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화 궁녀의 죽음 (2)
한편 동궁에 있는 황후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이유는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궁녀들이 아직도 수청아의 옥결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잔뜩 겁에 질린 수아가 옆에 있는 황후의 안색을 살피며 속으로 ‘황후마마가 어쩌다가 갑자기 옥결이 집착하게 된 걸까?’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홍죽의 말에 자극을 받은 황후가 오래전 추억이 담긴 물건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본궁이 자세히 찾아보라고 하지 않았느냐!”
황후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신의 물건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이 너무 관대하게 대해 줘서 궁녀들이 우습게 알고 제멋대로 구는 거라 생각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황궁 안에 손버릇이 나쁜 놈들이 있다는 소문이 떠올랐고, 그놈들이 감히 동궁에서까지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더 화가 치솟았다.
황후는 태감과 궁녀들이 자신이 황궁 안에서 기댈 곳 없이 외로운 신세인 걸 알고는 기어오르려 한다는 생각이 들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녀가 입술을 부르르 떨며 노려보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태감과 궁녀들을 겁에 질려 소리쳤다.
“창고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어 각 방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는 이들은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사색이 되어서는 황후가 혹시 궁 안의 규율을 정비하려 이러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특히 오른쪽 엎드려 있는 젊은 태감들은 놀라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져서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들은 동궁에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몰래 황궁 밖으로 가져가 팔았는데, 황후가 말한 옥결도 그중 하나였다.
모두들 황후의 매서운 질타에 잔뜩 얼어 있는 탓에 젊은 태감 세 명이 유독 안절부절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화가 치솟은 황후가 오른손으로 탁자를 크게 내리치자 오른손 중지에 끼고 있던 녹주석으로 만든 반지가 깨져버렸다.
“손버릇이 나쁜 놈이 누구인지 찾아내면 나에게 올 것도 없이 때려죽여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홍죽이 탁자에 흩어져 있는 녹주석 조각을 바라보고는 씁쓸히 웃었다. 부서진 반지는 사라진 옥결보다 훨씬 비싸고 품질도 뛰어난 옥으로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황후가 이번 일을 계기로 궁 안의 기풍을 바로 잡으려 한다는 걸 알았기에 아무 말 없이 몸을 숙여 명령을 받았다. 그가 상급 궁녀와 태감들을 데라고 궁 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일순간 동궁 뒤쪽 곁채에서 이따금 사람의 마음을 두렵게 하는 발걸음 소리와 상자와 궤짝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도 문밖에서 상황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궁녀와 태감들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몰래 물건을 내다 팔은 젊은 태감들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왜냐하면 오늘과 같은 일은 항상 일어나는 일이었고 값비싼 물건을 자신의 방에 숨겨둘 바보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과 달리 범인은 바보가 확실했다.
세 명의 젊은 태감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눈에 줄곧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궁녀가 갑자기 겁에 질려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니야! 나는 아니라고!”
홍죽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직접 수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태감이 궁녀의 침대 아래에서 옥결을 찾아낼 때 자리에 있었다. 그가 한숨을 쉬고는 그 궁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 궁녀는 아까 옷감을 광신궁에 보냈던 그 사람이었다. 얼굴이 창백해진 그녀가 반쯤 정신이 나간 눈빛으로 홍죽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작은 홍 내관······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상관이 없어요······ 저는 아니에요.”
진짜로 옥결을 훔친 세 명의 태감이 서로를 힐끗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궁 밖으로 팔아넘긴 옥결이 어떻게 갑자기 동궁 안에서 나타날 수가 있지? 그것도 궁녀가 가지고 있었다니?’
세 명의 젊은 태감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저 물건으로 인해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홍중이 미간을 찌푸리며 엎드려 있는 궁녀를 바라보았다.
“포박한 뒤 마마의 처분을 기다려라.”
건장한 체격의 태감들이 궁녀를 땅에 엎드러뜨린 뒤 밧줄로 손발을 묶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궁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절망에 찬 비명을 지르며 자신은 그 옥결을 본 적도 없다고 소리쳤다.
홍죽이 고개를 저으며 명을 받기 위해 궁 안으로 들어갔다.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던 세 명의 젊은 태감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어 뒤를 살며시 따라가 말했다.
“작은 홍 내관, 마마께서 물건을 찾으면 범인을 때려죽이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 마마께 갔다가 괜히 미움을 받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홍죽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노비들이 처리하기에는 일이 너무 커서 주인님의 명령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태감의 눈이 실망하는 기색이 스쳤다. 그는 홍죽의 손을 빌려서 자신이 직접 궁녀를 때려죽일 생각이었다. 그는 옥결이 어떻게 다시 궁에 들어왔는지 상관없었다. 옥결을 찾아냈으니 궁녀를 죽인다면 자신의 범죄도 밝혀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홍죽은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황후의 명령을 받으러 갈 생각이었다.
