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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646화 (646/1,108)

646화 산속 범씨 집안 아가씨와 편지 (1)

최근 1년 동안 해당타타가 경국 강남에서 작은 범 대인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사실에 북제 사람들은 원통해 했다.

더욱이 푸른 산에서 천일도를 배우는 제자들의 경우 질투와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것 외에 더욱 견딜 수 없어 한 것은 전원에서 채소를 키우는 꽃무늬 옷을 입은 낭자를 보기가 힘들다는 거였다.

해당타타가 떠나고 오래지 않아 다른 낭자가 전원에 들어오더니 해당이 채소를 키우던 밭에 약재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 낭자는 평범치 않은 신분으로 고하가 새롭게 받은 마지막 제자였다. 해당타타의 막내 사고의 자리를 대체한 해당타타의 전원에서 들어와서 해당의 채소 씨앗을 정리하는 그녀는······ 바로 범한의 누이였다.

이 사실을 알고 경악한 제자들은 조사(祖師)께서 멀리 경국까지 내려가 여제자를 받으신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고, 범한의 누이를 제자로 받은 이유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범한이 누구인가? 경국에서 제일 손꼽히는 젊은 권신이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일을 산중에 제자들이 바꿀 방법은 없었다. 게다가 수련하면서 자주 마주치자 처음에는 껄끄러워하던 이들도 범씨 집안 아가씨에게 익숙해졌다.

경국과 북제는 지난 2년 동안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 서로 적으로 싸워온 만큼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적대적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범약약은 푸른 산에 들어온 뒤 순탄치 못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녀가 어디를 가든 적대적인 시선과 등 뒤에서 수군대는 말들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범약약은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았고, 더구나 원래 무관심한 성격이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난 뒤 천일도 제자들도 막내 사고인 범약약이 자신들의 태도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흥미를 잃어버렸다.

사실 범약약은 북제에서 공부하는 삶에 무척이나 만족했고, 경국에 있는 때보다 웃음도 훨씬 많아졌다. 다만 북제 사람들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범씨 집안 아가씨가 경국 경도에서 재녀로 명성을 떨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범약약의 마음에 든 것은 이곳의 부담이 없는 환경과 긴장된 생활이었다. 고하 국사는 그녀에게 천일도 심법의 기본을 가르쳐주고 경서 몇 권을 준 것 이외에는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다.

이에 그녀는 남는 시간에는 이사형(二師兄)을 따라다니며 의술을 배웠다. 이건 그녀가 멀리 북제까지 온 목적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배운 의술로 산 아래 가난한 백성들을 치료해주면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갔다.

해당타타에게 의술을 가르쳐주는 이사형의 성은 목(木) 이름은 봉(蓬)이었다. 고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자기 제자들의 이름을 지어줬는데 랑도, 해당, 목봉, 백삼 등 모두 식물 이름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제자들의 특성도 이름과 딱 맞아떨어졌다.

랑도의 경우 이름처럼 예리한 살기로 가득한 사람이었고, 해당타타는 비바람 속에서도 온화함과 강직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목봉은 한방약의 이름인 만큼 범약약을 가르쳐주는 이사형이 가장 잘하는 게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범약약이 전원 옆에 있는 소나무의 잎을 살며시 쥐고는 이슬을 병에 따라 받았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병 안에 이슬방울이 떨어지던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가 ‘어떤 처방이길래 이슬이 필요한 걸까?’라고 생각했다.

병을 안고 전원을 나온 그녀가 돌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길에서 만난 젊은 천일도 제자들이 병을 안고 가는 그녀를 보고는 옆으로 비켜주며 인사했다.

이들이 범약약에게 마음을 연 이유는 그녀의 배경이 어떻든 그들의 막내 사고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은 몇 달 동안 지켜보면서 범씨 집안 아가씨가 겉모습은 무뚝뚝해도 마음은 선량하고 가식이 없어, 남쪽에 있는 겉모습은 온화해도 마음은 독살스러운 범한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몇 개월 동안 꾸준히 산 아래로 내려가 백성들의 병을 치료해주는 범씨 집안 아가씨의 모습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범약약이 무표정한 얼굴로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맞인사를 했다.

돌계단을 따라 산 정상에 오른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아래 빼곡한 숲을 바라보던 그녀가 갑자기 기지개를 켜며 소리를 질렀다. 양 볼이 붉게 상기된 게 아주 즐거워 보였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몸이 좋지 못해서 범한이 관리를 해줘도 완전히 좋아지지는 못했고, 그래서 경도에 있을 때면 항상 얼굴이 창백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이 지금 건강한 붉은 빛을 띠는 걸 보면 북제에 있는 1여 년 동안 그녀의 몸이 얼마나 많이 좋아졌는지 알 수 있었다.

몸은 마음가짐에 따라 변한다는 말이 있다. 즉 그녀의 마음이 그만큼 편안해졌다는 의미였다.

“재미없는 시모임에 참석할 필요도 없고 각 왕부에 찾아가서 부인들과 한담을 나눌 필요도 없고, 다른 애들처럼 병풍 뒤에 숨어서 요조숙녀인 척할 필요도 없어······.”

돌계단 아래 산을 바라보는 범약약의 얼굴에 즐거운 미소가 걸렸다.

“이런 생활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거야. 고마워요. 오라버니.”

그녀는 산에서는 천일도 심법을 수행하는 것 외에 경서의 올바른 뜻에 대해서도 배웠다. 이전에 장묵한 대가가 수정한 경서를 바탕으로 진형 되었다.

범약약은 한 시진 정도 진행되는 수행이 끝나면 이사형 목봉의 집에 가서 풀기 어려운 의술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목봉이 몇 마디 말을 하다가 갑자기 범약약의 눈에 즐거운 기색이 있는 걸 보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작은 범 대인에게 편지가 왔니?”

