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6화 나를 감히 죽일 수 있을까요? (1)
한 장(丈)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날아드는 서른여 발의 독화살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살상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그 누구도 빽빽하게 날아드는 독화살의 공격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건 탁자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제아무리 신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한데 젓가락 통에는 젓가락 한 쌍이 비어 있었다. 사라진 젓가락은 어느새 그자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서 맛난 음식을 집어내기라도 하듯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춤을 추고 있었다.
유약한 대나무 젓가락 끝이 공중에서 날랜 소리를 냈다. 젓가락이라기보다는 무궁무진한 정기를 담고 있는 상고 시대 신의 병기인 양 말이다.
그리고 거센 빗물이 넓은 나뭇잎을 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거의 한꺼번에 울린 소리와 함께 쇠뇌의 화살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한데 젓가락이 살짝 건드려서인지 화살은 어쩔 수 없이 궤도를 이탈해 탁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 벽과 널빤지에 꽂혀버렸다.
포월루 꼭대기 층에 순식간에 어지럽게 풀이라도 난 듯 화살이 꽂혔다. 나무 판에 꽂힌 쇠뇌의 화살은 그 끝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감찰원 6처 검수들은 심장에서 불쑥 올라온 한기가 전신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단거리에서 발사된 화살을, 그것도 젓가락 한 쌍으로 재빨리 쳐내다니.
속도며, 시력이며, 능력이며······.
상대방은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방은 분명 사람이 아니었다.
* * *
감찰원은 경국 조정에서 가장 강력한 기관이었다. 그리고 감찰원 관원은 경국에서 정신력이 가장 강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었다. 이에 오늘 마주친 적의 몸놀림이 사람의······ 범주를 벗어나 있자, 검수들에게도 두려움과 무기력감이 밀려들 수밖에 없었다.
3처가 만든 연발식 쇠뇌는 3연발이 가능했다. 이에 다음 발을 쏴야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6처 검수들은 손은 벌벌 떨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탁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마치 다음에 해야 할 행동을 잊은 사람처럼 말이다.
화살이 궤도를 이탈하자 그 순간 호위 일곱이 맹렬한 기세로 나섰다. 호위들이 쥐고 있던 장도가 화살의 엄호를 받으며 번쩍였다. 탁자를 내리친 것이었다.
칼의 빛이 아직 허공에 있는데 뒤에 있던 범한이 매섭게 소리쳤다.
“물러나라!”
범한은 외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 * *
물러나란 소리에 고달을 제외한 여섯 호위는 허공에 뜬 상태에서 정기를 강제로 역류시키고, 칼을 가슴 쪽으로 어색하게 비틀었다. 그리고 바닥으로부터 네 척 정도 떨어진 허공에서 억지로 동작을 멈추고 발끝을 교차해 명령대로 뒤로 물러났다.
한편 고달은 그들 중 무공이 제일 고강했던지라 반응 속도가 가장 빨랐다. 더군다나 산(山)자 대형으로 서 있을 때 제일 앞에 있던 터라 그는 벌써 탁자 앞으로 와 삿갓을 쓴 신비한 인물과 마주하고 있었다. 고달은 오싹했지만 물러날 수 없었다. 이에 소리를 내질러 체내 정기를 신체 말단까지 보내 허공에 있던 칼을 더 꽉 움켜쥐고 아래로 내리쳤다.
한데 그 순간 고달은 뒤쪽에서 복사뼈 부위를 당기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그리고 거역할 수 없는 거대 정기에 몸이 뒤로 당겨지며 물러나게 되었다.
한데 칼은 이미 무언가를 내려치고 있었다.
하지만 칼날은 탁자 앞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바람에 삿갓을 쓴 사람의 몸이 아닌 탁자 앞쪽 바닥만 내려치게 되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두툼한 나무 바닥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고달의 손에 들려 있던 장도가 바닥을 얇은 종잇장처럼 뚫어버린 것이었다. 잠시 먼지가 일고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바닥에 생긴 구멍을 통해 포월루 2층에 있는 탁자가 보였다.
고달이 장도를 뽑는 순간 삿갓을 쓴 이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탁자 위에 살포시 내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사람들은 탁자 다리 옆에 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은 소박하기 그지없었고 날카롭게 반짝이지도 않았으며, 두툼하고 거친 천에 싸여 있었다.
