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화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너, 안에서 웃는 나
그런데 사람들은 이보다도 감찰원이 한 의외의 행동 때문에 더 크게 분노해 있는 상태였다. 큰 노마님의 영정을 모실 곳이 마련되기도 전에 감찰원에서 재차 손을 썼기 때문이었다. 감찰원에서는 공격에 앞장섰던 여섯째 어르신을 체포했다. 그것도 동이와 연계되어 있는 첩자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러자 소주부 뿐만 아니라 총독 관저도 끼어들 수 없었다. 더군다나 감찰원은 여섯째 어르신을 몰래 잡아들인 후 바로 사주 수군으로 보내 감시하도록 하고는 다른 곳에 넘겨 주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 이를 꾸미고 앞장을 선 이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다음날부터 백성들이 화원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매일 큰 소리로 욕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구호를 외쳐댔다. 예를 들어, ‘진짜 범인을 엄벌하라’, ‘무고한 자를 석방하라’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골치 아프게도 강남의 서생들까지 백성들의 항의 행렬에 동참해버렸다. 서생들은 피가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작은 범 대인의 최근 행위에 환멸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분노를 삭이지 못한 그들은 큰소리를 치는 것은 물론 호통까지 쳐 댔다.
하지만 화원 내부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차분했다. 민란이 일까 걱정하는 쪽은 오히려 강남로 총독 관아 쪽이었다. 이에 총독 관아에서는 화원에 병사들을 배치해 지키도록 하는 것은 물론 감정이 격해진 서생들을 거리 끝으로 쫓아버렸다.
그날 오후, 설청 총독이 대군의 호위를 받으며 흥분한 군중을 힘겹게 뚫고 화원으로 들어왔다.
서재에서 설청과 범한 두 사람은 한동안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그 누구도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국 설청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감정이 격해진 백성들이 몰려와 물러나지 않으면, 조정의 체면은 어쩌란 말인가?”
그러자 범한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황자마마께서 곤란해지셨으니, 의도가 불순하다 할 수 있습니다. 대인께서 병사를 동원하지 않으셨다면 제가 했을 것입니다.”
설청은 순간 깜짝 놀랐다. 그제야 화원에 3 황자가 계시는데 소주 백성들에게 포위되도록 놔두었다는 사실이 생각나서였다. 이 소식이 경도로 들어간다면, 자신의 총독직은 그냥 날아가는 것이었고, 앞장을 선 서생 몇몇의 목숨을 희생시켜야 할 수도 있었다. 그는 강남 총독으로서 자기 관할권 내에서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이에 잠시 심사숙고를 해보고는 진정성을 담아 물었다.
“어쩌면 좋겠는가?”
노련한 관원인 설청 총독에게는 피가 솟구쳐 이성을 잃은 서생들을 정리하는 건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에게 진짜 문제는 이게 분명 범한이 만들어 낸 분위기란 점이었다. 그래서 범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없으니 자신은 이 진흙탕 속에 억지로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범한이 설청을 슬쩍 바라보았다.
“모두 피 끓는 젊은이들입니다. 저도 저들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고······. 요 며칠 비가 내려 밤이 되면 얼어 죽을 것처럼 춥습니다. 그러면 뜨거운 피도 식어버릴 것이고, 저들도 자연스레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자 설청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해산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범한이 싸늘하게 웃었다.
“의분(義憤)이 밥 먹어 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밤이 되어서도 해산하지 않는다면, 그럼 여기를 에워싸고 있는 게 의분에 차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자들의 목적은 단순했다. 민란을 일으키는 것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더 크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번 일과 관련한 소식이 경도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결국에는 황제가 반응을 보이도록 말이다.
생각에 잠긴 설청은 이내 범한의 뜻을 이해했다.
“이번 일에 총독 관아가 개입해야 하는가?”
그러자 범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건 나쁜 명성만 만들 뿐입니다. 그건 저 혼자 감당하는 걸로 족하니······ 대인께서는 화원을 지켜봐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3 황자마마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까요.”
범한의 말뜻을 알아들은 설청은 떨리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관료 사회에서 통용되는 논리로 보면, 민란을 진압할 때는 모두들 서로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범한은 겸손하면서도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올 할 압박감을 많이 줄여주고 있었다.
