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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676화 (676/1,108)

676화 배 안에서의 그 마음 (2)

허무재가 한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후 두 손을 맞잡고 범한을 향해 몸을 깊숙이 숙여 절하며 간절하게 말했다.

“도련님, 무재는 인재가 못 되어 지금까지도 교주 수군을 완전히 제 손에 넣지 못했습니다. 하오나 지금······ 장 공주가 반란을 일으켰고, 진씨 가문도 합세했습니다. 그리고 도련님께서도······ 바다 위에 있는 대종사를 보셨겠지요. 그야말로 드문 기회입니다.”

범한의 창백한 얼굴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허무재의 양 눈에서 이글거리는 충성심이 반짝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도련님, 이 기회에 뒤집어엎으시지요!”

범한은 허무재의 두 눈을 노려보며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범한이 보기에 이 장수는 자신에게, 아니, 분명 어머니에게 충성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자신에게 대역무도한 건의를 하는 건 범한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범한은 가볍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기만 했다.

“어째서입니까?”

허무재가 소리를 낮추고 초조하게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천하의 진짜 강자들이 모두 대동산에 집결했습니다. 그러니 경도는 비어 있는 겁니다. 도련님께서는 해안으로 올라가 효산 요충지 일대에 와 있는 흑기 500과 연락을 취하십시오. 그리고 천 리 길을 달려 경도로 들어가 진 원장과 안팎에서 호응을 하면 일거에 황궁을 통제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다 대동산 쪽에서 양쪽 모두 크게 손실을 입으면 도련님께서 황자의 신분으로 경도에서 높은 곳에 올라 팔을 휘 내두르시며 소리치십시오. 그러면 거사는······ 그것으로 완성입니다!”

“절대 그리할 수 없습니다.”

범한이 최대한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온화하게 말을 이어 갔다.

“황제 폐하께서는 나에 대해 엄히 방어하셨어요. 그래서 군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셨지요. 그리고 고작 흑기 500명을 가지고 어찌 경도로 들어갈 수 있단 말입니까? 경도 밖에는 경도 수비사가 1만이 포진해 있습니다. 경도 안에는 또 13성문사가 있고, 또 금군이 3천 명이나 있는데······ 내 어찌 그들을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경도 수비사 통령은 1황자마마의 측근입니다. 금군도 모두 1황자마마께서 통제하고 계시고요. 13성문사는 황제 폐하의 직속이지요. 하오나 황제 폐하께서 안 계시면 모두 우두머리를 잃은 게 됩니다.”

허무재는 분명 열심히 준비를 해 두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조리 있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나갈 수 있었다.

“도련님, 포위를 뚫는 모험을 하시는 중이라면 분명 황제 폐하의 증표 같은 걸 지니고 계시겠지요. 분명 친필 서한이나 옥새 같은 것일 겁니다. 홀로 입궁해 황태후마마를 설득하고, 다시 의 귀빈마마의 지지까지 얻으신 후······. 황궁 밖에서는 진 원장 대인에게 나서줄 것을 청해 태자와 2 황자 세력을 일거에 소탕하면······.”

범한이 손을 휘 흔들며 그의 말을 끊었다.

“그 모든 건 1 황자마마께서 나를 지지해주신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허무재는 범한이 말을 마칠 때를 기다려주지 않고 바로 간언을 했다.

“황제께서 붕어하신 상황에서 도련님에게는 옥새와 친필 서한이 있습니다. 또한 도련님은 1 황자마마와는 막역한 사이로 지내고 계시지요. 그러니 1 황자마마께서 도련님을 지지하지 않으신다면 또 누구를 지지하신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진씨 가문은 어찌한답니까?”

범한이 그의 두 눈을 노려보며 매 단어에 힘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정주의 섭가도 있지 않습니까? 두 가문이 합세하면 병력이 얼마나 될까요? 섭씨 가문은 경도 수비사로 20년간 있었습니다. 1 황자마마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통제하실 수 없습니다.”

