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화
소주부 지주가 살짝 화가 나 수염을 쓰다듬었다.
“누구인가? 먼저 알리지도 않고 함부로 재판장에 들어오다니! 여봐라! 저 놈을 쳐라!”
유삼을 입고 있는 사람이 금선을 허리 뒤춤에 꽂았다. 그리고 재판대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잡고 인사를 올렸다.
“대인, 때리시기 전에 잠시 제 말 좀 들어 주십시오.”
말을 마친 그가 소맷자락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공중에 대고 흔들며 히죽거리며 말했다.
“저는 진백상 선생과 마찬가지로 소송대리인이옵니다. 하서비 선생이 청한 소송대리인이 지각을 했을 뿐이지요. 그러니 대인 용서하여 주시고, 제가 온전한 몸으로 재판장에 서서 명씨 가문과 이야기를 좀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직 사건 심리가 시작되지 않았는데 대인께서 한쪽의 소송대리인을 때려 기절시켜······ 그게 소문이라도 난다면, 대인의 청렴한 명성에 금이 갈 수도 있습니다.”
그가 하서비의 소송대리인이란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깜짝 놀라 멍하니 있었다.
한편 하서비는 씁쓸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흠차 대인께서 어찌하여 저리 말썽꾸러기 같아 보이는 자를 내 소송대리인으로 보내셨을까?’
소주부 지주는 소송대리인의 말에 숨이 턱 막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히 때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흠차 대인을 볼 면목이 없어지기에 순간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소주부 지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진백상은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금선을 허리에 꽂고 있는 소송대리인을 주시했다. 그는 드디어 말발이 좀 되는 적수를 만난 것은 기분이 들어 살짝 흥분했다. 이에 진백상도 부채를 허리춤에 꽂아 놓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귀하가 앞서 제시한 두 가지 예는 특례입니다. 특히 형부 춘당주(春擋注: 안건에 대한 일종의 주석)는 경도의 대리사와 형부만 참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지방에서 심의할 때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유삼을 입은 자가 머리를 내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흥 4년, 당시 소주 평사로 계셨던 임약보 전임 재상께서는 관련 춘당주에 따라 어느 가문의 가산 관련 안건을 처리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적용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다 한답니까?”
진백상은 순간 긴장했다. 상대방이 말한 그 안건은 자신은 모르고 있던 건이었다. 그러니 상대가 헛소리 하는 게 아니라면 경국 법률과 판례에 대한 그의 지식이······ 자신을 한참 뛰어넘는다는 것일 터였다.
이에 진백상은 유삼을 입은 자가 웃으며 하는 말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상백 형님, 경국 법률은 판례를 따르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마시죠. 판례를 적용하고 하지 않고는 경국 법률에서 제한을 두어서가 아니라, 심판하는 관리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그가 소주부 지주 대인을 향해 손을 들어 예를 표했다. 하지만 소주부 지주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상대가 ‘마음에 달린 것’이란 표현으로 이번 가산 관련 안건을 받아들이도록 자신을 압박하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이 소송대리인은 대체 누구지? 진백상과 명란석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후안무치한 소송 거간꾼은 대체 강남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 거지?
소주부 지주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선생의 성명은 대체 어떻게 되는가? 부디 알려주게나.”
하서비도 자신의 소송대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유삼을 입은 이가 두 손을 모으고 웃으며 대답했다.
“소생 송세인입니다. 분에 넘치게도 경도 소송대리인 조합의 이사로 있으면서 형부의 신상 기록 자료를 가져다 볼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도 받았습니다. 오늘 특별히 강남까지 온 건 유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가산 소송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송세인이라니!’
소주부 지주는 얼른 도망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명란석 역시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한편 진백상은 송세인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송세인이 누구인가? 경도에서 가장 유명하고 제일 알아주는 소송대리인 아닌가. 그는 어쩌면 경국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소송대리인이었다. 진백상의 명성은 강남에서나 통했지만, 송세인은 총명하고 교활하고 흔들어놓기 힘든 이로 천하에서 유명한 자였다. 소송대리인 일을 시작한 후로 그는 어려서부터 익힌 경국 법률을 가지고 셀 수도 없이 많은 관리들의 체면을 짓밟아 버렸고, 피해자들에게는 고통의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었었다.
