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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562화 (562/1,108)

562화 건물 밖에는 눈이 있고, 북쪽에는 뜻이 있다 (1)

이후 몇 번의 설전이 오간 끝에 앞으로 감찰원이 경도에서 할 일들이 정리되면서 기생집에서 열린 비밀회의는 끝이 났다. 현재 진평평은 더는 사무를 처리하지 않고 있었고, 감찰원의 여덟 처 수장들은 조용히 길을 비켜주었기에 범한과 언빙운이 상의한 내용이 곧 감찰원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왕계년과 등자월이 먼저 나가서 제사 대인이 지시한 일을 진행할 준비를 시작했다. 뒤따라 문을 나서려 하던 언빙운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연소을의 아들을 죽이는 건······ 물론 아주 엄격한 경고이지만 맹장이 미쳐 날뛰게 할 겁니다. 대인께서는 이후 일들도 계획하고 계시겠지요?”

범한이 잠시 말없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이 일을 대인께 숨길 수 없겠군요. 9품 절세 고수인 연소을은 무공 실력이 출중할 뿐만 아니라 군대의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벼슬길을 대가로 내놓아서라도 저는 그를 앞당겨서 제거해야겠습니다.”

연소을은 섭씨 집안이나 진씨 집안과는 달랐다. 그는 장 공주와 협력 관계가 아니라 충성 관계에 있는 만큼 범한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의 장애물이었다. 그리고 범한은 경국 황제와는 달리 이상할 정도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아주 기묘한 감각을 지닌 연소을의 화살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앞으로 있을 파란이 일어나기 전에 만약 경국 북쪽에 주둔해 있는 신궁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범한은 삶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었다.

연소을의 아들을 죽이는 건 절세 고수를 미쳐 날뛰게 할 것이었고, 이런 절세 강자를 죽인다면 장 공주를 미쳐 날뛰게 할 수 있었다.

범한은 이와 같은 자극적인 모험을 시도하는 걸 좋아했다. 이 일로 많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황제의 마음을 순간 다른 쪽으로 이탈하게 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이 일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화살의 그림자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언빙운은 정신병자를 보는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보다가 잠시 뒤 한숨을 내쉬었다.

“연 대도독은 상당한 경지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감찰원은 그의 사람들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설사 상처 입지 않은 멀쩡한 몸이라 할지라도 대인의 실력으로 그를 암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지금 상처까지 입으셨지 않습니까······. 원장 대인이라면 분명 이런 미친 계획을 실행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닙니다.”

범한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절름발이 노인은 저보다 더 미쳤습니다. 저는 그의 미친 짓에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 작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미친 짓을 할 수밖에요.”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제 생각을 아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범한이 범사철의 어깨를 두드리며 언빙운을 바라봤다.

“이전에 경도성 밖에 구릉 위에서 말한 대로 하는 것입니다. 만약 저와 함께 대세를 만들어 내고 싶으시다면 때때로는 감찰원과 조정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마음을 많이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언빙운은 범한의 말이 바로 권신의 길과 천하의 즐거움에 대한 말이라는 걸 알고는 한숨을 쉬며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건물에서 내려갔다.

포월루 3층의 거리와 인접한 창문을 열고 범한과 범사철이 난간에 서서 아무 말 없이 눈이 쌓인 거리 풍경을 바라봤다.

하늘에서 나풀나풀 내린 눈이 사람들의 머리, 어깨, 우산이나 마차 지붕 위에 가볍게 내려 낮았다. 오늘 경도는 엄숙하고 무거운 모습이었다. 더욱이 포월루 앞 대로에는 검은색 감찰원 마차가 가득 세워져 있고, 마차 안과 밖에 검은색 연의를 입은 감찰원 관리들이 까마귀처럼 모여 있어 더욱더 어두워 보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하늘에서 내린 눈이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약간은 가려주었다. 온통 검은 세상에 순백색 눈이 내리는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범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래 왕계년과 등자월, 마지막으로 언빙운이 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거리에 있는 감찰원 관리와 밀정들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제 그는 최소한 십여 명의 유능한 심복을 두고 있었고, 조정이나 관료사회 모두 작은 범 대인의 심복들을 무시하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능력 있고 믿을 만한 인물들로 범한을 위해 더욱 크고 강력한 권력망을 조직해 경도에서 그의 지위를 더욱 견고하고 높게 만들어 줄 것이었다.

체계는 이렇게 한 층 한 층 쌓아 올라가는 것이었다. 오늘의 이러한 풍경은 과거 경도에 처음 발을 들인 소년이 얼렁뚱땅 계년조를 조직했을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오늘 여기서 들은 내용은 아버지에게 말하지 마.”

범한이 고개를 돌려 동생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지시했다.

“연로하신 아버지가 우리 때문에 걱정하시는 건 싫으니까.”

범사철이 알겠다고 대답하다가 히죽 웃었다.

“사실 말해도 소용없는 걸 내가 뭣 하러 말하겠어. 아버지는 국고 관리에나 뛰어나시지 감찰원처럼 사람 죽이는 일에 능력이 있는 건 아니시니까.”

범한이 아무 말 없이 웃었다.

황족을 경호하는 80명의 호위는 금군 시위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무공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고달만큼의 강자는 아니었지만, 호위 일곱 명이 뭉치면 해당타타를 대적할 만큼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다. 그러니······ 80명의 호위가 모두 뭉친다면 얼마만큼의 위력을 보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두 형제의 아버지인 엄하면서 후덕한 범 상서 대인은 황족을 대신해 몰래 이와 같은 고수들을 길러냈다. 만약 그가 범씨 집안을 위해 엄청난 인물을 남겨두지 않았다면 그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호부 상서인 그는 이미 상서라는 권세와 능력에서 벗어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능력이 없다고?’