“그게 뭐 어떻다고 그러십니까?”

허무재가 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어 갔다.

“우리 위대한 경국 조정의 7로에는 정예병들이 있습니다. 연소을이 대동산으로 온 탓에 정북 병영은 이동시킬 수 없고, 섭씨와 진씨 가문만 가담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4로 정예병은······ 도련님께서 황궁을 통제하시게 된다면 4로 정예병은 모두 도련님 손에 들어오게 됩니다. 맨 처음에는 경도에서 세력이 위태위태하실 테지만, 보름이 안 되어 전체 대세를 역전하실 수 있을 겁니다!”

“도련님께서 주저하시는 이유가 애초에 얼마나 많은 힘을 직접 움직일 수 있는지 자세히 따져보지 않으셨기 때문이겠지요.”

허무재가 범한의 양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매 단어를 힘주며 말을 이어 갔다.

“황제 폐하께서 대동산에서 급습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증거로 삼을만한 황제 폐하의 옥새와 친필 서한을 도련님은 갖고 계시지요. 그러니 황제 시해라는 죄명을 장 공주와 태자, 2 황자에게 가볍게 뒤집어씌울 수 있습니다. 대의적 명분이 있어서니까······ 보름이 안 되어 4로 정병이 그 대의명분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조정에 도련님 사람이 없기는 해도 임약보 전임 재상께서······ 어쩌면 적지 않은 사람을 물려주셨을 것입니다. 큰일이 격렬하게 터진 초기에는 경도 국면도 출렁이겠지요. 하오나······ 진 원장은 그런 일을 처리하는 데는 최고의 고수입니다. 그리고······ 범 상서도 잊지 마시지요. 그는 분명 도련님을 지지할 것입니다.”

범한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허무재가 모반을 위해 암암리에 얼마나 많은 밑작업을 해 두었으며, 자신을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계획을 꾸민 건지 알 수 없어서였다.

만약 사태가 이런 식으로 심화한다면 또 만약 자신이 대동산 인근 바다에서 멀리 나아가 연소을의 추격에서 벗어나 경도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쩌면 경국의 권력은 정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수중에 가장 가까이 다가오게 되는 거였다.

범한에게는 대단히 유혹적이었을까?

범한은 그에 대한 답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범한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어서였다.

“우선은 살아서 경도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범한이 허무재를 차분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 하나가 있군요. 당신이 말한 모든 추론은 대동산에 계신 황제 폐하 일행이 습격을 받게 된다는 걸 전제로 나온 걸 텐데······ 그런데 이번에 황제 폐하께서 반드시 붕어하실 거란 걸 누가 말해준 겁니까?”

바닷바람이 휘휘 소리를 내며 배 위를 스치고 지나가고 파도가 배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이에 선박 벽에 달린 등불이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등불의 불꽃이 흔들리며 선실 안에 있는 두 사람의 얼굴도 계속 보였다 안 보이기를 반복했다.

밖에서 희미하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친위대 병사 하나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허무재에게 짧게 보고를 하고는 다시 서둘러 선실 밖으로 나갔다.

오늘 밤 대동산을 중심으로 반경 20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긴장과 공포의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진상을 아는 사람이든, 아니면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든 모두 공포에 빠져 불안해했다.

“수색 범위를 넓힌다 합니다.”

허무재가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선 범한의 그 말이 그의 모든 생각을 직접적으로 뒤집어버려서였다.

‘만약 황제 폐하께서 붕어하시지 않는다면······.’

허무재는 범한의 추론을 믿지 않았다. 그는 장 공주가 세운 계획 전부를 알지 못했다.

현 추세를 보고 어떻게 황제 폐하께서 대동산 꼭대기에서 생존하실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단 말인가!

