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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434화 (434/1,108)

434화

오늘은 3월의 마지막 날. 강남을 떠들썩하게 만든 명씨 가문의 가산을 둘러싼 소송이 시작된 지 네 번째가 되는 날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친 것 같던 첫째 날 이후로 소송은 줄곧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범한도 예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날마다 부하 관원들의 보고를 듣고만 있다 보니 그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 날 재판에서 송세인은 교묘하게 유서를 활용해 하서비가 명씨 가문의 후손임을 확정지어 놓았다. 이 소식은 소주부에서 온 강남으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지금은 모두들 명씨 가문의 일곱째 어르신이 다시 살아 돌아왔으며, 그가 명씨 가문의 장자와 가산을 둘러싸고 싸우는 중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다만······ 경국의 법률이 경문(經文) 정신에 입각해 만들어진 게 문제였다. 이에 경국에서는 적장자가 승계권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은 물론, 법률에도 그와 같은 내용이 명기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유서는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하서비의 바람을 이뤄주는 데 더 이상 큰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하서비 입장에서는 명씨 가문의 방대한 가산을 빼앗고 싶어도, 규범을 잘 따르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수 천 수 백 년은 기다려야 가능할 일이었다. 너무나 강력한 규범이라 한 사람의 힘으로는 뒤집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규범을 꺼리는 사람이 아무리 범한이고, 경국 황제라 할지라도 적장자의 천부적 승계권을 빼앗으면 결국에는 어마어마한 일이 일 것이니······.

범한이 이맛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정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명씨 가문의 가산 관련 소송이 계속 확대된다면? 그리고 이 소송이 일종의 사상 해방의 대변론의 장이 되고 더 나아가 이것 때문에 태자마마의 천부적 지위가 도전을 받게 된다면?

범한은 쓰읍, 하며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 계획은 언빙운이 세운 것이었지만 동시에 진평평의 허락을 받은 것이었다. 심계가 깊은 늙은 절름발이가 이 사건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 못했을 리 없다. 설마······ 늙은 절름발이가 황제 폐하로부터 몰래 지시를 받은 거라면? 그렇다면 태자의 천부적 승계권을 흔들 여론과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건가?

강남 명씨 가문의 일은 큰일이었다. 그런데 경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그 일은 훨씬 더 확대되어 범한이 상상도 못 했던 국면에 이를 수도 있었다.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에라도 태자가 황위를 계승하고, 줄곧 자신을 죽이려 했던 황후가 황태후가 되는 것을 범한은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현 국면에서 직접적으로 태자를 흔들면, 태자가 장 공주 및 2 황자와 연합 하는 걸 부추길 수 있었다. 한데 범한은 한동안은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건 원치 않았다.

범한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그가 송세인에게 부탁한 내용은 이번 소송을 최대한 질질 끌어서 시끄러워지고, 영향력이 더 커지도록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이번 사건 배후에는 늙은 절름발이가 있었다.

그는 진평평을 신뢰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평평은 줄곧 범한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많은 것들을 그에게 비밀로 하며 알려주지 않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범한은, 사건의 국면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명씨 가문 일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오주에 한 번 다녀와야겠어.”

범한이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오주로 가 장인어른을 만나 뵈라고 한 건 참으로 총명한 판단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조정의 상황 때문에 자신이 분명 어떤 의문점을 갖게 되리란 걸 일찌감치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경도를 떠나 있는 상황에서 진정으로 얼굴을 맞대고 해결책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은 전 재상 어르신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등자월은 범한이 무엇 때문에 걱정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제사 대인이 명씨 가문의 가산 관련 소송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이 생긴 것 같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에 그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지시를 구했다.

“송세인에게 소송을 끝내라고 해야 할까요? 하서비가 명씨 가문의 일곱째인 게 확인되었으니, 며칠 지나 감찰원이 나서서 그를 다시 명씨 집안으로 들이도록 한다면, 경국 법률에 따라 명씨 가문도 그에게 지분을 나누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그 지분의 양은 미미하겠지만, 그래도 하서비를 명씨 가문 내부로 들여보내려는 대인의 바람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것입니다.”

범한은 등자월의 분석에 살짝 안도감이 들었다. 곁에 이 정도 실력의 심복이 있어 기분이 꽤 좋았지만 그래도 대답은 해주지 않고 오히려 자세히 물어보았다.

“4처에게 하서비를······ 이런, 이제는 명청성이라 불러야겠군. 명청성과 명씨 가문 넷째를 만나게 하라고 했는데, 그건 어떻게 돌아가고 있죠?”

하서비를 가시 삼아 명씨 가문의 목구멍을 찌르기로 계획한 이상 명씨 가문 안에서 겉돌고 있는 이와 결탁을 할 필요는 있었다. 범한은 부자인 명문가 사람들이 음성적으로 결탁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세히 아는 건 없었다. 하지만 전생의 홍콩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비슷한 내용을 수도 없이 많이 보기는 했다.

등자월이 보고를 했다.

“이미 접촉을 했습니다. 다음 달 초 하서비와 명씨 가문의 넷째가 만나기로 했습니다.”

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앞서 던진 질문에 답하기 시작하겠다는 신호였다. 범한이 간질거리는 입술 안쪽을 가볍게 물고 씹으며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송세인에게 계속하라고 해요. 이번 소송을 계속 이어나가라고 말이죠! 더 떠들썩해지도록 말입니다······ 이기지 못한다 해도 져서는 안 된다고 전해요! 소주부에 압력을 넣어서 그들이 강제로 안건을 마무리 짓지 못하도록 해요. 천하 문인과 백성들이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하니까요!”

깜짝 놀란 등자월이 고개를 치켜들고 물었다.

“대인, 무슨 문제를 말입니까?”

