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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665화 (665/1,108)

665화 사당 안에 있는 자 (2)

경국의 대종사 섭류운. 그는 세상을 마음껏 떠도는 멋스러운 강자이다. 그는 재야에, 황제 폐하는 조정에 있으면서 상호 제어하고 타협하며 둘은 섭씨 가문과 황실이라는 충성스럽고도 성근 관계를 형성했다.

만약 황제 폐하께서 섭류운을 칼로 베어버릴 수만 있다면 경국 내부에는 황제의 통치 근간을 흔들 힘이 아예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섭류운은 황제 폐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악성 종양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황제가 대동산으로 온 건 대동산의 신묘한 힘을 빌려 그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범한이 느끼기에는 여전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당신께서 아무리 백 명 넘는 호위를 데리고 계시고, 홍 태감이라는 신비한 늙은 괴물을 데리고 계셔도 장 공주가 움직이면 분명 수없이 많은 힘들이 섭류운과 합류할 것입니다. 섭류운이 설사 폐하를 시해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대종사라는 초월적인 경계에 있는 그를 당신께서 살려두려 하실까요?’

범한은 항주성에서 직접 섭류운의 실력을 경험했었다. 그때 섭류운은 검으로 건물의 절반을 날려버렸기 때문에 범한은 그가 얼마나 가공할만한 실력을 지녔는지 잘 알고 있었다.

경국의 철갑 갑옷으로 무장한 기마병들이 줄지어 공격하고, 쇠뇌를 쉼 없이 쏴대면 어쩌면 섭류운을 들판에서 급습해 죽이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황제 폐하는 뚝 떨어진 산꼭대기에 와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섭류운은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호위들에게는 포위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산 아래에 있는 금군의 경우는 지형적인 문제 때문에 기마병 공격을 펼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종사 하나를 죽일 수 있지?’

범한은 1년 간 꾸준히 이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그리고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해낸 게 바로 500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동안 귀한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며 숨겨왔던 저격총으로 저격하는 것이었다.

‘저격은 무슨 저격! 그런 상황 자체를 이끌어내는 것 자체가 힘든데.’

대종사는 홀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존재였다. 그리고 주변의 기운을 감지해내는 능력이 대단히 강력했다. 그러니 500미터 떨어진 곳에 얌전히 서서 범한에게 총을 조준해서 쏠 수 있을 만한 시간이 주어질 리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종사 하나를 죽일 수 있을까?

범한은 마지막으로 가장 믿을만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대종사 둘을 이용해 대종사 하나를 죽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단순하고도 단순한 생각 아닌가. 아이 둘이 아이 하나와 싸워 이기는 건 당연한 이치다. 바윗덩이 두 개가 당연히 하나보다 더 무거운 거고.

한데 문제는 대종사라는 생명체가 양산품이 아닌 불세출의 천재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대종사 둘을 데려올 수 있을까?

“그래서 짐은 어떻게든 대동산으로 와야 했다. 왜냐하면 짐에게 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그자는 영원히 대동산을 떠날 리 없으면서도 짐의 생각에 동참해주는 사람이거든.”

황제가 미소 지은 얼굴로 범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후 낡고 오래된 작은 사당의 나무문을 밀어 열었다. 문에서 찌그덕 소리가 나고, 범한의 눈빛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 순간 범한의 심장이 급격히 오그라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무수히 많은 놀라움과 오랜만에 만나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 * *

언빙운은 감찰원 방안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오늘 그는 그 밀실에 있는 게 아니었다. 원장 대인이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경도에 있는 자기 방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에 언빙운은 잠시 쥐고 있던 권력을 당연히 주인에게 돌려줘야 했다.

그는 4처 수뇌였고, 그의 방은 거리 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창문을 검은 천으로 가려 놓지 않아 방 안은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훤하게 밝았다. 그리고 이 방 창문가에서는 황궁의 황금색 처마 모서리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지금 황궁에는 주인이 없었다.

‘황제 폐하의 마차는 지금쯤이면 동산로에 도착하셨겠지?’

