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525화 (525/1,108)

525화 금의환향 (1)

교주 사변에서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감찰원 관리 일곱 명은 범한을 따라서 온 상태였다. 교주 사변을 처리하는 방법이 비교적 거칠었기 때문에 군대를 하루아침 만에 깨끗하게 숙청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에 범한은 자신의 부하들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길 원치 않았다. 진씨 집안사람이 이미 교주 수군을 넘겨받은 이상 사변에 참여한 천여 명의 관병들의 처리 문제나 큰 소란 없이 숙청하는 등의 문제는 진씨 집안에서 고민할 문제였지 범한이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제자인 후계상이 걱정될 뿐이었다. 교주 수군의 밀수 일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후계상을 그는 여전히 교주에 남겨둔 상태였다.

그 이유는 내년 조정에서 포상을 내릴 때 후계상이 승진시키기 위해서였다. 물론 범한은 교주 지주 오격비가 총명한 사람인만큼 후계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알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범한은 허무재를 떠올리고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언젠간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르는 만큼 그를 계속 교주 수군 안에 숨겨둘 생각이었다.

제사 대인이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기자 홍상청은 더는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범한이 돌연 입을 열었다.

“하루빨리 명씨 집안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가?”

사실 홍상청은 작은 섬에서 살아난 뒤로 줄곧 그때의 일에 대한 악몽을 꾸고 있었다. 이에 제사 대인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자신이 깊이 숨겨 두었던 속마음이 들켰다는 생각에 급히 무릎을 꿇었다.

“하관이 사사로운 마음에 이끌려 대인의 계획을 방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범한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그를 바라봤다.

“명씨 집안이 무너질 날도······ 멀지 않았네.”

범한이 강남에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에도 명씨 집안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해 가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범한은 큰 대가를 치른 끝에 마침내 명청달이 자신의 어머니의 목을 졸랐던 것처럼 명씨 집안의 목을 조를 수 있게 되었다.

명씨 집안 큰 노마님이 죽은 이상 이제 그 밧줄을 팽팽하게 조이는 일만 남아 있었다. 명씨 집안은 이제 언제든 범한의 손에 의해 죽을 수 있는 상태였다. 명청성, 명씨 집안 넷째, 초상전장, 황실 금고······ 범한은 자신의 성과가 무척 만족스러웠다.

오후에 되자 배는 해만을 돌아 갈매기 네 마리가 위아래로 춤을 추며 나는 것 빼고는 한적하기만 한 항구에 도달했다. 멀리 비추는 석양에 물든 금빛 파도 아래 물고기 떼들이 옥처럼 동그랗게 모여 헤엄을 쳤다.

갈매기를 본 홍상청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범한이 일어나 자신을 맞이하러 나와 있는 관리들과 먼저 담주에 도착해 자신을 마중하고 있는 흑기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바다 위 생활을 끝내고 담주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의 마음은 짙은 그리움과 설렘으로 가득해졌다.

흰 돛을 단 배가 울퉁불퉁한 해만의 곡선을 따라 천천히 항구를 향해 이동할 무렵 담주항에 정박해 있던 작은 배도 마중하기 위해 다가왔다. 쏜살같은 속도로 달려온 작은 배가 큰 배에 가깝게 접근하자 배 위에 있는 남자가 두 배가 천천히 맞닿을 수 있도록 손짓을 했다.

이윽고 사다리가 대내려오자 얼굴 가득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관리가 숨을 헐떡이며 배 위로 올라왔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신발을 신고 있던 범한은 자신이 뭐라 물을 새도 없이 관리가 달려오자 고개만 끄덕여 인사했다.

관리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관은 담주 전리로 고향을 방문하신 흠차 대인을 맞이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 말에 범한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관리가 다가왔을 때 그의 관복을 자세히 보지 않았던 터라 상대가 전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허례허식 따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감찰원 제사이자 흠차 대인이 고향을 방문한다는 건 담주 지방관들에게 영광스러운 일인 만큼 분명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자신에게 아부할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주는 보이지도 않고 전리만 오다니?

