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449화 (449/1,108)

449화 이점

황태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저에게 무슨 이점이 있다는 것입니까?”

황후의 평온하던 얼굴이 순간 섬뜩하게 변했다.

“1 황자는 동이성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고, 2 황자의 생모인 숙 귀비의 집안은 경도에서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3 황자의 생모인 의 귀빈은 경도 대호족 가문인 유씨 집안 출신인 데다가 범한과도 돈독한 사이입니다. 황자들 중에서 저하만······ 오직 우리 모자만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신세이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경멸하는 미소를 짓더니 이어 말했다.

“저는 폐하와 오랜 시간 부부로 지내 잘 알고 있습니다. 의심병이 심한 폐하께서는 이씨 황실이 외척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걸 극도로 경계할 겁니다······. 분명 외척 세력이 없는 아들을 계승자로 고르겠지요.”

황후는 황태자의 허약한 마음을 도려내려는 듯이 차갑고 매서운 눈빛을 지었다.

“그러니 2 황자는 안 되고, 3 황자는······ 더더욱 안 됩니다! 오로지······ 저하만이 용상을 물려받을 사람입니다. 폐하께서 그 절름발이 노인을 시켜 제 집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 요녀를 위한 것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저하의 앞날에 장애물이 될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겠습니까?”

그녀가 가볍게 황태자의 얼음처럼 차가운 뺨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큰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겁니다. 폐하께서 하시는 일들은 모두 저하가 강한 군주가 되도록 담금질하는 것일 뿐입니다. 오래전에 폐하는 저하를 선택했고,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선택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한참을 말하던 황후가 갑자기 키득키득 소리를 내며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설령 그 선택이 원래부터 틀렸던 거라 한들······.”

그녀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갈았다.

“이제 알겠습니까? 저하가 황태자가 될 수 있었던 것, 장래에 용상을 차지하게 될 수 있는 건······ 3천여 명에 달하는 제 친족들이 목숨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바로 저하의 친척들이지요! 저하가 용상에 이를 수 있도록 그들이 자신들의 피와 살로 그 길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니 저하도 인내하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용상에 앉는 그 날까지 견디셔야 한단 말입니다!”

황태자는 벌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황태후가 후궁 관리를 엄격하게 해서 그는 그동안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최근 몇 년에야 비로소 그는 어머니의 입을 통해 경도 피의 달이라 부르는 그 날의 진상과 외할아버지와 삼촌들 비롯한 외척들이 정치 파문에 휩쓸려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황께서는······ 내 외척을 전부 제거하고 싶으셨던 거야······.’

이런 생각에 그는 마음이 오그라들면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만약 어머니의 분석이 맞는다면 자신이 앞으로 침착하게 행동하면서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기만 한다면 용상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거였다.

경국 황태자의 눈빛이 점점 결연해지더니 자신의 어머니인 황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은 마치 황태자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용상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자신들의 말을 잊은 것 같았다. 천하 사람들이 모두 알다시피 진평평이나 작은 범 대인이 가장 잘하는 것이 없던 문제도 큰 문제로 둔갑시키는 거라는 걸 그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 * *

황실과 조정은 둘이면서 하나인 존재였다. 황제라는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거치면 두 권력은 아름답고 조화롭게 통일되었다. 조정 관리들은 황제에게 아첨하듯 황족들에게 아첨했고, 황족들은 관리들이 황궁 밖에서 자신의 일을 대신 해주기를 바랐다.

한마디로 말해서 황실과 조정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뭉친 관계였다.

그래서 어서방에서 황제가 호부의 일로 화를 냈다는 사실이 무수한 경로를 거쳐 황궁 밖으로 전해지자 관료 사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관리들은 황제가 싫어하는 일을 가장 경계했다. 그래서 설사 황제가 대적하려 하는 사람이 가장 높은 벼슬을 지닌 관리라 할지라도 그들은 용맹이 앞장서서 나서 공격하려 했지 뒤에 숨으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황제의 기분을 맞추는 일은 언제나 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황실의 기대와 조회의 반응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관리들은 이전보다 더욱 신중하고 조심히 행동했다.

호부의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호부 상서 범건을 건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관리들을 주저하게 했다. 범건이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만큼 간교한 사람이라는 것도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이유였지만 그보다 정왕과 허물없이 친한 관계이고 폐하와도 돈독한 사이라는 게 문제였다. 관리들은 황제가 범건을 얼마나 아끼는지를 가늠해 보며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더구나 관리들이 나서지 못하는 다른 이유로 범건의 아들이 감찰원 제사이자 흠차 대인인 범한이라는 것도 있었다.

비록 범한이 황제의 사생아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지만······ 범한이 경도에서 제일가는 효자라는 것도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민간에서는 범한이 황궁에 있는 친부는 인정하지 않은 채 매년 범씨 가문 사당에 들어가려고 애쓴다는 것과 같은 그의 효심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이 많이 떠돌아다녔다.

만약 범 상서의 신상을 건든다면 범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다. 관리들은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2 황자가 범씨 집안 둘째 아들을 이용하려 하는 바람에 범한의 심기를 건드려 처참하게 당했다는 사실만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범한이 2 황자의 수족을 자르고 창피를 준 뒤 자택에 연금시켰다는 것은 관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2 황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작은 범 대인이 관리들을 두려워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황실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졌고 각 방면에서 들려오는 소식도 폐하가 호부에 칼을 대려 한다는 걸 뒷받침해 주었다. 요 며칠 폐하의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가 호부와 관련 있는 건 분명했다. 그리하여 서로 눈치만 살피던 관리들은 마침내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상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정말 나라를 위해서 조정이 호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청렴한 관리도 있었다. 그리고 황실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 이 일로 범씨 집안을 무너뜨리고 멀리 강남에 있는 범한의 명성을 실추시키려 하는 대신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황제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입신양명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이로써 조정이 호부가 나랏돈을 마음대로 사용했다는 의문을 철저하게 조사해 밝히려 한다는 소문이 천하 백성들과 황제 폐하의 귀에 전해졌다.

