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657화 (657/1,108)

657화 군왕의 비열함 (2)

한편 이번 태자 폐위 풍파에서 배제되어 있던 두 젊은이는 군신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젊은 권력자 둘은 외양이나 기질 면에서 서로 상당히 비슷했다. 더군다나 태자와 복잡한 관계에 있었다. 한데 하필 지금, 그들의 행동은 사람들의 기대와 상당히 많이 어긋나 있었다.

둘 중 한 사람은 당연히 범한이었다. 지금 사람들 눈에 범한은 확실한 3 황자파였다. 더군다나 그는 황제 폐하의 사생아였으니, 대단히 민감한 신분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지만 7로 총독들이 상주문을 올린 전후 동안 그는 강남에서 쥐 죽은 듯이 지냈다. 황궁으로 보내는 일상적인 보고서에도 이번 일과 관련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렇듯 그는 오로지 황실 금고와 일상적인 업무만 돌볼 뿐이었다.

한편 감찰원에서는 호부를 통해 동궁을 조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군신들이 상상했던 것처럼 강하게 하지는 않았다. 이에 모두들 감찰원의 조치는 범한과는 아무 상관없이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문득 어떤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황제 폐하께서 범한을 쫓아내듯 강남으로 보낸 게 감찰원과 떨어뜨려 놓을 생각으로 그러신 건가? 그리고 겉으로는 온화해도 속은 강단 있는 범 제사가 왜 이번 기회에 물에 빠진 개들을 때려잡으려 하지 않는 거지?’

두 사람 중 나머지 하나는 바로 2 황자였다. 범한이 경도로 오기 전 황제에게 가장 총애를 받은 건 2 황자였다. 그래서 그는 황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왕으로 봉해졌다.

이에 조정의 많은 문관은 그를 따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는 공공연히 태자를 보호하고 있던 장 공주가 암암리에 그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으니······. 이렇듯 2 황자는 은연중에 태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대립 중인 쉬이 볼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황태자 자리를 잇게 될 사람이 있다면 사실 가장 먼저 지명될 이는 2 황자였다.

최근 반년 동안 경도에서는 큰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들은 2 황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였다. 또 장 공주는 유폐되었지만 2 황자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태자만 황제 폐하께 쫓겨날 판이 되었다.

그러니 태자가 폐위될 위기에 처한 지금, 이치대로 따져본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2 황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어떤 행동을 취해야 했다. 물론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황제 폐하의 환심을 얻기 위해,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생을 위하는 차원에서 계속 침묵하고 있어도 되었다.

하지만 2 황자는······ 태자를 위해 정북군 겨울 의복 관련 안건에 대한 해명 상주문을 직접 올리는 한편 암암리에 자기 파벌에 속한 관원을 움직여 황제의 뜻에 반하는 쪽에 섰다.

물론 범한의 두 차례 공격으로 2 황자의 조정 내 세력은 근본적으로 산산조각이 나기는 했다.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유지해서 그런지 2 황자에게는 대신 말해줄 입들이 조금 남아 있었다.

가장 관건은 그가 섭령아를 왕비로 맞은 후 섭씨 가문의 절반의 주인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그가 태자를 대신해 말해주는 건 확실히 다소간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태자가 가장 위험에 처했을 때 그의 형제 둘이, 그것도 최대의 적인 이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를 지지해준 것이었다. 그야말로 기묘하고, 미묘하고, 현묘한 국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경국 황제로도 분명 마음이 복잡할 것이었다.

* * *

태자 폐위에 관한 일이 아직 최고조에 달하기 전, 천하에서 가장 흉악한 변경 세 곳에서 1차 고조기가 찾아오고 말았다. 이에 가뜩이나 마음이 불안했던 경국의 조정 대신들은 깜짝 놀라 극도의 흥분 상태로 치닫기 시작했다.

가장 흉악한 변경 세 곳은 바로 북제와 남만 사이, 경국과 서호 사이, 그리고······ 경국과 북제 사이에 위치한 변경 지역이었다.

