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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440화 (440/1,108)

440화

소주부 지주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물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네. 만약 흠차 대인이 한 짓이라면 왜 원몽을 잡지 않고 죽였겠는가? 흠차 대인이라면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형부에서 반포한 체포 명령을 이용해 원몽을 생포하려 했을 거네.”

책사도 이 점이 이해되지 않았기에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원몽은 2 황자 저하와 정왕 세자의 사람입니다. 형부에서 체포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천하에서 어느 관리가 그분들에게 미움을 받을 짓을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제가 봤을 때 감찰원에서 원몽을 생포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원 대가가 감찰원 고문이 두려워 자결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 가서 확인해 봐야겠군.”

결심이 선 소주부 지주가 일어났다.

“최소한 상황은 자세히 알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러자 책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대인께서는 가서는 안 됩니다.”

“뭐라고?”

소주부 지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책사를 바라봤다.

“어째서 가지 말라는 건가? 본관도 신분이 드러날 위험을 무릅쓰고 가고 싶지는 않지만 곧 날이 밝을 테니 서둘러 상황을 수습해야 하네. 만일 이 일이 밖에 알려진다면······ 경도 형부와 감찰원에서 조사하려 할 게 뻔할 것이고, 폐하도 원몽이 여기 있는 이유를 물으실 게 분명하네. 그럼 소주부에서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만약 감찰원에서 이 일을 비밀리에 조사하고 있을 지도 모르니 대인께서는 가서는 안 됩니다. 지금 그곳을 감시하는 눈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차라리 제가 변장한 뒤 심복들을 데리고 가서 뒷수습하겠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소주부 지주가 결국 책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는 책사가 직접 나서서 상황을 정리한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이처럼 두 사람은 아주 신중하게 행동했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책사가 새벽에 분장하고 나가는 모습을 지주 관아 밖 골목에 숨어 있던 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책사는 청기가 달린 작은 가마를 타고 원몽이 숨어 지내던 저택 밖을 살펴보다가 거리에 수상한 사람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놀란 그가 재빨리 발을 걷고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책사가 무명 홑옷을 입고 있는 남자 옆으로 가마를 붙인 뒤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누가 죽였는지 알아내셨습니까?”

무명옷을 입은 남자는 소주 천총으로 오늘 원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한걸음에 달려온 관리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원래 성 밖에서 주둔해 있어야 했지만 관아가 성안에 있는 덕분에 제일 먼저 이곳에 올 수 있었다. 책사의 질문을 들은 천총 대인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하며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걸 왜 나한테 묻는 건가? 자네가 나한테 알려줘야지.”

책사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가마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평소에는 입지 않는 평민 복장을 한 서로를 보고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거리를 청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책사가 살짝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얼굴을 숨기며 물었다.

천총 대인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말게. 내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치웠네. 주변에서 본 사람은 없을 거네.”

책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총과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모습에 책사가 속이 뒤집히는 걸 참지 못하고 코를 막으며 물었다.

“원몽의 시체는 어디 있습니까?”

“방 안에 있지 않겠는가?”

책사는 치솟는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방안을 흘끗 바라봤다. 눈을 뜬 채로 죽어 있는 원몽의 시신을 본 그가 살짝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일은 경도에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일단 깨끗하게 처리한 뒤에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지.”

천종이 볼멘 목소리로 대답했다.

“곧 있으면 날이 밝을 거네. 만약 이곳이 사람들 눈에 띈다면 소주성 전체에 소문이 퍼질 텐데,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명씨 집안에서 사람이 왔습니까?”

“그 간상들은······ 흠차 대인이 몰래 지켜보고 있을까 무서워 집안에서 처박혀서는 나오지 않고 있네.”

* * *

저택을 나온 두 사람은 뒤이어 온 사람들과 함께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아무리 보도 이런 일을 할 곳은 감찰원밖에 없었지만 사건 현장이 감찰원이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시체의 상처들이 모두 문드러진 것이 검에 의해 죽은 게 분명하지만 검세의 풍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현장을 살펴본 결과 저택에 잠입한 사람은 한 명으로 보입니다. 한 명이 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죽였으니 분명 상당한 고수일 겁니다.”

범죄 현장에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 인물이 말했다.

“만일 감찰원에서 나선 거라면 굳이 숨길 필요가 있겠습니까?”

소주 지주를 대신해 온 책사가 잠시 고민하다가 생각을 정리한 듯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건은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게 더 좋습니다. 우리가 아무도 모르게 이곳을 깔끔히 정리하고 감찰원에서도 나서지 않는다면 이 일은 이대로 묻힐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감찰원에서 밀정을 심어 상황을 지켜보다가 나중에······ 우리에게 왜 나섰냐고 묻는다면 사건을 접수해 확인한 것일 뿐이라고 둘러대면 연루시키지는 못하지 않겠습니까?”

책사의 말에 천종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체!’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본관은 무장이네. 무장이 사건을 접수해 확인하는 경우도 있는가!”

