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630화 (630/1,108)

630화 악랄한 놈 (1)

하서비가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초상전장이 3할의 지분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3할의 지분만 가지고 있지 않다니?”

“그렇습니다.”

하서비가 침착하게 말했다.

“여섯째 형님도 최근 몇 해 동안 밖에서 은전을 많이 빌리셨습니다. 큰형님도 아시다시피······ 여섯째 형님은 큰어머니가 생전에 가장 아끼던 아들이었지요. 그래서 큰형님께서도 항상 여섯째 형님을 경계하시며 돈줄을 틀어쥐시고 가족 사업에 참여하는 걸 엄격히 금지하신 거 아니십니까? 하지만 여섯째 형님은 노는 걸 너무 좋아하시는 사람입니다. 은전을 가지고 노는 걸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요······. 그런 분의 돈줄을 끊어버리셨으니 외부에서 돈을 빌리는 수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운영하는 사업이 없는 여섯째 형님께서 뭘 담보로 돈을 빌리겠습니까? 큰어머니께서 주신 지분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지요.”

“여섯째가 그랬다고?”

명청달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그는 명씨 집안 주인이 바꾸는 핵심적인 역할을 자신의 친동생이 할 거라고는 예상해 본 적 없었다. 그가 고개를 획 돌려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고 있는 여섯째를 향해 물었다.

“너······ 미친 거냐?”

사색이 된 명씨 여섯째 어르신이 큰형님의 무서운 눈길을 피해 사람들 뒤로 몸을 숨겼다. 가주인 명청달이 살기 가득한 눈빛을 짓자 사내들이 놀라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

“여섯째 형님이 미친 게 아니라 명씨 집안 모든 사람이 미쳤지요.”

하서비가 차갑게 응수했다.

“명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생각과 고약한 심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명씨 성은 가진 사람들은 모두 선천적으로 이기적이고 나약한 성미를 지니고 있는데 큰 재난에 맞서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명씨 집안이 망한 이유는 큰형님 때문입니다. 형님은 집안사람은 모두 경계하면서 외부의 압력에는 아무런 저항 없이 뒤로 물러 나섰지요······. 계속 물러나기만 하는데 어찌 패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응접실이 침묵에 휩싸였다.

명청달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절망감과 분노가 담긴 웃음소리였다. 그가 하서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네가 지금 지분 5할을 가졌다고 명씨 집안 주인이라도 된 것 같으냐? 명씨 집안 사업의 지분은 궁중 분들도 가지고 있고, 군대 분들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네가 명씨 집안 주인 자리에 오르기에는······ 여전히 지분이 부족하단 말이다!”

이때 줄곧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하던 범한이 입을 열었다.

“그건 무상주입니다.”

무상주라는 말에 상황이 명료해졌다.

범한이 실성하기 직전인 명청달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장부에 오르지 않은 지분을 가지고 소송이라도 하겠다는 말입니까?”

명청달이 범한의 가증스럽게 잘생긴 얼굴을 노려보며 물었다.

“작은 범 대인, 설마······ 장 공주와 진씨 어르신의 지분을 먹어보려는 것입니까?”

의자에서 일어난 범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먹지 않을 거면 제가 오늘 여기 뭐 하러 왔겠습니까?”

* * *

명원의 작은 방안에서 명청달이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아무런 광택도 나지 않은 그의 얼굴은 기름이 다 타서 곧 꺼져버릴 등불처럼 초췌해 보였다.

오늘 오후 하서비는 자신이 가진 지분을 기반으로 그를 명씨 집안 주인 자리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강남로와 감찰원의 공증 또는 감시아래 모든 장부를 밀봉해 보관하고 명원 안의 모든 사람을 순식간에 교체했다.

지난 1년 동안 참고 인내하기만 했던 명씨 집안 전임 주인인 명청달은 자신의 명령을 밖에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겨우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지금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명씨 집안사람과 강남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째서······ 범한이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거지?”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 타고 남은 재처럼 생기 없는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장 공주께서 나를 도와주시겠지.”

