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666화 (666/1,108)

666화 마음속 말

얼음 같은 언빙운의 얼굴에 은근히 의심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황제 폐하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 위험하다 하는 게냐?”

언약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 갔다.

“우리 위대한 경국에는 7로의 정예병이 있다. 그리고 네가 의심하는 길로는 대동산으로 접근도 할 수 없을뿐더러 모두 감찰원의 주시하에 있지 않더냐.”

“연소을은요?”

자기 아버지의 눈에서 마치 다른 걸 보기라도 한 듯 언빙운이 제 아버지의 두 눈을 싸늘하게 주시하며 물었다.

그러자 언약해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아들의 눈빛을 피했다.

“연 대도독이 또 어쨌다고 그러느냐?”

“창주 대첩은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다!”

언빙운이 소리를 죽여 말을 이어 갔다.

“이번 창주 대첩에 문제가 있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군의 공로를 조사하는 4처 밀정이 이미 회신을 보내왔습니다. 사망한 수급들에게 위장한 흔적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말입니다······.”

“너는 4처 수뇌다. 그리고 나를 이어 하고 있으니 알아둘 게 있다. 백성을 죽여 공을 세운 척 하는 건······ 비록 대죄이기는 하나,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는 일이란다. 특히나 이번처럼 변경에서 일어난 일은 험지에서 고생한 걸 고려해 조정에서는 더 후한 상을 내릴 수밖에 없다.”

언약해가 싸늘하게 말을 이어 갔다.

“다시 말해, 연소을이 공적을 허위로 보고한 일이 대동산에 가 계신 황제 폐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그리고 북제에서 국서가 이미 도착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거라. 이런데도 설마 북제 사람들이 연 대도독과 함께 연기를 했다는 말이냐?”

“제가 걱정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언빙운이 싸늘하게 말을 이어 갔다.

“만약 단순히 백성들을 죽여 공로를 세운 것처럼 꾸몄다면 차라리 그걸로 됐습니다. 하오나 이번 일과 북제가 관련이 있다면 이번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닌 게 됩니다.”

언약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의 두 눈을 똑바로 주시한 채 매 구절을 똑똑히 말해주었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아는 게냐? 원장 대인과 제사 대인이 너에게 잠시 감찰원 업무를 맡겼다고 해서 네가 천하에서 제일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는 것이야? 네가 세상의 모든 속임수를 꿰뚫어볼 수 있기라도 한 거냐? 연 대도독이 북제 사람과 함께 연기를 한 거라 한들, 그게 대체 무슨 문제가 된다는 것이냐?”

“무슨 문제가 되냐고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던 언빙운은 가슴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 이에 분노를 드러내며 말했다.

“정북군 5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대첩이라고요? 수급 8천을 베었지만 그 중 절반 이상은 가짜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5천 명은 대체 죽은 겁니까, 아닙니까? 죽이지 않았다면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진 5천 명은 대체 어디에 가 있는 걸까요?”

그가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가리켰다. 경국 변경 지도에서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곳을 가리키며 분노하며 말을 이어 갔다.

“아버님. 정북군 군영은 창주와 연경 사이에 있습니다. 하오나 직선을 하나 그어 보면 대동산에서 불과 5백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만약 그때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갑자기 대동산 산 아래에 나타나면 어떡합니까?!”

언약해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후 싸늘하게 대꾸했다.

“멍청하긴! 창주에서 동산로까지 가깝기는 하나 효산을 빙 둘러서 가야 한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고을도 지나쳐야 한다. 거리도 천 리가 넘고 말이다. 그런데 5천의 사람이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국경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으냐?”

“만약 빙 둘러 가지 않는다면요?”

언빙운은 제 생각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 며칠 마음속에 걸렸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만약 동이성에서 국문을 열고 그 5천의 사망자에게 제후국의 길을 쓰도록 한 거면······ 어떡합니까?”

두 번씩이나 ‘어떡합니까?’라는 말이 나왔지만 언약해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아들에게 냉소를 날려주었다.

