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화 황족 내 별종 (3)
“폐하께서는 사람 보는 것과 화초 심는 걸 좋아하십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시는 것도 좋아하시고요.”
“어? 그렇다면 황숙과 취미가 비슷하신 거 아닙니까?”
“그분은 정말 게으르세요. 그저 보기만 하실 뿐이지요. 그리고 누가 감히 그분이 직접 하실 때까지 놔둘 수 있겠습니까?”
“그 해당타타라는 낭자는 전원생활을 무척 좋아한다던데요?”
그러자 순간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폐하께서는······ 매우 재밌는 분이시군요!”
“폐하께서는······ 사실 재밌는 일들을 자주 하신답니다······ 단지 어려서부터 모후께 붙잡혀 치국의 도를 배우시느라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분을 거의 뵐 수 없었을 뿐이지요.”
응접실에서는 화친왕비가 옅은 장난기를 담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범한은 문밖에 서서 그 모든 걸 차분히 들었다. 범한이 듣기에도 저 여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북제 황실에서는 십여 년 전에 한 차례 동란이 일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왕공귀족이 연루되었는지 모르겠으나, 현재 언씨 가문 저택에 숨어 있는 심 낭자의 아버지인 심중도 그때 그 사건으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었다.
북제 황태후에게는 자식이 현 북제 황제인 아들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주들은 모두 북제의 선제가 비(妃)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었다. 경도로 시집온 큰 공주는 북제 황태후와 황제로부터 존중을 받고 자랐지만 그래도 황태후의 소생이 아닌 탓에 중간에서 항상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북제 황태후는 과거에 자식을 품에 안고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비참한 일을 겪었던지라 왕족의 다른 자녀들에 대해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이들 경국 사람들은 북제의 젊은 황제에 대해 어느 정도 호기심을 갖고 있던 터라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화친왕비는 자세한 사실은 피한 채 재밌고 흥미롭지만 내용은 공허한 것들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섭령아가 밖에서 얘기를 엿듣고 있는 범한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범한이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간을 찌푸린 채 곤란한 기색을 하고 있던 화친왕비는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자 일단 한시름 놓았다.
“이제 그만들 물어봐요. 우리 북제 황제 폐하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는 게 있으니까요. 평소 황궁에서 한 번 뵙는 것도 힘들답니다. 어렸을 때는 황태후께서 너무 엄히 관리를 하셨기 때문이었고, 커서는 국사를 돌보느라 바쁘시고······. 오히려 범한이 북제에 있을 때 황제 폐하와 함께 몇 차례 동행을 했었답니다. 황제 폐하께는 줄곧 범한을 좋아하셨어요. 그러니 만약 뭔가 재밌는 걸 묻고 싶다면, 범한에게 묻는 게 더 나을 거예요.”
화친왕비가 이와 같은 말을 할 때 범한과 섭령아는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앉은 터였다. 섭령아는 임완아 옆으로 갔다. 그리고 들뜬 얼굴로 소리를 죽여 그녀에게 많이 보고 싶었다고 말해주고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범한은 2 황자를 바라보며 서로 유감이라는 듯 웃느라 자기 이름이 거명되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화친왕비의 말에 사람들은 북제의 젊은 황제를 만난 사람이 그녀뿐만 아니라 범한도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황제가 범한의 문장력과 재능을 매우 높이 사는데, 그건 세상 사람들도 다 안다는 사실이란 점도 떠올랐다.
세자 이홍성이 딸꾹질을 하고는 범한을 바라보았다.
“이보게 안지. 북제 황제는 대체 어떤 분인가?”
범한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일국의 군주이지요. 그러니 저 같은 타국 신하가 왈가왈부할 분이 아닙니다.”
범한의 말에 응접실에 있던 사람들은 난처했다. 화친왕비 앞에서 북제 황제의 소문에 대해 함부로 말을 꺼냈으니, 이는 확실히 타당치 못한 일이었다. 한데 사람의 호기심은 원래 억제가 불가능하지 않던가. 이에 2 황자를 포함한 모든 이가 범한에게 몇 마디 더 말해보라고 재촉을 했다.
