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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682화 (682/1,108)

682화 심장으로 향한 작은 화살 (1)

사람의 마음이란 게 원래 그렇다. 미지의 신기한 사물에 대해서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공포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연소을은 우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저 금속으로 구성된 ‘물건’을 똑똑히 보고 난 후에는 자연스레 감찰원 3처가 최근에 연구 개발한 가공할만한 무기라고 간주했다.

무언가를 알게 되면 두려움은 자연스레 사라지는 법이다. 특히 연소을처럼 자긍심 강한 절세 강자에, 타고난 실력으로 수십 년 동안 궁술과 한 몸이 된 사람이라면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그래서 그는 적이 쇠뇌의 화살을 아무리 빨리 쏜다 해도 자신의 반응 속도를 따라오지 못할 거라 여겼다.

화살 소리가 들리고 용수철 소리만 피하면 자신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설마 이 세상에 소리보다 더 빠른 화살이 있을까?

연소을은 소리보다 더 빠른 화살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냉정하게 서서 장궁의 시위를 당겨 범한을 조준한 후 시위에서 손가락을 놓았다.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다.

* * *

이 모든 동작은 극히 짧은 순간에 이루어졌다. 범한이 용감하게 풀숲에서 일어나고 연소을이 제자리에 서서 활시위를 잡고 있던 손가락을 놓을 때까지, 보통 사람에게는 불과 눈 한 번 깜빡일 순간이었다.

범한의 속도는 분명 연소을 보다 빠르지 않았다. 그래서 범한은 화살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자신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게 보이자 그제야 힘을 주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총구에서 불꽃이, 그것도 고운 불꽃이 일었다.

연소을 손에 들려 있던 장궁은 ‘웅웅’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천신이 해를 쏜 듯 장엄하고 비장한 자세로 서 있었다. 한데 그런 그의 동공이 수축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불꽃을 보아서였다.

연소을은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하지만 전혀 피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화살’이 그야말로······ 소리보다 더 빨라서였다.

* * *

‘푹!’ 하는 소리가 났다. 개구쟁이 아이가 종이를 찢어 놓는 듯한 소리였고, 담주 별저에서 쓰는 목욕용 물통이 돌덩이에 의해 깨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

연소을의 몸 반쪽이 순식간이 갈가리 찢어졌다. 그의 강력한 근육질의 몸이, 강인한 피와 살이 순식간에 꽃송이처럼 변해버렸다. 그리고 핏빛에 물든 꽃이 새파란 풀숲 위로 활짝 피었다.

전혀 의외랄 것 없이 그가 무겁게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제야 연소을에게 옛날의 그 전설이 생각났다.

같은 시각, 연소을이 쏜 화살이 범한의 몸으로 인정사정없이 파고들어 회오리 같은 꽃을 피웠다. 그리고 절벽가에 살짝 들어간 풀숲에 범한의 몸이 못이 박힌 듯 고정되어 버렸다.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산토끼가 좁은 동굴로 피하고, 들쥐는 앞발을 내리고 어둠 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풀숲에 있던 새들은 날아올라 거대한 하나의 날개가 되어 산 정상 풀숲 상공을 계속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풀숲 양 끝에는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산 채로 누워 있었다.

한여름의 끝자락에 있는 지금, 대륙은 고온에 휩싸여 있었다. 이에 푸르른 산봉우리에서는 넓은 바다와 접해 있음에도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바닷바람에 날라다 주는 습기와 시원함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이곳은 무더위뿐이었고, 산림 내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산꼭대기의 풀숲은 곧장 하늘과 맞닿아 있어 더 건조해 보였다. 그런데 기이하고 험난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대형 육식 동물은 없었다.

정오에 가까워진 때였다. 새하얗게 빛나는 태양이 필사적으로 열을 뿜어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이 초지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작열하는 햇빛에 원래 푸른색이었던 풀에서는 하얀색의 빛이 돌기 시작했고, 이는 현재의 기온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풀숲에는 고요만이 가득했다. 그러다 가끔 산바람이 불어오면 풀들은 푸른색과 흰색을 오가며 파도타기를 했다. 새파란 하늘과 상쾌한 흰 구름은 그 광경을 온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만 없다면 즉 피를 흘리고 있는 그 사람들만 없었다면 이곳은 훨씬 더 완벽하게 아름다웠을 텐데.

* * *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범한이 땀과 피가 말라 붙어 있는 눈꺼풀을 천천히 떴다. 그런 후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동공에 검은 점이 생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범한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작열하는 태양을 너무 오래 쬐고 있으면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흔들어 보았다. 그런데 오른손이 너무 무거웠다. 알고 보니, 손이 아직까지도 저격총을 꽉 쥔 채로 있었다.

범한이 손을 바꿔 왼손으로 흔들어 보았다. 그러자 골수 깊숙한 곳에서부터 고통이 밀려들었고 결국 범한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통증 때문에 정신이 바짝 든 범한은 눈꺼풀을 살짝 내리고 가슴 앞에 있는 화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화살은 거의 끝까지 들어가 맨 뒤의 깃털이 달린 부분만 삐죽 솟아 있었다. 피가 계속 흐르고, 검은색의 깃털도 비린내 나는 피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범한은 왼쪽 다리를 살짝 굽히고 오른손을 장화 안으로 넣어 검은 비수를 겨우겨우 더듬어서 꺼냈다. 그런 후 등 쪽으로 대단히 조심스럽게 천천히 칼을 보내 몸과 풀숲 사이에 남은 극히 좁은 틈으로 비수를 넣어 살살 칼질을 했다.