범한은 자신이 말실수 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웃어 넘겨 버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여기 있는 자기 측근에게는 숨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온 세상 사람에게 적장자만이 가산 승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관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는 겁니다.”

등자월은 현재 계년조의 업무를 책임지는 주사관이라 범한의 모든 걸 대단히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에 제사 대인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이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대경실색했다. 그가 이내 한 손으로 다른 주먹을 감싸 쥔 자세를 취하며 공손히 범한을 설득하려 했다.

“대인······ 만약 조정과 황궁에 계신 분들께서 대인의 마음을 의심하신다면······ 좋지 않은 결과만 낳을 수 있습니다.”

범한이 눈꺼풀을 살짝 내리깔았다.

“자월, 본관의 신분을 잊은 것 같군요. 본관의 성은 범씨이니 너무 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내 마음이 의심 받는 것에 관해서는······ 황궁 쪽 귀인들께서는 어쩌면 선생 노릇이나 하고 있는 내가 본분을 넘는 짓을 했다고 의심하실 겁니다.”

범한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언젠가는 조만간에 동궁과 맞서야 하지 않던가. 그래서 그는 일단 진평평의 뜻에 따라 상대방을 툭툭 찔러보는 중이었다······ 현재 범한이 지닌 권세와 지위에서는 모반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를 어쩌지 못하니까 말이다. 더욱이 그가 이와 같은 여론을 형성하는 게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라고 누군가가 생각한다 해도 말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은 범한이 3 황자를 위해 무언가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일은 원장 대인께 보고하지 말아요.”

범한이 재차 명령을 내렸다.

“그냥 별 것 아닌 일이니까요.”

하지만 등자월은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에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적장자의 자리를 빼앗는 선전(宣傳)식 공격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는데, 이게 별 것 아닌 일이라고요?’

범한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송세인은 소송 거간꾼일 뿐인데, 설마 그가 지구를 움직이는 축이라도 된다는 건가? 어쩌면 내가 이번 일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군. 경국 법률을 가지고 재판장에서 변론을 하는 게 천하의 낡은 규율과는 크게 관련 없는 일일 수도 있는데 말이지.”

등자월은 지구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략적인 뜻은 이해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송세인은 진백상을 만나 백중지세로 싸우고 있습니다. 양측이 불꽃을 튀기며 싸우는 와중에 경국 법률만 인용하는 건 아니니······ 만약 재판장에서의 변론 내용이 밖으로 흘러나간다면, 그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더 많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범한이 흥이 잔뜩 올랐다.

“어? 그렇다면 한번 가서 봐야겠군요. 가서 3 황자마마와 대보 형님을 불러와요. 잠시 후 소주부로 구경을 가야겠어요.”

그러자 등자월은 쓴웃음을 지으며 명령을 받들겠다고 답했다.

* * *

가늘게 내리는 비의 엄호를 받으며 온통 새카만 마차 세 대가 화원을 떠나 느긋하게 소주부 관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로 향했다. 화원 사람들은 모두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소주부도 잠시 휴정을 하고 있던 터라 모두들 느긋하게 움직인 것이었다.

비록 소주부 관아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가이기는 했지만 사실은 관아로부터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모두들 신풍관 소주 분점 3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범한은 난간에 기대어 서서 빗물로 층층이 둘러싸인 소주부 방향을 바라보며 잔뜩 신경질을 부렸다.

“내가 천리안도 아닌데! 이래서야 제대로 구경을 할 수 없잖아!”

등자월은 먼저 와 예약을 해 놓고 비밀 누설 방지 조치를 하던 도중이었다. 그러다 제사 대인의 책망 소리에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어버렸다.

“제사 대인, 여기가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온 가족과 함께 나와 구경하겠다고 하셨지만, 마차 세 대가 소주부까지 가는 건 좋지 않습니다. 관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백성들도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만들면 되겠습니까.”

범한이 불평을 내뱉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집에서 양계미가 해주는 음식이나 먹을 걸. 무엇하러 비까지 맞으며 나왔을까!”

이렇게 신경질을 내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옷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려보니 천진난만한 표정의 임대보가 보였다. 범한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물었다.

“대보 형님, 왜 그러세요?”

그러자 임대보가 입을 씨익 벌리고 웃었다.

“꼬마 범한······ 이······ 집에······ 접당 만두 있어.”

임대보가 통통한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찜기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뽀얗고 커다란 만두가 하나 들어 있었다. 뜨끈하게 새어나오는 김과 함께 육즙의 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범한이 한숨을 내쉬고는 임대보 옆에 앉았다. 범한이 젓가락으로 만두를 벌리자 육즙이 흘러나왔다. 그런 후 숟가락으로 만두 안에 든 국물을 대보 앞 접시에 덜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도 신풍관이에요. 소주에 있는 분점이지요.”

줄곧 옆에서 조심스레 시중을 들고 있던 신풍관 관리자가 서둘러 조심스럽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습니다, 임 도련님. 본점과 멀리 떨어진 강남점이지만 맛은 경도와 차이가 없습니다. 드셔보시지요.”

임대보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잠시 중얼거리고는 이내 앞에 있는 만두 공략에 나섰다. 그는 신풍관 강남점 주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신풍관 주인을 상대한 건 궁금증이 생긴 범한이었다.

“여보게 관리인, 어떻게 알고 이분을 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가?”

그러자 관리인이 소리 내어 두어 번 억지웃음을 짓더니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제사 대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경도에서는 자주 임 도련님을 모시고 신풍관 본점에서 식사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이 별 볼 일 없는 가게로서는 엄청나게 체면이 서는 일이지요. 경도 관리인은 그 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자랑스러워하고 감격스러워한답니다. 그래서 소인이 비록 주로 소주에 있기는 해도 대인과 우리 신풍관의 연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로서는 신경 써서 시중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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