발단은 최북단 지역에서 3년 연속 내린 폭설이었다. 날이 너무 추워 소와 말이 얼어 죽어 나가자 북만은 종족 대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만 리에 이르는 힘든 여정에 올랐다. 북만은 북제의 북쪽을 거쳐 경국의 서쪽으로 가는 동안 전 종족의 7, 8할을 잃는 참담한 대가를 치렀다.

이는 역사적으로 제일 큰 사건이었고, 세상에 가장 심원(深遠)한 영향력을 미친 일이었다. 우선 북제 사람들은 더 이상 황무지 야만인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에 그들은 드디어 할 일이 없어진 손을 이용해 경국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의 손은 당연히 일대 명장 상삼호를 의미했다.

한편 서호는 2년이란 시간동안 자신들의 부락으로 들어오는 북만을 소화한 후 단기간 내에 실력 향상을 이루었다. 북만인 중 살아남은 사람의 수는 적었다. 그래도 그들은 식량도 약도 없는 상태에서 만 리를 도망치고도 살아남은 부족민들이었다. 그러니 보기 드문 정예의 젊은이들이 서호로 합류한 것이었다.

이에 경국은 앞뒤로 적의 공격을 받게 되어 더 큰 압박에 직면해 버렸다.

그러자 정주에 있는 섭씨 가문이 서쪽 전선으로 급히 원조에 나섰다. 정왕세자 이홍성도 이미 서역의 호인들과 술래잡기에 들어갔다.

연소을도 북방에 있는 군영으로 일찌감치 돌아갔다. 그리고 강력한 군사력으로 상삼호의 모략과 북제 사람들의 나쁜 의도에 맞섰다.

그런데 이번에 긴장감이 고조된 지역은 정북 대도독 연소을과 일대 명장으로 불리는 상삼호가 있는 북쪽 전선이었다.

상삼호의 후퇴 명령은 연소을에게는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할 시간을 준 것이었다. 이에 연소을은 자신들이 경국의 후위(後衛) 부대이며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경국 황제를 맞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곧장 군사를 몰고 북상했다. 그러자 연소을의 2만의 정예병이 창주와 연경 사이로 난 길을 타고 올라가 곧장 북쪽 군영을 급습해 버렸다.

기만술까지 사용하니 군의 위세는 폭풍우와도 같았다. 이렇듯 연소을은 완벽한 전술을 구사해 가며 추밀원의 지시를 구하지도, 경국 황제의 명령을 기다리지도 않고 직접 대군을 이끌고 나아가 적을 제거해 갔다.

한편 이번 공격은 전쟁터에서 줄곧 속수무책으로 있던 상삼호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연소을이 자기 몸 하나 지키기 힘들 때 느닷없이 토벌하러 나섰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 북제 군대는 느긋하게 50여 리를 후퇴한 후 군영도 제대로 꾸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적이 한밤중에 급습해 들어오자 참혹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경국 군대는 모두 합쳐 겨우 5천 정도만 희생되었을 뿐이었다.

연소을이 창주에서 대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상에 남은 건 상삼호의 첫 번째 패전이었다.

창주 대첩 소식이 경도로 전해지자 강제로 자택 휴양 중이던 서무 대학사며, 거리에서 술을 팔던 백성들이며 모두 환호했다. 그리고 경국 사람의 핏속에 깊이 숨겨져 있던 호전정신과 영토 확장의 열정이 이번 ‘염치없는’ 대승리를 타고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자 줄곧 경도 상공을 떠돌던 먹구름도 더 이상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이에 사람들은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으니 황제 폐하께서 자신의 황당한 계획을 밀어붙이지 않으실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백성들의 정서와 상반되는 일을 하는 건 정말이지 안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전보(戰報)가 도착하자, 이내 북제 황제의 국서가 도착했다. 국서에서 북제 황제는 두 나라가 그동안 친하게 지냈는데 그대들이 어쩌고저쩌고 너무 후안무치한 짓을 했다며 화를 내고 욕설을 늘어놓았다.

국서를 받아 든 경국 황제는 잠시 웃더니 이번 일을 홍려사와 예부로 넘겨 처리하도록 했다. 현재 양국은 국경이 모호한 상태였다. 그래서 어느 쪽이 상대방의 국토를 침범했다고 콕 집어 따지기기는 힘든 지경이었다. 그러니 만약 정말로 오해가 있었던 거라면 얼마 지닌 후 미안하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어찌되었든 사람이 죽었고, 죽은 이는 다시 살아오지 않으니 말이다.

