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화 장인어른과 함께 군산회를 이야기하다 (2)
그 말에서 불길한 냄새를 맡은 범한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새로운 황제가 즉위할 때 자신의 편에 선다니······. 이것은 도무지 속마음을 예측할 수 없는 지금의 황제가 용상에 앉아 있는 한 모험을 하지 않겠다는 임약보의 뜻이었다.
임약보는 여전히 조정에 은밀히 영향력을 미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오주에서 한가로운 노년 생활을 하고 있다고 황제가 믿기를 바랐기에 사용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모순된 괴리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조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범한이었다.
“너무 늦을까 걱정입니다.”
범한은 말이 나온 이상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작정이었다.
“황태자와 2 황자의 힘은 조정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만일 이들 중에서 한 사람이 용상을 물려받는다면······ 저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임약보가 사위를 빤히 바라봤다.
“자네······ 더 솔직하게 말해보게.”
“알겠습니다.”
범한이 솔직하게 털어놨다.
“저는 황태자나 2 황자가 용상을 물려받도록 두지 않을 생각입니다.”
임약보가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바로 자네의 문제이네······ 그쪽은 신경 쓸 필요가 없네. 황태자와 2 황자는 지금 자네의 적이 아니니까. 자네는 어째서 이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겐가? 최근 1년 동안 자네는 일을 잘 처리해 왔지만······ 싸울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는 가장 큰 잘못을 저질렀어.”
범한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오래전 일들이 떠오른 것인지 임약보의 눈동자가 갈수록 깊고 심오해졌다. 그가 생각에 잠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자네의 적은 단 한 명······ 장 공주, 운예뿐이네.”
범한은 화들짝 놀라더니 곧이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 공주가 사용하는 수단은 범한도 잘 알고 있었다. 장 공주는 자수를 놓는 것처럼 세밀하게 음모를 짜서 공격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진평평과 언빙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감찰원 제사인 범한에게는 그녀가 가장 잘하는 무기가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실력에서도 장 공주는 범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과거 신양에서 자객을 보내 창산에 있던 범한을 암살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그래서 범한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장 공주가 자신이 경계해야 할 만한 상대라 생각되지 않았기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임약보가 그런 사위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군산회를 잊은 것인가?”
“군산회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범한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섭류운 한 사람이 대세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천하에 섭류운은 단 한 사람뿐이지.”
임약보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봤다.
“사고검도 천하에 단 한 사람뿐이 없고, 연소을도, 나도······ 한 사람뿐이네.”
말을 잠시 멈춘 그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하지만 군산회는 셀 수가 없네.”
임약보의 말뜻을 이해한 범한이 화들짝 놀라 눈을 부릅뜨고 장인어른을 바라봤다. 그가 목이 멘 목소리로 물었다.
“장인어른께서도······ 군산회 사람이십니까? 설마 사고검도 군산회 사람인 것입니까?”
“군산회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임약보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군산회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네. 아마 운예도 군산회를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할 거야······. 내가 이해한 것은 군산회는 느슨한 조직이라는 거네. 군산회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작은 조직일 수도 있고, 수많을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무너뜨릴 막후의 검은 손일 수도 있네.”
범한이 다시 물으려 하자 임약보가 손을 내저으며 입을 다물게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군산회는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끼리······ 연락을 주고받는 방식이었을 뿐이네.”
경국의 전직 재상이었던 그가 천하의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는 아니지만 상당한 권력과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네······. 그래서 스스로 처리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군산회란 경로를 통해서 도움을 청하고, 또 누군가 골치 아픈 일을 당하고 있으면 도와주고 하는 것이지.”
“평등한 관계인 것이군요?”
“군산회는 지인들끼리의 친목회일 뿐이네. 그래서 군산회는 엄격하고 완전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네. 모두가 마음을 합쳐 똘똘 뭉칠만한 확실한 목표나 바람이 없지.”
