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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600화 (600/1,108)

600화 모든 일에는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1)

비개는 감찰원에서 매우 특수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3처에서의 직책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사직을 했으니 그는 지금 감찰원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현재 3처의 수뇌 자리는 그의 후배가 맡고 있고, 제사인 범한은 그의 제자이고, 또한 오랜 해 동안 그는 진평평의 동료이자 좋은 친구였다. 이에 감찰원 안에서 그는 매우 초연한 위치에 있었다.

그 네모반듯한 건축물 지하실에 여전히 비개를 위한 약물 실험 연구실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거의 가지 않았다. 평소 약을 조제하고 독약을 제조하는 작업은 모두 경도 한 귀퉁이에 있는 모 저택에서 진행해서였다.

그 저택은 독을 연구하는 기관이었다. 모든 경비는 감찰원에서 대주고 있었고, 그에 필요한 하인이며 학생도 모두 감찰원 신분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의 연구 성과는 한 시대를 풍미한 독(毒) 대종사의 것이니만큼 자연히 진귀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군 측에서 필요로 하는 독화살과 왕공귀족 후원에서 질투로 살인을 하고 입막음할 때 쓰는 독약에는 모두가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저택 방비는 그다지 삼엄한 편은 아니었다. 비개가 악명을 떨치고 독으로 이름을 떨친 것도 있었지만, 북제와 동이성 적을 포함해 경국 내부의 권문귀족들도 이곳에 잠입해 무언가를 훔쳐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비개가 집안에 독충 같은 걸 키우거나 독 가루 같은 걸 뿌려 놓았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비개를 시중드는 제자들과 하인들은 당연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잘못해서 독약을 복용해도 생명에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모두 해독 환약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비개의 연구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늘 경제적인 곤경에 처해야만 했다. 독약을 연구하고 제조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희귀한 원료를 구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많은 돈이 들었다.

그런데 황실 금고에서는 돈을 충분히 지급해 주지 못했고, 감찰원에서도 가끔씩 자금 지원이 원활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비개는 실험을 할 때면 곧바로 진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어서 제자들의 녹봉을 깎는 게 일이었고, 깎은 만큼 돈을 돌려주는 줘야 하는 데도 이마저도 자주 잊어버렸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감히 돈을 돌려달라고 입도 뻥끗 못 했으니, 이런 이유로 연구실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는 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었다.

한데 고양이에게는 고양이가 사는 방법이 있고, 쥐에게는 쥐가 사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경국의 방대한 기관을 위해 일하는 이들은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부수입을 거둬드리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이로써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두둑이 채웠다.

그러니 감찰원의 비개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독약 지식을 이용해 부수입을 벌어들였다. 감히 그 작은 방으로 들어가 비개 선생이 아끼는 성과들을 훔쳐다가 팔아넘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잔재주를 가지고도 돈벌이는 되었다. 이에 십여 년 동안 천하의 살수, 본처, 첩들이 각기 다른 경로로 감찰원의 독약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자 금전 역시 그 작은 실험실로 몰려들었다.

독약 판매는 위험성이 매우 컸지만, 그래도 그 독약이 어디로 팔려나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에 제자들은 서서히 비개의 약방문을 훔쳐다가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감히 비개가 처방한 약을 쓰려는 자가 많지 않아서였다.

비개의 직속 제자인 범한이 황궁에서 자신의 상처를 직접 치료하고, 훗날 범약약이 오라비의 기술을 이어 받아 태의관에서 가르치기까지 하자······ 비개 대인의 질병 치료 능력은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니 약방문은 잘 팔기만 하면, 안전할뿐더러 뒤탈도 없었다.

이에 5, 6개월 전에 비개 곁에 있던 어느 제자가 약방문 하나를 팔아 어마어마한 금전적인 이득을 취득했다. 그는 거래할 때 극도로 조심했다. 약방문에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뿐더러 상대방에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저 한 손으로 돈을 건네받고 한 손으로 물건을 건넸을 뿐이었다.

