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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428화 (428/1,108)

428화

감찰원에 잡혔는데도 계속 수를 쓰고 있는 두 사람은······ 바로 3월 22일 밤 강남거 앞에서 하서비를 죽이려고 제비 같은 몸놀림을 보였던 자객들이었다.

그 날 두 자객은 6처 검수의 독에 당해 기회를 봐 재빨리 도망가려 했었다. 하지만 가는 도중에 해당타타를 만나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나중에 범한은 사양 않고 그들을 데려다가 이 비밀 가옥에 숨겨 놓고는 군산회의 내부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 고문을 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군산회는 감찰원에서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미지의 존재라 범한은 저도 모르게 걱정이 일었다.

‘느슨한 조직이라고? 그런데도 경묘 2제사를 도구로 동원할 정도야?’

범한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부하들이 지금껏 받아낸 자백 내용을 바라보았다. 두 자객은 강남 일대에서 유명한 살수이고 독한 자들이었다. 한데 군산회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아 명씨 가문으로부터 돈을 받아 일을 한 것 같았다.

“깨워라.”

범한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관원 하나가 작은 병을 형틀에 묶여 있는 두 사람 코에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게 했다. 두 사람은 무력하게 몸부림을 쳤다. 근육이 뒤틀리며 몸에 난 상처에서 다시 시뻘건 피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두 사람 깨어났다.

자객들의 흐릿한 두 눈은 공포가 가득했다. 처음 잡혔을 때 보여주었던 강단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없는 걸로 보아 요 며칠 감찰원 4처 고문관들에게 제법 험하게 당한 모양이었다.

범한과 3 황자가 지저분한 긴 걸상에 앉았다. 범한이 들고 있는 종이를 넘기며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너희 입으로 말한 주 선생은······ 군산회와 어떤 관계지?”

자객들은 감찰원의 수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열사가 될 작정을 한 게 아니라면 서둘러 답을 해야 했다. 자객이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인, 주 선생은 군산회의 회계이옵니다. 그곳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소인도 알지 못합니다.”

범한이 살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주 선생이 명씨 가문의 집사장이 아니란 말이냐?”

자객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인 역시 단 한 차례 우연히 들었을 뿐입니다. 군산회에 관해서는 정말로 그것 밖에 모르옵니다.”

“며칠 고생을 했는데도 둘 다 정신 하나는 말짱하군. 고생을 덜 했어.”

범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자객들의 눈에서 절망의 빛이 스쳤다.

감찰원 관원이 또 고문을 가했다. 미적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고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자 처참하게 내지르는 외침이 고문실에서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처참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면까지 뚫고 올라갈 리는 없었다.

범한은 3 황자의 눈을 가려주지 않았다.

고문 장면에 3 황자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지만 3 황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 않고 억지로 버텼다. 한데 이 피비린내 나는 광경에 토악질이 나올 듯해 가슴이 답답했다.

범한이 품에 가지고 있던 작은 상자에서 연고를 꺼냈다. 그런 후 집게손가락에 약을 살짝 찍어 3 황자 코 아래에 꼼꼼하게 발라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군산회 일은 이미 황제 폐하께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한데 저들의 담력이 생각보다 크군요. 마마께도 저들의 담력이 잘 보일 겁니다. 지금의 적과 훗날의 적, 일부 수단들에 대해 우리는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하오나······ 절대 저런 것에 도취되면 안 됩니다.”

3 황자는 범한이 무엇을 교육하고 있는지 잘 알아들었다.

“고문과 고문관을 동원하는 걸······ 조정 통치를 위한 최고의 약방으로 생각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단에 의존하셔도 안 되고요. 망을 넓게 펼쳐도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물고기는 있기 마련이지요. 엄하게 고문을 해 자백을 강요한다 해도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범한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통치의 도는 너그러움과 엄격함을 동시에 사용하고, 한 번 내어준 믿음은 끝까지 관철하고, 함부로 의심하지 않아야 하며,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외의 것은 보조적 역할을 하는······ 잔재주일 뿐입니다.”

