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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512화 (512/1,108)

512화 폭로와 의심으로 가득한 밤

범한은 냉정한 눈빛으로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반란이라도 일으키려는 겁니까?”

범한은 감찰원 전권을 가진 제사이자 강남로 전권을 가진 흠차의 직무도 가지고 있었다. 경도에서 새로운 명령이 내려지지 않는 이상 그가 어디에 있는 그의 말은 경국 황제의 위엄을 대표했다. 아무리 용맹한 교주 수군이라도 이 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천하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금 앞에 서 있는 수려한 외모의 청년은······ 제왕의 자손이었다.

수군 고위 장군들이 힐끔힐끔 당효파를 바라보며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 기다렸다. 호랑이 가죽 위에 앉아 있던 당효파는 자신이 대항하지 않는다면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항을 하려 한다면······ 그에 걸맞은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그가 손가락으로 범한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놈입니다! 저놈이 제독 대인을 죽였습니다!”

처량한 목소리로 소리치던 당효파가 신경질적인 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이처럼 기묘한 일도 있단 말입니까. 범 제사의 등장과 동시에 우리 무고한 제독 대인이 참혹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작은 범 대인! 대인이야말로 정말 잔혹한 사람입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나라의 중임을 맡은 사람을 죽이다니요! 저는 이후 대인이 조정에서 어떤 처분을 받는지 똑똑히 지켜볼 겁니다!”

물론 당효파는 상곤이 범한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이 순간 모두가 의기투합해 대항할 수 있는 구실로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범한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찬찬히 말했다.

“제독 대인이 돌아가신 이유를······ 대인께서는 가장 정확하게 알고 계시지요. 맞습니다. 자객이 아니라 본관이······ 제독 대인을 죽였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원에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수군 고위 장군들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범한을 노려봤다.

자신을 둘러싼 압박에도 범한은 태연하게 계속 말을 했다.

“나라를 배반하고 반역을 꾀한 상곤 대인이 처벌을 피해 자살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누군가는 그를 죽여야 하는 법이지요. 당효파 부장······.”

그가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

“설마 대인도 같은 죄를 지으신 겁니까? 그래서 이렇게 겁에 질려 아무 말이나 지껄이시는 겁니까?”

이제야 비로소 당효파는 제독 대인이 범한의 손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갈수록 마음이 두려워진 그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또 그 말이십니까? 죄를 뒤집어씌우려 저를 모함하시는 겁니까?”

이때 정원 안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이미 폐하의 밀지를 들은 오격비와 수군 고위 장군은 쭈뼛대며 범한의 뒤에 서 있었다.

‘반역이라니? 제독 대인이 반역할 마음을 품었단 말인가?’

“증거가 필요하다 하셨습니까?”

범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계속 말했다.

“제가 대인에게 물어보지요. 3월과 4월 사이에 수군의 함대와 군사가 한 달여 동안 출항을 한 적 있었지요?”

그 말에 옆에 있던 사람들은 당시 제독 대인의 명령으로 근해 해적들을 체포하는 연습을 했던 걸 떠올렸다.

그리고 이 일에 참여한 상곤의 심복들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서는 자신들이 작은 섬에서 살육을 자행했던 장면을 떠올리고는 무의식적으로 당효파 부장을 바라봤다.

당효파가 냉소를 지으며 반박했다.

“바다에 나가 해적을 체포하는 일은 수군의 주된 임무입니다.”

“해적을 체포했다고요? 그렇다면 어째서 그동안 추밀원에 보고하지 않은 것입니까?”

범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살며시 웃었다.

“그 해적들은 명씨 집안의 사병이었습니다. 본관이 폐하의 명을 받아 강남에서 이 일을 조사할 때 만약 여러분이 그 해적들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면 명씨 집안은 이미 끝났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감히 조정의 뜻을 거스르고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반란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증거를 대십시오······.”

“정말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범한이 갑자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섬에 동원되었던 천여 명의 관병 중에서 입이 무겁지 않은 사람이나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관병 중에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여러분이 섬에서 수탈해간 금은보화는 분명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뇌물로 준 것이겠지요······. 정말로 아무 증거 없이 깔끔하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일의 진상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 수 있을까요? 본관이 조사해 내지 못할 거라 믿으시는 겁니까?”

당효파가 모두를 대신해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범한이 계속 말했다.

“증인은 저도 있습니다. 다만······ 대인은 지금 뭘 하려 하시는 겁니까?”

당효파가 뒤에 있는 상곤의 측근이었던 고위 장군들을 바라봤다. 조정이 증거를 가지고 있든 없든 어쨌든 감찰원 제사는 모두를 죽일 생각인 게 분명했다. 당효파가 고통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모함하려는 게 아니라······ 죄가 있든 없든 모두를 죽이려 하는 속셈이군요.”

그가 이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형제들 감찰원이 제독 대인을 죽이고 우리도 모두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뭉쳐 싸웁시다!”

범한이 살며시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성 밖이 조용하다는 건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는 의미였다.

“오 지주.”

범한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지시했다.

“조정이 지금 대인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격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는 상곤이 죽은 지금 자신이 어느 쪽에 서야 하는지 곧장 이해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성 밖 주둔해 있는 수만 관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여러 해 동안 교주 수군의 억압을 받아온 그에게 수군에게 대항한다는 건 결단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범한의 온화하지만 살벌한 미소를 보자 없던 갑자기 없던 용기가 생기면서 비장한 감정이 일었다. 그가 주변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소리쳤다.