책사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천종을 힐끗 째려보고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대인이 꽁무니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헐레벌떡 달려올 줄 누가 알겠습니까?”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하지만 싸울 여유가 없었기에 곧이어 서로 역할을 분담해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청소를 맡은 사람은 청소를 시작했고, 시체 매장을 맡은 사람들은 땅을 파기 시작했다. 돌아가서 문서 작성을 맡은 사람은 이 일을 먼저 보고해야 할지 아니면 흠차 대인 쪽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듣고 움직여야 할지 고민했다.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느라 아무도 멀리 있는 뒷산 위에서 검은색 마차가 유령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범한은 전날 밤 자신이 죽인 시체들을 강남로 관리들이 와서 매장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유리한 상황을 차지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시체에서 사고검의 흔적이 보인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상처를 두 번 처리해야 했다. 이 일과 관련 없는 동이성에 누명을 씌울 수도 없는 이상 사고검의 흔적을 드러내 보이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그는 고달에게도 자신이 사고검의 검법을 사용할 줄 안다는 걸 보여주지 않았다.

범한에게는 경도 황제가 자신이 사고검의 검법을 할 줄 안다는 걸 모르게 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이 일로 인해서 황제가 현공 사당 사건의 자객이라 의심하고 있는 사고검의 아우를 떠올린다면······ 감찰원은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천천히 나아가는 마차 안에서 범한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원몽의 죽음에 놀라 달려온 강남로 관리들이 저렇게나 많단 말인가······ 설마 저들이 모두 장 공주가 키운 개들이란 말인가?”

등자월이 고달을 힐끔 쳐다봤다. 제사 대인은 고달의 귀를 빌려 황궁에 있는 황제에게 불만을 털어놓는 거라 생각한 그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장 공주는 강남에 오래 있었으니 심복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오늘 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

“몇몇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관아에서 나온 사람들이 분명하니 이제 밀정을 통해 조사해 보면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대답하던 등자월이 한숨을 쉬었다.

“다만 눈치 빠른 명씨 집안에서는 냄새를 맡고 사람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범한도 이 점이 아쉬웠다. 그는 원몽을 통해 명씨 집안을 공격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괴롭게는 해줄 계획이었다.

마차가 조용히 장원에 도착하자 피곤함이 몰려온 범한은 두 사람에게 쉬라고 말한 뒤 뒤채로 갔다.

탁자에 엎드린 채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사가 재빨리 일어나 발을 담글 뜨거운 물을 가져왔다.

그녀는 오늘 밤 범한의 행적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여종들에게 음식을 데워오라고 지시하지 않고, 직접 음식을 따뜻하게 데웠다.

범한은 깔끔하게 죽을 한 그릇 비우고 족욕을 마친 뒤 침대에 들어가 깊이 잠이 들었다.

오후가 돼서야 깨어난 그는 원몽의 죽음이 하루 만에 소주성에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사사를 통해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받은 등자월이 피곤함에 절은 모습으로 들어와 서류를 건넸다.

오늘 새벽 수상한 동향이 감지된 소주성 관아 관리들이 모두 적힌 보고서였다. 보고서를 찬찬히 살펴보던 범한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 성안에 있던 관리들이······ 모두 적이었단 말인가? 이래서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원몽의 죽음으로 그들도 느낀바가 있었을 테니 앞으로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겠군.”

등자월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관리들도 함부로 끼어들었다가는 큰일 난다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

범한이 아직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듯 고개를 저으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명단 안에 이름이 적힌 관리들은 이제 고생길이 열린 셈이네. 이 명단을 경도로 보내서 2처에서 조사를 하라고 하게. 아주 사소한······ 십여 년 전에 받은 뇌물이라도 상관 없으니 아주 사소한 잘못까지도 모두 알아내야 하네.”

제사 대인이 명씨 집안을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리들까지 건들려 하자 긴장한 등자월이 작은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본 범한의 눈이 분노로 일렁였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그가 씩씩대며 보고서를 탁자에 내던지고는 으르렁댔다.

“과연······ 과연 설청도 이 일을 알고 있었군. 그런데도 내 앞에서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있었던 것인가!”

원몽의 죽음을 계기로 그동안 감춰져 있었던 강남로 관료 사회의 진짜 모습을 본 범한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장 공주와 명씨 집안이 오랫동안 강남에서 세력을 떨쳐 왔으니 강남 관료 사회 전체가 그들의 편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범한이 손에 쥔 권력과 권위에 비하면 이런 저항은 걱정할 거리가 아니었다. 그가 알고 싶은 건 강남 총독 설청이 이 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였다.

흠차의 신분인 범한이라도 지방 고관인 설청을 건들 방법은 없었다. 게다가 총독은 군대와 민간을 모두 관리하기 때문에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그가 범한에게 대항하는 쪽에 선다면 명씨 집안은 저항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얻는 셈이었다.

그가 얼굴까지 붉히며 씩씩거리자 등자월이 조심히 위로했다.

“총독부도 원몽의 사망 소식을 받기는 했지만 어떤 의견이나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급 관리들이 원몽을 강남에 숨기려 했다면 총독부에게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을 겁니다. 더구나 총독부는 대인에게 미움을 받기 싫어하는 것처럼 경도에 있는 2 황자에게 미움을 받기도 싫었을 테니 사실을 알아도 눈을 감아줬겠지요. 그러니 이 일로 총독부가 대인에게 대항할 마음을 품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범한이 ‘끙’소리를 내며 자신이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최근 며칠 동안 정신적으로 긴장한 상태에 있다 보니 민감해진 것 같았다.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만나 볼 필요는 있겠어. 모레 설청 대인을 만나러 갈 것이니 준비하도록 하게.”

그러자 등자월이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꼼지락거리며 범한의 눈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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