임약보가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단순하게 파급력으로만 본다면 군산회는 느슨한 조직이라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네. 최소한······ 절름발이 노인이 모든 걸 통제하고 있는 감찰원만큼 강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그 말을 들은 범한은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군산회가 감찰원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장인어른은 어째서 자신에게 장 공주의 군산회를 경계하라고 말하는 것일까?
임약보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진평평이 운예를 구석으로 몰고 있는 상황에 자네도 힘을 보태고 있는 것 같던데······ 내 예측이 맞는가?”
범한이 장인어른의 뛰어난 정치적 직감에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절름발이 노인과 자네가 잘못한 거네.”
임약보가 가벼운 목소리로 심드렁하게 설명했다.
“진평평과 자네는 장 공주와 2 황자, 황태자를 압박해 황제 폐하와 대치되도록 함으로써 싸움에서 유리한 국면을 차지할 생각이었겠지.”
“그게 잘못됐다는 겁니까?”
범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경국이 천하에서 가장 강한 국가인만큼 경국 황제도 십여 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지만, 만일 경국 황제가 움직인다면 어느 사람도 막을 수 없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진평평과 자네는 운예와 군산회를 과소평가했네······. 만일 계속 그렇게 궁지로 몰다가 그녀가 미쳐 발광한다면······ 결과가 어떨지 누가 알겠는가?”
임약보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한 그녀는 그와 오랜 시간 갈등 관계에 있었고, 또 자신을 위해 예쁜 딸을 낳아준······ 장 공주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군산회는 느슨한 조직이 아닙니까? 어떻게 강대한 국가의 힘과 비견될 수 있겠습니까?”
“군산회는 둥근 공과 같네. 공은 아무 곳에나 굴러갈 수 있지만 만일 누군가가 힘으로 내리누른다면 튀어 나갈 힘이 생기게 되지.”
임약보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더욱이 1년 동안 자네와 절름발이 노인의 긴밀한 협력으로 운예는 퇴로도 없는 상태에 놓이고 말았네······. 만일 이런 상황에서 군산회에 갑자기 강렬한 적이 등장해 이합집산에 불과했던 조직원들을 뭉치게 만든다면 그동안 숨어 있던 힘이 드러나게 될 걸세.”
임약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사람의 본능이지······. 자네도 오랫동안 갈망했던 목표를 발견한다면 어떤 위험이 있든 달려들지 않겠는가?”
장인어른의 말에 범한은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그는 스스로 지금의 상황을 만들고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있었지만, 장인어른의 말을 들으니 무섭기도 했다.
더구나 군산회에 섭류운뿐만 아니라 동이성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거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면 그 힘은 이미 한 나라의 통제를 넘은 수준이었다. 느슨한 친목회에 불과한 군산회를 화약고로 변화시킬 만한 사람은······.
천하를 통틀어 그럴 만한 사람은 경국 황제뿐이었다······.
“사고검이 움직인다는 겁니까?”
임약보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운예가 미치지 않았다면야 그런 짓을 벌이지는 않겠지. 하지만 폐하와 진평평 대인, 그리고 자네에게 심한 압박을 당하는 상황에서라면······ 그러지 않을 거라 누가 확신할 수 있겠나? 폐하의 안위는 천하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네······. 문제는 폐하의 안위에 문제가 생겨 이익을 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지.”
전임 재상이 정색하며 단호히 말했다.
“자네와 나 같은 경국 신하와 백성들을 제외하고 말이네.”
경국 황제가 죽는다면 북제가 가장 좋아할 것이고, 동이성도 폭죽을 터뜨리며 자축하겠지만 경국으로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재난을 맞이하는 것과 같았다.
생각에 잠겨 있던 범한의 귓가에 사돈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와 같은 위대한 목표를 위해서 경국의 적들이 모두 단결한다면······ 사고검 뿐만 아니라 고하도 나서지 않겠는가?”