그러다 4개월 전, 이 제자가 갑자기 중병을 앓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러 해 동안 독극물과 접촉한 탓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었다. 그는 몇 차례 치료하려 해 보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해 결국에는 침대에서 객혈을 하고 죽어버렸다.

한데 그 제자가 죽기 전에 회춘당은 사들인 약방문을 가지고 첫 번째 환약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실험을 통해 약효를 확인하고 나자 회춘당 관리자는 정말 영리하게도 그 환약의 존재를 회춘당 내 최대 극비 사항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 약이 지닌 부작용은 전혀 찾아내지는 못한 상태였다.

관리자는 많은 왕공귀족에게 이 약이 필요할 것이며, 이것이 경도에서 회춘당이 크게 발전하는 데 필요한 발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 약방문을 외부로 유출 시킬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환약 한 알은 배후에 있는 주인에게 은밀하게 보내기는 했다.

회춘당의 막후 주인은 태상사에 있는 어느 6품 주사였다. 이 주사 대인은 항상 지극히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자신과 회춘당의 관계를 외부에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 그도 약효를 확인하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얼굴에 자기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태상사는 황실 및 황족들에 관한 일을 처리하는 곳이라 이곳 관원들은 황실을 대단히 자주 오갔고, 동궁의 태자가 최근 들어 말 못 할 병을 앓고 있다는 것도 어슴푸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주사는 환약에서 빠르게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어렴풋이 본 것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약을 전달해 준 사람 정도에서 그치고 싶지 않았다.

이에 주사는 황실 외척에게 찾아가 그에게 약을 바쳤다. 물론 자신이 운영하는 약방에서 제조했다는 건 밝히지 않고, 어렵게 수소문한 결과 동이성의 서양 물건을 취급하는 곳에서 이 약을 찾아냈다고 둘러댔다.

그의 말에 외척은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태상사 주사는 자기에게는 약방문이 없고 계속해서 제조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만 말했다.

그는 이미 속으로 계산을 마친 상태였다. 이 약을 쥐고 있으면 동궁에 있는 귀한 분이 자신을 필요로 할 것이고, 자신은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외척도 태상사 주사의 속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점에 대해 대놓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대신 수염을 어루만지고 웃으며 잠시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 후 약은 자신이 먹겠다는 말만 하고 약을 황궁으로 들여보내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서로가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고 있던 것이다.

그날부터 회춘당 관리자는 ‘직접 제조’한 묘약을 ‘열심히 찾아보겠다’고 말한 태상사 주사에게 보냈다. 그러면 주사는 이 ‘체력 보충을 위해 필요한 약’을 외척에게 보냈다. 그런 후 그 환약은 다시 은밀한 통로를 통해 황궁으로 들어갔다.

환약은 찻물과 함께 태자마마의 얇은 입술 안으로 들어갔다.

태자는 열흘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약을 복용했다.

이 모든 과정은 너무나도 은밀하게 진행 돼 설령 누군가가 조사를 하더라도 어느 선에서는 추적이 끊기게 되어 있었다. 약이 오가는 선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관련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애당초 시작부터 그 선에 놓인 모든 관계며 가능성을 누군가가 철저하게 계산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일을 은밀하게 진행했다고 생각했고, 만사가 자신들 손바닥 위에서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사실은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통제당하고 있는 졸(卒)인 걸 몰랐을까?

* * *

작은 저택에 있던 범한은 고심에 빠져 있는 왕계년을 내버려 두고 우물가로 걸어갔다. 범한에게 다른 일이 없는 것 같아 줄곧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등자월이 서둘러 다가와 보고를 올렸다. 그의 얼굴에는 당연히 미련과 긴장감이 몇 가닥 어려 있었다.

그는 내일이면 저 먼 북제로 떠나야 했다. 왕계년이 북제에서 맡았던 밀정 우두머리 직책을 이어받는 것이다. 이 직책은 명의상으로는 4처 관할 하에 있었지만, 그동안 원장 대인 및 제사 대인과 직접 연결된 지극히 중요한 자리였다.

