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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683화 (683/1,108)

683화 심장으로 향한 작은 화살 (2)

범한이 자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그들 말이 맞아요. 당신은 정말로 실력이 고강해요. 그 늙은 괴물들에게도 도전할 수 있을 정도지요. 그래서 나로서는 당신을 죽일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니 당신을 죽인 사람도 내가 아니라고요.”

범한이 잠시 침묵한 후 말을 이어 갔다.

“이 물건은 총이라고 불러요. 문명의 정수가 담긴 건데······ 이 정수가 그 문명 입장에서는 결코 좋은 건 아니었지만 말이지요.”

연소을은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다. 한데 목뼈 쪽에서 ‘뻐걱’ 하는 소리가 나더니 목이 옆으로 돌아가 살점이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이 9등급 강자는 일찌감치 죽은 상태였다. 단지 총알로 인한 충격으로 산산조각 나 있던 골격이 이제 와 머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낙엽 떨어지듯 무너져 내린 것뿐이었다.

범한은 얼떨떨해 피로 얼룩진 사자의 창백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범한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사이에서 무언가가 지나간 흔적을 찾는 듯했다.

* * *

전쟁에 능한 사람은 전장에서 죽고, 수영을 잘 하는 자는 익사한다 했다. 그러니 화살을 잘 쏘는 사람은 화살에 맞아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 총결산되어 나온 격언이다. 신의 궁술을 지녔던 연소을은 배럿(Barrett M82A1)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죽음이 불공평하든, 과정이 황당하든 상관없이 바닥 가득 떨어진 피와 살점이 피비린내 나고 적나라한 격언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연소을은 범한이 환생한 후 죽인 적 중 최강자였다. 이에 범한은 바닥에 널린 피와 살점을 향해서도 여전히 존경심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지난밤부터 이어진 추격전으로 생사의 관문까지 간 범한은 드디어 이치를 깨닫고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바로 이번 일이 그의 향후 인생에 의심할 여지없이 대단히 큰 작용을 하리란 점이었다.

범한은 죽는 게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행위를 할 때 음울함과 신중함이 지나쳐 거침없이 결단을 내렸다.

해당타타와 같은 명랑한 마음이나, 왕 십삼랑과 같은 집념과 용기는 없었다. 그러다 연소을에게 이 절벽까지 쫓겨 온 후에야 그제야 마음속 어둠을 걷어내고 용감하게 풀숲에서 벌떡 일어나 손에 저격총을 들 수 있었다.

범한은 이때부터 일어난 것이었다.

* * *

바닥에 널린 피와 살점에 적응하자 범한은 연소을에 대한 존경심은 그대로 간직한 채 무정하게 후속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그는 상대방 시신 옆에 있는 금실이 감긴 장궁을 들었다. 그리고 근 반쪽이 된 시신을 있는 힘껏 질질 끌며 절벽가로 걸어갔다.

범한은 절벽가에 서서 자리를 잡았다. 그런 후 천천히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돌덩이를 들어 시신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햇볕은 파란 하늘과 흰 구름, 푸른 풀 사이에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준수하고 낯빛이 창백한 젊은이가 돌덩이를 들고 시신을 쉼 없이 내리쳤다. 그러자 핏물이 사방으로 튀는 구역질나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는 연소을의 반 남은 시신과 돌덩이를 모두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되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모든 일을 마친 범한은 지칠 대로 지쳤고,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와 제대로 서 있기 힘들었다. 이에 낭패라는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리자 이제는 머리마저 살짝 어지러웠다.

범한은 상처 치료를 위해 어떻게든 며칠 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풀숲에 남은 살점과 내장은 며칠 못 가 원시 삼림에 있는 생명체들이 소화를 시킬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저격충이 남긴 흔적은 지워야 했다.

범한이 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러자 그 여파로 심장 옆에 있는 작은 화살이 살짝 흔들리며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불러일으켰고, 이에 범한은 저도 모르게 ‘끄응’하고 앓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 * *

같은 시각.

산 정상에 펼쳐진 기묘한 풀숲에서 멀리 떨어진 대동산 정상의 경묘 건축물 안.

대동산에 갇힌 경국 황제가 창밖의 희미한 여명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그 아이가 경도까지 안전하게 돌아갔는지 모르겠구나.”

그가 느릿느릿 말했다. 이는 경국 황제가 타인 앞에서 맨 처음으로 범한을 향한 따스함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자 늙은 홍 태감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깊은 주름 속에는 차분함이 가득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 산 아래의 반란군 5천도, 삿갓을 쓴 대종사가 등천제로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 것도 다 없는 일인 것 같았다.

“작은 범 대인은 하늘이 내린 인재이옵니다. 대동산 밖에는 대단한 인물이 없지요.”

늙은 홍 태감이 온화하게 말을 이어 갔다.

“경도까지 가는 건 어렵지 않겠으나, 문제는 경도로 돌아간 후일 것입니다.”

“경도 일은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

경국 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짐은 갈수록 그 아이가 마음에 드는구나. 그리고 이번에 다시 봤다.”

늙은 홍 태감이 속으로 탄식하며 생각했다.

‘마음이 드신다면 무엇 하러 계속 의심하시고 시험을 하시옵니까? 예전에 2 황자마마에게 했던 방법과 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지요?’

황제는 더 이상 이곳에서 빠져나간 사생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돌려 늙은 홍 태감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이번에 짐이 그대에게 의지해야겠구나.”