언빙운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경도를 떠나 계신 후 사람들이 많이 온순해졌어. 감찰원에 너무 많은 문젯거리를 안겨주지도 않고 말이지. 한데 대략 지금 즈음이면 경도에서 멀리 떨어져 계신 황제 폐하께 무언가 의심받지는 않을까 두려워할 때가 되었는데.’

겉으로는 여유를 부려도 속으로는 긴장하며 조심한다고, 황제가 천제를 지내려는 주요 목적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태자에게 황궁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황태후가 다시 수렴청정을 했고, 1 황자가 쥐고 있는 금군은 조심스레 행동했으며, 경도 수비사 역시 순찰을 강화했다.

이런 가운데 황제가 남겨 둔 가장 중요한 조치는 당연히 감찰원 원장 진평평을 경도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이에 진원에서 죽치고 있던 늙은 절름발이는 이제야 다시 음산한 감찰원으로 돌아와 경도의 모든 상황을 냉정하게 예의주시하며 허튼 마음을 먹은 사람들을 경계했다.

시간을 대략 확인한 언빙운은 창문을 닫고 의자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품에서 예쁘게 수놓아진 두루주머니를 꺼내 그 안에서 또 씨앗 몇 알을 꺼내 입에 넣고 섬세하게 껍질을 까서 먹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매우 무료해 보였다.

하지만 두루주머니로 시선이 향할 때면 어느새 눈빛은 따스하고 다정하게 변해 있었다. 심 낭자가 수놓아서 만들어준 주머니이기 때문이었다.

작은 언 공자는 요 며칠 유난히 한가했다. 감찰원을 이끄는 일을 할 필요가 없어져서였다.

이에 그는 1처 사람들처럼 병적으로 예민하게 굴며 조정 관원을 감찰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 남은 건 4처 고유 업무를 빼면 그다지 할 게 없었다.

연경과 창주 사이에 있는 황야는 상삼호가 연소을에게 큰 피해를 입은 후로는 조용했다. 북제에서 국서를 보내 비난하기는 했지만 과오로 살상을 했는지는 아직 조사 중에 있었다. 그리고 상경성에서는 다른 이상한 움직임이 없었고, 동이성 쪽도 대단히 평온하다.

4처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은 위와 같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황제 폐하가 경도를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 양쪽 세력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4처에서는 이미 충분하게 가짜 소식을 퍼뜨려 놓은 상태였다.

언빙운은 감찰원의 능력이면 북제 황실과 사고검이 경국 황제의 순시 소식을 듣더라도 그리 짧은 시간 안에 반응하지는 못하게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더군다나 언빙운은 부득이하게 유유자적하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무리 일이 없다고는 해도 그는 계년조의 경도 중심지에서의 활동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칙대로라면 황제 폐하의 순시 같은 중요한 일은 범한에게 사전에 알려야 했다.

한데 정말 이해할 수 없게도 진 원장은 경도로 돌아오자마자 언빙운이 하려던 일을 막은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말이다.

이는 담주에 있었던 범한에게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언빙운 입장에서는 범 제사가 과연 황제 폐하의 마차와 합류했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거였다. 이에 언빙운은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긴장했다.

겉으로 보기에 경도는 조용해 보였다. 금군과 경도 수비, 여기에 암흑의 기운을 무섭게 뿜어내는 진 원장까지 합세한 터라 무슨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혹시라도 큰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경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황제 폐하에게나 일어날 것만 같아 보였는데······.

언빙운이 씁쓸하게 웃으며 창가에 섰다. 그리고 천하대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황궁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위는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복잡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일단 감찰원 내에서는 3인자의 위치이면서 범한의 측근이었다. 한데 그의 아버지 언약해가 다른 신분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바람에 그의 역할이 더 복잡해졌다. 그리고 제일 관건인 건 언빙운이 그날 밤 황제 폐하께 황궁으로 불려간 젊은이 중 하나란 점이었다. 그때 그는 밤새도록 이어진 긴 대화 후 또 다른 신분을 갖게 되었다.

어쩐지, 원장 대인이 하룻밤 새 경도로 돌아와 자신을 압박한다 했더니, 분명 자신을 향한 다른 생각이 있어서일 거라 언빙운은 생각했다.

