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624화 (624/1,108)

624화 마차를 향해 쏟아지는 돌 (2)

방법이 없어진 명청달은 관료 사회 인맥을 이용해 민 지역의 상황을 수소문했고, 어렵사리 소식을 받아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3대 작업장 안에서 파업이 발생했고, 이에 감찰원 관리인 소 대인이 20여 명을 참수해 강경 진압을 했으며 앞으로도 여러 날 생각에 차질이 생길 거라는 것이었다.

범한의 음모가 아니라 단순 파업이라는 사실에 명씨 집안은 안도하며 작업이 재개되기를 기다렸다. 문제는 명씨 집안이 오래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지난 2개월 동안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명씨 집안은 황실 금고의 생산능력에 점차 신뢰하게 되었고, 이에 평소 생산량을 기준으로 동이성을 비롯한 해외 여러 곳과 대규모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화물을 보내야 하는 날짜가 다가왔고 대량의 화물이 필요한 명씨 집안은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더구나 상인은 신용을 가장 중시해야 하는 만큼 화물을 보내지 못한다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배상을 해줘야 했다.

피 말리는 며칠이 지난 뒤에 마침내 3대 작업장 생산이 재개되었다······. 하지만 생산량이 기존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었고, 언제 다시 작년의 생산량을 회복할지 알 수 없었다.

일순간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된 명씨 집안은 계약을 맞추기 위해 사방에서 화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축해둔 화물도 바닥을 드러냈고, 어쩔 수 없이 거액의 돈을 주고 행북로와 행남로를 담당하는 황상들에게 화물을 사와야 했다.

회계 선생에게서 집안에서 융통할 수 있는 돈의 양을 보고 받은 명청달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범한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설마 황실 금고 화물을 이용해 나를 무너뜨리려 하는 건가? 유치하기 짝이 없군.”

옆에 있던 명란석이 그 말을 듣고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며칠 동안 그는 몰래 초상전장에서 돈을 빌려 소금 밀매를 사업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번에 그와 협력하기로 한 사람은 강남 최대 소금 상인인 양계미였다. 명란석은 양계미가 총독 대인 설청과 사이가 긴밀하므로 자신의 사업에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다만 소금 밀매로 수익을 얻으려면 최소 3개월은 걸리는 데다가······ 만일 아버지기 집안 수입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명씨 집안은 다른 건 없고 은전만 있지.”

명청달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범한은 아무래도 시장 가격을 통제해 우리 집안 은전을 먹으려 할 생각인가 보니 먹고 싶은 만큼 줘야 하지 않겠니. 나중에 토해내게 하면 되니까······. 더구나 이번 주문은 반드시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감찰원의 행동은 단순히 화물 가격을 조정하는 거로만 끝나지 않았다. 명씨 집안이 높은 가격을 주고 화물을 조달을 끝내고 이틀이 지났을 때······ 3대 작업장 노동자들이 마황소를 먹고 힘이 넘치게 되는 바람에 생산량이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이로써 파업이 발생했던 때와 정반대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황실 금고 생산량의 신기록을 갈아치우게 되었다.

화물 가격이 낮아지면 장사하는 데 이득인 건 당연했다. 이에 영남 웅씨 집안이나 손씨 집안, 심지어 하명기도 시세를 이용해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였지만 명씨 집안만은 손해를 보았다.

비싼 돈을 주고 화물을 사서 주문을 처리한 명씨 집안은 눈앞에서 시장 화물 가격이 하락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더구나 천주에 온 외국 상인들이 파렴치하게 영남으로 달려가 싼값에 화물을 사들이는 바람에······ 명씨 집안이 애써 비싼 값을 주고 마련한 자기와 향수들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이 일로 인해 명씨 집안은 총 은전 70만 냥을 손해 보았다.