늙은 홍 태감은 여전히 몸을 굽히고 있었다. 한참 동안 대답을 않던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쇤네는 경국의 노비입니다. 개국이래로 우리 위대한 경국 조정이 천하 통일을 달성하기만을 항상 바라왔습니다. 그러니 황제 폐하께 도움이 된다면 쇤네에게는 행운이옵니다.”

이는 충성심을 보인 게 아니었다. 원래 황제와 늙은 태감 사이에는 이렇게나 긴 말이 오갈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 대군이 산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늙은 홍 태감이 느릿느릿 말을 했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황제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절박한 마음 때문이었다.

홍사양을 차분히 바라보고 있던 황제의 안색이 점점 무거워져갔다. 그리고 한참 후 늙은 홍 태감을 향해 황제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지존인 황제의 신분으로 태감에게 예를 갖추어 절하다니. 이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하지만 홍사양은 아무 동요 없이 차분하게, 심지어는 냉정하게 그 절을 받았다.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 굳센 기색이 떠올랐다.

“짐이 그대에게 약속하네. 짐이 경국에게 약속하네. 짐이 천하에 약속하네······ 장래에 짐이 그대에게 보여줄 것이야.”

* * *

날은 일찌감치 밝아왔고, 짙은 안개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반란군은 산 아래쪽에 나무가 몇 줄로 늘어선 곳 뒤쪽에 위치한 작은 언덕에 군영을 꾸렸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반란군 통수권자는 차분하게 산 입구에 있는 문 쪽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의 고요한 시선에는 온통 평화만 깃들어 있었다. 잔뜩 들떠있거나 고무된 감정 같은 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다. 이제는 필요 없다.”

검은색 옷의 통수권자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평범한 집안일을 대하듯 온화한 태도로 정말로 평화롭게 말했다.

등에 장검을 메고 있는 운지란이 이 신비한 인물을 잠깐 바라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상대방의 판단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토를 달지는 않았다.

이번 대동산 포위와 공격은 분명 천하를 놀라게 할 폭풍우였다. 그렇기에 검술의 대가인 운지란은 전체 국면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만한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대동산 입구의 문도 고요하기만 했다. 잔존한 수백의 금군은 이미 문 뒤쪽으로 철수한 상태였다.

그런데 장궁을 사용하는 반란군 5천은 수차례 강공을 퍼부었음에도 숲 쪽 방어를 맡고 있는 이들 때문에 전부 뒤로 물러나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한 번의 공세를 퍼부은 건 동이성 고수들로 구성된 핵심 강공부대(强攻部隊)였다.

운지란은 검려 제자들의 실력에 대단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이에 궁수들로 강공을 퍼붓는다 해도 문 뒤쪽에 숨어 있는 경국 황제를 모시는 최상위 호위들에게는 단번에 당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금군 쪽에 있는 제일 강자는······ 어린 사제였다. 그렇다면 동이성 동문과 마주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설마 계속 공격을 해야 하는 걸까?

* * *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깜짝 놀란 새들이 푸드득 나무 꼭대기에서 날아오르면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밤새 쉬고 있던 새가 무언가에 놀란 것이었다.

새를 깜짝 놀라게 만든 건 무슨 반짝이는 커다란 눈송이 같은 거였다.

그 눈송이는 바로 칼이었다.

그것도 인정사정없이 사람을 베는 장도였다.

눈이 하늘 가득 반짝인다는 건 셀 수도 없이 많은 장도가 동시에 춤을 춘다는 뜻이었다. 그래야 저리 차갑고 무서운 광경이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순식간에 나무 사이에서 칼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철저하게 기운을 쏟아냈다. 그리고 원래는 견실한 나무들을 더할 나위 없이 약한 나무처럼 잘라버렸다.

그러자 잘려나간 무수히 많은 수피와 나무줄기가 ‘피슉’, ‘팍팍’, 하며 빠르게 발사되었다. 그리고 땅으로 떨어지면서 ‘푹푹’, 하는 소리를 냈다.

‘끄응’ 하는 소리, 참혹한 비명 소리가 순식간에 무수히 많이 울렸다.

숲속에 핏물이 여기저기 뿌려졌고, 잘려나간 사지며 팔이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첫 전투를 이리도 장렬하게 치르다니. 저들 칼잡이가 사지에 몰리자 마침내 가장 강력한 힘을 폭발시킨 것이었다.

운지란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검은색 옷을 입은 통수권자의 판단이 과연 정확했음을 알게 되자 그는 더 이상 기다릴 필요 없다는 판단에 손을 휘둘러 령전을 쏘아 올렸다.

그러자 동이성 고수들이 살아남은 반란군 병사들을 이끌고 힘겹게 숲에서 퇴각했다. 세를 보니, 궤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겨우 숨 몇 번 쉬는 사이에 이루어진 방어전에서 산 입구의 문을 공격한 반란군은 7할이나 목숨을 잃었다. 동이성 고수도 다섯 명이나 잃었다.

운지란은 가슴이 아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동이성은 경국과 북제처럼 많은 수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병사들 중 가장 강력한 이들은 바로 검려에서 배출해낸 검수들이었다. 그러니 고작 다섯이 죽었다고는 해도 그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이었다.

운지란은 경국 황제 주변의 방어력이 당연히 가공할만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산을 지키고 있는 자들의 실력이 이 정도로 강대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호위입니다.”

말에 타고 있는 검은색 옷의 사람이 운지란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듣기로는 작은 범 대인 곁에도 호위 여섯이 있다는군요. 그것도 해당타타 낭자를 퇴각하도록 만들 정도의······. 이 고요한 대동산에도 와 있답니다.”

검은색 옷의 사람이 미소를 지었다.

“호위 백 명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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