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화 꼭대기 층에서 보는 민심
여섯째는 미쳐버리기라도 한 듯, 있는 힘껏 소리를 쳐대고 있었다.
그때 ‘짝!’, 하는 소리가 울렸다.
갑자기 따귀를 맞은 여섯째 어르신이 경악하며 돌아보았다. 큰 형이 슬픔이 뒤섞인 한껏 분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명청달이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가문 사람들도 몽땅 죽일 셈이냐!”
깜짝 놀라 몸이 굳어버린 여섯째가 대답할 때를 기다려주지 않고 명청달이 침울한 얼굴로 소리쳤다.
“모두 멈추어라!”
큰 소리가 아니어서 그런지 많은 이들이 듣지 못했다. 그러자 명청달의 창백한 얼굴이 극도로 흥분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그가 아까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반역을 저지를 셈이냐!”
명청달은 명씨 가문의 명목상 주인 아니던가. 특히나 큰 노마님이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명목상이란 말은 떼어버려도 좋을 터. 이에 명청달은 명원에 있는 무력을 쓰는 모든 이에게 이만 물러나라고 명령을 내렸다.
사람들이 길을 터주자 명청달이 싸늘한 모습으로 걸어 나와 감찰원 관원 앞에 섰다.
명씨 가문의 주인은 당장 죽여버려야 할 나쁜 개라도 보듯 등자월을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등자월이 전혀 꿀리는 기색이 없이 싸늘하게 말했다.
“명씨 어르신, 잘 말하셨소······ 정말로 지금 역모라도 꾀하신 겁니까? ”
명청달은 처참한 심정을 대변하는 눈빛만 내보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빛으로 마치 이렇게 얘기하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명씨 가문은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여기에 있는 감찰원 관원들을 전부 죽여버려야 하나? 그러면 여기 소주성에 있는 작은 범 대인과 설청 총독이 경도의 성지는 기다릴 것도 없이 곧장 병사들을 끌고 와 명원을 멸망시켜 버리겠지? 하지만······ 저들은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았던가!’
의심, 염려, 고통의 감정이 명청달의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은 명씨 가문 사람들과 감찰원 관원들의 눈에도 고스란히 들어왔다.
“형님!”
여섯째 어르신이 명청달 곁으로 뛰어갔다.
“어머니께서는 핍박을 받아 돌아가신 겁니다. 저 주구 놈들을 살려 보내서는 안 됩니다!”
사실 그 순간 명원 사람들은 차츰 냉정을 되찾고 있던 터라 그들에게도 명씨 어르신의 마음 속 고난과 갈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명씨 가문의 여섯째 어르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그는 모자간의 정이 깊어 화를 억누르지 못한 것뿐이었다.
“당신네가 우리 명씨 가문에게 준 굴욕감과 상처는······.”
창백한 얼굴로 입가를 살며시 떨고 있는 명청달이 등자월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어 갔다.
“우리 명씨 가문에서 열 배로 대갚음해 주지······. 우리 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청하면, 내 당신들을 밖으로 내보내 주리다.”
여섯째 어르신이 자기 귀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황급히 끼어들었다.
“형님! 그냥 이렇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앞에 있던 등자월은 눈을 갈수록 더 가늘게 뜨며 한참을 생각을 해보고는 입을 열었다.
“명씨 어르신, 우리가 감찰원 소속인 건 잘 알고 있겠군요. 감찰원은 하늘, 땅, 군주에게만 무릎을 꿇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무릎을 꿇지 않소이다.”
명청달이 이맛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연이은 충격에 정신적인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잠시 몸을 휘청거렸다. 그리고 가까스로 여섯째의 어깨를 잡고 버티며 그가 충동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저지했다. 명청달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옥석을 구분 않고 전부 처리해주지!”
명청달은 말하는 내내 등자월의 눈을 보고 있었다. 이에 등자월은 그가 무슨 속 깊은 뜻을 드러내 보인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게 대체 무엇인지 확실히 잡아내지는 못했다.