진 원장이 범한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한 일과 관련해 언빙운은 자신이 확보한 세 곳의 소식통을 통해 정보를 확보했다. 그리고 이로써 진상의 일부를 예측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진상은 놀랍도록 무서운 것이었다.

‘설마 진 원장 대인이 목숨 걸고 하는 건데도 황제 폐하의 신변에 큰일이 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이참에 폐하의 마차 행렬에서 범한을 멀리 떨어뜨릴 생각을 한 거라고?!’

그런데 진 원장은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사람이지 않은가. 그러니 아무리 범한을 아낀다 한들 그의 안위를 황제 폐하의 생사보다 더 중히 여길 리 있을까?

딩당딩당, 하며 종소리가 울렸다. 이는 경도 각 관아에서 나는 귀가를 알리는 특수한 울림 소리였다. 그러자 네모반듯한 감찰원 건물에서 갖가지 행색의 관원들이 속속 밖으로 나갔다. 이들은 무슨 나쁜 짓을 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귀가를 서두른 것뿐이었다. 특무도 공무이고, 감찰원에 있는 이는 모두 관원이었으니 결국 그들도 평범한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던 것이었다.

언빙운은 달리 챙길 물건도 없고 해서 곧장 밖으로 나가 자택에서 준비한 마차에 타고 급히 자작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심 낭자와 알콩 달콩 사랑 얘기를 나누기보다는 곧바로 아버님의 서재로 들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진씨 가문에서 무슨 소식이 있었습니까?”

언약해가 아들을 쓱 보고는 고개를 가로로 내저은 후 물었다.

“감찰원에서 온갖 곳을 감시하고 있을 텐데, 효산 요충지에서는 다른 움직임이 있었느냐?”

효산은 위치가 특수했다. 하필 동산로 입구에 자리 잡고 있었고, 경국의 동북쪽에 위치해 동이와의 거리도 멀지 않았다.

하지만 담주와 동이 사이에는 그 누구도 감히 뚫고 오기 힘든 원시림이 있어 양 지역 간 왕래는 주로 해상이나 효산을 돌아오는 길을 통해 이루어졌다.

원래 동산로 쪽에는 황제의 마차 행렬에 위협이 될 만한 대단한 세력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동산로를 거쳐 경도로 돌아가는 길목에 효산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문제는, 언씨 부자도 모두 알다시피, 진씨 가문의 영감님이 그 산 요충지에서 비밀리에 병사를 훈련시키고 있었다. 새해가 되기 전 경도 외곽에서 범한을 급습했던 병사들도 바로 진씨 가문이 조정 몰래 효산에서 이동시킨 이들이었다.

“효산 요충지 쪽은 줄곧 조용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감찰원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곳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를 속일 수 없을 것입니다.”

언빙운이 살짝 안심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언약해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을 원장 대인도, 황제 폐하께서도 알고 계신단다. 황제 폐하께서 금군 2천 명을 데리고 대동산으로 하늘에 제를 올리러 가셨으니, 효산 요충지 쪽에 있는 사람을 신경 써서 그러신 게 아니라면 진 영감님의 충성심을 믿으시는 게다.”

“충성심이라고요?”

언빙운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어 갔다.

“조정 중신을 급습해 암살하려 했는데, 충성심이라고요?”

“충성이란 건 여러 층위가 있단다. 지난 번 일로, 어쩌면 황제 폐하께서는 이미 영감님의 충성심을 의심하기 시작하셨을 게다. 하지만 사실상 신하와 황제 폐하 사이에는 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거란다.”

언약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이미 퇴직한 몸이니 더는 물어서는 안 된다만,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구나. 정주 쪽에는 아무 문제 없는 것이냐?”

언빙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초에 호인 600명의 수급을 베었습니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지금 즈음 경도로 돌아와 상을 받아야 하지요. 하나 섭중도 황궁에서 자신을 의심하는 걸 분명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황제 폐하께서 경도에 계시지 않으니, 군대를 정주에 남겨 두고 감히 경도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언빙운이 소매 속에 감춰진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무슨 할 말이 있었지만 이내 관둔 것이었다.

이에 언약해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아들의 눈을 잠시 쳐다보았다.

“전에는 안 그러더니만. 할 말이 있거든 뜸들이지 말고 어여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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