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437화 (437/1,108)

437화

범한이 항상 말했던 것처럼 무슨 일이 발생하든 생활은 계속 이어져야 했다.

경력 6년의 네 번째 달에 들어선 지금 강남 일대는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모두의 이목을 끌었던 명씨 집안 재산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지만 공개 입찰을 끝낸 황상들은 흔들림 없이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일들을 진행했다. 관리들은 여전히 몰래 뒷돈을 챙겼고, 소주성 시민들은 국가 일이나 집안일, 밤일에 대해 사방으로 침을 튀기며 의논했다.

하지만 작은 변화도 있었다.

먼저 명씨 집안 재산을 둘러싼 재판이 너무 오래 진행되면서 처음 시작되었을 때의 신선한 내용이 더는 나오지 않았다. 이에 매일 소주부 관아를 둘러싸고 소송을 관람하던 사람들의 숫자도 점차 줄어들었다. 소주 지주 대인과 양측의 소송 변호인들도 이런 마라톤식 재판이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매일 열리던 재판은 3일에 한 번씩으로 바뀌더니 지금은 6일째 열리지 않고 있었다.

송세인과 진백상은 각자 세력의 도움을 받아 먼지가 자욱이 쌓인 서류 더미와 곰팡내 나는 경국 법률서를 뒤적거리며 자신 쪽에 유리한 증거를 찾으려 혈안이 되었다. 다만 소송이 장기전으로 치달으면서 명씨 집안과 하서비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범한의 의도대로 한동안 정신없이 재판에 매달려 있던 명씨 집안은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올해 황실 금고 장사에 집중해 손해를 조금이라도 만회해 볼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서비는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강남에서 명씨 집안 다음으로 가장 큰 황상이 된 그는 하루아침에 바뀐 신분에 적응해야 했다. 최씨 집안이 운용하던 북쪽 판매 노선 대부분을 가지게 된 그는 각 군과 주의 관문 노선에 연락하고 북쪽 상인과도 교섭해야 했다. 범한이 뒤에서 도와주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복잡한 일이었다.

소주를 떠나기 전날 하서비는 명씨 집안 일곱 번째 공자라는 신분으로 소주성 안에 있는 강남 거상들을 초대했다. 그날 밤 고위 관리들이 구름처럼 운집했고 마차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부티가 좔좔 흐르는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소주성에 있는 부유한 기운이 하서비가 접대 장소로 고른 포월루 소주 분점에 다 모인 것 같았다.

* * *

포월루 소주 분점은 며칠을 연기한 끝에 오늘 밤 마침내 개업했다. 원래 명씨 집안이 운영하는 죽원관이었던 이곳은 소주성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였다. 이곳을 인수한 사천립은 각급 관리들은 범한의 체면을 생각해 쉽게 허가를 내준 덕분에 은전 5만 냥으로 가게를 수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오늘까지 개업이 연기된 것은 분명 다른 곳에 문제가 있을 것이었다.

그 문제는 바로 포월루 소주 분점을 대표할만한 인기 기생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홍보할 만한 대표적인 인물이 있어야 하는 법이건만 사천립이 기생집을 운영하는 사장들을 모두 만나 봐도 대표할 만한 기생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표 기생이 없다면 개업을 시작할 수 없었다. 이에 강남에 도착한 상문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강남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기생 몇 명을 모집했고, 경도 포월루 본점에 있는 석청아도 유정강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기생을 사들여 소주로 보냈다. 또 1 황자도 서쪽 오랑캐 소호를 토벌하는 과정에 포로로 잡은 미녀를 보내주었다. 이로써 사천립은 석청아가 보낸 기생과 1 황자가 보낸 기생, 그리고 상문이 모집한 기생들을 필두로 정식 개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날 밤 하서비와 강남 부자들은 포월루 2층에서 연회를 즐겼다. 붉은 등이 높이 걸려 있고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게 포월루 개업은 한 눈으로 봐도 성공적이었다.

포월루 소주 분점은 개업 날 손님을 받지 않고 강남에서 가장 돈 있는 사람들을 전부 초청했다. 이들을 통해 홍보한다면 풍류를 즐긴다고 자부하는 공자들이나 관리들이 며칠 안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포월루로 달려올 게 뻔했다.

경도 유정강에서 새롭게 인기를 얻기 시작해 석청아의 눈에 띄어 이곳에 보내진 기생의 성은 양(梁) 이름은 점점(點點)이었다. 열여섯 살밖에 안 된 나이어서 그런지 얼굴에는 약간 앳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풍류 기질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요염하면서도 살짝 차가운 기운마저 감도는 눈빛은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경도 풍류계의 이목을 사로잡은 그녀는 원 대가라 일컬어지는 원몽과 전설로 남아 있는 사리리의 뒤를 이을 만한 기생임이 틀림없었다.

이처럼 주목받던 양점점은 경도 풍류계에서 이름을 떨치기도 전에 포월루에 팔려 강제로 소주로 보내지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포월루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도 들어 알고 있었고, 기생들에게 강제로 몸을 팔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소주에 내려와 처음 상문을 만난 자리에서 듣도 보도 못한 계약서를 쓰게 되었을 적지 않게 놀랐다. 열여섯 살밖에 안 된 그녀가 보기에도 계약서가 자신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세상에 기생을 이렇게 잘 대해주는 포주도 있나?’

또 다른 기생인 서호에서 온 미녀는 확실히 경국 사람과는 생김새부터가 달랐다. 양 눈이 살짝 들어가고 얼굴의 윤곽은 두드러지면서도 각져 보이지는 않았다. 피부색은 살짝 검으면서도 지저분해 보이지 않았고, 눈동자는 검은 진주처럼 반짝였다. 몸매도 풍만하고 굴곡이 져서 담백한 매력을 풍기는 경국 여자들과는 다른 매력을 풍겼다.

