 산을 오를 수 있는 고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항상 이치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흘러가는 구름처럼 순식간에 방어망을 통과해 버린 경국 대종사 섭류운이나 돌길 위해서 뒷일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고 있는 저 사람처럼 말이다.

고달이 단내가 나는 침을 삼키며 호흡을 가라앉히고 있는 동안 돌길에서 들리는 소리는 갈수록 작아졌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이 이미 저 대종사의 손에 죽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호위라면 가장 기본적으로 폐하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폐하를 지키기 위해 돌길을 막고 버텼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은 배가 갈라지고 붉은 피를 쏟으면서도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고달이 맨 처음 해야 할 반응은······· 다시 돌진해 저 두려운 인물 앞을 막고 귀신이 되는 것이었다.

설사 자신이 이미 중상을 입었더라도, 설사 자신의 검이 이미 산산조각 부서졌을지라도 그는 죽을 때까지 계속 달려들어야 했다.

하지만 고달은 이 순간 망설이고 있었다.

피로 물든 돌길 위에서 호위들을 9품 고수나 대종사를 상대하는 상황을 대비해 훈련했던 대로 끊임없이 공격을 이어갔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대종사의 검은 마치 저승에서 온 것처럼 가볍게 춤을 출 때마다 엄청난 살기를 내뿜어냈고, 닿는 게 팔이든 목이든 가차 없이 베어 버렸다.

고달이 이 난리통 속에서도 아직까지 살아남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2년 동안 범한과 함께 다니면서 많은 영향을 받은 덕분이었다. 그의 검 기술에는 은연중에 범한의 ‘잔재주’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무턱대고 사납게 검을 휘두르거나 맞서지 않았고, 덕분에 대종사에게 공격을 받아 경맥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죽을 걸 알면서도 계속 용감히 돌진해야 할까?

아니!

고달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빛났다. 작은 범 대인은 무슨 일이든 일단을 살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거라고 말했다. 대동산이 포위당한 상태에서 자신이 다시 돌진해 죽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붉은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지만,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그가 숲 아래 반란군의 포위망을 바라봤다. 대종사 두 명이 연달아 왔으니 곧 있으면 방어진도 풀어질 것이었다.

고달이 이를 악물고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기회를 봐서 포위망을 빠져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바로 이 결정을 시작으로 그는 더는 황가의 호위가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 결정이 2년 뒤에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줄 거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 *

‘뚝 뚝’ 핏방울이 떨어지면서 나는 아주 작은 소리가 지금, 이 순간 모두의 귀를 자극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심지어 오래된 사원의 종소리보다도 사람들의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왜냐하면······· 검의 끝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 검이 천천히 올라오더니 마침내 마지막 돌계단을 넘어 대동산 정상에 있는 모두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특별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검이었고, 밧줄로 대충 감아 묶은 검 손잡이는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였다.

하지만 이 평범한 검은 두려울 정도로 강렬한 기세와 한기를 내뿜어냈다. 더욱이 흘러내린 피가 검 끝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장에 있는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곧이어 검을 든 사람의 손과 그의 얼굴이 보였다.

삿갓을 쓰고 삼베옷을 입은 사람은 거구라기보다는 왜소한 체형을 지닌 남자였다.

사내는 티끌 하나 묻히지 않을 것 같은 섭류운의 깔끔한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체격이 왜소했고 입고 있는 삼베옷은 찢어지고 먼지와 피가 잔뜩 묻어서 옷이라기보다는 누더기에 가까웠다. 오래된 검을 들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게 영락없이 거지꼴을 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볼품없는 행색을 비웃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섭류운보다 더 몰인정하고 무섭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늙은 홍 태감은 왜소한 검객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발산한 패도의 정기를 거둬들이고는 허리를 굽혀 평상시 늙은 홍 태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경제가 차갑게 돌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섭류운과 새롭게 나타난 그 인물을 바라보던 그가 가볍게 한 발자국 내디디며 말했다.

“운예가 이번 계획을 성공시키려 상당한 공을 들였나 보군······· 아저씨도 운예처럼 미친 겁니까? 짐은 아저씨가 가족을 위해서 나라를 배반할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 공포스러운 인물과 섭류운이 함께 서 있다는 건, 천하에서 가장 강한 괴물들이 서로 힘을 합치기로 했다는 의미였다.