나무젓가락이 탁자 위에 놓이는 순간 평범해 보이는 검이 갑자기 빛을 번뜩였다. 일단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 자루가 부들부들 떨더니 검이 위로 솟구쳤다. 그런 후 검은 위로 날뛰며 검집을 싸고 있던 거친 천을 찢어버리고 눈처럼 새하얀 검신을 반쯤 드러냈다.
반쯤 드러난 검신에서 절대적인 살기가 싸늘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의 기운이 나무로 된 바닥을 타고 스며들었다. 그것도 고달의 장도가 바닥에 닿는 순간에 말이다. 이에 장도가 바닥에 구멍을 내자 구멍 주변에 무수히 많은 금이 생겼고, 금은 잔금이 되어 주변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규칙성을 두고 만들어진 잔금은 아니었지만 아름다웠다. 생동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잔금은 재빨리 고달의 장검 안으로 침투했다. 그러자 호위의 장도가 대책 없이 떨리기 시작했고 예리하고 두툼한 칼 표면에는 무형의 손이 금강석으로 조각을 해놓은 듯 선명한 줄이 수도 없이 많이 생겼다.
고달은 자신의 두 손마저 떨리기 시작하자 깜짝 놀라 어쩔 수 없이 칼을 버렸다.
그러자 바람에 순식간에 풍화되는 바위처럼 장도가 조각조각 났다.
무시무시한 검의 기운은 검 자루가 있는 곳까지만 전해졌다. 하지만 그 여파는 훨씬 더 위쪽까지 미쳤다. 고달이 갑작스러운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가슴을 답답해 하는가 싶더니 이내 피를 토했다. 그리고 동시에 오른쪽 손목에서 무언가 비틀리는 소리가 나며 관절이 꺾여버렸다.
숨을 세 번 쉬는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쇠뇌와 일곱 호위의 장도 공격을 막는 건 삿갓을 쓴 객에게는 젓가락을 들었다 놓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그러니 조금 전 상황에서 감찰원은 참패한 것이었다.
범한을 보호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상대방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삿갓을 쓴 사람은 범인(凡人)을 넘어선 성인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절묘한 경지에 있는 자가 흠차 대인을 죽이려 한다면, 자신들 모두가 목숨을 바쳐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범인을 넘어선 성인의 경지라니! 4대종사 말고 또 누가 있으랴!’
고달의 입가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있었다. 그리고 잔뜩 놀란 눈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삿갓을 쓴 객을 쳐다보며 똑똑히 말했다.
“사고검!”
세인에게 4대종사는 평범한 범주에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과 관련한 이야기는 이제는 거의 신화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 마음속에서 4대종사는 경외(敬畏)의 대상이었다.
존경하지만 두려운 존재. 이들에게는 그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그 누구도 4대종사에게는 덤빌 수 없었다. 설령 죽기 위해 덤벼드는 거라 해도 이들을 상대로는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고달은 눈이 찢어질 듯 부릅뜬 채 삿갓을 쓴 객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저 멀리 동이성에 있는 사고검이 강남까지 온 걸까? 고달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순간 고달은 붙잡혀 있던 복사뼈 부분이 자유로워지는 걸 느꼈다.
앞서 누군가가 강력한 힘으로 자신의 복사뼈 부위를 끌어당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이 칼을 내리칠 때 삿갓을 쓴 객이 내뿜은 검의 기운은 장도를 부순 후 고달 자신의 몸까지 산산조각 내버렸을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들자 고달은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범한이 자신의 떨리는 오른손을 장삼에 가볍게 문지르고 있었다.
범한의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자신이 발견하고 소리 지르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오늘 저 삿갓을 쓴 객의 손에 호위들이 전멸했을 것이다.
하지만 범한의 얼굴은 아직까지는 평온했다. 비록 동공이 살짝 수축하고, 뒤에 숨긴 오른손은 천천히 떨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범한은 침착했다. 초인의 경지에 있는 절세의 강자와 대면하고 있는 이상 그는 어떻게든 냉정해야만 했다.
상대는 대종사니까.