범한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물었다.
“왜 북제 황제 폐하께 그리 흥미를 가지시는 겝니까?”
응접실 안에 있던 남자들이 돌연 입을 꾹 닫아버렸다. 그들의 얼굴은 난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여인 셋은 개미가 나뭇잎을 갉아 먹는 것처럼 속닥속닥 소리를 내며 비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친왕비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 치마를 살짝 들고 평온한 얼굴로 응접실에서 나가면서 정오 연회 준비가 어찌 되어 가는지 보고 오겠다고 말했다.
왕비인 그녀는 그런 자질구레한 일을 돌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이번 행동은 이들 경국 종친들이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왕비가 응접실에서 멀어지자 1 황자가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거네. 북제의 젊은 황제는 항상 신비한 존재이니 말일세. 감찰원과 군측 정보를 봐도 자세한 설명이 없거든. 성격, 기호, 선호 사항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네.”
“그게 뭐 어때서 그러십니까? 황제란 백성들 앞에서는 당연히 신비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범한이 웃으며 대꾸했다.
1 황자가 진지하게 말했다.
“하나 그는 타국 군왕이지 않은가. 그가 신비한 사람일수록 우리에게는 두려운 존재라네.”
범한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냥 소년일 뿐인데, 왜 두렵다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범한은 북제 상경성에서 북제 황제와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자신과 엇비슷한 나잇대 인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귀국 후 진지하게 정보를 살펴보던 중 젊은 황제의 나이가 자기보다 두 살 어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남에 있는 동안에는 북제의 젊은 황제가 심오한 수로 침착하고 과감하게 황실 금고의 은으로 경국 내정에 간섭하는 걸 보고 범한은 두려움에 가슴이 떨렸었다. 이는 범한에게 있어 가장 큰 비밀이었기 때문에 응접실에서는 감히 그와 같은 이야기까지 꺼낼 수는 없었다.
2 황자가 들고 있던 과일을 내려놓고 한탄했다.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건 나이와 상관없는 거라네.”
말을 마친 그가 범한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의미는 ‘범한 자네가 처음 경도에 왔을 때는 고작 16살짜리 소년이었지만 매우 두려운 존재였다네.’였다. 2 황자가 이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북제 금의위 심중의 일을 여러분도 모두 잘 알 겁니다. 결국에는 위화가 지휘사가 되었지요······ 심중이 그리 처량한 말로를 맞았건만, 젊은 황제는 교묘하게 손을 써서 기어코 모든 일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상삼호를 경도에 가둬놓고 운신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뒤에 있는 무리들의 능력을 순조롭게 접수한 것도 있고요······. 위화는 현재 황태후의 뜻을 전혀 받들지 않는다고 하고, 고하 국사도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하니······. 아직 나이가 어린데 북제 군왕은 대체 어디서 그런 심후한 조력자들을 얻은 걸까요?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든 걸까요?”
2 황자가 아까보다 더 무거워진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북제 황제와 황태후 간의 싸움이 더 격렬해지면, 우리 경국에게는 복이라고 생각했지요······ 우리는 황제가 친정을 시작한 초기에는 분명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려온 황태후보다 못할 거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젊은이의 폭력적인 기질 때문에라도 북제 황궁에서 큰 혼란이 일거라 생각했고요. 하나 젊은 황제가 쥐도 새도 모르게 권력을 거머쥘 거란 건 누구하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수단이란 게 정말로······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범한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심중 피살 건과 관련해 그는 내막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일은 범한이 해당타타의 입을 통해 북제 황제에게 제시한 건의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 시각 응접실에 살짝 긴장감이 흘렀다. 세 여인은 남자들이 국가 대사를 이야기하는 중인 걸 알고 눈치껏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눈에 있던 취기가 모두 사라진 세자 이홍성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북제 황제는 일국의 주인입니다. 여색을 가까이하지도 않고 나쁜 취미도 없어요. 머리를 항상 맑게 유지하면서 자중하고 있으니······ 그런 이가 제일 두려운 사람이지요. 나중에 우리 경국이 북으로 진군한다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건 북제의 실력이 아닙니다. 북제 군주의 심성부터 살펴야 합니다. 북제 황제가 몸가짐이 바른 사람이라면, 우리가 그를 이길 방도가 없을 것입니다.”