경국 개국 이래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제왕이 계속 살아 용상에 앉아 있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섭류운은 변명이나 설명도 하지 않고 온화한 미소만 지었다.

낡은 검을 든 공포스러운 인물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혹여나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찍소리도 낼 수 없었다. 다만 경국 황제만은 그의 앞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그가 냉소를 지으며 해진 삼베옷을 입을 그를 향해 물었다.

“사고검은 오두막에서 노년 생활을 즐기지 않고 대동산에는 왜 온 것인가? 옷이 찢어지고 헤진 걸 보니 짐의 호위들을 모두 죽이고 이곳까지 온 것인가? 그런 짓을 하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을 것 같은가? 백치는 백치군. 경국에서 자네는 치료해 줬는데 자네는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보군. 마주치는 사람은 모조리 죽이면서 올라오는 바람에 쓸데없이 정기를 많이 소모한 걸 보면·······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머리를 잘 쓰지 못하는 모양이야.”

그렇다. 그의 손에 들린 오래된 검에 피가 잔뜩 묻어 있고, 그의 옷이 누더기처럼 해졌다는 건 그가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죽이면서 이곳까지 올라왔다는 의미였다. 그는 올라오면서 백여 명의 호위를 죽였다. 천하에서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용감히 앞만 보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검 하나로 동이성과 작은 제후국들은 20년 동안 지켜온 사고검뿐이었다.

그래서 사고검에게 무례하게 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경국 황제의 비웃음 섞인 말투도 세심한 사람의 귀에는 겉으로만 의연한 척하고 속으로는 겁을 내는 것처럼 들렸다.

경제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사고검은······· 경제를 본체만체하면서 그의 옆에 있는 늙은 홍 태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점점 이 대종사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게 눈빛으로 늙은 홍 태감의 얼굴을 녹여버리기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왜소한 사고검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체격과는 다르게 큰 종이 울리는 것처럼 우렁찼으며 흥분해 떨리고 있었다.

“방금 자네였나? 좋은 패도의 정기군······.”

사고검이 멍하니 늙은 홍 태감을 바라봤다.

“범한도 패도의 정기를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알고 보니 자네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인가·······? 그러고 보면 10여 년 전에 경도 황궁에서 그 사람이 자네였나 보지? 세상에 떠도는 말이 정말 일리가 있어.”

경국 황제는 대종사 사고검이 자신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에 화를 내지 않았지만, 눈빛이 갈수록 더 음산해졌다. 그가 사고검을 향해 말했다.

“자네는 세 번이나 짐을 죽이려 했지만 짐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처량하게 물러나야 했지······· 이제 마주하게 되어 기쁜가?”

사고검은 마치 이제야 경국 황제의 목소리가 들린 듯 눈동자를 살짝 움직여 경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가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 얼굴은 자네 아들만도 못한데 봐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황제가 은은히 웃으며 물었다.

“분명 안지를 말하는 거겠지. 설마 안지를 본 건가?”

사고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나에게 려사사라는 손제자가 있는데······· 그 애의 사저가 범한에게 죽임을 당했다네. 이후 그 애가 항주에 갔다가 멀찌감치 떨어진 데서 범한을 본 적이 있었는데, 원한도 잊을 정도로 범한에게 홀딱 반해서는 매일 반한재인가 뭔가 하는 책을 읽고 있어······· 범한의 얼굴이 기생오라비처럼 잘생겼으니 그런 게 아니겠나.”

산봉우리에 부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경제가 큰 소리로 웃었다.

“자네 동이성 사람들은 과연 멍청한 구석이 있군.”

그 말에 사고검이 한동안 깊이 생각하다가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백치인 것도 맞고 내 제자들이 더 멍청한 것도 맞으며, 내 손제자가 남자를 너무 밝히는 것도 맞으니 일리가 있는 말이군.”

그렇게 바보처럼 중얼거리던 대종사 사고검이 갑자기 경국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라를 다스리고 전쟁을 하는 건 내가 자네보다 못하지······. 천하에서 자네를 능가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나는 자네를 존경하니 방금 무례하게 굴었던 점을 마음에 두지 않아 줬으면 하네.”

“그러도록 하지.”

황제가 약간 도취한 듯 살짝 두 손을 모아 인사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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