그가 무의식적으로 멀리 항구에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지주 대인은 어디 계시는가?”

범한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담주 전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흠차 대인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생각에 울먹이며 대답했다.

“대인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미리 들어 알고 있는 만큼 오늘 지주 대인이 항구에 나와 대인을 맞이하는 게 옳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대인께서 이렇게 빨리 오실 거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의로 나오지 않는 건 아니니 지주 대인을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멍하니 그 말을 듣고 있던 범한은 비로소 자신의 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담주성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탓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냥 개인적으로 고향을 방문한 것이니 허례허식 같은 건 할 필요가 없네.”

하지만 이미 항구에서는 허례허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범한은 놀랄 만큼 뛰어난 시력을 통해 사람들이 바쁘게 가리개를 설치하는 모습과 관리들이 급히 항구로 달려오는 모습, 그리고 바글바글 모여 목을 길게 빼고 있는 담주 백성들의 모습을 보았다.

범한의 말에 안심한 담주 전리가 용기를 내어 2년 만에 담주에 방문한 거물을 바라봤다. 범한이 담주를 떠난 뒤에 부임한 그는 범씨 가문의 괴짜 도령에 대한 소문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었다.

이후에는 관료 사회에서 작은 범 대인이 지난 2년 동안 경도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한 여러 일에 대해 들었었다. 그래서 그는 범한에 대해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하늘이 내린 인재이군.’

범한의 빼어난 외모를 보고 감탄하던 전리가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오늘 상황을 보고했다.

임완아는 이미 3 황자를 비롯한 무리와 함께 담주에 도착해 있었기에 담주성은 전체가 한바탕 난리를 치른 상태였다. 해양 산업이 몰락한 담주성은 그저 외진 지방일 뿐이었다. 폐하가 매년 세금을 감면해준 덕분에 편안하고 고요한 삶을 영위하던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황자와 군주가 동시에 오는 큰일을 맞이해 본 적이 없었다.

이에 담주성 사람들은 아내와 제자가 왔으니 작은 범 대인도 올 거라 짐작하고는 일찌감치 맞이할 준비를 했다.

다만 이들은 범한이 교주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언제 담주에 올지도 몰랐기에 서서히 마음이 느슨해져서 준비도 소홀히 했다.

그러던 중 오늘 성 밖에서 온통 검게 치장한 기병대가 난데없이 나타나더니 성의 방어를 통과해 곧장 항구에서 방어진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담주성 사람들은 비로소 작은 범 대인이 오늘 날이 오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이 사실을 유일하게 제때 보고받은 전리만이 시간에 맞춰 항구로 달려왔고, 피서를 즐기고 있던 담주 지주를 비롯한 다른 관리들은 재빨리 관복으로 갈아입은 뒤 항구로 뛰어오고 있었다.

제때 준비를 하지 못한 걸 두고 범한의 화를 낼까 걱정한 담주 전리는 미리 용서를 빌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온 것이었다.

그가 조심히 범한의 안색을 살폈다.

그때 범한이 갑자기 물었다.

“할머니는 어떠하신가?”

전리가 아첨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노마님께서는 건강하십니다. 지주 대인께서 항상 찾아가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음, 그렇군. 완······.”

범한이 말을 하다 말고 미간을 찌푸리자 전리가 화들짝 놀랐다. 작은 범 대인이 오늘 접대에 불만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 그의 등줄기에서 땀을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한편 범한의 표정을 본 홍상청은 제사 대인이 전리 앞에서 자신의 부인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난처해하고 있는 걸 눈치채고는 살며시 웃으며 대신 물었다.

“작은 마님은 오셨습니까?”

범한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있는 전리는 비록 하급 관리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상대방에게 작은 마님이란 호칭으로 임완아를 부르게 해도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전리는 흔쾌히 임완아를 작은 마님이라 부르려 하겠지만 말이다.

“부인은 저택에 계십니다.”

전리가 살짝 머뭇거리다가 이어 말했다.