명청달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감찰원은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고집스럽게 나오고 있었다. 이런 위험한 국면에 처했는데도 형식적인 퇴각조차 하려 들지 않다니.
이에 일촉즉발의 대치 국면은 지속될 수밖에 없었었다.
명씨 가문의 여섯 아들 가운데에서도 둘 정도는 똘똘했다. 그들은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고 형님이 옥석을 구분 않고 전부 처리해버리겠다고 말하자 순간 공포감에 휩싸였다. 상인이 어찌 조정 관료에게 ‘전부 처리하겠다’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에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데 말이다.
더욱이 자신들은 큰어머니의 소생도 아니니 이런 일로 목숨까지 걸고 싶지 않았다. 이에 둘째와 셋째가 격앙되고 비참한 표정으로 형님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집안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게 중하니 일단 참으라고. 어머니를 위한 복수는 천천히 해도 된다며 말이다.
명청달은 자기 손으로 어머니를 죽인 터라 혼자만의 꿍꿍이가 있었다. 그래도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일부러 꾸며낸 건 아니었으니, 그는 이 순간만큼은 어떻게든 감찰원을 불구대천의 원수 대하듯 해야 했다. 한데 그러던 와중에 둘째와 셋째가 나서주자 그는 살짝 안도하며 오히려 고통에 발버둥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마나 대치했을지 모를 무렵, 후원 밖이 시끌시끌해졌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말을 타고 명원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곧이어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명청달은 속으로 움찔했다. 감찰원의 흑기는 아직 강북에 있을 테니 지금 명원에 쳐들어올 수는 없을 터. 그렇다면 대체 누구지?
* * *
천여 명에 달하는 관병이 말을 타고 명원으로 밀고 들어왔다. 손에 긴 창을 들고 있던 그들은 먼지를 일으키며 거센 위세로 들어와 명원의 사병들과 감찰원 관원들을 잠시 떨어뜨려 놓았다.
이들은 강남 총독이 부른 1로 주군(州軍)이었다. 주군이 더 큰 화가 발생하기 전에 쇠뇌와 검으로 무장한 두 진영 사이로 파로들 수 있었던 건 강남 총독이 긴급 명령을 발동해 서두른 덕분이었다.
군대를 이끌고 온 이는 참장으로 그는 이곳에서 발생한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명청달에게 몇 마디 건네고는 큰 노마님에게 절을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명원에서 아직 장례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또한 큰 노마님의 죽음이 너무······ 찜찜해서, 절을 올리는 건 일단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주군이 명원으로 들어올 때 계년조에 속한 감찰원 관원도 함께 따라왔다. 그는 서둘러 등자월에게 다가가 제사 대인의 말부터 전했다.
등자월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되면 퇴각은 순조롭게 할 수 있을 거야. 주군 천여 명이 여기까지 와줬으니 명씨 가문이 우리를 공격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그냥 이렇게 물러난다면, 문제는 감찰원이 이 집 큰 노마님을 핍박해 돌아가시도록 만들었다고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잖아!’
그런데 주군이 명원에 온 건 감찰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흑기가 명원을 도륙할 가능성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등자월은 큰 노마님의 사인을 의심하고 있었고 사인은······ 소주부에서만 검사를 할 수 있고 감찰원에게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데 강남 일대에서 정무를 보는 관원들은 모두 명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던가. 그러니 분명 아무런 문제점도 발견해 내지 못할 텐데. 이러한 이유로 등자월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제사 대인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결정을 내신 거지? 주 집사를 잡아들일 생각은 있으신 건가? 이 일이 그냥 비화되도록 내버려 두실 셈인 거야?’
* * *
때는 늦봄이었다. 그런데 소주성이 온통 은빛을 깔아놓은 것처럼 변해 버렸다.
눈이 내린 건 아니었지만, 눈보다도 더 하얀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소주성의 거의 모든 백성들이 상복을 입어서였다. 그들이 머리에 두른 눈처럼 새하얀 천은 얼음장처럼 싸늘한 조서(詔書)처럼 가닥가닥 휘날리며 명씨 가문의 큰 노마님이 강남 사람들에게 베푼 은덕과 공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명씨 가문 큰 노마님의 사망 소식은 하룻밤 새 온 강남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사망과 관련한 구체적인 상황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는 동안 점점 기이한 이야기로 변해갔다.