범한도 일반인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종사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대종사급 인물을 따라다니며 살았다. 오죽 아저씨에게 직접 배우며 자란 덕분에 삿갓을 쓴 객과 마주하게 되었어도 다른 사람들처럼 놀라 입도 뻥긋 못하는 지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범한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입안이 쓰고 텁텁했다.
오죽은 과거 ‘실(實)’과 ‘세(勢)’에 대해 말했었다. 정기가 없는 오죽은 비범한 절정의 세를 지니고 있었다. 한데 그는 범한에게는 가장 가까운 사람 아니던가. 그래서 생에 처음으로 대종사와 직접 대면하게 되자 범한은 그제야 실과 세가 주는 압박감을 실감했다. 자신은······ 도저히 반격할 수 없었다.
범한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잘 아는 주도면밀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보니 9등급의 실력을 지닌 자신이 열 명이 있어도 오죽 아저씨를 이기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같은 이치로 따져 보면, 지금 자기가 열 명이 있다고 해도 이 앞에 있는 삿갓을 쓴 놈은 이길 수 없었다.
특히 방금 전 일어난 일로 범한은 과거 오죽에게 들었던 말을 더 절실하게 믿게 되었다.
‘1등급도 9등급은 죽일 수 있습니다. 운이 충분히 따른다면 말이죠. 하나 마주친 녀석들이······ 그러니 더 이상 운에 대해서는 그만 말하십시오.’
무공을 하는 사람은 낮은 등급에서 9등급이라는 최강의 단계를 향해 올라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각각의 등급은 이기지 못하는 천연의 요새 같은 건 아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범한은 외양간 거리에서 넷을 죽이지 못했을 것이고, 북제 상경에서 랑도와 하도인을 손바닥 위에 놓고 가지고 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9등급을 넘어서서 천인의 경지에 들어서면 대머리 고하처럼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저 늙은이처럼······ 완전히 다른 경지에 들어서서 남들과는 천양지차로 다른 실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차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과도 같아서 그 어떤 지혜와 모략을 동원해도 절대 매울 수 없었다.
포월루의 꼭대기 층은 조용했다. 하지만 아래층은 어느새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고달이 칼로 벤 건 허공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혼란에 빠뜨린 것이었다. 하지만 소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아래층에 있는 호위 무사들, 사천립, 상문이 상황을 정리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삿갓을 쓴 객은 탁자 옆에 서서 차분히 있었다. 범한이 결정을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반짝이는 것을 달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의 얇은 무명옷은 도금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만큼 반짝이고 있었다.
한편 범한은 주 선생을 잡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주 선생은 삿갓을 쓴 객 옆에 겁쟁이처럼 앉아 있지만 아무도 그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천지간의 모든 광채를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범한은 왼손에 아직도 부채를 쥐고 있었다. 그는 부채를 꽉 쥔 채 탁자 옆에 있는 삿갓 쓴 객을 바라보기만 할 뿐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삿갓을 쓴 객이 차분한 표정의 범한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반응이며 실력은······ 소문보다 더 강한 것 같군.”
고달이 칼을 내려치던 순간을 두고 한 말이었다. 재빨리 알아챈 범한은 여섯 사람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는 전광석화처럼 몸을 공중으로 부양시켰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공중에서 대벽관 기술로 오른쪽 팔을 길게 늘인 후 잔재주 기술로 고달의 복사뼈를 움켜쥐고 있는 힘껏 끌어당겨 고달의 목숨을 살렸다.
아주 짧은 순간 범한은 그 모든 걸 아주 완벽하게 해냈다. 삿갓을 쓴 객이 감탄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범한은 그 말에 일언반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천천히 난간 쪽으로 가며 삿갓을 쓴 객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고달을 포함한 모든 호위 무사들은 놀라서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제사 대인은 정말 담이 크시군! 만인이 경외하는 대종사를 앞에 두고 저리도 자연스럽게, 그것도 상대방을 보지도 않고 움직이시다니!’
범한은 난간으로 걸어와 번화한 소주성과 마주했다. 그런 후 소주성 상공의 적막한 공기와 공기 중에 남아 있는 폭죽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가 잠시 낯빛이 변하는가 싶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