언빙운 후임으로 왕계년이, 왕계년 후임으로 등자월이 맡게 된 것이다. 등자월은 자신이 그쪽으로는 재능이 없음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앞서 북제에서 일한 두 대인과 비교 될까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작은 범 대인에게 이번 북제 행에서 주의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간곡히 청한 터였다.

“당신이 내 측근이란 걸 천하 사람들이 다 알아요.”

범한이 이어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니 신분으로는 북제 사람들을 속일 수 없으니 아예 그들을 속일 필요가 없는 거죠······ 다만 왕계년처럼 자신을 따라 붙은 금의위를 언제든 따돌리는 기술은 없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조심해야 할 거예요.”

말을 마친 범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외교관원의 태도를 몸에 완전히 익혀야 할 겁니다. 간첩에는 종류가 많아요. 작은 언 공자의 경우는 암첩이었고, 왕계년은 암첩과 명첩을 반반 섞은 경우였어요. 당신은 명첩밖에 할 수 없으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북쪽 밀정망을 동원하지 말아요. 관련 문서를 교환하려면 비밀 서한 전달로를 사용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고 등자월 당신은 충분히 세심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정보를 캐기 위해 몰래 묻고 다니지 말고 연회에 자주 참석해요. 그곳에서 북제 귀족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내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등자월은 살짝 당황했다. 작은 범 대인의 신선한 제안에 머릿속에 있던 다른 문이 열린 기분이었다. 첩자가······ 여기저기 묻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현재 두 나라의 관계는 밀월기에 들어서 있어요.”

범한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이것을 기본 취지로 삼고 일하고, 북제 사람들의 체면을 너무 깎지 말고요.”

등자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북쪽에 있는 밀정망은 어떻게 정리할까요? 제가 신분이 드러나 있으니, 대인께서 앞서 말씀하신 대로 저로서는 그들과 접촉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임문이었나, 임정이었나? 아직 북제 상경성에 있을 겁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에요. 주의 사항을 일러 줄 겁니다.”

범한이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말을 이어 갔다.

“제1급에 대해서는 이미 개인적으로 말해줬지만, 그곳은 가지 말고······ 분부할 게 있으면 사철이를 찾아가요. 사철이에게 장사와 관련한 망이 구축되어 있으니까, 제1급에게 소식을 전하기 쉬울 겁니다.”

등자월은 며칠 전에 작은 범 대인으로부터 들은 게 있어 제1급이 그 기름집을 이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대인의 계획이 타당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에서 나의 개인적인 소식을 전할 사람은 하명기입니다.”

범한이 생각을 해보고는 말을 이어 갔다.

“상경의 포월루 분점도 곧 열 거예요. 그때가 되면 그들에게 당신과 연락을 하도록 말을 해둘 겁니다.”

등자월은 대인께서 이미 안배를 다 해놓아 자신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데 범한은 차분한 등자월의 얼굴을 바라보며 슬쩍 미안해하고 있었다. 등자월에게 신분을 드러낸 채 북제로 가도록 한 건, 사실 북제에 있는 밀정망과 접촉하기 힘들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기회를 보아 아우가 내부에서 손을 뻗도록 만하는 동시에 포월루를 끼워 넣기 위해서였다.

등자월은 작은 범 대인의 마음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범한은 그런 등자월의 예상을 뒤엎고 황당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북제에 있는 경국의 밀정망을 모두 자기 집안의 눈과 귀로 만들 수 있는지였다.

밀정망은 범사철의 장사에, 자신과 북제와의 거래에 있어 매우 중요 했다.

범한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어 갔다.

“이번 북제 행에 흑기 300명을 선발해 창주까지 배웅하도록 할 겁니다. 창주에 도착하면 당연히 북제 사람들이 그 일을 인계받아야 할 거고요. 조정 일 말고 제일 중요한 건, 우리 집 녀석을 북제 상경성까지 멀쩡하게 산 채로 데려다주는 겁니다. 북제 상경성에 들어간 후에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지 말고, 천일도 큰 사당으로 가서 해당타타를 찾아요. 이후 일은 그녀에게 들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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