게다가 이 서호 미녀는 양점점보다 더 독특한 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은 마(瑪)이고 이름은 색색(索索)인 이 미녀는 사실 서호 부족의 공주였다.

군대를 이끌고 서쪽 정벌에 나선 1 황자는 파죽지세로 몰고 가면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부족을 물리쳤다. 그중에서 두 번째로 큰 부족의 지도자가 투항의 의미로 자신의 딸을 바친 것이다. 전장을 누비며 살았던 1 황자는 적의 딸을 여종처럼 대했다. 이후 1 황자가 북제 큰 공주와 혼인을 하자 왕부에 데리고 있는 게 힘들어졌다. 그래서 방법을 고민하던 1 황자는 범한이 강남에서 기생집을 연다는 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포월루를 통해서 소주로 보낸 것이었다.

두 여자가 경도에서 소주로 온 뒤 포월루가 개업을 시작할 때까지 동안 감찰원 8처는 범한은 도와 대대적인 홍보 공세를 펼쳤다. 그동안 명씨 집안을 공격할 때는 8처가 할 일이 많지 않았지만 두 기생을 절세 미녀로 소문내는 것은 8처가 가장 능숙하게 잘하는 일이었다. 두 기생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며칠 뒤 사천립은 두 사람을 마차에 태우고 소주성 밖으로 봄놀이를 떠났다······.

그 소식에 강남에서 호색한으로 이름을 떨치는 사람들이 멀리서라도 두 기생들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자 따라왔다.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여린 풀들을 짓밟으며 포월루 마차의 뒤를 우르르 쫓아다니는 호색한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이로써 포월루는 자신들이 데리고 있는 대표 기생들을 홍보해 강남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포월루 개업일인 오늘 두 기생은 나와서 손님을 맞이하지 않았다. 천주 손씨 집안과 영남 웅씨 집안을 비롯한 누구도 두 기생들을 잠깐이라도 데리고 있기는커녕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두 기생은 지금 어느 청년 옆에 다소곳이 앉아 술과 음식을 먹여주며 시중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 앞에서 두 기생은 고분고분 행동할 뿐 설사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더라도 조금도 드러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능력인 남자의 마음을 꿰어내는 기술도 쓸 용기를 내지 못했다.

두 기생은 지금까지 아름다운 외모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으로 살아온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태연자약하게 자신들 가운데 앉아 있는 청년의 마음은 읽을 수 없었다. 맑고 수려한 외모를 가진 청년의 마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도무지 읽을 수 없었다. 작은 범 대인은 이 세상에 모든 걸 읽을 수 있는 사람이자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읽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범한이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옆에 있는 기생들에게 시중을 들지 말라는 표했다. 꽃처럼 아름다운 두 여자가 구슬처럼 맑은 두 눈을 굴리며 자신의 옆에 앉아 있으니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범한은 일부로 고고한 척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정말이지 이런 데 정신을 팔리고 싶지 않았다.

그가 옆에 앉아 있는 양점점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무슨 삶을 살았기에 열여섯 살밖에 안 된 나이에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방법을 터득한 것일까? 양점점의 나이를 떠올리던 그는 순간 자신이 오랜 시간 풀지 못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해당타타는 올해 몇 살일 걸까?’

자신에게 요염한 추파를 날리는 양점점을 바라보며 범한은 그녀가 자신의 권세에 기대 출세하고 싶은 마음이 그러리라 짐작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1 황자가 보낸 서호 미녀를 바라보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서호에서 부족 공주로 있었던 그녀는 어쩌다가 이런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 마색색은 아무래도 일찌감치 자신의 운명을 체념한 것 같았다. 이 세계에서 여자는 남자가 언제든지 팔 수 있는 물건일 뿐이었다.

그러나 안타까워하는 범한과 달리 마색색은 오히려 이곳에 오니 마음이 편안했다. 그녀는 비록 1 황자에 의해 아무 연고도 없는 강남에 보내졌지만 포월루가 무서운 곳인 것 같지도 않았고, 상문 관리인이나 사천립 사장이 포악한 사람 같지도 않아 안심이 되었다. 더구나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작은 범 대인도 믿고 따를 만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는 왕부에서 고된 중노동에 시달리며 큰 왕비의 매서운 눈초리를 견디며 언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던 때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행복했다.

마색색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범한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문을 바라보며 볼멘소리를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1 황자 저하께서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지 않나?”

두서없는 말에 상문이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다.

“대인께서 서호인을 많이 보지 못해 낯설게 느끼시는 겁니다. 사실 색색 낭자 정도면 상당한 미인이지요. 1 황자 저하께서 대인을 무시한 게 아니니 불쾌해하지 마십시오.”

범한이 낮게 탄식을 내뱉었다. 이전 세계에서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서양 미녀들을 보았고, 프랑스 배우 이자벨 아자니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그러니 서호 미인인 마색색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 미녀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그가 1 황자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한 말은 마색색의 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천하에 무서운 것 없던 1 황자가 마색색을 서둘러 소주로 보낸 걸 보면 아무래도 멀리 경도로 시집을 온 북제 큰 공주가 그동안 숨기도 있던 자신의 성미를 드러낸 게 틀림없었다. 북제 큰 공주가 질투심이 강한 무서운 부인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니 1 황자가 마색색을 소주로 보낸 것은 그녀의 목숨을 지켜주기 위해서였고, 그렇다는 것은 1 황자가 서호 미녀에게 애정은 없어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범한이 어떻게 마색색에게 손님을 받으라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손님을 받게 했다가 나중에 1 황자의 마음이 애정으로 바뀌어 마색색을 그리워하기라도 한다면 난처해지는 건 범한이 아니겠는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