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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645화 (645/1,108)

645화 새롭게 등장할 괴물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경국의 백성들은 항상 영토를 넓히고 싶어 하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하와 사고검이 세상을 떠난다면 경국의 두 대종사가 세상을 떠나든 말든 상관없이 천하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었다.그렇다면 북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동이성은 사라질 수 있었다.

이에 운지란이 마른 침을 삼기며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스승님께서는 돌아가실 수 없습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오두막 안에서는 들리는 목소리는 갈수록 처량해졌다.

“설사 죽지 않는다고 해도······ 늙기는 할 텐데. 고하는 이미 나이가 많고, 나도 이제는 적은 나이가 아니야. 늙어서 검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대종사를······ 대종사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지만······ 이것이 작은 사제가 경도로 간 것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운지란이 잠시 침묵하다가 마음속에 있던 질문을 꺼냈다.

“원래 인간 세상에는 대종사라는 건 없었다.”

오두막 안에 대종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30여 년 전에 점점 시작되어 우리 같은 괴물들이 여럿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전에 없었으니 앞으로도······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지만, 최소한 지금 상황에서 보면 천하의 젊은 고수 중에서 몇몇은 이 경지에 접근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운지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초가집의 닫힌 문을 바라봤다.

문 안에서 웃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나이가 많아 기회를 얻기 힘들 테니 안타깝구나. 나는 이 검갱 안에서 많은 제자들을 배출해냈고, 심지어 천하에서 가장 많은 9품 고수들을 키워냈지만 만일 그들 중 새로운 괴물이 될 사람이 누구냐 묻는다면······ 아마도 네 작은 사제 한 명뿐이라 답할 거다.”

운지란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는 소주성 초상전장에서 왕 십삼랑과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 나이가 어린 작은 사제가 이미 9품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척이나 놀랐다.

하지만 그는 작은 사제의 경지가 아직 자신의 수준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기에······ 스승님이 대종사의 경지에 들 사람으로 작은 사제를 선택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심성의 문제이다.”

사고검이 대종사다운 자신만만하고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 일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지. 그건 너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고하 문하에 있는 랑도라는 놈도 할 수 없을 거다······. 그동안 고하도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죽은 뒤에 세상이 어떻게 될지 걱정했을 거야. 그러니 우리는 죽기 전에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나는 네 작은 사제를 선택했고, 고하는 해당을 선택했지.”

“참 기묘하게도 둘 다 마지막 제자를 선택했구나.”

“그리고 더욱 기묘한 건 고하 역시 해당을 범한 곁에 보냈다는 거다······.”

사고검이 조롱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사 고하가 직접 보낸 게 아니더라도 해당과 범한 사이에 무언가가 발생한다면 무척이나 좋아할 거야. 그가 보냈으니 나도 보낸 거다. 물론 해당이란 계집애가 더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다만.”

운지란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대종사를 기르는 계획에 범한이 관련된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하와 스승님이 어째서 자신들의 마지막 제자를 범한 곁에 보낸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천하에 정말 괴물이 네 명밖에 없다고 생각하느냐?”

사고검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래, 아마도 네 명밖에 없을 거다. 그 괴물은 늙지 않으니까······. 너도 그 장님을 알고 있지 않으냐······.”

운지란은 마음이 서늘해지면서 스승님이 오래전에 동이성 안을 은밀하게 다녔던 신비한 인물이 있었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너는 범한이 그 장님의 제자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겠지.”

오두막 안에 있는 사람이 웃으며 설명했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 아니냐? 늙은 괴물들이 키운 마지막 제자들이 함께 모여 싸우기도 하고 마음속 생각도 털어놓는다면 세 명 모두 상당한 발전을 할 수 있을 거야. 이것이 소위 단련이라는 거지······. 물론 고하나 나나 제자를 범한 곁에 보낸 것은 제자가 거기서 조금의 행운이라도 얻기를 바라서다.”

“무슨 행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운지란이 굳게 닫힌 오두막 문을 바라보며 물었다.

“괴물이 되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 줄 아느냐? 타고난 심성과 부지런함, 총명함, 지혜로움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운이야.”

사고검이 한숨을 쉬었다.

“천하에 무예를 수련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최고 경지에 오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 왜 그런 줄 아느냐? 그건 우리의 운이 그들보다 좋았기 때문이야.”

그가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30년 전에 사실이 이걸 증명한다. 대종사가 되고 싶다면 그 장님과 만날 행운을 가질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장님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찾을 수 없으니 아쉬운 대로 장님이 키운 마지막 제자 옆에라도 붙어 있어야 하는 거지.”

정신이 나간 표정을 한 운지란은 가장 궁금한 질문을 내뱉었다.

“작은 사제와 해당, 범한 중에서······ 스승님이 보시기에 누가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다음 세대를 책임질 세 명의 젊은 고수 중에서 왕 십삼랑은 아직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당과 범한은 동년배 중에서 가장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젊은 나이에 이미 9품의 경지에 들어 있었고 또 각자 뛰어난 스승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로 시기는 달랐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하늘의 자손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대종사의 등장에 대해 말할 때면 가장 먼저 범한과 해당타타를 떠올렸다.

“해당타타.”

사고검이 간단명료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해당타타는 재능도 있고 발전 속도도 빠르다.”

“그럼 작은 사제는요?”

“가능성은 있다만 심성이 맑아서 해당타타만은 못하지.”

“범한은 어떻습니까?”

오두막 안에 사람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범한이 가장 가능성이 낮다.”