그가 깊은 생각에 잠긴 사이 범한은 옆에서 조용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교주 수군이 반역하는 데 있어 허무재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장 공주 쪽에서는 그가 병선을 이끌고 이곳까지 온 것을 두고 마음을 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범한도 알다시피, 허무재는 경국 조정에는 충성심이 없었다.

그가 경국 조정에 가진 건 원한과 복수를 하려는 욕구뿐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모반이란, 여건이 충족되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인데······ 한데 그가 모반을 일으켜 도우려는 대상이 범한 자신이라니.

그래서 허무재는 범한이 예전에 세운 계획대로 하지 않은 것이었다. 가장 먼저 교주 지주 오격비, 또는 후계상과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도 그리 하지 않았다.

이에 감찰원에게 교주 수군의 이상한 움직임에 관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대동산이 포위당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조성한 것이었다.

허무재는 범한이 교주 수군에 가장 깊이 심어 놓은 패였다. 한데 그 패가 자기 임의에 따라 행동하는 바람에 원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범한은 분노를 드러낼 낼 수가 없어, 화도 내는 둥 마는 둥 하고 넘어갔다. 왜냐하면 허무재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서였다.

범한을 설득할 수 없음을 알게 된 허무재가 살짝 암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한참 후 입을 열었다.

“저의 원래 계획은 마지막을 노리는 것입니다. 제 수하에 있는 부하들을 움직여 해상에서 저들을 배신하고 반격해 수군의 포위망을 흔든 후 해안 상륙을 강행해 도련님께서 하산해 경도로 가실 수 있도록 돕는 거지요.”

범한은 심장이 떨렸다. 허무재가 통제하고 있는 병선은 천여 명의 병력과 맞먹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하산을 돕는다니, 필사의 다짐과 용기로 무장한 게 분명했다.

“한데 도련님께서 그 정도이실 줄은······.”

허무재가 고개를 가로로 내저으며 탄식했다. 그의 눈에서는 어느새 경외심이 떠오르고 있었다. 허무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옥처럼 매끄러운 대동산 절벽을 내려온다는 건 범인의 경계를 넘어선 일이었다.

허무재가 계속해서 말했다.

“도련님의 예측이 맞으셨습니다. 이번 교주 수군은 장 공주 계획에 가담했습니다. 첫째는 진씨 가문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제가 참여해서인데······. 도련님께서 산 위에서 위험에 처하셨다면 저는 만 번 죽어도 그 죄를 달게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 다행히 그런 이유 때문에 연 대도독이 저를 매우 신임하고 있습니다. 하여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이 배를 수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도련님께서는 마음 편히 계십시오.”

범한이 두 번 기침을 한 후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나는 어떻게든 경도로 가야겠습니다.”

배에 오른 후 범한은 가장 먼저 허무재에게 지금 해상과 육상의 봉쇄 상황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이로써 오늘 밤 봉쇄 범위 내에 무수히 많은 강자와 동이성의 무시무시한 9등급 자객들이 집결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육지에서 봉쇄를 뚫는 건 난이도가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배를 북쪽으로 3리 이동할 수 있습니까?”

범한이 이맛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어 갔다.

“3리 밖에 저들이 통제할 수 없는 더 넓은 구역이 있습니다. 그곳이라면 분명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너무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어서 기다려야 합니다.”

허무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범한을 힐끔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보기에는 지금 경도로 돌아가는 게 급선무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흑기와 연락부터 취하고 그런 후 경도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취해야 했다.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부지리를 얻는 게 가장 현명한 처사였다.

한데 범한이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가장 크게 이득을 취할 생각이고, 또 지금 강남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일단 설청에게 알린 후 오주를 거쳐 경도로 돌아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게 가장 최상의 수였다.

하지만 이런 건 의심할 여지도 없이 정상인이라면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경도에는 그가 신경 써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경도의 존망과 천하에서 크게 전란이 일지 여부에 대해 지금의 범한은 반드시 마음 깊이 새겨 두고 있어야 했다.

“너무 오래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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