범약약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날짜를 계산해보면 올 때가 되었어요.”

목봉이 약간 산발인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편지가 올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즐거워하는 걸 보면 오누이 사이가 정말 좋은 모양인데 왜 경도를 떠난 게냐? 북제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막내 사매에게는 결국 외국이지 않니.”

목봉은 분명 감찰원의 늙은 독술사만큼 지위가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의술과 독술의 대가들처럼 머리는 산발이었고, 꾸미는 데 좀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범약약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디에 있는지 상관없어요. 오라버니가 사람이 살면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희생이 필요한 법이라 하셨거든요.”

목봉이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사매가 이루고 싶은 목적은 뭔데?”

“사람을 구하고 싶어요.”

범약약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뿐인가?”

“네.”

“아······.”

목봉이 잠깐 망설이다가 계속 말했다.

“모름지기 의원이라면 부모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법이지. 북제에 오기 전에 경국 태의원에서 의술을 배우면서 그런 바람을 가지게 된 것이냐?”

“사형, 바람이 아니라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서 결정한 거예요.”

범약약이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오라버니가 이전에 사람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걸 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했어요······. 저는 병을 치료해 사람을 구하는 게 즐겁고 그래서 이 길을 선택한 것에요.”

‘사람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라니?’

아무 말 없이 한숨 쉬던 목봉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해당타타 사매의 마음을 어지럽힌 작은 범 대인이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 거지?’

* * *

아직 해가 저물기 전 빈 물병을 들고 계단을 내려온 범약약은 작은 정원에 심어진 약재를 살피고는 집 안으로 들어와서는 붓과 먹물을 준비했다.

집 안 물건들이 놓인 위치는 이전과 조금도 달라져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곳이 원래 해당타타가 살던 곳이라서 북제인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탁자에 놓인 편지를 보자 범약약의 눈이 기쁨으로 반짝였다. 그녀가 급히 편지를 열고 안에 적힌 익숙한 글씨를 바라봤다.

편지를 읽어가는 그녀의 눈빛이 끊임없이 변화했다. 어떤 때는 긴장한 기색을 보였고, 어떤 때는 기뻐했으며 어떤 때는······ 옅은 슬픔이 느껴졌다.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은 범한이었다. 그는 엄청난 정성과 힘을 쏟은 끝에 누이를 북제 천일도 문파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오누이는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서로에게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고, 각자 서로를 그리워했다. 그래서 범약약이 지내는 곳이 결정되자 범한은 달마다 편지를 꾸준히 보내주었다.

두 사람은 이전에도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었다. 범약약은 어린 시절 담주에서 지내다가 경도로 돌아갔고, 이에 그녀는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된 뒤로 범한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경국은 우편망이 발달한 덕분에 두 사람은 날씨와 상관없이 매달 한 통씩 편지를 주고받았고, 이건 경력 4년 범한이 경도에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는지도 모를 정도였고, 이러한 편지 안에는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편지 안에는 석두기, 집안일, 담주와 경도 사람들과 풍경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런 편지를 통해서 범한은 정신 방면에서 누이의 스승 중 한 명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편지를 통해 범한에게 가르침을 받은 범약약의 가치관은 이 세계의 평범한 여인과 달랐고, 이 세상 절대다수의 사람들과도 달랐다.

그녀는 여전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를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점에서 다른 규수들과 아주 비슷했다. 하지만 가치관은 약간 다른 부분이 있었다. 다른 여자들보다 독립적이고 자유를 갈망하는 그녀의 성격은 이 세계와 융합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세상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모순 때문에 경도에 있을 당시 그녀는 예의가 바르면서도 차가운 여자였다. 범한과 있을 때만 그녀는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멀리 이국땅에 온 그녀는 귀족 집 아가씨라면 두려워할 만한 힘들고 가난한 삶을 진정으로 즐기며 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의 발단은 바로 편지, 범한과 그녀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였다.

편지를 멍하니 바라보던 범약약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살짝 젖은 눈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경도 조정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그녀와 동떨어진 것이었고, 또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능력을 믿었기에 편지에 적힌 위험을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범한이 편지에서 처음으로 이홍성을 언급한 게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홍성······.’

범약약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정왕 세자의 온화한 얼굴을 떠올렸다.

‘서쪽으로 오랑캐를 토벌하러 갔다가 다치지는 않을까? 돌아올 수는 있겠지?’

정왕가와 범씨 집안은 대대로 왕래가 잦았기 때문에 범약약도 어려서부터 이홍성과 함께 자랐다.

그녀는 상대방이 비록 마음속에 큰 뜻을 품고 있지만, 천성은 보기 드물게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놀잇배에서 풍류에 빠져 사는 모습은 무척이나 바보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이번에 이홍성이 자청해 경도를 떠나려 하는 건 경도 황제들의 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상처를 준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범약약은 이홍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범한에게 영향을 받은 그녀는 지금 범함보다 더······ 이 세계의 남녀 사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것은 무척이나 황당하고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설사 이홍성이 꽃놀이 배를 전전하는 풍류가가 아닌 조금의 흠도 찾을 수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라 했을지라도 범약약은 평생 그 남자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바로 범한이 과거 편지에서 했던 어떤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것들 모두 정말 좋은 것이긴 하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아.

“그가 또 어떤 이야기를 해서 너를 울린 거야?”

그때 문 앞에서 피곤에 절은 목소리가 들렸다.

“네 오라버니는 어떤 면에서 보면 정말 괴팍한 사람이야.”

범약약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드니 해당타타 낭자가 얇은 꽃무늬 옷을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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