그리고는 갑자기 첩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가 그리 말하지 않았는가?”

첩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원래 장 공주의 측근 궁녀로 강남 명씨 집안을 감시하고 연락을 책임질 목적으로 파견되었다. 작년 명청달은 자신의 친모를 목 졸라 죽인 뒤 큰 노마님의 여종인 그녀를 통해서 황궁의 동의를 받아 내었다.

“황궁에서 계속 답신이 없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혹시 변고가 생긴 게 아닐까요?”

명청달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쩐지······ 어쩐지 범한이 너무 자신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인제 보니 황궁이 우리를 도와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던 거였군······. 만약 장 공주에게 문제가 생긴 거라면 나는 그의 입에 물린 비곗덩이에 지나지 않네. 언제 어떻게 먹혀도 이상할 게 없는 거지. 단숨에 해치울 수도 있는 상황에서 복잡한 방법을 동원한 것은 나를 존중해 주려 그런 것인가.”

“어르신을 존중하려고 복잡한 방법을 사용한 게 아닙니다.”

범한이 하서비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오더니 약간 차가워진 손을 비비며 명청달 앞에 앉았다.

“처음부터 어르신이나 저나 조정이 명씨 집안을 건들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일이 곧바로 실행되지 못한 이유는······ 조정이 명씨 집안이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명청달이 그의 눈을 바라봤다.

“폐하께서는 명씨 집안을 정리하길 원하시면서도 파산시키거나 목숨줄을 끊어 멸문지화 당하게 하는 건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먹기가 정말 어려웠지요.”

범한이 계속 설명했다.

“게다가 이 일은 최대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거나 살상이 일어나 강남 민심이 흔들려서는 안 됐으니까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명씨 집안은 거대한 야수와 같아서 고분고분하게 만들기가 쉽지가 않지요.”

그가 계속 말했다.

“본관은 어르신께 기회를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습니다.”

명청달이 거칠게 숨을 들이쉬며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제 쪽에 지분 최소한 절반 가까이 있다는 걸 아시겠지요.”

“이제 어르신은 집안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으십니다.”

범한이 태연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명씨 집안은 하서비가 관리할 겁니다.”

그러자 하서비가 명청달에게 상황을 설명할 겸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제가 이미 사람들에게 명원의 모든 장부를 강남로 총독부로 보내고 조정과 최대한 협력해 과거 황실 금고 선박이 해적들에게 약탈당한 일을 조사하라 명령했습니다.”

하서비가 이어서 말했다.

“저는 명씨 집안의 가주로서 조정과 협력해 사건을 처리할 것이며 만일 집안사람 중 죄를 지은 사람이 나온다면 적법한 처벌을 받게 할 겁니다.”

“란석아!”

명청달을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명란석은 이미 소주부 관아에서 소금 밀수 일에 대해 자백했습니다.”

하서비가 명청달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해적에게 약탈당한 것으로 꾸며 나라 상품을 제멋대로 가로챈 사람이 누구인지도 곧 있으면 밝혀질 것입니다.”

명청달이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이런 짓을 벌이다가는 명씨 집안도 끝난다는 걸 모르는 것이냐! 나와 어머니가 너를 박대했다고는 하지만 너도······ 어쨌든 아버지의 아들이지 않으냐. 너도 명씨 집안의 자손이야! 그런데 어째서 네 손으로 명씨 집안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절망에 빠진 명청달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범한이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설명했다.

“조정은 장사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장사 일에 조정이 너무 많이 참견했다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자칫 똥만 싸는 거위로 변할 수 있다는 걸 본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본관이 폐하께 간곡히 진언을 드렸으니 조정이 명원에 직접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앞으로 말만 잘 듣는다면 명원은 계속 명씨 집안의 명원으로 남을 겁니다.”