3 황자의 콧속으로 스며드는 청량한 냄새는 악취를 사라지게 해주었다. 그는 범한의 뜻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명청달과 하서비에게 극명히 대비되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범한은 한 번 믿은 상대는 의심하지 않고, 함부로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며 명확히 설명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이곳까지 와서 고문하는 걸 보여준 건 강압적 수단이라고 해서 모두 효과가 있는 게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 * *

“명씨 가문에 대해 알아낸 것만으로도 괜찮은 편이구나.”

범한이 부하들을 위로하고는 말을 이어 갔다.

“종이는 잘 처리하고, 나중에 쓸모 있을 수 있으니 두 사람의 상처는 잘 치료해주게.”

범한은 무거운 마음으로 감찰원 4처가 소주성에 마련해둔 비밀 가옥을 떠났다. 처음에는 군산회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었는데, 생각과 달리 자객들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그런데도 내친김에 3 황자 교육에 나선 건 자신의 무력감으로 인한 난처함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었다.

화원으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범한은 꼼꼼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감찰원은 황제 폐하의 특무 기관이었고, 많은 일들을 대놓고 떳떳하게 처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감찰원이라는 기관에게는 선척적으로 제한되는 게 많았다. 이를 테면, 인원수가 너무 많아서는 안 되었는데······ 강남의 주요 고을은 4처가 감찰해야 하는 중요 지역인데도, 이곳 4처는 인원 부족으로 항상 고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군산회라는 구름 위를 떠도는 신비한 조직에 대해 조사하고 싶어도 강남에 있는 감찰원의 역량만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순간 범한은 언 공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하지만 언빙운은 4처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쉬이 경도를 떠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범한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기 직속의 1처의 대부분 업무를 등자월이 처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그곳도 언빙운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다.

왕계년이 있었다면, 일이 더 수월했을 텐데.

범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양계미는 흠차 대인인 범한에게 화원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바친 것도 모자라 이곳에 있던 종이며 요리하는 사람까지 전부 그대로 넘겨준 상태였다. 물론 범한은 감찰원에서 이들이 깨끗하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거절하지 않고 양계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래서인지 사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하며 점점 작은 마님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게 불편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범한이 강남으로 오는 도중에 사들인 불쌍한 소녀들에게도 거친 일을 할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대호족 집안의 큰 여종들처럼 양육되고 있었다.

특히 양계미가 남겨둔 음식 하는 사람은 황궁의 어선방 숙수들을 진땀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그래서 그가 매일 삼시 세끼를 화려하게 차려내는 통에 범한은 굳이 밖으로 나가 강남의 일품요리들을 맛보기보다는 저택에 남아 식사하는 편을 택했다.

그래서 사사는 음식 하는 사람을 제일 좋아했지만, 3 황자는 그 사람이 제일 미웠다.

범한, 해당타타, 3 황자가 이른 새벽부터 작은 탁자에 둘러앉아 옥수수, 훈제 돼지고기, 근채(샐러리 또는 미나리)를 섞어 끓인 죽을 먹었다. 색상은 그저 그랬지만, 각기 다른 맛이 한데 어우러져 매우 신선하고도 희한한 맛을 내 범한은 연달아 세 그릇이나 먹어 버렸다. 어찌나 빨리 먹어대는지 옆에서 죽을 담아주는 사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때, 저택 밖으로 사람 몇몇이 찾아와 호위가 이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들은 정원에 도착하자마자 탁자에 둘러 앉아 있는 범한, 3 황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해당타타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런데 훨씬 더 놀란 쪽은 문턱을 넘어 들어온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범한이었다. 화원까지 찾아온 사람은 바로 상문과 등자월이었다. 상문 낭자는 일찌감치 강남으로 내려와 자신을 돕기로 했으니 그렇다 쳐도, 등자월은 경도에서 1처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왜 강남까지 달려온 건지. 이윽고 범한의 눈에 두 사람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똑똑히 들어왔다. 이에 범한은 너무 놀라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대보 형님! 어떻게 왔어요?”