“어리석은 것! 5천 명이 정말로 네가 말한 것처럼 죽은 척을 한 거고, 사고검이 네 생각처럼 나라 문을 활짝 열어 줄 만큼 멍청해 우리 경국 군대를 거리낌 없이 받아준다고 해도······ 그래도 말이 안 되지 않느냐! 동이성에서 대동산까지 가려면 중간에 있는 담주를 지나야 한다. 하나 담주 북쪽은 높은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아무도 넘어가지 못해!”

이건 사실이었다. 지도, 육안, 인력을 통해 모두 증명된 사실이었다. 담주 북쪽의 원시산림과 산봉우리는 일반인이 넘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니 5천에 달하는 부대는 더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전에는 넘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겠지요. 하오나 영원히 넘어오지 못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그곳의 지리적인 상황이 생각난 언빙운은 기세가 살짝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밀어붙였다.

“그 산 안에 비밀 통로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비밀 통로? 담박서국에서 내놓은 소설 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언약해가 싸늘하게 일갈을 하고는 서재를 나서려 했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아버지의 표정과 태도에 언빙운이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손바닥으로 큰 소리가 날 정도로 탁자를 ‘탁!’, 하고 내려치며 크게 화를 냈다.

“저도 제가 걱정하는 일이 소설 따위밖에 안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감찰원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게 모두 놀림감밖에 되지 않으리란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그런 일들이 정말로 일어날지를 떠나, 이미 의문이 제기된 거라면 감찰원의 규정에 따라 윗선에 보고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왜 원장 대인께서는 그 일을 막고만 계시는 겁니까!”

아들의 말에 언약해가 흠칫 놀라 뒤로 돌아서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언빙운은 아버지께서 드디어 자기에게 설득 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느 정도 놓였다.

한데 언약해는 소맷자락을 휘 내두르고는 바로 서재를 나가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측근 호위무사를 불러 싸늘하게 말했다.

“도련님이 몸이 불편한가 보다. 집안에서 쉬어야 하니, 저택 밖으로 절대 단 한 발자국도 나가게 해서는 안 되느니라.”

몇몇의 호위무사들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명령을 받들겠다고 답했다.

언빙운은 어안이 벙벙했고 이내 온몸에 한기가 든 것처럼 기분이 싸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던 그는 아주 오래전에 아버님과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떠올라 한동안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날 언빙운이 아버지에게 물었었다.

“아버지께서는 만약에······ 제 말은 만약에 말입니다. 황실과 감찰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때 언약해는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탄식을 내뱉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었다.

“멍청한 녀석. 나는 당연히 감찰원을 선택할 거다. 만약 원장 대인께서 나에게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네게 그런 말을 하지도 않으셨겠지.”

언빙운이 문 밖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 그러자 무공이 고강한 집안 호위무사들이 그를 막아섰다. 이에 언빙운은 그들과 실랑이를 하기보다는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를 향해 짧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에 가시려는 겁니까?”

그러자 언약해가 뒤로 돌아 아들을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네가 아프니, 내가 감찰원에 가서 너 대신 병가를 신청해야 하지 않겠니.”

언빙운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황제 폐하와 조정에 충성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모두 했다. 하나 그는 감찰원의 관원이고, 아버지의 아들이었으므로 더 이상의 일은 할 수 없었다.

* * *

“섭씨 가문이 정말로 너무 조용히 있는군. 섭중도 너무 착하게 굴고 있고. 포로를 바쳐야 하는데······ 경도로 들어올 수 있는 이리 좋은 핑계가 있는데도 그냥 기회를 날려버리다니.”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진평평이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어 갔다.

“물론 그도 황궁에서 자신을 꺼릴까봐 그게 두려워 선수 쳐서 일을 저지른 걸 테고······ 한데 2 황자는 속으로 분명 투덜거리고 있겠군. 속으로는 태자가 곧 폐위될 거라 생각할 테니 말이야. 만약 지금 태자가 되는대로 나온다면 2 황자는 섭가가 있으니 분명 혼자 힘으로도 장악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어쩌면 자기 장인이 서둘러 경도로 돌아오기만을 바랄 수 있어.”