흙속으로 깊이 박힌 화살이 잘려 나가자 아까보다 몸이 좀 편해졌다. 하지만 화살을 자를 때 있었던 미세한 진동 때문에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일어 얼굴이 창백해지고, 하마터면 다시 소리까지 지를 뻔했다.

범한은 통증을 참으며 다시 비수로 가슴에 박혀 있는 화살 깃털 부분의 거의 대부분을 제거했다. 그리고 나중에 화살을 쉽게 뽑아내기 위해 자그마하게 머리 부분을 남겨 두었다.

이 모든 걸 마치고 나니 통증 때문에 식은땀이 한가득 흘러내렸다. 어찌나 많이 흘렸는지 얼굴에 묻어 있던 핏자국까지 깨끗하게 씻겨나갔을 정도였다.

범한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크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눈이 부신 듯 바라보았다.

햇볕이 눈을 찌르고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살아 있음을 실감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살았다는 기분보다 더 좋은 건 이 세상에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는 태양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많이 후회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범한은 운이 정말로 좋았다. 연소을의 화살은 그의 왼쪽 가슴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그런데 화살촉이 몸에 닿으려 할 때 당긴 방아쇠 때문에, M82A1은 반동이 그다지 크지 않은데도 범한의 몸을 살짝 뒤로 밀려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에 연소을의 화살은 조준한 위치보다 살짝 위쪽으로 빗맞았다. 심장을 살짝 비켜나 왼쪽 어깨 아래쪽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연소을이 죽었는지 여부에 대해 범한은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너무 피곤해 마냥 이렇게 누워 있고만 싶었다. 부드러운 풀숲 위에 누워 세상과 단절된 산봉우리에서 어렵사리 얻은 휴식을 즐기고 싶었다. 다시 말해, 연소을이 죽지 않았다면 지금 범한의 상태로는 그냥 살해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기왕 이렇게 된 거, 구태여 더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 할지라도 범한은 신경을 쓰기는 해야 했다. 왜냐하면 인간 세상의 많은 일이 아직 그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어서였다.

잠시 후, 질식할 것같이 고요한 풀숲에서 허약한 사람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범한이 심하게 다친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저격총을 지팡이 삼아 한 걸음 한 걸음 초원을 가로질러 피바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까 범한은 300미터는 너무 가깝다고 생각했다. 너무 가까워서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그 300미터는 정말 끝도 보이지 않는 너무나도 먼 거리였다.

연소을 곁에 다다른 범한은 너무 지쳐 두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이에 그의 온몸의 중량을 지탱해주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무기가, 그것도 정교하게 제작된 총신이 흙 속으로 깊이 박혀 버렸다.

하지만 범한은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아무리 강력한 무기라 할지라도 지팡이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지팡이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쩌면 영원히 혼자 힘으로 걷지 못할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피바다 위에 누워 있는 연소을을 바라보며 범한이 눈을 잠시 가느다랗게 떴다가 또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이 너무 복잡해 대체 어떤 감정을 드러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해서였다.

선혈은 이미 흐를 만큼 흘렀고, 새파란 풀숲 아래에 있는 흙으로 벌써 스며들었다.

연소을의 몸 왼쪽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형상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잘게 조각나 있었다. 얼핏 보면 누군가가 움켜쥐고 터뜨려버린 토마토 같기도 했다. 시뻘건 과즙과 과육이 한데 섞여 삐져나와 너무나도 끔찍한 몰골이었다.

범한은 어렸을 때 비개를 따라다니며 무덤을 파고 시체를 보며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음산하고 끔찍한 것들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보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차마 계속 볼 수가 없어 범한도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범한의 저격총은 아직도 지팡이가 되어 비스듬히 서 있었다. 하지만 대물 저격총으로서의 위력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9등급 상의 강자라 할지라도 대물 저격총의 강력한 충격에는 생명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거였다.

범한이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전혀 손상되지 않은 연소을의 머리 쪽으로 다가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 강자의 눈을 감겨주려 했다.

그런데······ 범한은 이미 동공이 풀려 있고 몸도 움직이지 않는 그를 보면서도, 그가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내 말이 들릴 수 있겠군요.”

말을 마친 범한은 한동안 아무 말도 않다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한데 말하는 중간 중간 참지 못하고 계속 기침을 해댔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겠죠. 하나 세상일이란 건 말이지요, 원래가 불공평한 거예요.”

연소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풀려버린 동공으로 푸른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범한이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당신 아들은 내가 안 죽였어요. 사고검이 죽였어요. 나중에 대신 복수해 줄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연소을 시체 옆에서 범한은 거짓말을 해 버렸다. 사실 범한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는 이런 죽음은 연소을 입장에서는 불공평한 거라고 느꼈을 뿐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강자에게는 억울한 죽음이었다. 그리고 범한은 사람이 죽기 바로 직전에 어떤 생각이 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연소을 같은 경우는 죽기 전에 무엇이 가장 마음에 걸렸을까?

연소을이 자신을 연독신을 죽인 흉수라고 생각했다면 이 강자는 아들을 죽인 원수를 죽이지 못해 지극히 괴로웠을 수 있다.

그러니 범한의 말은 연소을의 마음을 안정시켜주기 위해 한 것이었다. 하지만 연소을은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다. 범한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지금 사자를 위로해 주자고 그런 말을 한 거야, 아니면 나 자신을 위로하려고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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