그렇다. 상문과 등자월 사이에서 멍하니 아무렇지도 않게 서서 살짝 위축된 상태에서 사방을 둘러보는 뚱뚱한 이가······ 임대보가 아니라면 또 누구겠는가?

범한이 깜짝 놀라 서둘러 그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형님의 손을 한 손으로 덥석 잡으며 등자월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이죠? 완아는요?”

등자월이 피곤한 기색으로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씨 마님께서는 최근 몸이 많이 안 좋아 지셔서 강남으로 오는 시기를 잠시 늦추었습니다. 대신······ 손위 처남께서 대인을 뵙고 싶다고 집에서 계속 소란을 피우시기에, 그래서 상서 대인께서 하관을 불러 강남까지 데려다주도록 하신 것입니다.”

“터무니없는 소리!”

범한이 탄식을 하고는 마음을 다잡고 서둘러 물었다.

“완아가 몸이 좋지 않다고요?”

“네. 그런데 괜찮으십니다.”

온화하게 웃고 있는 상문 낭자는 두 뺨이 포동포동한 것이 아직 정겨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답했다.

“군주께서 고뿔에 걸리셨는지 조금 피곤해 하십니다. 한 이틀 몸조리하시면 좋아지실 겁니다.”

그러고는 품에서 서한 두 개를 꺼내 범한에게 건넸다.

“대인께 드릴 서한입니다.”

편지를 받아들고 보니 아버지와 완아에게서 온 것이었다. 범한은 우선 그것을 품 안에 넣어 놓고 화부터 냈다.

“아버님께서 무슨 생각으로 이러신 겁니까? 지금 강남은 어지럽습니다. 그런데도 왜 대보 형님을 이리로 보내신 거란 말입니까?”

그러자 이때 임대보가 돌연 입을 쩍 벌리고 웃으며 범한의 귀를 끌어당겼다.

“꼬마 범한, 이번 술래잡기에서는 진짜 오래 숨어 있었네······ 대단해!”

죽 그릇을 들고 신기하다는 듯 문 앞을 주시하고 있던 3 황자는 지금껏 무섭기만 했던 범한이 저 바보 앞에서는······. 아무튼 3 황자는 참지 못하고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려 입에 있던 죽을 뿜고 말았다.

등자월도 난감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서둘러 상문과 함께 3 황자께 예를 갖추어 인사부터 했다. 범한이 낭패에 빠진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어서였다. 분명 두 사람도 오는 내내 임대보 때문에 골치 꽤나 썩은 것 같았다.

임대보가 왔으니 그를 시중드는 사람도 분명 함께 왔을 터. 이에 사사가 재빨리 화원 밖으로 나가 그들에게 있을 곳을 정해 주었다. 범한도 대보를 진정시킨 후 일단은 후원에서 묵도록 했다. 그리고 매일 할 일 없이 지내던 여종들에게 대보와 함께 해바라기 씨며, 땅콩 같은 견과류를 까먹으며 놀아주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야 바깥 대청은 안정을 되찾았다.

해당타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살며시 인사를 건네고는 바로 대청에서 나갔다. 범한이 분명 등자월과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란 생각에 자리를 피해준 것이었다.

등자월은 대청으로 든 후 촌부 낭자를 못 본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먼저 인사를 해주니 그 역시 서둘러 답례를 해주었다.

의자에 앉아 범한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젯밤에 현재 내 곁에 사람이 너무 적은 거 같다고 생각을 했는데, 때마침 잘 왔어요. 한데 지금 경도는 어떤가요?”

“경도는 언 공자께서 봐주고 계십니다. 대인이 경도 감찰원으로 보낸 보고서를 원장 대인께서 보시고 제게 도와주라며 사람들을 딸려서 내려 보내신 겁니다.”

등자월이 계속 설명을 해나갔다.

“다시 말해 대인께서 준비하고 계신 일은 2처와 3처에서 서둘러 해도 몇 개월이나 걸립니다. 그래서 아예 제가 오는 길에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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