“노마님깨서도 저택에 계십니다······. 하관이 대인을 마중 나오기 위해 급히 이곳에 오느라 저택에는 아직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범한이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전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사실 그는 집에 있는 가족들과 성에 있는 몇몇 사람들을 놀래줄 생각으로 흑기에게 알리지 말라고 해둔 상태였다.

“항구에 있는 사람들을 빨리 해산시키게.”

범한이 빙그레 웃으며 지시했다.

“그리고 내가 알아서 갈 테니 자네가 타고 온 작은 배 좀 빌려주게.”

그는 할머니와 임완아가 나오지 않은 항궁에 굳이 가고 싶지 않았다. 관리들과 인사하거나 담주 고향 어르신들과 한담을 나눈 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았다. 죽봉 안에 앉아 온갖 허례허식을 치르는 건 소주에서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했다.

그 말을 들은 홍상청과 전리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안 됩니다.”

홍상청이 자신의 안전을 걱정해 반대한다는 걸 아는 범한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청와, 자네는 나와 함께 한 지 오래되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명심하도록 하게. 자네는 감찰원 사람인만큼 내 결정을 조건 없이 따라야 하네······. 폐하께서 하사하신 호위도 내팽개친 나를 자네가 막으려 하는 건가?”

가벼운 목소리였지만 안에 담긴 내용만큼은 가볍지 않았기에 홍상청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담주 전리가 울먹이며 하소연했다.

“대인, 이곳 백사장은 완만하지만, 뒤는 온통 험한 절벽뿐이라서 갈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나들이하러 가고 싶으신 거라면 일단은 항구에 정박한 뒤 나중에 날씨가 좋을 때 다시 오시지요.”

범한이 일어나 옷을 추스르며 뒤쪽 벼랑과 아무리 봐도 익숙하지 않은 암초를 바라보고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서부터 담주에서 자란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도 모를 것 같은가?”

크지 않은 담주에서 몇십 년 동안 호부 상서와 폐하의 유모가 연달아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흠차 대인이 방문한 것이다. 열여섯 살 때까지 이곳에서 성장한 흠차 대인이 지난 2년 동안 한 일은 담주 백성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담주 백성들은 이웃 주 사람들과 왕래할 때도 은연히 자부심을 드러내곤 했다.

오늘 감찰원 흑기가 항구에 방어진을 쳤을 때 백성들은 겁을 먹으면서도 작은 범 대인이 곧 도착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에 여자보다 더 아름다웠던 범씨 가문 도련님이 2년 동안 변하지는 않았는지 보려고 항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달걀이 담긴 바구니를 안고 있는 아주머니가 투덜거렸다.

“돌아올 거라 하기는 하지만 정말 돌아온 게 맞는 건가?”

옆에 있는 사람이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돌아오지 않으면? 3 황자 저하와 범 부인이 돌아오신 걸 몰라서 그러는 건가?”

그러자 다른 누군가가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범씨 도련님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이시려나? 도련님이 경도로 떠나시고 나서 담주성 아가씨들이 눈이 퉁퉁 불 정도로 울었었는데.”

바구니를 안고 있는 아줌마가 큰 소리로 웃으며 물었다.

“바뀌기는 뭐가 바뀐다는 거야?”

“그야 친아버지도 바뀌었으니 다른 것도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거지······.”

그 말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그를 작은 골목으로 끌고 가 흠칫 두들겨 팼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항구에 둘러서서 범한을 기다리고 있는 담주 백성들의 화제는 점차 범한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바뀌었다.

“매번 비가 올 때마다 범씨 도련님이 집 지붕에 올라가서 옷을 걷으라고 소리쳤던 것 기억나?”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중에 범한과 나이가 비슷한 청년들은 머릿속에 당시 일들이 떠올랐다. 과거 범씨 가문의 사생아에 불과했던 범한은 아이들과 함께 골목에서 함께 놀기도 했었지만, 이후 나이가 점차 먹고 신분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면서 멀어지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