“지금은 누구라도 공격하고 싶을걸. 한데 제일 먼저 나설 용기와 능력은 없는 거지.”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바퀴 달린 의자를 검은 천 이 있는 곳에서 밀고 나오며 말을 이어 갔다.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싶다면 반드시 미쳐야 하는데······ 장 공주는 충분히 미쳤구먼.”

언약해가 진 원장 대인의 말뜻을 이해하고 웃기 시작했다.

“대인이 경도에 와 계시니 공주께서 아무리 움직이고 싶어도 일단은 그쪽 소식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진평평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의 위대한 황제 폐하께서······ 분명 장 공주에게 깜짝 놀랄 기쁨을 주실 게야. 하나 공주 쪽에서 기다리는 소식은 영원히 당도하지 않을 테고 말이지.”

“하오나 연소을의 5천에 달하는 정예병은 어쩌지요?”

언약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 갔다.

“그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목숨 걸고 그 5천 명의 병사를 국경으로 들였다 해도······ 대동산 산 아래까지 어찌 갈 수 있을까요?”

“연소을의 이번 창주 대첩은 정말로 일을 잘 해놨더군. 한대 빙운이가 그 내막을 간파했을 줄이야.”

진평평이 언빙운에 대해 칭찬을 이어 갔다.

“참으로 괜찮은 아이야.”

그러자 언약해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평소에는 얼음처럼 차분하게 굴면서 막상 정말로 큰일이 닥치니 불안해하더군요.”

“그 아이는 나나 자네가 아니지 않은가. 황제 폐하의 생각을 모르고 있어서 그래.”

진평평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자네와 나에 대해 의심을 하는 건 정상적인 걸세.”

언약해가 떠나자 바퀴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은 습관적으로 다시 의자를 밀어 창가로 가 검은 천 뒤에서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동이성의 제후국에서 직접 산을 뚫고 나가 담주를 거쳐 대동산까지 가는 길에는 확실히 비밀 통로가 있기는 하다고 생각했다.

이 사실은 진평평도, 황제 폐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한데 현 상황을 보아하니, 장 공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했다.

5천 명의 군사라면 겨우 대동산 산봉우리를 포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기껏해야 천제를 올리는 일행의 소식 전달을 차단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전체 상황 중에서 유일한 관건은 아무래도 그 산봉우리 위일 수 있었다.

진평평이 바짝 마른 오른 손가락으로 새하얀 머리카락을 잠시 긁적이며 생각했다.

‘내 계산 하나가 어그러지고 말았군. 범한이 녀석, 지금 그 산봉우리에 가 있다니. 녀석이 목숨 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는데. 경천동지할 돌발 사건이 발생할 텐데, 거기에서 무고한 목숨 잘 부지했으면 좋겠구먼.’

‘황제 폐하께서 장 공주와 섭류운을 깜짝 놀라게 해줄 일을 준비하셨는데. 장 공주는 황제 폐하를 놀라게 해드릴 일을 준비하지 않은 걸까?’

진평평은 고개를 갸우뚱한 채 기운이 좀 딸리는 듯 바퀴 의자에 기댔다. 그리고 체내에서 천천히 생명이 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머릿속에 펼쳐진 화면 때문에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을 흥분하고, 감정이 격해지고, 동경하게 만들어주었던 이유를 다시 찾은 것만 같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자 진평평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하게 터져 나온 기침이었다. 하지만 가슴에 찢어지는 통증이 밀려와 진평평은 본능적으로 책상 위에 있는 종을 울렸다. 한데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비개가 아니었다.

그는 그제야 기억이 났다. 비개는 이미 자신의 생각에 따라 시시비비가 일어나고 있는 경국을 떠난 상태였다. 지금 즈음이면 분명 천주에 도착했을 것이고, 그 독쟁이가 오랫동안 동경한 해외에서의 삶을 준비하고 있을 터였다.

“기침을 해서 그러니, 약을 찾아다 먹어야겠네.”

진평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온 부하를 바라보며 상냥하게 말을 이어 갔다.

“2년은 더 살 수 있으니 당연히 2년은 더 살아야겠지.”

그러자 과분한 대우에 놀란 부하가 명령을 이행하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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