* * *

경국의 조회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시간에 열렸다.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한 새벽녘이라 그런지 황궁 전당 안은 여전히 서늘했다. 황제는 높은 용상에 앉아 있었고 대신들은 한껏 자신들을 낮춘 채 정무를 토론했다. 모든 게 평상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급히 의논해야 할 일들이 모두 끝나자 황제가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또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가?”

대리사 대신 한 명이 앞으로 나와 조심히 말했다.

“폐하, 황실 금고 전운사 정사인 작은 범 대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경도 관리들은 대부분 며칠 동안 준비한 호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멀리 강남에서 범한에 대한 불평이 들려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3일 동안 끊임없이 강남 어사와 관리들의 상주문이 황궁에 날아 들어와 눈덩이처럼 쌓여 있었다. 모두 황실 금고 전운사 정사인 범한이 포악무도한 일을 벌였다고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 안에는 범한이 흠차 대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동료들은 억압하고 국법과 조정의 규율을 무시하며 황실 금고 관리인들을 서슴없이 죽일 뿐만 아니라 민중의 분노를 자극해 3대 작업장에서 파업이 일어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황실 금고 3대 작업장의 경국 재정의 중요한 기둥인 데다가 작업장에서 파업이 일어나는 일은 한 번도 발생한 적 없었기에 이 소식을 들은 경도 사람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경도와 강남은 멀리 떨어져 있어 경도 사람들은 민북 전운사 관아의 상황이 어떤지 알지 못했다. 그러니 진상은 부패한 금고 관리들이 파업을 일으켜 범한이 죄를 지은 관리들을 참수하고 관리들을 질책한 것이었지만 어사 곽쟁과 장 공주 쪽 관리들은 범한이 무고한 사람을 죽여 민중의 분노를 일으켜 파업이 일어난 것처럼 거짓으로 꾸몄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다.

더구나 조정 관리들이 보기에 작은 범 대인은 이런 일을 벌이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범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관리들은 조회에서 작은 범 대인에 대한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며칠 동안 의논했지만, 의견을 취합하지 못했고 폐하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신 중에서는 자신만의 지조를 지키는 인물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들은 범한이 황제의 사생아라는 사실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사실 때문에 범한이 자신의 권력을 믿고 경국 조정의 근간을 흔들고 민중의 이익을 해치지 않을까 경계했다.

이런 사람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문하중서에 부임해 내각을 책임지고 있는 호 대학사였다. 범한과 사귀어 볼 기회가 없었던 그는 범한의 학식과 재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상주문에 적힌 내용이 어느 정도 사실일 거라 믿었다.

오랜 시간 각 군의 지방관으로 근무했던 호 대학사는 중앙 관리들이 얼마나 막무가내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범한이 집안의 권세와 자신의 권력을 믿고 강남 일대에서 제멋대로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이에 그는 강남 관리들을 대신해 지방이 큰 피해를 입는 걸 방지하고 자신의 높이 평가하는 작은 범 대인이 나쁜 길로 빠지는 것도 막기 위해 나서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나온 호 대학사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폐하, 이 일은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황제가 관자놀이를 누르며 물었다.

“무엇을 철저히 조사하란 말인가? 이 일에 대해 범한이 짐에게 보고한 문서와 감찰원에서도 올린 보고서가 문하중서에 보관되어 있지 않은가. 문서와 보고서를 본 대학사도 황실 금고에서 일어난 일이 범한이 오래된 폐단을 조사하고 바로 잡느라 생긴 일이라는 걸 알지 않은가.”

호 대학사가 굴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폐하, 작은 범 대인의 말만 들은 것이지 않습니까. 많은 관리가 상주문을 올렸으니 강남에 사람을 보내 직접 알아보는 게 필요합니다. 만일 상주문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엄격하게 조사해 바로 잡고 황실 금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상주문에 적힌 내용이 거짓이라면 강남로 관리들을 엄히 질책하고 무고한 모함을 받은 작은 범 대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황제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곱씹어 보았다. 강남에 사람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거리가 멀어 도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테니 범한에게 지장이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더구나 황제가 항상 외지를 돌며 관직 생활을 하던 호 대학사를 경도로 부른 이유는 그의 강직함과 고집스러움을 이용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임약보와 진평평이 서로 맞서며 대칭을 이뤘던 것처럼 경국 황제는 호 대학사와 범한을 서로 겨루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호 대학사의 말을 반박할 이유가 없었다.

“대학사의 말에도 일리가 있네. 사람을 골라 강남에 보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게 하면 진실을 알 수 있겠지.”

공평하게 양쪽 의견을 모두 들어야 한다는 목적을 달성한 호 대학사가 만족한 표정으로 자리에 돌아갔다.

그러자 갑자기 서무 대학사가 마음에 줄곧 담고 있던 걱정을 토해냈다.

“누가 거짓말을 한 건지는 조사하는 건 맞습니다. 다만 소신은 황실 금고가 시끄러운 일을 겪어 올해 수입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러니 황실 금고 일을 처음 맡게 된 작은 범 대인에게 폐하께서 주의를 환기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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