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화 한결같은 마음 (1)
둘째 날은 셋째 날이 되기 전날로, 바로 완아가 경도로 돌아오기 전날이었다. 범한은 자신의 아내가 더러운 일에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랐으므로 거사를 치를 날을 둘째 날로 정했다.
이날은 바람은 부드럽고 날씨는 화창해서 쌓여 있던 눈이 녹아 천하대도에 물기가 가득했다. 거리에 쌓인 눈들이 녹아 생긴 물이 작은 눈덩이와 마른 나뭇잎을 쓸며 움푹 팬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경도 안과 밖 네 방향에 있는 성문은 모두 13성문사가 안전을 책임지고 지키고 있었다. 이 13성문사는 황궁에서 직접 통제하고 있어 경도 수비도 간섭할 수 없었고, 추밀원의 군대 측 원로들이 겉으로는 많이 움직일 수도 없었다.
매일 밤이 될 때면 경도 성문은 굳게 닫혔다. 경도 역사에서도 몇 번 일어나지 않았던 피를 튀기는 정변이나 대재난, 국경지대 동란이 생겨 사자가 보고하러 급히 달려올 때를 제외하면 열리지 않았다.
다만 감찰원의 늙은 원장 진평평 대인만은 예외였다. 그는 경도 밖 진원에서 살고 있었기에 황제는 원장 대인이 밤에도 경도에 들어올 수 있도록 특권을 주었다.
하지만 이건 특별한 경우였다. 진평평을 제외하면 깊은 밤 경도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범한이 감찰원을 통솔하게 되면서 이 특권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늘 것이었다.
그래서 연신독의 죽음은 경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로 전해지지 못했다. 경도 수비 원대 진영에서 연신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상사의 상사, 또 그 상사의 상사를 거쳐 보고되느라 진짜 신분을 아는 고위 장군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연소을의 외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위 장군은 너무 놀라 제멋대로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했지만, 경도 안에 사실을 알릴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경도 수비 통령 진항이 이 소식을 알게 된 건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경도로 돌아와 업무를 보고한 뒤 저택에서 쉬고 있던 정북 대도독 연소을의 귀에도 소식이 들어갔다.
그의 친아들이 어젯밤에 대영 안에서 암살을 당한 사실을 말이다.
연소을은 양다리를 쩍 벌리고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었다. 오랜 시간 군대에서 말을 타며 생활하면서 생긴 습관이었다. 그가 무심한 눈동자로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도무지 자신의 귀에 들린 소식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르신.”
침대 위에 있는 두 명의 첩이 두려움과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고 일어나서는 연 대도독에게 옷을 입히고 씻겼다.
이 모든 과정 동안 연소을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대야에 담긴 뜨거운 물로 손을 씻으면서도 전혀 떨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정력이 대단했던 그는 군인이 된 뒤에는 밤마다 항상 여자를 옆에 두었고, 집안에도 상당히 많은 첩을 거느리고 있었다. 경도의 저택에는 정부인이 없었지만 다섯 명의 첩이 그의 시중을 들고 있었고, 비바람이 불던 어젯밤에는 첩 두 명과 함께 밤을 보냈다.
연소을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옆에 있는 첩을 바라보았다. 평상시에는 남몰래 자신의 체력과 정력을 뽐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요염한 모습의 첩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혐오감이 생겼다.
그는 여자는 많이 거느리고 있었지만, 아들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가 침착하게 일어나서 허리에 흑금옥 허리띠를 채우고는 내리는 눈을 막아 줄 외투를 걸친 뒤 문을 나갔다. 문밖에는 이미 친위병과 경도 수비 장군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큰 화살과 화살통을 들고 있는 자신의 심복들을 바라보던 연소을이 지금까지 소식을 물었다. 보고를 듣는 그의 얼굴은 침착하기만 했다. 그의 약간 검은 얼굴은 평상시와 같이 의연하고 결연했다.