이전이었다면 은전 70만 냥은 강남 명씨 집안에게 대수롭지 않은 돈이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감찰원의 압박을 받으면서 돈의 흐름이 거의 말라버린 명씨 집안은 모든 걸 태평전장과 초상전장에 기대서 처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70만 냥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자 명씨 집안 주인인 명청달도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주문은 반드시 보내야 한다. 시벽보는 비록 외국인이지만 그의 배후에 외국 큰 상사가 있으니 저번 섬사람들처럼 신용을 저버리는 짓은 하지 않을 거다.”

명청달이 피로한 눈을 비비며 아들을 바라봤다.

“란석아. 이번에 네가 직접 화물을 운송해야 하니 조심해야 한다.”

명란석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도 이번 화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이번 화물은 아버지가 모든 방법과 관계를 동원해 황실 금고에서 빼낸 시용품이었다.

시용품이란 황실 금고에서 처음 연구 제작에 성공한 화물이었다. 독주, 향수처럼 가격은 아주 비싸지만, 세상 사람들이라면 모두 갖고 싶어 하는 신기한 물건이었기에 내놓는 즉시 거액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이번 시용품은 거울이었다. 명란석이 직접 사용을 해보니 거울의 주재료는 유리였지만 무슨 작업을 한 것인지 한쪽 면이 은으로 도금되어 있었고, 물건에 비추면 미세한 부분까지 비춰주는 보물이었다.

범한과 명씨 집안의 관계를 볼 때 황실 금고가 시용품을 명씨 집안에 줘서 돈을 벌게 해줄 리는 없었다. 이에 강남에서 오랫동안 경영을 해온 명씨 집안은 다른 황상을 통해 시용품을 받아냈다. 하지만 거액을 벌 수 있는 시용품을 손에 넣고도 명란석은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이 은거울을 무사히 시벽보란 사람에게 건네준다면야 지금 집안의 어려운 상황을 단박에 해결할 수 있겠지만······ 정말 그렇게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을까?’

“걱정할 것 없다.”

아들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명란석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내가 이미 경도 쪽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니 아무 문제 없을 거다. 이 화물을 네가 직접 운송하면 교주 수군에서 건네받기로 했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바다에 나갈 필요가 없단다. 비록 수입이 줄긴 하겠지만 주군이 직접 운반한다면 훨씬 안전하지 않겠니······.”

지난 1년 동안 범한에게 양보만 한 명씨 집안 주인이 고개를 들고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누군가가······ 사람들을 죽이고 화물을 중간에 가로채려 해도······ 모두를 죽일 수는 없을 거다. 그러니 도망쳐 돌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경도로 가서 소송을 진행하면 되는 거다!”

* * *

3일 뒤 소주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산 위에서 홍상청이 산 아래 길게 이어진 마차 행렬을 바라보았다. 저 마차 행렬 중에서 은거울을 실은 마치는 두 대에 불과했다. 명씨 집안에서 5백 명의 사병을 동원에 호송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주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마차 행렬을 바라보던 홍상청이 순간 정색하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머릿속에 1년 전 교주 수군이 섬에 들이닥쳐 살육을 자행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부패한 동료의 시신을 먹는 바다 갈매기를 잡아서 목숨을 연명했던 자신의 모습과 섬에서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해적 동료들이 떠오르자 그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 그는 해적들을 조사하고 체포할 임무를 받고 섬에 잠입한 감찰원 밀정이었지만 해적들과 오래 생활하다 보니 일종의 동료애 같은 게 생기게 되었다. 명씨 집안 마차 행렬과 사병들을 바라보던 그가 오늘 일어날 일을 상상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의 목적은 살인이 아니라 명청달의 마음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때 명씨 집안 마차 행렬 맞은편에서 2백여 명 정도 되는 기병이 마차들을 호송하며 다가왔다.

두 마차 행렬이 마주치자 관도가 일순간에 비좁아졌다.

관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명란석은 기병 무리를 발견하고는 즉각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해 냈다. 그가 손을 내저어 사병들에게 무기를 뽑고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2백여 명의 기병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명씨 집안 마차들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냥 기병이 지나가는 것뿐인데도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냉혹한 기운에 겁을 먹은 명씨 집안 사병들은 손가락 하나 꿈틀할 수도 없었다.