소주 백성들도 송세인의 명성과 악명은 들어봤던 터였다. 이에 그가 이름을 밝히자 관아 밖이 가마솥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오늘 정말 볼만한 구경을 하게 되어서였다.
명란석은 걱정스럽게 진백상을 잠시 바라보았다. 진백상은 당황과 혼란에서 벗어나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진백상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순간 속으로 강력한 전의를 불태우며 싸늘하게 웃었다.
“도련님 염려 마십시오. 저는 송사(訟事)에서 지금껏 패한 적이 없습니다. 하오나 송세인은 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백상은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송세인이 패한 유일한 송사는······ 지난번 경도부에서 사남백작의 서자 검은 주먹이 곽보곤을 때렸던 그 사건뿐이었다······ 송세인이 진 적이 있다는 그 사건은 바로 범한에게 딱 한 차례 진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니,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건 하서비의 진짜 신분, 다시 말해, 그가 옛 명씨 어르신의 일곱째 아들인지 아닌지였다.
이 점에 대해 진백상의 입장은 매우 확고했다. 상대방이 이 일을 증명할 수 없으면, 나머지는 더 이상 변론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악명 높은 송세인에게 자신의 약점을 잡을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주부 지주 역시 이맛살을 찌푸리며 하서비에게 신분을 확인할만한 확실한 증거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조금 전과 달리 송세인은 마음이 무거웠다. 그가 하서비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신들이 준비한 첫 번째 증인을 청했다.
증인은 산파였다. 산파는 이미 나이가 많이 먹은지라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와서는 재판장 안에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증언을 했다. 과거에 자신이 옛 명씨 어르신을 대신해 첩의 아이를 받았고, 그 아기는 허리 뒤쪽에 푸른색 반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서비가 앞으로 나아가 옷을 벗자 허리 쪽에는 정말로 푸른색 반점이 있었다.
진백상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이를 악물고 작은 소리로 명란석에게 말했다.
“왜 어제 저런 건 말해주지 않으셨습니까?”
명란석이 이를 빠드득빠드득 갈며 잔뜩 분노에 차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저 산파는······ 가짜야! 옛날에 있던 그 산파는 2년 전에 병사했으니까!”
진백상이 슬프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산파가 가짜라고 해도 자기 쪽에서는 밝혀낼 방도가 없어서였다. 산파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같이 보였지만 앞서 문답에서 과거 명원의 위치, 옛 명씨 어르신의 용모, 첩의 외모, 건물 구조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산파는 흠잡을 데 없는 진짜였다.
‘이런 제기랄! 감찰원의 증거 날조 수준은 정말 끝내주는군!’
당연히 명씨 가문은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산파 때문에 당황해서는 안 되었다. 진백상 역시 변론에는 일가견이 있던 터라, 이미 오래 전 일이고 산파의 나이가 많아 온전히 믿을 수 없다며 맹공격을 퍼부었다. 그냥 인정해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서비가 신분을 밝히기 위해 내세운 가짜 증거는 결국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욱이 이와 같은 결과는 소주부 지주 대인과 강남로 관원들이 애당초 명씨 가문 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송세인이 벌컥 화를 내며 생각했다.
‘강남 사람들은 역시나 모두 간악한 자들이구나. 내가 천신만고 끝에 ‘설계’한 산파라는 증인을 부정해 버리다니!’
한데 재판대 앞에 있는 소주부 지주의 표정과 말만 가지고도 송세인은 명씨 가문 가산을 둘러싼 송사에서 자신들이 내세운 증거가 취약하고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송세인은 열정이 넘쳤다. 소주부에서 암암리에 편향된 태도를 보이고 더 나아가 자신의 변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걸 알게 되자, 송세인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자신의 말재간을 발휘했다. 즉, 명씨 가문을 대놓고 저평가하고 은근슬쩍 소주부를 자극했으며, 말하는 사이에 야유와 조롱하는 말을 끼워 넣었다.