한데 이야기가 어찌 변했든지 간에 비난의 칼끝은 모두 감찰원을 향해 있었다. 이에 감찰원을 향한 백성들의 분노는 차곡차곡 쌓여 나갔지만, 백성들은 그것을 순식간에 발산해버릴 통로까지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감찰원은 시종일관 은밀했기 때문에 일단 백성들의 소문을 잠재우기 위한 대대적인 폐쇄 조치는 펼치지 않았다. 흠차가 거주 중인 화원에도 병사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지키고 있어 백성들은 그곳까지 찾아가 시위를 할 용기는 내지 못했다.
그래서 모두 상복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저잣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원망과 욕설을 분노와 슬픔에 찬 표정으로 치환해 침묵의 항의를 펼쳤다. 물론 이는 감찰원과 작은 범 대인을 향한 것이었다.
명씨 가문 큰 노마님의 영정을 모시는 방은 아직 열리기 전이었다. 그래서 각지에서 조문하러 온 관원들과 귀족들은 잠시 소주에 머물러야 했다.
이렇듯 소주성의 분위기는 완연한 봄 경치와 상반되게 싸늘한 기운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데 범한은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단 그는 낯짝이 두껍고 속이 시커멨다. 그리고 정신력이 어찌나 강한지 상복으로 가득 찬 성안의 풍경을 보고 있는데도 그것을 전생에 봤던 영화 취급했다. 또한 알게 모르게 그를 욕하는 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범한은 예약해 둔 신풍관 소주 점 꼭대기 층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오로지 해당타타 걱정뿐이었다. 해당타타는 그날 범한 대신 군산회의 주 선생을 잡으러 간 후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위험한 일을 당한 건 아닐는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범한은 저도 모르게 자조적으로 웃었다. 이 세계에서 해당타타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사람은 종사밖에 없지 않은가. 범한이 그릇을 들고 국수를 후루룩 먹고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그제야 입을 열었다.
“명씨 어르신, 이번에는 내가 당했습니다.”
범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명청달이 바닥에 머리를 연신 찧으며 범한에게 아부하는 말을 했다.
“대인께서는 생각은 도도히 흐르는 강처럼 기민하고, 기세는 우뚝 솟은 산 같은데, 어찌하여 고작 주 씨 같은 미풍(微風)을 신경 쓰시는지요.”
“도도히 흐르는 강이라고요? 황하가 범람했답니까?”
“일어나요. 이제 당신은 명씨 가문의 진짜 주인입니다. 그러니 본관을 대할 때 그리 소심하게 나올 필요 없습니다.”
범한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명청달을 살펴보며 다시 그릇을 들고 면을 후루룩 흡입했다.
명청달은 오늘 몰래 신풍관으로 온 것이었다. 모든 이의 이목을 피해 극도로 조심하며 온 것이라 아직 긴장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소주성은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수만에 이르는 명씨 가문의 일족들은 모두 가문의 주인인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몰래 흠차 대인을 만나러 왔다는 걸 들킨다면, 어쩌면 그는 가문의 주인 노릇도 못하게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 만난 흠차 대인이 명확히 말을 해주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명청달은 내심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범한이 그릇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일단 차치하고, 딱 하나만 물읍시다. 내게 주겠다던 주 선생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명청달은 흠차 대인의 말이 품은 압박감을 느꼈다. 이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자기 변론을 하기 시작했다.
“그자는······ 저는 아직 그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자를 명원에서 나가게 한 건 이 몸의 실수입니다. 그러니 대인, 죄를 달게 받겠사옵니다.”
“죄를 달게 받겠다고요?”
범한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오늘 이 자리까지 왔는데, 내 어찌 당신을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명청달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인, 설마 아직도 제 성의를 믿지 못하시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