말발굽 소리가 점차 연씨 저택에서 멀어져 갔다. 저택 안 침대 위에는 두 명의 첩이 참혹하게 죽어 있었고, 비취색 장막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친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연 대도독은 성문을 나가 멀지 않은 원대 진영 장막 앞에 도착했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신을 위로하려 다가오는 진영 안 장군들은 본체만체했고, 급히 달려오는 진항에게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가 직접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연신독의 시신은 휘장에 덮여 있었다. 연 대도독이 직접 와서 시신을 확인하기 전에는 건들 수 없었기에 모두들 기다리던 중이었다.
오랜 시간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시신 앞에 서 있던 연소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한참이 지난 뒤 그가 눈을 내리 뜨고 손을 뻗어 이미 경직된 아들의 손을 폈다.
죽은 아들의 손이 너무 딱딱하게 경직된 탓에 연소을은 힘을 쓰다가 결국 아들의 손가락 두 개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그가 아들의 손바닥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눈앞에 갔다 대고 자세히 관찰했다.
장막을 뚫고 비친 햇살이 들고 있는 옥패에 반사되어 연소을의 눈을 찌르자 그의 동공이 살짝 수축했다.
그는 이 옥패를 알고 있었다. 옥패 위에 그려진 작은 검과 새겨진 문자를 보는 순간 그의 마음에 살짝 서늘 기운이 감돌다가 곧장 사라졌다.
중군장에 있는 다른 장군들은 이 옥패가 무엇을 대표하는지 알지 못했다. 진항이 한숨을 쉬며 먼저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진씨 집안도 이 일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했다. 대도독의 아들이 자신의 가문이 관리하는 진영에서 암살을 당했으니 진씨 집안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는 셈이었다.
연소을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께서는 여러 말씀하실 것 없습니다.”
진항이 잠시 생각하다 다시 위로했다.
“대도독께서는 슬픔에 이성을 잃으셔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연소을의 얼굴은 아들을 잃어 슬픔에 겨워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후 그는 원대 진영 장군들의 안내를 받아 아들이 거주하던 막사로 갔다. 그가 혼자 안에 들어가 오랜 시간 머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방해하지 않고 밖에 서서 기다렸다.
막사 안에 남아 있는 아들의 흔적을 바라보던 그가 막자 뒤쪽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나갔다. 그가 아무 말 없이 눈 위에 남아 있는 어지러운 싸움의 흔적들과 핏자국을 바라봤다.
다시 중군영으로 되돌아온 연소을이 아들의 시신을 바라봤다. 고개를 숙이고 아들을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아들의 명치에 박혀 있는 화살을 잡고 뽑아냈다.
‘피식’ 소리를 내며 시체에 박혀 있던 화살이 빠지자 연소을이 화살을 손에 꽉 쥐였다. 그리고는 직접 친위병이 등에 메고 있는 화살통에 화살을 넣고는 몸을 돌려 진항에게 말했다.
“태워버리십시오.”
다시 울려 퍼진 말발굽 소리는 원대 대영을 떠나 경도로 향했다. 그의 아들이 자객에게 암살당했지만, 조정의 고위 장군인 연소을은 여전히 경도에 머물러야 했고, 이건 권력이 가져오는 불편함이었다.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정북군 친위병들의 얼굴에는 비통함과 분노로 가득했다. 이들은 경국의 북쪽 국경에서 북제와 수년간 싸우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대도독의 아들을 경도에서 누군가가 죽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친위병들의 반응과는 달리 당사자인 연소을은 오히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침착했다. 그가 따라오는 심복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자객도 피를 흘렸으니 사고검은 아니다. 9품 정도 되는 사람이야.”
연신독이 손에 쥐고 있던 옥패는 자객이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연신독의 실력과 자객이 지불한 대가는 그 사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줬다. 심복이 그의 옆으로 말을 몰며 대답했다.