상의도 끝났겠다, 설청은 이만 인사를 하고 화원을 떠났다.
범한은 홀로 서재에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얼마 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하겠는지 자조적으로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해당타타는 화원을 나간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아직 돌아오지도 않고, 주 선생이란 자는 아직 잡지도 못했고, 명원에서 일어난 변고로 이익의 삼분의 일이 날아가서였다. 그래도 범한은 분노한 소주 백성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명청달이 관리하고 있는 이상, 일은 임계점을 넘어설 정도로 격화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문제는 이번에 움직인 군중들 뒤에 숨은 그림자 많다는 것뿐.
충동질해 도발하도록 만든 사람이 없다면, 어찌 두려움과 나약함이 몸에 밴 우리의 위대한 경국 백성들이 흠차의 거처까지 찾아와 목청을 높일 수 있었을까?
이 일에 대해 범한은 충분히 준비해 둔 터였다. 그리고 설청의 허락까지 받게 되자 마음이 한결 편한 상태였다.
역시 범한의 예상대로였다. 날이 저물자 밖에 있던 사람들은 점점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건 방건(方巾: 문인이 쓰는 두건)을 쓴 의분에 찬 표정의 서생들과 신분이 불분명한 백성들뿐이었다. 총독 관저의 군인들이 지켜보고는 가운데 거리 끝에서 그들은 경전을 암송하며, 흠차 대인이 사람 목숨을 풀 베듯 하여 그 화가 강남 백성에게까지 미쳤다고 비난했다.
누가 먼저 시작한 건지 모르겠지만, 군중의 감정이 차츰 격해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점점 화원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총독 관저 군인들도 인정사정없이 손을 쓸 수는 없어 천천히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화원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던 사람들이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들어주기 힘든 여러 욕설들을 시끄럽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서생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욕을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범한의 조상을 들먹이는 식보다는 감찰원이 어떻다는 식에 비난을 늘어놓았다.
천하 사람 모두 범한의 조상이 황제 폐하의 조상이란 걸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인들은 뼈에 사무치게 미웠던 감찰원은 욕할지언정 황제 폐하의 조상까지 욕할 수는 없었다. 억울하게 죽은 명씨 가문의 큰 노마님을 대변하기 위해 나선 것이었으므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짓은 할 생각이 없던 것이었다.
화원은 여전히 차분했다. 화원에서는 가끔씩 등불이 반짝였으며, 빗방울이 대나무에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총독 관저의 병사들은 굳건히 서서 화원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손에 횃불을 들고 화원 밖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원 밖에 남아 있던 서생들은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얼굴을 때리는 빗물을 닦아내며 자신들의 눈이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했다.
‘소주성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자신들이 이 지경이 되어 있는데, 흠차 대인이란 자는 가만히 있다니······ 이럴 수가!’
자신들은 비를 쫄딱 맞고 있는데 흠차 대인은 가만히 듣고만 있다니. 서생들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시 분노가 치솟았다. 그러자 피곤함에 잠시 끊겼던 욕설이 다시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욕을 하고 있는데 회색의 홑옷을 입은 누군가가 군중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눈을 데굴데굴 몇 번 굴리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화원으로 집어 던졌다.
물건이 화원 정원에 떨어지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만 날 뿐 폭발음 같은 건 나지 않았다.
이내 화원에서 천둥소리 같은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어떤 미친놈이 개피가 담긴 주머니를 던져!”
* * *
개피를 던지는 건 심한 모욕 행위였다. 어린아이들이 심사가 뒤틀렸을 때 가끔 치기로 개피를 던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걸 흠차 대인의 거처인 화원에 던지는 건 과도한 처사였다.
서생들도 순간 당황했다. 이에 욕하던 걸 멈추고 ‘대체 누가 저리도 대담할까?’라며 잠시 생각했다.
서생들이 잠시 생각을 하는 사이 화원 위로 검은 그림자 세 개가 지나갔다. 감찰원 6처 소속의 검수 세 사람이었다. 그들은 화원 밖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이들을 싸늘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지자 누군가가 소리를 내질렀다.
“감찰원이 살인을 하려 한다! 우리는······!”