범한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사위를 보며 임약보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군산회? 굳이 군산회 사람이 아니어도······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들어와 운예를 통해서 연락할 수 있네. 이게 바로 그녀가 가장 잘하는 일이지.”
범한은 장 공주가 북제 황태후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인 이유와 동이성이 장 공주와 함께 움직이는 이유가 바로 군산회 때문이라는 걸 이해했다. 수수께끼가 풀린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들 천하 각지에서 온 이유가 공통의 목표를 위해서였군요······ 하지만······.”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가 이 일을 눈치챘다면 폐하께서도 알아채셨을 건데 왜 가만히 계시는 겁니까?”
방안에 오래도록 무거운 침묵이 돈 뒤 임약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운예와 20년 동안 알고 지냈기 때문에 그녀가 미친 짓을 벌이더라도 무슨 생각으로 뭘 하려 하는지 추측할 수 있네. 하지만 폐하는······.”
임약보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폐하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거네. 어쩌면······ 폐하께서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지도 모르네.”
임약보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구경꾼이 될 생각이 없겠지? 게다가 일이 어느 정도 커진다면 원하든 원치 않든 자네는 결국 무대에 나가 능력을 보여야 할 거네. 그러니 그때가 오면 어느 역할에 있든 반드시 폐하 편에 서도록 하게. 반드시 그래야 하네.”
범한은 이것만큼 쓸데없는 말도 없다고 생각했다. 장인어른이 걱정하는 것처럼 자신이 장모인 장 공주의 편에 설 리 없었으니 말이다. 그가 아무리 간이 크다고 한들 미친 사람과 함께 놀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소주에 있을 때 범한은 줄곧 오주에 가는 날을 기다려 왔다. 그는 지금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장인이 지난 1년 동안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숨을 죽이고 살아온 이유가 황제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가짜도 진짜처럼 하면 진짜가 되듯이 시골 촌사람 역할에 너무 열중해서인지 지금 장인의 모습에서 과거 재상의 풍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범한은 이처럼 버릴 건 과감하게 버리고 얻을 건 과감하게 얻는 장인어른의 기백을 좋아했다.
더구나 그는 장인어른의 정치적 판단을 상당히 신뢰했다. 그래서 오늘 장인어른의 말을 들으니 약간 두렵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앞으로 다가올 파장에 대비해야 한다는 고민이 가장 컸다.
파장을 안정시키기 어려운데도 범한은 이 일의 영향력을 작게 생각하려는 것 같았다.
장 공주의 생각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황제의 마음은 알아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범한은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천하의 비밀 대부분을 아는 절름발이 노인과 다른 부분의 비밀을 아는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또 다른 비밀을 알고 있는 장인어른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세 사람은 경력 신정 후 5년 동안 경국 황제에게 가장 많은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자 경국 역사에 길이 남을 유능한 관리였다. 하지만 범한이 담주에서 경도로 오기 전까지는 그의 아버지 범건과 진평평은 서로 말을 섞는 것도 꺼릴 정도로 소원한 사이였고, 장인어른 임약보와 진평평은 조정에서 가장 크게 대립하는 사이였다.
그러니 이 세 사람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교제할 가능성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경도로 온 범한이 완아와 혼인을 하게 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범한은 경국 황제와 나란히 세 사람의 지원과 정보를 모두 누릴 수 있는 행운아가 되었다.
덕분에 범한은 세 사람보다 더욱 정확하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행운, 또는 신력은 일개 신하가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세 사람 중 한 명은 힘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그리하여 범건이나 진평평과는 달리 어렸을 때 황제 폐하와 소꿉친구로 자라지 못한 재상 임약보가 맨 처음 희생양이 되었다.
이에 가끔 범한은 자신이 경도에 온 것이 임씨 집안에게 상당한 손해를 가져다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물론 황제는 임약보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경도 조정에서 호부를 조사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