“섭중이 떠난 뒤로 경도에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9품 강자는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지금 대도독과 작은 범 대인이 경도로 돌아왔으니 두 명이 더 늘어난 셈이지요. 하지만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9품 고수들은 경도에 더 있습니다. 감찰원 안에도 알려지지 않은 9품 강자들이 있으니까요.”
의심할 여지없이 연소을이 경도로 돌아온 뒤 가장 먼저 충돌하게 된 세력은 감찰원이었다. 더욱이 그날 추밀원 앞에서 범한이 그의 앞에서 채찍을 휘두르면서 숨겨져 있던 갈등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을 만큼 격화된 상태였다.
그런 만큼 연신독이 죽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모두들 맨 처음 범한을 떠올렸다.
“범한은 아니다.”
연소을의 침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범한과 관련이 있지.”
성문에 이르자 심복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대도독을 바라봤다.
‘만약 작은 범 대인이 이 일과 관련이 있다면 대도독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 걸까? 설마 경도 안에서 폐하의 사생아에게 화살을 쏴 죽일 생각이신 건가?’
연소을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아무 말 하지 않고 마른기침만 할 뿐이었다. 입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 * *
어젯밤 암살 사건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연소을의 아들이 경도 수비 진영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둘째는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건이라 감찰원 본부에서조차 자세한 내용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경도 조정의 문관과 무관은 두 개의 체제로 분리되어 있었으므로 조정에 있는 대신들 중에서도 이 일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오늘 소조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신들이 황궁 문 앞에서 각자 파벌에 따라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다만 동궁 황태자와 2 황자 사이가 최근 많이 좋아짐에 따라 두 파벌에 속한 문관들도 너무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반면 호부상서 범건은 문하중서 두 대학사들과 고개를 숙이고 뭐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세 사람 주변에 접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 황궁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금군 대통령 1 황자가 엄숙한 얼굴로 나와 앞에 있는 연로한 대신들을 향해 인사하자 모두들 따라서 마주 인사했다. 1년여 전 폐하가 1 황자에게 황궁 보안을 책임지게 한 뒤로 황궁 전체가 난공불락처럼 견고해졌다. 그리고 부지런한 1 황자는 황족임에도 신경 쓰지 않고 매일 조회가 있을 때면 직접 당직을 섰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조정 대신들은 모두 1 황자를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대신들이 경국 황제와 함께 천하에 떠도는 낭설들을 토론하기 위해 한 사람씩 줄지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궁문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궁 앞에 광장에 쌓여 있던 눈은 이미 깨끗하게 치워져서 아래 젖은 청색돌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 한쪽에는 사람 키의 반 정도 높이까지 쌓인 눈이 작은 성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때 눈이 쌓인 거리에서 말과 마차와 마부 모두 검은색인 마차가 달려왔다. 문을 지키는 금군와 문 안에 있는 시위들은 안에 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기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1 황자가 손에 보검을 쥐고 직접 맞이하러 나갔다. 마차에서 행동이 약간 불편한 젊은 관리가 부축을 받으며 내려오자 두 사람이 함께 대화를 나누며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황궁 문 안과 밖에 있는 병사들은 숨죽인 채 조용히 곁눈질로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1 황자와 젊은 관리의 그림자가 황궁 안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병사들은 숨을 쉬며 작은 목소리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보았는가? 1 황자와 관계가 좋다는 소문이 돌더니 사실인가 보네.”
“이상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형제끼리 사이가 좋은 건 당연한 거지.”
“형제?”
누군가가 냉소를 지으며 반박했다.
“1년 전에 범 제사가 2 황자를 어떻게 했는지 잊어버렸는가?”
“입 다물게!”
경국은 사회 풍속이 개방적이라서 말 때문에 처벌받는 일은 드물었지만, 황궁 문 앞에서 황족에 대한 소문을 떠드는 건 분수를 넘는 일이었다. 하지만 1 황자와 함께 서쪽 오랑캐를 토벌한 뒤 금군에 들어와 초소를 지키는 군인들은 그런 것에 겁을 내지 않을 만큼 담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