그림자 하나가 군중 속으로 들어오더니 선동하는 소리가 도중에 턱 멈추었다. 마치 오리가 목이라도 졸린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포의를 입은 사내가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의 목을 쥔 채 찬바람을 쌩쌩 풍기며 사람들 밖으로 걸어 나왔다.
포의를 입고 있던 사내는 호위 대장인 고달로 범한의 명령으로 선동하는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능력이면 사람을 잡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고달이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런 후 그의 가슴팍을 발로 밟았는데 갈비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참혹한 광경에 서생들은 피가 거꾸로 솟아 고달을 둘러싸고는 소리치기 시작했다.
“살인이다! 감찰원이 살인을 한다!”
주변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총독 관저의 고위 군관이 깜짝 놀라 말을 몰고 다가오더니 언제든 진압할 태세를 갖추었다.
고달이 회색 옷을 입은 자를 싸늘하게 들어 올리더니 포대 자루 흔들 듯이 흔들어댔다. 그러자 댕그랑 댕그랑, 하며 그자가 지니고 있던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첫째, 이자는 죽지 않았다.”
고달의 말에 회색 옷을 입은 자로부터 신음 소리가 대답처럼 들려왔다. 그러자 서생들도 조금 진정을 했다.
고달이 싸늘하게 말을 이어 갔다.
“둘째, 너희들은 정도를 구현하러 왔지만, 이 자는 너희들이 흠차 대인의 손에 죽도록 만들기 위해 왔다. 이런 차이가 있으니 차별을 두는 수밖에······.”
고달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는 모두 흠차 대인께서 하신 말씀이다.”
서생들은 그제야 제정신을 차리고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놀라 펄쩍 뛰었다. 회색 옷을 입은 자는 개피가 담긴 주머니 외에도 불씨와 기름 종류도 지니고 있었다. 그제야 알 것만 같았다. 이 자가 군중 속에 숨어 나쁜 짓을 하도록 내버려 뒀다면, 정말로 화원에 불이라도 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화원에는 황자마마와 흠차 대인이 묵고 있는데. 그렇다면 자신들은 단순히 폭도란 죄명으로 죽지 않을 게 뻔했다.
“대인께서 하신 두 번째 말씀이다.”
고달이 싸늘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모두들 고달의 기세에 눌려 고분고분 듣기만 했다.
“불공평하다고 느꼈을 때 그 감정을 드러내려 하는 건 치기 어린 소년의 특성이니, 탓하지는 않겠다.”
고달이 범한의 말을 계속 전달해 나갔다.
“하나 타인의 도발에 넘어가 진상을 몰랐던 건 어리석은 짓이다. 불공평함을 논하려 했다면 정당한 방법을 찾아야 할 터. 시정잡배처럼 막돼먹게 떠들어대는 건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서생들은 범한의 말에 반발심이 들었다. 이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서생이 당당하게 앞으로 나왔다.
“감찰원이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으니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서생, 예전에 소주부에 신고를 한 적 있었지요. 한데 같은 관료라고 감싸더군요. 더군다나 소주부는 감찰원의 권세가 두려워 감히 고소장을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흠차 대인께 감히 묻겠습니다. 대체 어떤 정당한 방법을 써야 불공평함으로 생긴 화를 없앨 수 있을까요?”
고달이 그자를 싸늘하게 잠시 바라보았다.
“대인께서 말씀하시기를, 화원 밖에 모여들어 소란을 피울 용기가 있다면 화원 내부로 들어와 의논할 용기도 있을 것이라 하셨다.”
서생들이 잠시 술렁였다. 어떤 이는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들어가야 한다고 말해 이론이 분분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처음에 말을 꺼낸 학생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는 강남로 백록학당에서 수학하는 자였다. 성은 방이고 이름은 정석이며, 가난한 집 출생이다. 그런데 동료들도 인정할 정도로 견문이 넓어 어쩌다 보니 대표가 되어 있었다.
방정석은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최근 며칠 동안 모은 백성들의 혈서를 품에서 꺼내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서생, 화원으로 들어가 대인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고달이 그를 무표정하게 잠시 바라보고는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을 들쳐메고 화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정석은 살짝 불안했지만 용기를 내서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여러 동료들이 함께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방정석은 일단 그들을 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