“단순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홍죽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애초에 궁녀 혼자서 물건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분명 감춰준 누군가가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설사 도와준 사람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물건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아야겠지요. 궁정 사람들을 자세히 조사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야 합니다.”
마음이 섬뜩해진 태감이 속으로 생각했다.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겠다니······.’
만약 정말 조사를 한다면 그를 비롯한 세 명의 젊은 태감의 범죄도 발각될 것이었지만 그는 홍죽 앞에서 솔직하게 이 일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저 은근슬쩍 홍죽의 의도를 떠볼 뿐이었다.
“마마께서는 일을 어떻게 처리하려 하실까요?”
“궁 안의 폐단을 조사하려 하신다면······ 잔혹한 수단을 쓸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감찰원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홍죽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감찰원이란 말에 겁을 먹은 태감이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이건 황궁 안에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까. 궁정의 일을 감찰원이 조사한다면······ 마마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될 텐데 차라리······ 저희가 먼저 조사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홍죽이 마음이 움직인 듯 곁눈질로 태감을 바라보았다. 마침 젊은 태감의 눈에서 살의를 본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세심하게 조사해보지요.”
* * *
궁의 침전 앞에 서 있는 홍죽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일단 조사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황후에게 알린 뒤 관용을 베풀어 처리해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황태후가 며칠 동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려 정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살생이 일어난다면 불쾌해 하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황후는 홍죽의 말을 듣자 화가 점차 누그러졌다. 그녀가 손에 들린 옥결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죽어 마땅한 죄는 용서할 수 있고, 살아 마땅한 죄는 모면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네. 범인을 호되게 때려 주게나!”
홍죽이 대답한 뒤 물러나려 하자 황후가 그를 불러 세웠다.
“자네 가서 할 일이 있는 것인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여기 남도록 하게. 듣자니 자네 손재주가 좋다고 하던데 금실을 엮어서 옥결에 매달아 주게나.”
평온한 표정으로 말하는 황후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한편 홍죽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심문을 주관한다면 자신이 연루되어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태감 한 명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는 궁 밖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보고를 받은 홍죽이 미간을 찌푸리며 뭐라 말을 하자 태감의 얼굴은 더욱더 어두워졌다.
홍죽이 황후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 말을 속삭였다.
황후가 아름다운 눈썹을 찌푸리며 이를 갈았다.
“정말 불길하군······ 매질이 무서워 그런 것인가. 아니면 수치심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용서를 빈 것인가······.”
황후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정악당으로 가져가 태우도록 하게.”
홍죽은 마음이 약간 떨렸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곳 귀인들의 눈에 자신과 같은 노비는 그저 가지고 노는 대상에 불과했으니 목숨은 개미만큼의 가치도 없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몸을 숙여 인사한 뒤 궁녀를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는 궁녀가 자살로 죽은 게 아니며, 자신이 심문을 맡긴 태감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입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몰래 잔혹한 수단을 부린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건 홍죽이 의도한 일이었기에 그는 놀라지 않았다. 다만 무고한 궁녀가 죽은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뿐이었다.
경도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큰 황궁은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남녀들이 사는 곳이자 천하에서 신분이 가장 비천한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깊고 스산한 황궁 안에서는 매일 수만 가지 일들이 일어났고, 소리소문없이 비천한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누구도 이들이 황궁 안에서 존재했다는 걸 기억해 주지 않았다.
경국 황족이 포악하기로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경비가 삼엄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황궁 안은 사람을 잡아먹는 개미지옥과도 같았다.
그래서 동궁 안에서 평범한 궁녀가 죽었다는 소식에 어느 사람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그저 정악당에서 시체 한 구가 태워졌고, 수의국에 있던 여종 중 한 명이 동궁에 들어가 황후를 모시는 행운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황후는 매일 홍죽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고, 황태후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정진에 매진했으며 황태자는 매일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공부하기 위해 광신궁으로 찾아가 장 공주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 * *
“대가문이나 대부호를 밖에서 공격해서 무너뜨리기는 힘드네. 왜냐하면 대가문이나 대부호들은 외부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기반을 튼튼하게 구축하고 있거든······. 하지만 만약 집 안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자기들끼리 의심하고 싸우다가 결국에는 무너지게 되는 법이네.”
영주의 새롭게 완공된 제방 위에 서서 범한이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천 리에 달하는 큰 제방도 개미구멍 하나로 인해 무너질 수 있고, 천년을 존속한 가문도 생각 하나에 무너질 수 있는 법이네.”
그가 고개를 돌려 얼굴이 까맣게 탄 양만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말은 자네가 수리한 제방이나 명씨 집안만을 지칭한 게 아니네. 천하 전체를 통틀어 말한 것이지.”
그는 시간을 계산하며 오늘이면 궁녀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면 소문이 퍼질 테고, 황제는 동궁 궁녀의 수상한 사망 소식을 듣게 될 거였다. 황제가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분명 여러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다.
궁녀의 죽음은 이제 겉으로만 화목한 황족들에게 예기치 못한 혼란을 가져다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