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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524화 (524/1,108)

524화 바다 위에서 본 풍경

배가 흰 거품을 일며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자 붉은 해가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돛대 위에서 까치발을 들고 허공에 손을 뻗으며 소리치는 젊은 청년의 모습은······ 정말이지 원숭이 같았다.

새벽에 바닷바람은 아직도 약간은 차가웠다. 범한은 소리를 몇 번 치고 나니 옷을 뚫고 불어오는 바람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는 비로소 멋지게 보이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천천히 갑판으로 내려올 준비를 했다.

끝이 없는 바다를 바라보던 그의 마음속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갈망이 샘솟았다. 그는 이전부터 자신의 마음속에 일렁이던 이 갈망이 정확하게 뭔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이전에 해당과 대화를 나눴을 때도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다.

순간 그는 광활한 바다도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불쾌해졌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바다를 향해 침을 뱉었다. 침이 곡선을 그리며 바다 위로 떨어졌다.

갑판 위에 있는 수군 관병들과 감찰원 관리들은 고개를 들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동안 흠차 대인의 괴벽스러운 행동을 본 이들은 이미 이런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는 시선이자 역사에 길이 남을 권신이라 불리는 남자가 원숭이처럼 돛대 꼭대기에 올라 먼 바다를 향해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곧 생각을 바꿔 무릇 천재는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괴팍스러운 면이 있는 법이라고 스스로를 이해시켰다.

갑판 위에서 범한이 침을 뱉는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 중 한 명이 감탄했다.

“침 뱉는 모습도 멋있으시군.”

“우우······ 야야······.”

이어서 돛대 꼭대기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바로 태산이다! 내가 태산이야!”

갑판 위에 있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자 침 뱉는 모습도 멋있다고 아첨하던 선원이 용기를 내서 감찰원 관리에게 물었다.

“대인, 태산은 무슨 산입니까?”

그가 물어본 감찰원 관리는 바로 범한의 심복인 홍상청이었다. 홍상청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바람이 불면서 ‘피융’하는 가벼운 소리가 들리더니 맨발이 갑판 위에 가볍게 착지했다. 흰색 홑옷을 입은 청년이 하품하며 쥐고 있던 밧줄을 놓자 옆에 있는 선원이 재빨리 밧줄을 받아 묶었다.

돛대 맨 끝에 있었던 범한이 갑판으로 내려온 것이다.

이 장면을 여러 번 봤음에도 갑판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렇게 높은 돛대 꼭대기 위에서 작은 범 대인은 어쩜 이렇게 쉽게 내려오시는 거지.’

홍상청이 숭배하는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봤다. 모두들 작은 범 대인이 보기 드문 고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고수는 원래 이렇게 놀라운 행동도 할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누울 수 있는 기다란 의자를 놓자 범한이 그 위에 눕더니 온몸에 힘을 쭉 빼고, 두 다리를 뱃전에 올렸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발가락 사이를 가볍게 간질이자 그가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그가 왼손으로는 황실 금고에서 생산한 포도주를 홀짝이며 오른손으로는 견과를 부숴서 먹었다. 순간 그는 옆에 임완아와 사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대인.”

줄곧 옆에 서서 말할지 말지 망설이던 홍상청이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태산은 무슨 산입니까?”

이 세계에도 유명한 산은 많았지만, 태산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홍상청이 주변을 살피다 다시 물었다.

“혹시 오늘 밤 비밀 명령입니까?”

범한이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태산이 어디 있느냐니? 동산에 있지 않은가.”

순식간에 갑판 위에 있는 선원들이 흥분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동산에 가면 볼 수 있는 거였어!”

범한이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일어나 흥분한 감찰원 관리들과 함께 배 좌현으로 가서 동산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 범한은 이전 세계에서 자신이 병을 앓기 전에 배를 타고 삼협에 갔었던 게 떠올랐다. 그때 선녀봉을 지날 때 여행객들도 이처럼 잔뜩 신이나 있었다.

다만 선녀봉은 무산(巫山)의 비구름 속에 숨어 있어 제대로 볼 수 없어 아쉬움만 남았었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하늘에 먼지도 없어 동산도 잘 보일 것이었다.

북쪽으로 수 리(里)를 이동한 큰 배가 곳곳에 암초가 깔려 있는 해변을 피해 어렵게 왼쪽으로 돌자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며칠 동안 계속되던 단조로운 풍경은 사라지고 하늘과 땅 사이에 큰 산이 누워 있는 것 같은 장엄한 풍경이 펼쳐졌다.

대동산(大東山)이었다.

돌산은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높이가 몇 장이나 되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산은 흔히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바다에 맞닿아 있는 반들반들한 절벽은 조금의 주름도 없는 게 옥돌처럼 광이 났다. 마치 하늘에서 신검(神劍)으로 산 가운데를 자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 광경을 본 범한이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속으로 산의 높이가 최소한 2천 미터 이상은 될 거라고 판단했다. 과거 지리학에 재능이 없기는 했었지만 자른 것처럼 매끄럽고 거대한 절벽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대동산은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았고, 지형이 가파르고 높아서 돌기둥 같았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돌기둥 같았다.

더욱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절벽은 표면이 반질반질한 것이 바닷바람에 의해 몇 만 년이나 침식을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조금도 부식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곳에는 동물이 활동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거대하고 포악한 맹수들도 살지 않는 것 같았다.

범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정말이지 신비로운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북제 서산의 절벽보다 더 아름답고······ 희귀했다.

대동산의 바다 반대쪽 쪽은 토양이 비옥해서인지 산 위에까지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가 빽빽하게 자란 숲에는 눈이 시릴 만큼 푸른 녹색이 넘쳐흘렀다.