범한이 아우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과거 황제의 장인과 황후의 친동생을 단칼에 베어 죽인 사람을······ 어찌 사람 죽이는 일에 능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만 호부 상서 범건은 항상 인내하며 조용히 밖에서 상황을 주시하는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무서운 면모를 알지 못했다. 진평평과 임약보와 같은 사람들만이 호부 상서 범건의 진정한 면모를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범한은 자신의 일 때문에 아버지가 갑자기 자신의 방식을 바꾸기를 바라지 않았다.

“상경성에서 약약이는 봤어?”

아우의 머릿속에 있는 아버지의 엄숙하고 고지식한 모습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 범한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고하의 제자가 된 범약약은 몇 번 강남으로 편지를 보낸 뒤로 소식이 없었다.

해당과 북제 어린 황제를 통해서 범한은 누이가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몇 번 만나 본 적은 있어.”

범사철이 헤헤 웃으며 설명했다.

“누이가 고하 국사를 따라서 의술을 배운다는 사실은 상경성에서도 유명하거든. 하반기에 서산에서 약초를 채집하고 산속에서 수행하러 가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범한이 냉소를 지으며 투덜거렸다.

“고하, 그 까까머리 중놈도 참 후안무치한 놈이야. 처음 협의할 때 내가 섭섭지 않게 대우를 해줬더니만 기껏 한다는 게 약약이한테 의술을 가르친다고? 그놈한테 의술을 배워서 뭐 하라고? 나나 비개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게 훨씬 낫지······. 괜히 천일도 무상 심법을 가르쳐 주기 싫으니까 그깟 핑계를 찾아낸 거 아냐.”

범한이 분노에 치를 떨며 하는 소리에 범사철이 겁을 먹은 표정을 지었다. 범사철은 그동안 범한의 발길질을 빼면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북제에 오래 머물면서 고하 국사를 신령처럼 숭배하는 북제 사람들의 모습에 약간은 동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지금 범한이 고하를 까까머리 중놈이라고 부르자 까까머리가 무슨 뜻인지 몰랐음에도 직감적으로 욕이라는 걸 눈치채고는 겁을 먹었다. 그가 형인 범한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형님이야말로 천하에서 담이 가장 큰 사람이야. 무서운 걸 모른다니까.’

고하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제자 교환 계획은 애초부터 혼인을 피해 도망가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범한도 누이가 고하에게 교육을 받아 제2의 해당타타가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더욱이 천일도의 무상심법은 해당타타가 몰래 범한에게 전수해 줬기에 북제 고위층이 신용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다 넌지시 아우에게 말했다.

“네가 북제에서 말한 그 고수들을 조사해봐. 계속 초야에 숨어 있었을 테니 본인이나 가족은 깨끗하겠지만······ 너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북제 황실이 네 옆에 밀정 몇 명쯤은 숨겨 두었을 테니까.”

본인이나 가족은 깨끗할 거라는 말은 범사철이 지금 곁에 두고 있는 곡도를 찬 북제 고수들이 북제 조정이나 금의위과 관련된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란 말이었다.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던 범사철의 눈동자가 순간 차갑게 빛났다.

“형님, 안심해. 이미 누구인지 조사를 해뒀으니까. 북제 조정이 내 옆에 밀정을 심어두지 않고 어떻게 안심을 할 수 있겠어. 유능한 공짜 호위병을 마다할 이유는 없잖아? 그래서 당분간은 중요한 일을 할 때만 따돌리며 데리고 있을 생각이야.”

범한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아우가 이렇게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그가 대견스럽다는 표정으로 아우의 등을 두드렸다.

“일의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할 줄 아는 걸 보니 다 컸구나. 역시 북제로 쫓아내기를 잘했어.”

그가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지. 지금 북제는 네가 자신들을 대신해서 황실 금고 상품을 사들이기를 바라고 있는데, 너를 함부로 건드릴 리는 없으니까.”

포월루 아래층은 이미 텅텅 비어 있었고, 거리 시작과 중간마다 불량배 같은 사람들이 서서 사람들을 막고 있었다. 난간에 선 범한이 그 모습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경도에 세력들은 모두 지금 포월루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그는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가 복수할 거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고, 결정적인 증거가 없이 복수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지도 예상하고 있을 거였다.

이건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너와 내가 자세하게 의논할 일이 있어.”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던 범한이 고개를 돌려 아우를 바라봤다.

범사철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그 검에 관한 이야기.”

살짝 고개를 숙이고 말하는 범한은 목소리는 너무나도 침착해서 마음속 감정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

“왕계년이 어디서 그 검을 어디서 가져왔지?”

범사철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무시하며 형님이 어째서 가장 측근인 왕계년을 의심하는 건지 그 이유를 생각했다. 겁을 먹은 그가 상경성에서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검을 발견한 것과 구매해서 보낸 것 모두 왕계년이 홀로 진행했고, 아무런 이상한 점도 없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범한은 이 이야기 안에서 수상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텅 비어 있는 자신의 허리춤을 바라봤다. 황제에게 천자의 검을 돌려받은 뒤로는 마음대로 차고 다닐 수가 없었다.

“네 말에는 아주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

그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문이 난 뒤에 너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경국 사람인 그가 이 검을 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물론 은전 몇만 냥이 상당한 금액이긴 하지만 북제인들의 자존심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북위 황제가 사용한 천자의 검을 왕계년이 사도록 북제 황실이 내버려 둔 이유가 뭘까? 왕계년이 나에게 아부하려 했다는 말로······ 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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