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452화 (452/1,108)

452화 호부의 일 (1)

서무는 호부를 조사하더라도 분쟁이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 황태자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서무 대학사는 호부에 대한 소문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확실히 지적함으로써 조정의 누군가가 다른 의도로 이 일을 꾸민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호 대학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조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담담한 얼굴을 한 황제가 공부 상서에게 물었다.

“자네의 의견은 어떠한가?”

줄곧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공부 상서가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지난 2년 동안 공부는 폐하의 뜻과 문하중서 대인들의 규정에 따라 호부에 돈을 요청하였지만 순조롭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공적인 일에 개인의 사사로운 생각을 밝혀서는 안 될뿐더러 소신은 호부를 일부러 난처하게 할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호부에서 가끔 예산을 받아내기가 힘들이었던 건 사실입니다.”

에둘러 말하기는 했지만, 호부에 문제가 있으니 예산을 받아내기 힘들었던 것 아니겠냐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었다.

이어서 이부상서 안행서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인사와 관련된 일을 맡은 만큼 그는 황제에게 호부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문제가 있으면 벌을 내리고 문제가 없으면 호부가 받는 압력을 줄여 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제는 속 시원히 말하지 않는 대신들의 말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가 의자 손잡이를 두드리던 손가락을 들어 얇은 상주문을 가리켰다.

“강남에서 온 상주문들을 읽어 보게.”

요 태감이 소리 없이 앞으로 다가가 상주문을 들어 대신들의 손에 놓아 줬다.

어서방에는 대신들이 상주문을 펼치는 소리와 낮은 호흡 소리만 들렸다.

한참 뒤 서로 바꿔가며 상주문을 다 읽은 대신들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서로 눈이 마주친 서무와 호 대학사의 얼굴에는 놀람과 근심이 가득했다. 만일 상주문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범 상서는 간이 크다 못해······ 배 밖으로 나온 게 틀림없었다.

“강남로 어사 곽쟁이 올린 상주문이네. 범한이 하씨 성을 가진 사내를 앞장세워 황실 공개 입찰의 결과를 조작했다는 내용이네. 하씨 성을 가진 사내에게 거금을 주어 황실 금고 공개 입찰에 참여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6개 항목을 가져가게 했다고 하네. 더구나 이번 입찰액이 큰 이유도 범한이 하씨 성을 가진 사내를 이용해 황상들을 압박해 입찰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려서라 하네.”

마지 자신과는 완전히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황제의 목소리는 평온하다 못해 냉정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곽쟁은 범한이 동원한 은전의 출처를 의심하고 있네.”

황제가 대신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짐도······ 그 점이 의심스럽네. 범한이 아랫사람을 동원해 황상들과 경쟁을 벌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은전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너무 놀라 목이 마른 서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그제야 조정 관리들이 호부의 적자 액수가 엄청날 거라고 단정 짓는 이유가 뭔지 알아챘다. 그건 바로 강남의 일과 관련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범한이 황실 금고 공개 입찰에서 북쪽 6개 항목을 손에 넣고 입찰 가격을 높이기 위해 범 상서를 통해 조정의 은전을 동원하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대신들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범 상서에게 미움을 받기 싫어서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상황에 겁을 먹어서였다. 상주문에 찍힌 낙관을 보니 어젯밤에 황궁에 도착한 것이었다. 황제는 이미 황실 금고 공개 입찰에서 범한이 음흉한 수단을 썼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제가 아침에 조회에서 기뻐했던 모습이 거짓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대신들은 황제의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함과 주도면밀한 계획을 감히 추측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황제는 범한이 자신을 위해 돈을 벌어들이는 건 좋으면서도······ 범한이 조정의 은전을 동원해 돈을 버는 건 싫은 것일까?

조정의 은전은 황제만 건드릴 수 있으니 누구도 넘봐서는 안 됐다. 그러니 범씨 집안의 이번 행동은 황제의 역린을 건든 셈이었다.

2월에서야 다시 어사방에 들어오는 게 허락된 2 황자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아바마마, 소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말하라.”

황제가 심드렁하게 허락하자 2 황자가 온화한 얼굴에 진지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대신들을 향해 예를 올린 뒤 말을 시작했다.

“소자와 범 제사는 서로 원한이 있는 관계이지만 이번 일에서만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가 하씨 성을 가진 부하에게 조정의 은전을 쥐여 줘 개인적으로 사용하게 했다는 것은 대죄이며 호부에서 몰래 국가의 재산을 강남에 보냈다는 것은 모반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 말을 들은 대신들은 모두 2 황자가 범씨 집안을 겨냥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줄곧 침묵하고 있던 1 황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강남로 어사 곽쟁은 과거 형부에서 범한에게 맞을 뻔한 사람으로 오랜 원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가 이 말을 툭 던지고는 입을 다물자 서 대학사가 눈을 부릅뜨며 속으로 생각했다.

‘맞아! 이걸 기회로 잡아 상황을 전환해야 해. 지금 곽쟁의 상주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면 호부는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고 강남에 있는 작은 범 대인의 신상도 위험해질 거야. 아······ 그럼 얼마나 많은 목이 잘릴 것인가. 지금 경국 조정으로서 그만한 혼란을 견디지는 못할 것인데.’

이런 생각을 한 그가 재빨리 1 황자의 말을 이어받아 말했다.