이홍성의 말에 1 황자와 2 황자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범한은 살짝 놀라 있었다. 황족 출신인 세 사람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자신에게는 의아한 광경이었던 것이다. 범한은 그들의 진지한 표정에 마음에 크게 요동쳐 한 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북제가 범한 자신에게는 동반자이지만 경국의 젊은 권력가들에게는 합병해야 할 대상이란 점도 명확히 알게 되었다.
경국은 무를 숭상해서 선대 때부터 영토는 이미 넓게 확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광활하면서도 아직 빼앗아올 여지가 있는 북제가 있었다. 이는 핏속에 뿌리박혀 있는 영토 확장을 향한 열망이었으며, 1황자도 이홍성도 이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부드럽고 엄숙하게 행동하는 2 황자도 항상 북제를 공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경국은 강한 세(勢)로 30년 동안 줄곧 공세적인 태도를 취해왔었다. 경국 사람들에게 있어, 북제 진공은 생각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이 고려하고 있는 건 적절한 공격 시점뿐이었다. 그러므로 북제 황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응접실에 있는 황실 자제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이 점은 2 황자의 깊이 생각에 빠진 표정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모든 경국 사람에게 천하 통일은 궁극의 목표였으며, 심지어는 저 용좌를 향한 초조한 마음을 잠시 억누르게 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모두들 북제 황제가 여색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던데. 한데 그런데도 안지가 사리리를 북제로 돌려보낸 걸 보면······ 안지, 지난 번 사신으로 갔을 때 상경성에서 뭔가 세부적인 걸 알아낸 게 있는가?”
1 황자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자 범한이 한참 후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여색을 가까이 않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 큰 황궁 안에 측비만 몇 명 있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외척 세력이 다시 득세하는 걸 막기 위해 젊은 황제는 상경성의 거대 가문들을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를 모두 평민 중에서 골랐더군요. 정말 기묘했던 건 황태후가 그와 같은 결정을 반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는 겁니다.”
2 황자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외척의 세력화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그와 같은 결정은 신하들을 달래는 데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군. 그와 같은 결정은 타당하지 않아.”
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우려하는 척하며 말했다.
“조금 전 왕비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북제의 황제 폐하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이런 저런 위장술로 교묘하게 속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그러자 이홍성이 웃기 시작했다.
“그만하게. 그 황제는 자네를 성심껏 대했을 거네. 조금 전 자네는 자신을 외국의 신하라고 했지만, 내 보기엔 북제 사람은 자네를 외국 신하라 여기지 않았을 것이네. 그게 아니라면, 급습 사건이 있은 후 국서를 보내 경도에 항의를 했겠는가?”
1 황자가 화가 나 머리를 가로로 내저었다.
“북제 사람이 우리를 너무 무시하고 있어. 감히 그런 짓을 하다니.”
그러자 범한이 씁쓸하게 웃었다.
“1황자마마, 그 일과 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급습사건이 언급되자 2 황자는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그가 전혀 사심이 없는 듯한 너그러운 태도로 범한에게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그 일이야 당연히 자네와 관련이 없겠지. 자네가 경도 사람이 아니란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북제가 도발하려 한다는 의미였네. 젊은 황제가 자네를 북제로 끌고 가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여동생을 자네에게 시집보내고 싶을 정도일까?”
그러자 섭령아가 끼어들었다.
“제가 보기엔 확신하기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범한은 애당초 인물 좋게 태어난 데다가, 북제 황제는 그의 열렬한 지지자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