“주군은 어디 있나? 저 수군들을 감시해라!”

수군의 모습에 주눅이 들어 있던 교주 지방 주군들은 지주 대인이 외침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수군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한바탕 검과 주먹이 오가는 싸움이 있고 나서 주군 중 십여 명이 상처를 입었지만, 다행히 수적으로 우위에 있었기에 진압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편 당효파는 동해 작은 섬 일에 참여했던 고위 장군들과 함께 검을 뽑아 들고 범한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사생결단의 각오였다.

제왕의 자손을 죽이는 짓을 저지를 각오까지 한 비장한 결정이었다.

이처럼 사생결단을 한 수군 고위 장군들의 공격은 과연 맹렬하고 신속했다. 하지만 범한도 9품 강자였기에 쉽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범한은 자신을 공격하러 달려오는 이들을 보고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냉혹한 눈으로 자신의 앞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고위 장군들을 바라보았다.

이때 당효파는 오격비 옆으로 달려와 그를 인질로 삼으려 했다. 범한과 정면승부로 이길 수 없다는 계산 끝에 나온 임기응변으로 확실히 그는 계략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동료들처럼 정기를 움직이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온몸에 힘이 빠졌다.

‘마취약인가?’

순간 소문으로만 들었던 감찰원의 수단이 떠오른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단도가 그의 오른쪽 가슴에 날아들었다. 저항하기 힘든 격렬한 통증에 당효파는 새우처럼 몸을 움츠리고는 오격비 앞에서 힘없이 고꾸라졌다.

자신을 향해 죽을 각오로 달려드는 당효파의 모습에 겁을 먹은 오격비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당효파를 찔러 쓰러뜨린 것은 범한이 제독 저택에 데려온 일곱 명의 감찰원 밀정 중 한 명으로 줄곧 가장 맨 뒷줄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이 밀정이 피가 묻은 단도를 걷어 들인 뒤 범한을 향해 예를 갖춰 인사했다. 두려운 것인지 아니면 흥분해 그러는 것인지 아무런 말없이 인사하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범한이 천천히 몸을 돌려 발아래서 독기 서린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당효파를 바라봤다.

“대인을 공격한 저 사람의 이름은 청와입니다······ 동해에 있는 그 작은 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지요. 이 사람이 대인이 어떤 사람인지 증언한다면 대인은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당효파가 절망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섬에서 내가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어떻게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강남 소주에서 교주 잠복지로 근무지를 옮긴 감찰원 밀정 청와가 약간 붉어진 눈으로 범한에게 인사한 뒤 오 지주 뒤로 물러났다.

범한이 몸을 돌려 주군에게 포위되어 있는 수군 병사들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성안의 일은 기본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성 밖의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황제 폐하가 범한을 교주로 보내는 것은 1만 명의 병사를 모두 죽이라는 뜻이 아니었고, 그에게 그럴 만한 능력도 없었다. 그러므로 수군 고위 장군들을 숙청하면서 수군 병사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강남에서처럼 스스로 제왕이 되어서 모든 걸 안정시켜야 했다.

범한이 깊이 심호흡을 했다. 먼저 상곤을 죽이고, 고위 장군들을 굴복시켰으니 이제는 수군이 하나로 힘을 뭉쳐 반격할 가능성은 사라진 셈이었다. 다만 교주 수군의 힘을 다시 조정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군 고위 장군들이 나서줘야 했다.

그가 자신을 죽이려는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던 늦가을의 매미처럼 아무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고위 장군들을 바라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 사람들은 과연 믿어도 되는 것일까? 상곤의 측근이 저 안에 남아 있지 않을까?’

감찰원의 정보 수집 능력은 상당히 정교하고 치밀했지만, 사람의 마음이나 수만 명의 관병을 건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오늘 밤의 일에 모든 장군이 수고해 주셔야겠습니다.”

범한이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건의 주동자들은 이미 다 처리가 되었습니다만 이후 절차를 위해 누가 먼저 저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시겠습니까?”

고위 장군들이 입을 꾹 다문 채 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봤다. 두려움, 분노, 무기력함이 섞인 눈빛이었다.

상곤 제독 대인은 사망했고, 당효파 부장은 중상을 입고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태였으며 오랜 시간 함께 생활했던 동료들은 감찰원이 사용한 마취약에 쓰려져 있었다.

그리고 수군 군사들은 주군의 포위에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였다. 이처럼 급작스러운 사태에 수군 고위 장군들은 놀라고 겁을 먹기는 했지만, 무엇보다도 분노했다.

그들은 작은 범 대인이 자신들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성 밖에는 아직 1만 명의 병사가 남아 있었다. 만일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병사들을 안정시키지 않는다면, 수군 관병들이 성안에서 발생한 일을 알게 된다면 분명 큰 혼란이 초래될 것이었다.

조정은 분명 교주에서 큰 혼란이 발생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리고 조정은 여전히 수군 고위 장군들이 필요했다.

이 점은 남아 있는 수군 고위 장군들이 유일하게 의지하는 점이자 범한과의 협상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패였다.

다만 범한과 협상을 한다는 건 만 명의 병사들에게 욕을 먹을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고위 장군 중 누구도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제독 대인의 시신을 앞에 두고 협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의 표정에서 이 점을 읽어낸 범한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일단 모두들 방에 돌아가 쉬고 계시면 잠시 뒤······ 제가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이 말을 한 뒤 그가 서재 안에서 폐하의 밀지를 들었던 고위 장군을 바라봤다. 그는 수군에서 삼인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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