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633화 (633/1,108)

633화 반 시진 (1)

“회춘당에 문제가 없겠지?”

진원에서 오랜 시간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살아온 절름발이 노인이 가장 가까운 전우에게 말했다.

“최후의 순간에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는 않네.”

산발 머리를 한 비개가 말했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홍사상이 직접 나타나기는 했지만, 황궁 상황이 대인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그들은 아무 흔적도 잡아내지 못할 겁니다.”

“아주 좋군.”

두 눈을 감고 있는 진평평의 눈가에 국화꽃 무늬의 주름이 생겼다. 한참 뒤 그가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

“홍죽을 없애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네.”

이것은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화가 난 황제는 분명 황실 추문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려 할 것이었고, 이런 일에 그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다면 진평평은 무엇 때문에 홍죽을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일까?

진평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일에 문제가 생기게 만들 수 있는 건 홍죽뿐이네.”

비개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홍죽에게 이 일을 보게 했지만, 폐하가 그 젊은 태감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두 사람이 대화에는 천하 사람들을 경악하게 할 만한 진실과 범한이 계속 생각해 왔지만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던 의문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홍죽은 어린 나이에 동궁 수령 태감의 자리에 올랐지만, 운이 좋다고는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운이 나쁘다고 해야 옳았다. 왜냐하면 그가 장 공주와 황태자 사이의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홍죽은 진평평에게는······ 파란을 일으키기 위한 장기짝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그 젊은 태감이 혹시 알아차리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

진평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분명 폐하가 동궁에 심어둔 첩자가 아닌가. 그런데도 어째서 이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폐하께 보고를 하지 않는 거지? 그가 입을 다무는 바람에 두 달이 거의 다 되어서야 일이 터지지 않았나.”

“그 일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일부로 말하지 않은 걸 겁니다.”

비개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황궁에서 지금의 자리까지 오른 걸 보면 바보는 아니지 않습니까.”

진평평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홍죽의 인내심이 정말 감탄스럽네······ 폐하께서 마침내 아셨으니 된 거지.”

비개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대인에게는 뛰어난 후계자가 있고, 저에게는 좋은 제자가 있습니다.”

진평평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도 그 애가 어떤 계획을 세웠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네.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성장한 것 같더군.”

절름발이 노인은 홍죽이 황제의 심복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범한의 사람이라는 건 모르고 있었다.

진평평이 잠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의심이 많은 분이시네. 범한이 사용한 방법이 영리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폐하가 의심이 너무 많다는 거네. 그래서 쉽게 의심할 만한 상황이 생기면 오히려 반대의 경우를 의심할 수도 있어······.”

비개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그래서 저희가 다른 의심을 하지 못하도록 범한을 대신해 사람을 죽인 게 아닙니까.”

“그렇지······.”

진평평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폐하는 의심이 많아서 쉽게 결단을 내리기 어려워하실 거네. 과거 병사 오백 명만 이끌고 북위 정예 기병을 상대했던 용맹한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지······. 사람을 죽여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조잡한 방법이긴 하지만 좋은 점도 있네.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어서 폐하에게 폐하가 알고 싶은 것만 알려줄 수 있지 않은가.”

비개가 마른기침을 두어 번하고 말했다.

“말이 약간 모순되는 말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이해하겠습니다.”

진평평이 활짝 웃으면서 설명했다.

“폐하는 의심이 많으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시네. 그래서 일단 무언가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면 눈앞에 있는 증거 중에서 자신의 의심을 증명할 수 있는 부분 찾으려 하시지······. 그러니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폐하께서 스스로 자신의 눈을 속였다고 할 수 있어. 물론 실제로 발생한 일이니 속였다는 볼 수는 없겠군.”

말하는 도중에 진원 밖에서 은은하게 말소리가 들려왔다. 진평평과 비개가 서로를 바라봤다.

“황궁에서 지시가 내려왔으니 자네는 경도를 떠날 준비를 하게.”

비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홍죽은 어쩔까요?”

“잠시 움직이지 말고 내버려 두게.”

진평평이 미간을 찌푸리며 바퀴 달린 의자를 밀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래도 그 젊은 태감은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네.”

* * *

멀리 강남에서 경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범한은 경국에서 가장 무서운 두 사람이 동시에 자신이 몰래 황궁에 심어놓은 밀정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것은 그가 신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은밀하게 세운 계획이라도 예상치 못한 위험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었다. 만약 홍죽이 운이 좋지 못했다면 범한은 나중에 경도에 돌아갔을 때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한 태감의 소식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신묘에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세계에 신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는 건 분명했다. 신과 거의 가까운 경지에 올랐다고 일컬어지는 북제 고하 국사나 신의 질투를 불러올 만큼의 권력과 의지를 지닌 경국 황제도······ 어쨌거나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더욱이 지금 태극전 긴 복도의 평평한 땅을 바라보며 쓸쓸하고도 처량한 눈빛을 짓고 있는 경국 황제의 모습은 평범한 중년 남자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황제 옆에 검은색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진평평은 머리를 살짝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양털 담요를 쓰다듬었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 없이 앞에 펼쳐진 평평한 땅을 바라봤다. 아직은 초봄이라 낙엽이나 꽃잎이 떨어질 때는 아니었다. 더구나 궁녀와 태감들이 쉴 새 없이 쓸고 닦아 황궁 바닥은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고 석판 사이의 틈도 흙으로 평평하게 메워져 있었다.