양측의 마차가 나란히 섰을 때였다.

2백여 명의 기병이 호송하는 마차들이 갑자기 옆으로 쓰러지면서 안에 있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와 은거울이 실려 있는 명씨 집안 마차를 덮쳤다.

평범한 물건이 실려 있다면 마차가 쓰러져 쏟아진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지만 은거울이 실려 있는 마차를 향해 쏟아지는 물건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 아주 무겁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지닌 녹석이었다.

명령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명씨 집안 사병들도 맨몸으로 쏟아지는 녹석을 막아낼 용기는 없었다.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리더니 이어서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명란석이 소리를 듣고 급히 마차에서 내렸다. 백여 개의 은거울 중······ 대부분이 산산조각 부서져서는 여전히 사람의 눈길을 빼앗는 아름다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산 아래 관도가 순간 시끄러워졌다. 양측이 무기를 빼고 대치하면서 언제든지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다.

상황을 파악한 명란석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고개를 돌려 2백여 명의 기병을 이끄는 우두머리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언제부터······ 감찰원 흑기가 사람을 죽이고 화물을 약탈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겁니까?”

은색 가면을 쓴 기병의 수장은 명씨 집안 도련님이 자신의 신분을 알아챘는데도 놀라지 않았다. 사실 그는 오늘 자신의 신분을 감출 생각이 없었다.

감찰원 흑기 부통령 형과가 명란석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고 화물을 약탈하지도 않았소······ 그저 황실 금고 3대 작업장에 필요한 석재를 호송하고 있었을 뿐이오. 길을 가던 중 갑자기 나타난 민간 상인에 의해 길이 막혔고, 좁은 길을 무리하게 가다가 불행하게도 마차가 쓰러지게 되면서 양측 모두 손해를 보게 된 것이오. 그쪽에게 배상을 요구하지 않을 테니······ 그쪽도 시끄럽게 굴지 말고 떠나시오. 괜히 성질을 돋웠다가는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얼굴이 잿빛이 된 명란석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흑기를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그 말이 사실인지 시험해 보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뒤 목구멍까지 치솟은 분노를 애써 삼키자 입안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그가 비통한 눈빛으로 형과를 바라봤다.

“마차가 쓰러졌다고?”

그 말을 하는 내뱉으며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어떻게 마차가 이렇게 정확한 위치에서 쓰러질 수가 있는 거지? 양측 모두 손해를 입었다고? 그쪽 마차에는 쓰러져도 깨지지 않는 돌덩이가 실려 있었고, 우리 집 마차에는······ 살짝만 부딪쳐도 깨지는 은거울이 실려 있었다고!’

침묵과 공포로 사로잡힌 산골짜기 안에서 어느 사람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명란석은 범한이 계획한 일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조정의 관리가 이렇게 후안무치한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살기등등한 기병을 자극해 자신의 목숨줄을 줄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방에 널려 있는 부서진 거울 조각들을 보니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경도로 가서 소송을 걸 것입니다!”

명란석이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마음대로 하시오. 다만 내가 같이 가지는 못하겠군.”

형과가 심드렁하게 말하고는 녹석이 실려 있는 마차를 끌고 가버렸다. 이제 관도에는 울고 싶지만, 눈물이 나지 않는 명란석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명씨 집안 사병들과 바닥에서 밝은 빛을 내뿜는 유리 조각들만 남아 있었다.

과거 명씨 집안은 암암리에 해적을 양성하고 교주 수군과 결탁해 동해에서 화물을 약탈하고 사람을 죽였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고 얼마나 많은 조정이 화물이 약탈당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현재 범한은 과거 명씨 집안의 방법과 정반대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바다 위가 아닌 육지에서 움직였고, 명씨 집안사람의 생명을 해치거나 화물을 강제로 빼앗지 않고······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 모조리 망가뜨렸다. 그래서 명씨 집안은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다.

과거의 잘못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