“폐하, 곽쟁의 말을 믿을 수가 없사옵니다. 그자는 큰일을 벌려 공을 세우길 좋아해 방자한 짓도 서슴없이 하는지라 작년 폐하께서 강등하고 강남에 보낸 사람입니다. 더구나 작은 범 대인과는 묵힌 원한이 있는 관계이니 일부러 일을 과장해 모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묵힌 원한이 있는 관계란 말이 나오자 사람들의 머릿속에 진짜 범한과 묵힌 원한이 많은 사람은 2 황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2 황자도 그걸 알았는지 맑은 미소를 짓고 있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가 원망 섞인 눈빛으로 1 황자를 째려봤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1 황자와 돈독한 사이였지만 오늘 그가 어째서 사생아 놈의 편에 서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 대학사의 말이 끝나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있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다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작년 형부 일을 빌미로 조정에서 도찰원 좌도어사였던 곽쟁을 멀리 강남으로 내쫓은 핑계가 바로 큰일을 벌려 공을 세우길 좋아해 방자한 짓도 서슴없이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황제가 곽쟁을 내쫓은 것은 범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지만, 천자의 말은 금과옥조라서 한번 내뱉어지면 다시 거둬들일 수 없었다. 황제는 서 대학사가 자신이 과거 했던 말을 곽쟁의 상주문을 반박하는 데 사용하자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판 함정에 자신이 걸려든 꼴이었다.

“내관이 강남에 내려가 있지 않사옵니까?”

그때 무언가 생각난 듯 황태자가 굼뜬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바마마, 어사 곽쟁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 그 내관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사옵니까. 그럼 강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언뜻 듣기에는 타당한 것 같았지만 실은 음흉한 생각을 가지고 한 말이었다. 황태자는 강남에 내려간 내관이 황태후의 측근인 만큼 범한을 모함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황제가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황태자를 노려봤다.

“내관의 말을 믿으란 것이냐? 집안의 가훈도 잊었느냐!”

황태자가 기가 죽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옆에서 시중을 들던 요 내관은 그 말을 듣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설청의 상주문을 기다려 보지.”

황제가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어서방에 있던 사람들이 연이어 고개를 끄덕이며 총독의 말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줄곧 아무런 태도도 보이지 않던 호 대학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소신은······ 도무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이 일은 강남에서 작은 범 대인이 제멋대로 행동했다는 상주문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2 황자 저하의 말처럼 만일 작은 범 대인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나라의 재산을 동원한 것이라면 이건 모반에 가까운 짓입니다. 소신은 범 상서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이런 미친 짓을 할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강남로 어서와 지방 관리들이 상주문을 올렸으니 이 일을 조정에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도 없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호부를 명명백백하게 조사하여 문무백관들이 품고 있는 의구심을 거둬주시고, 범 상서가 받는 모함을 씻겨 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문하중서 대학사들에게 존경을 표시하던 경국 황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런 짓을 벌였다 하더라도 미친 짓이라 할 것까지는 없지······. 자네들은 조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둔 게 있는가?”

황제의 입가에 옅게 퍼지는 자조 섞인 미소를 본 순간 어서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마음이 오싹해졌다. 황제가 생각보다 범 상서를 더욱더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눈치챈 대신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황제의 총애를 받던 범씨 가문이 어쩌다 미움을 받게 된 걸까 생각했다.

‘범건은 도대체 뭣 때문에 폐하의 눈 밖에 난 걸까?’

황제의 마지막 질문에 말문이 막힌 대신들은 뭐라 대답해야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경국 조정은 두 가지 체제로 관리를 감찰했는데, 하나는 언관이라 불리는 도찰원 어사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감찰원이었다.

부패를 방지하는 기관인 도찰원은 소문을 황제에게 전할 권한이 있었다. 그래서 강남로 어사 곽쟁이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도 범한이 사사로이 나랏돈을 유용해 황상들과 입찰 경쟁을 벌였다는 내용의 상주문을 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반면 사후에 일을 수사하는 기관인 감찰원은 황제가 부여한 권한으로 조정 문무백관들을 심문했다.

일반적으로 6부 중 어딘가에 문제가 생길 경우 조사를 진행하는 기관은 감찰원이었다. 감찰원은 먼저 문제가 생긴 관아의 말단 관리들을 차를 마시러 오라는 핑계로 어두침침한 회색 건물 안으로 불렀다. 그리고 조사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 단계씩 올라가며 맨 위에 있는 관리까지 모두 조사했다.

그러니 호부도 이런 방법으로 조사를 받는 게 맞았다.

하지만 문제는······.

감찰원은 원장을 필두로 여덟 개 부서로 나누어 운영되었지만, 문무백관들이 두려워하는 진평평 원장 대인은 최근 몇 년간 직접 일을 처리하고 있지 않았다. 더욱이 최근 1년 동안은 경도 밖 진원에 머무르며 더는 집무를 보지 않았다. 지금 원장과 여덟 개 부서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아주 특별하면서 강력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맡고 있었다.

바로 감찰원 제사 범한이었다.

현재 범한은 인사권을 제외하면 진평평과 거의 맞먹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찰원이 호부의 일을 조사한다면······.

어서방에 있는 대신들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조사하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만일 이런 사실이 북제나 동이성 아니면 더 멀리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경국 관료 사회를 비웃을 게 분명했다.

서 대학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신, 호부를 어떻게 조사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니 감찰원에서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의 옆에 있는 대신들도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호부를 조사해 범건을 벌하거나 아니면 혐의를 벗겨주려면 누구나 인정할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황제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기존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오?”

“그건······.”

서 대학사가 말을 머뭇거리며 명명백백한 사실을 황제가 모르는 척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피다가 결국 용기를 내었다.

“폐하, 작은 범 대인은 감찰원의 전권을 가진 제사입니다. 감찰원이 호부를 조사한다는 사실을 밖에 알려진다면 분명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니 조사 결과가 신뢰받지 못할 수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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