이미 밤이 깊은 시간이었지만 등불이 켜진 태극전은 낮처럼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내가 틀렸네.”

황제는 오늘 스스로를 짐이 아닌 나라고 호칭했다.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세 번의 북벌을 단행하고 서쪽을 정벌하고 남쪽을 토벌하면서 이 세상에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자신했네. 그래서 모든 일을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거지. 하지만 막상 진짜 일이 발생하니 내가 자신의 인내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진평평이 황제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집안일입니다······. 옛 선인들이 청렴한 관리도 집안일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폐하 역시 예외일 수는 없겠지요.”

진평평은 이미 황궁 안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절름발이 노인은 마치 그리 큰일이 아니라는 듯이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태도는 황제의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다. 이건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집안일일 뿐이었다.

황제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스스로에 대한 호칭을 바꿔 말했다.

“이전에 자네는 짐의 집안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왔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되었지 않은가. 이 일을 짐을 대신해 처리해 줄 수 있는가?”

진평평이 고개를 더욱 숙이며 대답했다.

“이 노비는 폐하께서 내린 현명하신 결정을 그대로 따를 뿐입니다.”

황제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몇 개월 전에 자네와 이 점에 대해 의논했듯이 짐은 그들을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네······. 하지만 그녀는 짐이 가장 아끼는 누이이고, 그 부족한 놈은 짐은 아들이기에 줄곧 참고 인내해 왔던 것이네. 하지만 이제는 더는 참을 수가 없어.”

표정의 변화 없이 천천히 고개를 젓는 진평평의 마음속에서 점점 기이한 기분이 퍼져나갔다. 그는 그동안 황제 폐하의 결심을 끌어내려고 많은 일을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황제가 결심을 내뱉는 순간이 온 것이었다.

“자네는 궁 밖에서 짐은 궁 안에서.”

경국 황제가 눈을 천천히 감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 * *

그날 밤에 경도 13성문사는 경도 성문을 반 시진 늦게 열라는 황궁 명령과 감찰원의 요청을 받았다. 어스름한 새벽녘 과일이나 채소, 고기와 같은 것들을 잔뜩 짊어진 백성들이 성문 앞에 긴 줄을 이루고 서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경도에서 성문 여는 시간이 연기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관병들의 설명에 따르면 어젯밤 감찰원에 침입한 동이성 밀정을 체포하려고 경도 안에서 발칵 뒤집혔으며, 이에 밀정이 성 밖에 도망치는 걸 막으려고 성문사가 성문을 걸어 잠그고 경계를 서고 있다고 했다.

설명을 들은 백성들은 순간 조용해지더니 더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목소리로 그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동이성 밀정을 욕할 뿐이었다.

한편 경도 안 감찰원은 진평평의 진두지휘 아래 이미 새벽녘부터 행동에 들어간 상태였다. 몇 년 동안 진원에 머물면서 범한에게 지휘를 맡겨 두었던 진 원장이 다시 돌아오자 감찰원의 일 처리 속도와 은밀함은 과거의 수준을 빠르게 회복했다. 한 시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이미 저택 네 곳을 은밀하게 통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경도 안이 난리가 났는데도 경도 수비사는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한가롭게 밤 순찰하던 관병들이 검은색 관복을 입은 감찰원 관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는 무슨 큰일이 터졌다는 생각에 급히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황궁을 지키는 금군은 아무런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황궁의 정문을 지킬 뿐이었다.

경국 황제가 얼마 전 경도 수비 통령으로 등용한 사람은 과거 1 황자와 함께 서정에 나섰던 장군이었다. 부하의 보고를 들은 그가 재빨리 옷을 입고 황궁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수상한 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황궁의 모습이었다.

시위를 데리고 금군 뒤에 서 있던 후 내관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수비 통령을 바라보다가 황궁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그를 막아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왕부에서 있던 1 황자가 말을 타고 달려와 입궁하겠다고 말했지만 후 내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1 황자마저 막아 세웠다.

서로를 바라보던 1 황자와 수비 통령은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과 경계심을 읽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하늘 위로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경도 전체가 어둠에 휩싸였다. 감찰원 밀정과 관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도 경도 수비를 책임지는 두 사람은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지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경도 수비 통령이 조심스럽게 1 황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대원수, 감찰원에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비 통령은 서정군에서 1 황자의 부장을 맡았던 인물이라서 습관적으로 그를 대원수라 불렀다. 1 황자가 자기 이마를 치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감찰원 전체가 움직였다는 것은 황궁 안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는 의미였고, 그것은 이 일을 주관하는 사람이 진 원장이라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진 원장을 찾아가 물을 엄두를 내지 못하겠지만 황자인 그가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잠시 뒤 두 사람이 친병을 이끌고 감찰원으로 향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감찰원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의 눈에 얕은 연못가에 있는 절름발이 노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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