한쪽은 푸르고 다른 한쪽은 하얀 대동산의 양면은 완전히 다른 색깔이었음에도 이상하게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했다.

범한이 참지 못하고 다시 차가운 공기를 깊이들이 마셨다. 그는 대동산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는 동산(東山)이라 불리는 산이 두 곳 있었는데, 하나는 경도 서쪽 교외에 있는 작은 산이었다. 경묘의 제묘가 그곳에 있어 민간에서는 그곳에서 신선이 공양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동쪽 바다에 인접한 곳으로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대동산이었다.

대동산이 이처럼 유명한 이유는 첫 번째로 절묘한 구조와 아름다운 경치 때문이었고, 또 이 산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옥석이 생산되기 때문이었다. 범한은 일 년 전 북제 황태후의 생일잔치 때 누군가가 대동산 정옥을 진상한 걸 기억했다. 하지만 경국은 그해 북벌을 단행하면서 이 일대에서 전투를 벌인 뒤 대동산에 새롭게 경묘를 세우고 옥석을 채집하는 걸 금지했다. 그래서 지금 시장에 남아 있는 대동산 옥석은 가격이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었다.

대동산이 유명한 세 번째 이유는 바로 경국 황제의 뜻 때문이었다. 지금 대동산 경묘는 참배객들에게 경도의 경묘보다 더 유명했다. 이유는 경도의 경묘는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이 가기에는 주저되는 곳이었지만 대동산의 경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로는 대동산의 경묘가 더욱 신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래서 병을 고칠 돈이 없는 백성들은 산에 올라 복을 기원하고 신묘의 가호를 받아 병이 나아지기를 바랐다.

이처럼 경국에 있는 두 동산 중 해변에 있는 산이 크기도 더 크고 유명하고 신비로웠기에 사람들은 이 산을 대동산이라 부르고 경도 외곽에 있는 산을 소동산(小東山)이라 불렀다.

이전 세계에서는 유물주의자였지만 지금 세계에서는 확고한 유심론자가 된 범한은 대동산 절벽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처음 경묘에 갔을 때 느꼈던 감정을 떠올렸다. 이 세계에서는 정말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 힘이 신묘일까?

그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에 희미하게 대동산의 다른 쪽에 나 있는 산길이 보였다. 가느다란 길은 마치 대동산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초록색 옷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주는 실처럼 보였다.

범한은 시력이 상당히 좋았기에 동산 꼭대기에 있는 검은색 건축물이 벼랑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 검은색 건물은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씩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제는 이곳 절벽에서 벽을 오르는 기술을 연습할 수 없겠는데?’

배는 어느덧 대동산을 지나 앞으로 나아갔고, 대동산의 풍경에 감탄을 연발하던 사람들도 아무 말 없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홍상청은 의자에 앉아 있는 흠차 대인이 이전과 다르게 조용해진 모습을 주시했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펄떡펄떡 뛰던 원숭이가 이제는 사색에 잠긴 원숭이로 변해 있는 걸 보니 분명 무언가가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홍상청은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아무 말 없이 범한 뒤에서 술이나 과일 같은 것들을 연신 건네주었다.

“담주에는 언제 도착하겠나?”

생각에 잠겨 있던 범한이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홍상청이 수군 교관에게 물어본 뒤 대답했다.

“오후에 도착할 거라 합니다.”

범한이 고개를 끄덕이다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홍상청이 머뭇거리다 물었다.

“대인, 왜 한숨을 쉬시는 겁니까?”

범한이 당황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스우면서도 웃을 수 없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따르는 심복들은······ 첫 시작이었던 왕계년부터 이후 등자월, 소문무까지 자신을 오래 따를수록 만담꾼 쪽으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모두가 왕계년처럼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예를 들면 ‘대인, 왜 한숨을 쉬시는 겁니까?’라는 시답지 않은 질문이라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범한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심복들이 만담꾼이 되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아첨하고 농담을 하면서 근심을 덜어주려 하는 거였다.

범한이 웃으면서 홍상청에게 질문에 대답했다.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겁이 나서 그러네.”

16년 동안 산 담주를 떠나 2년여 동안 외지에서 지낸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다.

‘할머니 건강은 괜찮으시려나? 어렸을 때 나를 돌봐주던 여종들은 여전히 있을까? 절벽 위의 작은 국화꽃은 여전히 피어 있을까? 내가 떠난 뒤에도 지붕에 올라 비가 내릴 거니 비옷을 입으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을까? 동아······ 동아는 아직도 두부를 팔고 있을까?’

제사 대인이 뭘 두려워하는지 모르는 홍상청이 소리 내 웃으며 생각했다.

‘조정의 중신이 되어 흠차 대인의 신분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니 금의환향하는 거나 다름없는데 어째서 기뻐하지 않고 걱정을 하시는 걸까?’

범한이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자네는 고향이 천주라고 했던가?”

“네, 그렇습니다. 천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럼, 언제 기회를 봐서 돌아가 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신분은 달랐기에 오래 대화를 나눌 만한 화제가 없었다. 범한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육지에 이르면 당장 최근 며칠 동안 보고를 가져오도록 하게.”

범한이 공무를 언급하자 홍상청이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범한은 이미 며칠 동안 이어진 바다 위에서의 휴가를 앞당겨 끝내고 원숭이 같던 모습을 버린 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얇은 입술을 살짝 오므리는 범한의 준수한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강남에 일을 계속 추진하되 지나치게 해서는 안 되며, 모든 건 내가 내년에 경도에 돌아가면 다시 정할 거라 전하게.”

“알겠습니다.”

“자네는 나를 따르고 교주에서 온 일곱 명은 강남으로 가서 등자월을 도우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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