경도의 유명인사이니 강남 귀족들의 잔꾀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작은 범 대인이 뒤에서 버텨주고 있으니 그는 자연스레 독하게 나온 것이다.
명란석, 진백상, 재판대의 소주부 지주 역시 서두르지 않았다. 이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천하에서 유명한 소송 거간꾼의 연기를 지켜보며 재판장 허공을 떠돌고 있는 그의 말을 경청했다. 비록 속으로는 저놈이 미워죽을 지경이었지만.
“송 선생은 하서비가 옛 명씨 어르신의 일곱째 아들인 걸 증명한다 했는데, 다른 증거가 있는가?”
소주부 지주가 소매 속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한 말이었다.
“대인, 앞서 나온 산파가 모든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왜 증거가 될 수 없습니까?”
송세인은 공격을 할지 수비를 할지 알 수 없는 자세로 재판장에 서 있었다.
“이런! 송 형, 그 말은 타당치가 않아요.”
진백상이 옆에서 한 손으로 주먹을 감싸 쥐고 예를 올리며 말했다.
“저 늙은이는 거동이 불편하고, 양 볼은 무력하게 축 쳐져 있으니, 이미 죽을 때가 거의 다 된 사람입니다. 그 정도로 늙어 노망난 사람의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그녀가 과거 명씨 가문과 관련한 걸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세세히 기억하고 있던 누가 그 노인에게 말해준 후······ 여기까지 와서 모함하라고 시킨 것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송세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모함입니다, 그려.”
그의 말에 진백상은 살짝 화가 나 생각했다.
‘너희들은 뻔뻔한 짓을 대놓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나는 입도 뻥끗해서는 안 된다는 거냐?’
진백상을 상대하는 게 귀찮았던 송세인이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재판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대인, 설마 대인께서도 그리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재판장 밖에 있는 백성들은 이미 하서비의 신분을 거의 믿어주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산파의 연기 실력이 정교하고 뛰어났다. 소송을 구경하고 있던 백성 중 일부는 소주부 지주 어르신과 명씨 가문이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색을 보이자 시끄럽게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명씨 가문의 편을 드느라 여전히 침묵하는 중이었다. 특히 하서비의 뒷배가 경도에서 온 세력이다 보니 이들 강남 백성들은 현 상황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소주부 지주의 늙은 얼굴이 약간 붉게 달아올랐다. 산파의 진술을 죽어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는 자신이 보기에도 확실히 타당치 않아서였다. 하지만 명란석의 눈빛에 그는 그대로 밀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지주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산파는 노망이 난 게 확실하다. 진술을 받아들이는 권한은 본관에게 있다. 그런데 앞서 송 선생은 형부 3등급 사건을 언급했지만, 이번 명씨 가문의 가산 관련 소송은 의심할 여지 없이 1등급 사건이다. 그러니 더 상세하고 믿을만한 증거가 없다면, 본관은 확실히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송세인이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이에 송세인은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고 실망한 모습을 보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 그건 안 됩니다! 이미 오래된 일인데, 어디에서 다시 증거를 찾아오란 말씀이십니까? 제가 증인을 찾아왔는데도 대인께서는 안 된다 하시니, 대체 얼마나 상세한 증거가 필요하신 겁니까?”
소주부 지주는 살짝 흥이 올라 생각했다.
‘송세인 네가 아무리 오만하고 유명하다 해도 재판장에서는 우리 관리 어르신들이 주무르는 밀가루 반죽밖에 안 되느니라. 네가 증인을 데려오는 족족 내가 어떻게든 거부할 것이다.’
그러고는 송세인의 황당한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답을 해버렸다.
“증인과 물증을 모두 가져오면 판결을 내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