그가 두 손을 펴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본관은 앞으로 황실 금고 전운사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명씨 집안과 협력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명씨 집안이 무너질 거란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1년도 채 되지 않아 예전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회복한, 아니! 이전보다 훨씬 번영한 명씨 집안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명청달이 넋을 잃은 표정으로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지난 1년 동안 일어난 일들은 모두 경국 조정,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범한이 명씨 집안 통제권을 얻기 위해 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명원의 주인이 교체되는 일에 조정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강남 백성들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명씨 집안 자제인 하서비가 명원이 주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생이나 세도가들이 소주부를 찾아가 감찰원이 민간 재산을 강제로 빼앗았다고 시위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말이었다. 민간의 재산은 여전히 민간의 소유였고, 다만 그 민간의 재산을 가진 주인이 감찰원의 비밀 요원일 뿐이었다.

범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어르신이나 저나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끝났으니 편히······.”

“작은 범 대인은 사람에게 치욕을 주는 걸 좋아하는 분이시지요. 하지만 이 일은 대인에게 자랑할 만한 공적이 되지 못할 겁니다.”

명청달이 그의 말을 끊고는 악에 받친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대인께서 몇몇 사람들을 동원해 저에게 싸움을 걸 수는 있어도······ 저를 명원에 가둬둘 수 없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이곳을 나갈 수 있으니까요.”

“제가 하려던 말이 바로 이겁니다.”

범한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어르신은 절대 명원 밖으로 나가실 수 없습니다.”

명청달이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뭘 믿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명씨 어르신은 본관이 폐하의 명을 받아 조사하고 있는 교주 수군 역모 사건의 증인이십니다. 그러니 죄가 발각될까 두려워 도망쳤다는 혐의를 받고 싶은 게 아니시라면 명원에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교주 수군 사건은 이미 조사가 완료된 일이었다. 이에 명청달은 범한이 자신을 붙잡아 두려 거짓말을 한 거라 생각하며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누굴 속이려 하십니까?”

“아, 그리고 초상전장 살인 사건과 하서비 암살 사건도 있지요.”

범한이 은은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명씨 어르신의 손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 보니 증거를 찾기도 쉬울 겁니다.”

명청달이 발끈하다가 갑자기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봤다.

“그 사건들을 조사하고 싶었다면 이전에 했었어야지 왜 이제 와서 하는 겁니까?”

“그야 이전에는 어르신이 명씨 집안의 주인이셨으니까요. 제가 그때 어르신을 조사했다면 조정에서 감찰원이 상인을 핍박해 재산을 뺏으려 한다고 의심했을 겁니다.”

범한이 헤헤 웃으며 계속 설명했다.

“이제는 명씨 집안의 주인이 아니시니 조사해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대인께서 지금에야 조사하는 이유는 따로 있지 않습니까.”

명청달이 이를 갈며 범한을 노려봤다.

“맞습니다.”

범한이 한숨을 쉬며 인정했다.

“장 공주께서 더는 어르신을 도와줄 수 없게 되어 제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범한의 눈이 명청달 뒤에 있는 여자에게로 향했다.

미간 주름이 더욱더 깊어진 명청달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넌지시 물었다.

“이것도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경도 분들이 저를 도울 수 없다는 걸 아셨다면 그냥 손쉽게 명씨 집안을 쓸어버리면 되는 것을······ 왜 굳이 이런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명씨 집안을 온전하게 유지해야 했단 말입니다.”

범한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제가 단번에 쓸어버리려 했다면 당시 명씨 집안 주인이셨던 어르신께서 집안과 조정 사람들을 동원해 반격하셨을 거 아닙니까. 게다가 강남 민심도 동요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이제 더는 명씨 집안 주인이 아니니 어르신이 무슨 말을 하든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겁니다. 신분이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범한이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도 없지요.”

그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어르신은 상인의 신분으로는 저를 이기실 수 없으며, 조정의 분노도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물론 그런데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갖은 굴욕을 참아 내면서 1년 동안 저를 붙잡아 두신 점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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