“이유가 뭡니까?”

운지란은 범한을 가장 싫어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대답에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지금 그의 경지는 9품 내외를 배회하고 있고 안정적이지도 못하니 해당타타만 못하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의 발전 속도는 사람의 속도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긴 하다. 더욱이 제자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지금 젊은이들과 다르게 상당히 굳은 심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구나. 권력과 부귀를 타고났으면서 어려서부터 한 수련을 꾸준히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하지만 범한은 모든 조건을 다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부족하다.”

사고검이 최종적으로 평가를 내렸다.

“그는 뜻이 없다. 그 젊은이는 이 세상에 대한 뜻이 없어. 뜻이 없으니 심성을 말할 수 없지 않으냐. 천도의 경지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손에 쥔 모든 걸 버려야 하는데······ 범한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속세 사람인 범한은 손에 쥔 걸 버릴 수 없었다.

“그 장님은 엄청난 사람이고 상대방에게 행운을 줄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 자신은 그다지 운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그는······ 좋은 스승도 아니지.”

사고검이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그 장님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사라진 지 10여 년 만에 나타나서는 대머리 고하를 찾아갔더구나. 아, 참 유감스러워.”

잠시 뒤 오두막 안에서 검이 뽑히는 소리와 이어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 * *

대종사 중에서 자유롭게 천하를 주유하는 섭류운은 제자를 거두지 않았지만 사고검은 최소 50명 이상은 될 만큼 많은 제자를 받아들였다.

이처럼 널리 많은 제자를 받았기 때문에 제자들의 실력 격차도 상당했다. 그의 제자 중에는 운지란처럼 9품 고수나 왕 십삼랑처럼 신비로운 청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재가 되지 못한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북제 국사 고하의 경우 제자를 많이 들이지는 않았지만, 젊은 북제 황제의 무예 스승이자 9품 고수인 랑도나 세상 사람들에게 하늘의 자손이라 칭송받는 꽃무늬 치마를 좋아하는 해당타타처럼 모두가 최고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장님 오죽에게도 당연히 제자가 있었다. 다만 그의 첫 번째 제자와 마지막 제자는 동일인이었는데, 바로 범한이다.

사고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대종사들도 사람인만큼 자신들이 죽은 뒤의 문제를 고민해야 했고, 그래서 이 괴물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제자에게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물론 이들은 제자가 부담감을 느껴 수행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자신의 열정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직은 해당, 범한, 왕 십삼랑이 동시에 같은 곳에 출현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분명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질 거였다.

다만 사고검이 놓친 점이 있었다. 아마도 그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잊어버렸겠지만, 북제 국사 고하는 작년에 다시 산을 열고 제자를 받아들였다.

그가 하늘에서 상서로운 계시를 받았다는 핑계로 거둬들인 두 명의 여제자 중에서 한 명은 황비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산속에서 약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엄연히 말해서 천일도의 마지막 제자는 해당타타가 아니라······ 범약약이었다.

* * *

북제에도 조금은 늦었지만 봄이 찾아왔다. 북제 수도 상경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황량한 서산을 돌아 북쪽으로 몇 시간 더 걸어가면 검푸른 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산은 크기는 크지는 않았지만 높은 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었고, 옅고 짙은 녹색이 어우러져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검려가 천하 무예가들의 성지인 것처럼 이 푸른 산도 북제 백성들이나 천하 고행자들에게 쉽게 침범할 수 없는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이 이름 없는 푸른 산이 성지가 된 이유는 북제 천일도 문파의 중심지이자 국사 고하가 좌선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험한 산길을 따라 조용한 산골짜기로 들어서면 희미하게 소나무 군락지를 볼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이곳 소나무들의 솔잎 형태가 나무마다 다른 거였다.

어떤 솔잎은 실처럼 바람에 날릴 정도로 얇고 가늘었고, 또 어떤 솔잎은 화난 것처럼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솟아 있었으며, 어떤 솔잎은 가늘고 둥근 원통처럼 생겨 있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동이 틀 무렵 산속 식물들 위에 맺힌 아침 이슬은 대부분 솔잎 끝에 맺혔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다만 이곳 소나무들은 이슬을 잎에 담아 두었다가 햇살이 비치면 옥처럼 밝고 영롱한 빛을 내뿜었다.

이처럼 이슬이 햇빛을 반사해 내뿜는 은은한 빛을 따라가다 보면 천일도 문파의 건축물을 볼 수 있었다.

이 건축물은 북위와 북제의 전통 미학 특징에 따라 건축되어 주로 청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엄숙한 느낌의 검은색과 싱그러운 청색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맑고 아름다우면서도 권위가 느껴졌다.

천일도 문파는 비록 동이성 검려처럼 광범위하게 제자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고하 대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수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고하 국사가 제자를 적게 받기는 했지만 랑도와 같이 성인이 된 제자들도 제자를 받았기 때문에 몇십 년 동안 천일도 문파 사람들의 수는 점점 많아졌고, 지금은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푸른 산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이곳 제자들은 자신들 마음속에 있는 선인처럼 산에서 수년간 수행을 한 뒤에 세상을 구제하고 조정을 바로 잡기를 바랐다.

과거 북제 성녀 해당타타가 이 산에서 몇 년 동안 수련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해당타타는 산에서 내려오기 전에 검고 푸른 건물 외곽에 있는 전원에서 채소를 키웠고, 자신이 먹을 외에 남은 채소를 학당으로 보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제자들이 해당타타가 손수 키운 채소를 먹을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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