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1화 담박공 (1)
관리들이 웅성대며 황제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애를 썼다. 각 부의 수장들은 교체되지 않았지만, 예상치도 않았던 젊은 관리들을 옆에 두게 되자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폐하가 언제 젊은 관리들을 발탁해 위에 있는 늙은 관리들을 몰아낼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서 대학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와 폐하와 몇 마디 논쟁을 벌였다. 조정 관리들과 의논을 거치지 않고, 이부와 감찰원의 사전 심사도 없이 대규모 관리 임명을 하는 건 너무나도 성급한 처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오늘 내린 명령을 바꿀 의사가 없었고, 서 대학사의 체면을 봐줄 생각도 없었다. 성지가 변경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대규모 인원조정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필연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추밀원으로 파견된 진항은 품계는 더 높아졌지만, 중요 위치인 경도 수비 자리에서 떠나게 되었다. 이에 무척이나 황당하고 놀랐지만, 앞으로 나와 성은에 감사 인사를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밖에 전임 추밀원 부사 곡향동과 같은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황제의 뜻을 받아들였다. 황제는 산골짜기 습격 사건을 철저하게 규명하지는 않았지만 군대 쪽에 상당한 대가를 요구했다.
범한을 바라보는 군대 고위 장군들의 눈빛에서 상당한 분노가 느껴졌다.
문관과 무관 양측 모두 폐하가 추밀원과 경도 수비를 인원을 교체하는 이유가 범한을 지지해 주고 산골짜기 습격 사건으로 다친 범한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조회가 끝난 뒤 몇몇 후속 조치가 있기를 기대해 볼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군대 쪽의 미래가 좋지 못하다는 걸 분명했다.
게다가 문관 측은 교체된 관리들의 숫자가 가장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2 황자 쪽과 가까운 관리들이 가장 많이 교체되었다. 더욱이 두려운 점은 어젯밤에 범한에게 체포된 32명의 관리가 다시 얼굴을 내밀 기회가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진지하게 성지를 듣던 범한은 황제가 어젯밤에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언빙운의 이름이 들리지 않는 게 의문이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황제가 설사 언빙운은 중용한다고 하더라도 그를 다른 부서로 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경국 법률과 감찰원 규정에 어긋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최소한 황제가 언빙운을 이용하고 싶다면 진평평의 체면을 먼저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은 언 공자가 벼슬에 오를 가능성은 없었다. 작은 언 공자가 만약 다시 승진한다면 범한의 제사직을 맡는 것 말고는 없었다. 범한이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황제가 감찰원을 흔들 준비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겠냐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범한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성가림의 이름이 들렸다.
그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젖히며 용상에 앉은 중년 남자에게 다가가 묻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외지에서 관직 생활을 하고 있는 성가림이 어째서 황제의 눈이 든 것이지? 더구나······ 이부라니?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개입한 적 없는 관아인데······. 이번에 두 단계를 한 번에 승진한 거니 승진 속도도 너무 빠른 셈이야.’
조정 관리들도 성가림이란 이름을 듣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범문사자 중 한 명인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벼슬길에 오른 지 채 2년밖에 되지 않은 관리가 경도로 돌아와 중요한 자리에 오르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봤다.
황제에게 과분한 호의를 받은 범한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 황제의 모습과 비춰본다면 일단 달콤한 사탕으로 기분을 좋게 한 뒤 몽둥이를 들 게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몽둥이가 어디에 어떻게 떨어질지 모른다는 거였다.
“······신충문을 도찰원 집필어사로 파견하고, 좌도어사 하종위는 범한과 협조해 감찰원 사무를 살펴보고 궁정에 보고할 것을 명령한다.”
몽둥이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떨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든 범한의 두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가 아무 말 없이 황제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젊은 관리를 바라봤다. 좌도어사가 감찰원에 들어온다니? 감찰원은 명의상 궁정의 감독을 받고 있었지만 경국 황족은 태감이 권력을 쥐는 걸 엄격하게 금지했고, 또 진평평의 기세 때문에 감찰원은 독립왕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좌도어사가 감찰원을 감시하고 동시에 궁정에 보고한다면 감찰원은 이제 황궁의 감시 범위 안에 있게 되는 셈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범한은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오른손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자신의 배경 때문에 황제가 진평평처럼 자신을 신뢰하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강력한 방법을 사용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일을 끝내려면 아직 멀었는데 황제는 이미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우려 하고 있었다.
하종위가 누구인가? 과거 경도 인재로 범한의 제자인 후계상과 함께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자 누이 범약약을 쫓아다녔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전에 황태자 밑에 있었던 그는 나중에 장 공주 밑으로 들어갔고, 이후에는 천자의 제자가 되어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어사로 등용되었으며, 공이 인정되어 좌도어사가 된 뒤 호부 조사를 책임지기도 했었다······.
범한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종위는 분명 2년 동안 경국 조정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범한은 자신이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을 황제가 감찰원을 감시할 눈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였다.
“폐하!”
범한이 앞으로 나가 하종위 옆에 서더니 용상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소신 이견이 있사옵니다!”
하종위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선 범한을 바라봤다. 범씨 저택 앞에서 범한에게 맞았던 걸 떠올리면 분노가 치솟았지만 능글맞게 자신의 감정을 감추었다. 그가 감탄스럽다는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봤다. 마치 작은 범 대인이 황제와 관리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용감히 황제와 맞서는 모습에 감탄한 모양이었다.