황제가 옆에 있는 홍 태감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연소을이 잘 했구나. 자신의 존재 의의를 정확한 방식으로 짐에게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그렇다. 존재 의의가 없는 사람은 존재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태자처럼 말이다.

그래서 대리사는 정북군 겨울 의복에 관한 사건을 계속해서 심문했다. 감찰원도 태자가 저지른 잘못들을 쉼 없이 파나갔다. 그리고 제일 파렴치한 일을 하는 8처에서는 태자가 어렸을 적 궁녀를 가지고 놀은 일을 가지고 회상록(回想錄)을 쓸 준비를 했다.

태자 폐위 작업은 연소을이 대승을 거두었다고 해서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잠시 휴식기를 갖기는 했다. 그런 후 군신들이 실망의 눈으로 주시하는 가운데 천천히,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실행되었다.

* * *

이 모든 건 범한과 관련이 없었다.

그래서 이 시점에 범한은 어느 민간 선박에 올라타 감찰원이 보내온 보고서를 손에 들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황제 아버지께서는 과연 나보다 더 체면을 따지지 않는 분이셨어. 며칠 후면 설청 대인이 언급해준 천제가 시작되는구나. 경도의 그 조용한 경묘에서 또 무슨 일이 터질 수도 있겠구먼. 천제는 태자를 폐위할 이유를 찾아낸 후 그 타당성을 사람들이게 알리기 위한 방편이야. 황제는 천자(天子: 하늘의 자식이란 뜻)이니 태자는 자연스레 하늘의 손자가 되는 것이고. 그러니 하늘께서 그 손자를 못마땅하게 여기신다고 하면 아들인 천자가 관련 일 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런데 이와 같은 내용을 글로 남기면 역사서는 훨씬 더 멋지게 장식되는 거란 말이지. 그야말로 후안무치의 극을 달리는 방법이군.’

범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감찰원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설총이 상주문을 쓰자 범한은 곧장 소주로 도망가서는 항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오주로 가기 위해 일반 백성으로 변장을 한 후 민간 선박에 올라탔다. 이는 모두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으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범한은 2 황자가 태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주문을 올린 걸 알고는 둘째가 정말로 독하다고 생각했다.

범한은 창주 대첩도 떠올려 보았다. 한데 그 순간 범한의 눈에서 한줄기 의혹의 빛이 반짝였다. 군을 움직이는 일과 관련해 범한은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상삼호 같은 가공할만한 인물이 어떻게 연소을 손에 대패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문제는 마음대로 전투를 개시한 건 대죄에 속한다는 거였다.

그러니 신하나 백성들이 구경꾼처럼 기뻐할 수는 있어도 황제 폐하마저도 바보처럼 기뻐한다는 건 범한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그렇다. 범한은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 행동이 도망치는 것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강남을 벗어나 경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그리고 경도라는 정치 폭풍우의 중심지대에서 벗어나는 거라 할 수 있었다. 범한은 황제 아버지의 마음이 이미 확고해 그 누구도 태자의 폐위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범한이 다른 어떤 행동을 내보이는 건 불필요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범한은 황제 폐하께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자신을 경도로 끌고 가 사람들 앞에 세워 놓는 인간 방패로 사용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태자가 폐위되면 조정에서 수많은 어지러운 기류가 흐를 게 뻔했다. 그러니 범한은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 폐하께서 자신을 그 기류 속에 넣어 완충제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조정에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할 것으로 보였다.

그동안 범한은 계속 기분이 저조했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던 삶의 문제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쓸 정신은 없었다. 그래서 이런 때일수록 가급적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경국 황제가 청정하고 고요한 경묘에서 태자 폐위라는 결정을 내리는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범한은 기분이 기괴하고 불편했다. 경묘는 임완아와 처음으로 만난 곳이었다. 다시 말해, 범한이 아내를 보고 첫 눈에 반한 장소였다. 그런데 그곳이 권력 쟁탈전의 장소로 변해버리다니. 정말로 기분이 안 좋았다.

그래서 범한은 멀리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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