황제가 범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는 명령하고 신하는 받아들이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서무 대학사야 원로대신이니 황제와 의견을 부딪쳐도 문제가 없었지만, 그 외에 관리들을 임명하는 문제에 대해 직접 이견과 분노를 드러내는 예는 없었다.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이견이 있다는 것인가?”
범한이 고개를 들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감찰원은 어사의 간섭을 받을 필요 없습니다.”
“감히!”
황제가 용상을 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옆에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있고 뒤에 어사가 있어 국가의 법률에 따라 짐이 결정한 사항을 너 같은 놈이 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냐.”
범한은 목구멍까지 화가 치솟아 오르면서 오늘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지금 감찰원이 약해진다면 앞으로 그 여인이나 진원의 절름발이 노인을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목을 꼿꼿이 세우고 당당하게 말했다.
“소신, 감히 폐하께 묻겠습니다. 감찰원은 관리들을 감시하고, 궁정은 그런 감찰원을 감시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사라니요. 만약 이 어사가 뇌물을 받아 사사로운 마음을 품고 감찰원을 마음대로 조사하거나 조사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관리들이 모두 웅성웅성 떠드는 가운데 황제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총명하다는 명성과는 걸맞지 않게 억지를 부리는구나. 돌아가 봐라.”
하종위가 옆에서 거짓으로 범한을 위로하는 말을 했지만 범한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황제의 명령에도 물러서지 않고 눈알을 데구루루 몇 바퀴 구르며 고민하던 그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소신 반대합니다!”
정말이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말이었다. 황제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신하가 이렇게 당당하게 반대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공당에서 진행되는 소송이 아니었고, 범한은 송세인이 아니었으며, 황제는 작은 지주가 아니었다. 함부로 반대를 외칠 사항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화가 난 황제가 수염을 부들부들 떨면서 손가락으로 범한이 코를 가리켰다.
“짐이 결정한 일에 반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범한이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소신이 어찌 폐하의 뜻에 반대하겠습니까. 다만 소신은 감찰원 제사이고 원장 대인은 진원에 머무르고 계시는데, 이 일을 소신이 다루는 건 이치에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오늘 제가 감찰원을 대표해 이곳에 와 있다고는 하나 제가 폐하의 뜻을 받는 것도 문제이고 받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에 생각해 본 결과······ 소신이······ 감찰원 제사 직에서 물러날 테니 폐하께서 직접 감찰원에 교지를 보내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감찰원 제사직에서 물러나겠다니?’
관리들이 또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오늘 대조회가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까지 치닫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폐하는 감찰원의 손을 빌려 조정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지막에 작은 범 대인을 억압하는 조처를 내렸다. 하지만 시선이라 불리는 작은 범 대인은 그 명성에 걸맞게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뼛속까지 오만함이 가득 차 있었고, 이에······ 대담하게도······ 대조회에서 사직을 무기로 삼아 교지를 받지 않았다.
이처럼 간이 큰 관리는 경국이 개국한 이래 단 한 번도 등장해본 적이 없었다. 일순간 여기저기서 의논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정중앙에 서 있는 범한을 바라보던 경계심 가득한 눈빛들은 이제는 황당함과 감탄 어린 시선으로 변해 있었다.
서 대학사와 호 대학사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앞으로 나왔다. 한 사람은 얼굴을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한 사람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서무가 범한을 향해 신하의 본분을 잊은 거냐며 한바탕 꾸짖자 호 대학사가 온화한 목소리로 위로하며 폐하를 대신해 교지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도 범한은 고집스럽게 서서 교지를 받지도 않았고,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모습은 선생 두 명이 반찬 투정을 하는 유치원생을 달래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 대학사와 호 대학사는 범한을 대신해 황제에게 연신 사죄하고, 작은 범 대인의 나이가 젊어서 이렇다느니 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들은 황제가 당장이라도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낼 거라 걱정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황제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분노에 찬 눈으로 범한을 노려보며 차갑게 물었다.
“범한, 자네는 사직을 핑계로 짐을 위협하는 것인가?”
“소신이 어찌 그러겠사옵니까.”
“그래, 좋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말했다.
“자네는 짐이 자네를 아끼어 이번 일로 벌을 내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 정 그렇게 사직을 하고 싶다면 짐이······.”
황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범한이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소신 태학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리키고 싶사옵니다.”
범한이 자신의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대답하자 화난 황제가 버럭 소리쳤다.
“짐은 자네가 사직하는 걸 허락할 수 없다!”
태극전은 일순간 놀란 탄식이 울리더니 이내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누구도 오늘 대조회에서 이처럼 흥미진진한 상황에 펼쳐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들 범한에 대한 폐하의 총애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 범한이 처벌받지 않은 거라는 건 알았지만 이 상황에 어떻게 마무리 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모두들 범한이 어째서 도찰원 어사가 감찰원을 감시하는 일에 이렇게 화를 내고 흥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범한이라면 굳이 황제와 부딪치지 않고도 감찰원의 권력을 유지할 다른 방법을 고안해 낼 수 있었고, 그가 할 수 없다면 온갖 지략을 가진 절름발이 노인이 나설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