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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419화 (419/1,108)

419화

해당타타가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믿기 힘들군요. 경묘 제사께서 남몰래 경국 황제께 대항하는······.”

시커먼 얼굴에 수포가 잔뜩 생기고 핏발까지 서 있어서 그런지 2 제사는 그야말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몰골이었다. 그런 그가 흰자위가 더 많이 드러나도록 눈꺼풀에 걸쳐 있는 동공을 위로 올리며 천천히 말했다.

“성녀는 총명하고 지혜롭군. 흠차 대인은 황제 폐하의 명으로 황실 금고를 손보러 왔지. 나는 황제 폐하의 명이란 걸 영원히 수행하지 못하도록 할 생각인데.”

해당타타는 잠자코 있었다. 경국 조정 내부에서도 이미 암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암류가 가리키는 방향은 당연히 용좌에 앉아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범한은 그 남자가 가장 총애하고 신뢰하는 권신이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범한은 칼끝이 겨누는 곳에 서 있었으니, 결국에는 어마어마한 위험에 직면하게 될 터.

경묘 2제사가 해당타타 앞에서 이리 많은 비밀을 털어놓은 건 해당타타가 북제 사람이고, 또 경묘와 천일도의 사이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경묘 2제사는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해당타타와 범한이 더 가까워진다고 해도, 경국 내부에서 자국의 황제를 공격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 이상 북제 사람인 해당타타는 똘똘하게 침묵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해당타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대사님, 지금 하신 말씀은 호랑이에게 가죽을 달라고 하는 격입니다.”

느슨한 군산회가 끔찍한 이유 때문에 더욱 긴밀해졌다니. 이런 중요한 일에는 분명 우두머리가 있기 마련이다. 이에 해당은 분석을 해보았다. 우두머리란 자는 어쩌면 지금껏 대단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고, 범한에게 소심하게 장 공주만을 방어하도록 했을 텐데······.

경묘 2제사가 냉담하게 말했다.

“꽃의 눈에는 벌레가 호랑이요, 대나무의 눈에는 불이 호랑이고, 강의 눈에는 해가 호랑이고······ 나의 눈에 황제 폐하가 호랑이지.”

해당타타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경묘 2제사가 이 혼잡하고 더러운 인간사에 결연히 뛰어들게 된 것일까? 세상 사람에게 자비롭고, 세인을 가련히 여기는 고행자가 어떻게 사람 머리를 베는 마귀가 된 것일까?

2 제사의 공포에 찬 두 눈동자에 암담함과 추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 그가 따스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형께서 돌아가셨다.”

해당타타는 살짝 어안이 벙벙했다. 경묘 대제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몇 달 전에 이미 천하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국 조정에서 발표한 발표 내용에 따르면, 대제사가 과거 남쪽으로 도를 전파하러 갔다가 오랫동안 학질을 앓게 되었고, 또한 오랫동안 과로한 때문에 병을 얻어 경도로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병사했다고······. 그런데 경묘 2제사의 말을 들어보니, 해당타타는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실은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고, 어쩌면 경묘 대제사의 죽음과 경국 황제가 큰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말이다.

해당이 두 손을 합장하고 예를 차려 인사를 올렸다. 방금 전 말과 관련해 더 이상 물을 수 없음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상대방이 충분히 단서를 주었으니, 더 이상 말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까 제가 제사님의 신분을 밝히는데도 왜 막지 않으신 것입니까?”

해당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이번 큰길에서의 살인이, 이번 일을 크게 키울 거란 걱정은 안 하신 겁니까? 경국 황제에게 단서를 주게 될 텐데요?”

경국 2 제사가 무표정하게 손가락 세 개를 들어보였다.

“산에 세 개의 돌이 있지. 이를 삼석(三石)이라 부른다. 하나의 이름은 명(明), 다른 하나는 정(正), 다른 하나는 기(棄).”

“삼석은 어려서부터 범인(凡人)과 달랐어. 그래서 고을 사람들에게 황야로 쫓겨났지. 만약 사형과 연이 없었다면, 들개 뱃속이 내 무덤이 됐을 거다.”

경묘 2 사제는 수염을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종이 울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를 내지 않았는데도 그에게는 위엄이 느껴졌다.

“그런 내 사형의 목숨을 세상 사람이 앗아 갔다. 그래서 나는 난세의 마음을 맞아 명(明)이란 기술로 죽이고, 정(正)이란 소리로 속이고, 기(棄)로서 나 자신을 버림받은 자식이 되도록 한 거다. 혼군(昏君)을 죽여 천하 만민을 평안케 하려고 말이다.”

해당은 명과 정이 등장하는 앞의 두 구절은 알아들었지만, 마지막에 구절은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기분이 교차하고 있었다. 경국 조정 내부에 분열의 기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경국 황제는 7로 총독 및 군측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봤을 때 경국의 통치 자체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삼석 대사가 오늘 거리로 나와 살인을 한 건 다름이 아닌 명이란 기술과 정이란 소리로 세상 사람에게 알린 것이었다. 경묘의 제사는 더 이상 조정의 협력자가 아니란 걸 말이다. 비록 경묘 2제사가 전체 경국과 천하의 고행자를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태도는 강력한 상징적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을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니, 해당타타는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버림받은 자식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삼석 대사에게는 군산회의 막후 주모자가 경국 황제보다 나을 게 없었던 것이다. 오늘 행동에 나선 건 한편으로는 하서비를 죽여 경국 황제의 큰 계획을 어그러뜨리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연하고 결연하게 자신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경묘 2제사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을 수도 있었다. 대제사의 타이름과 예속이 사라져버렸으니, 그로서는 황제를 죽일 방법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경묘 제사에게는 본래 복수 때문에 천하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도록 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삼석 대사 입장에서 강남 수채 사람들은 온몸을 피로 물들인 악당에 불과했다. 그러니 죽여 버려도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리 만무했다. 하지만 복수를 갈구하는 내면, 현 국면에 대한 판단, 천하 백성들에 대한 걱정은 결국에는 삼석 대사를 갈등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와 같은 일들을 해당타타에게 말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에게······ 자신은 버림받은 아이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라고 털어놓은 것이었다.

“경도로 돌아가면 모두 죽여 버릴 것이다. 그러니 오늘 내게 들은 말은 고하 국사에게 전하거라.”

말을 마친 삼석 대사는 침묵했다. 그리고 건장한 체격과 어울리지 않게 머뭇거리다가 몸을 돌려 담벼락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정원을 떠났다.

해당타타는 제자리에 차분하게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경묘의 2 제사가 이리 쉽게 스스로를 버렸으니, 군산회에서 분명 후속 행동에 들어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노릴 대상이 먼 강남까지 와 있는 범한일지, 아니면 경도에서 평안히 있는 경국 황제일지는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국 황제가 편히 지내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 천하에 꽤 많이 있었다.

그렇다면 북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 *

“삼석이요? 그리고 버림받은 자식이요?”

범한이 해당타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는 듯 마는 듯한 눈동자에서는 도깨비불이 팔딱이고 있었다.

“당신네들의 그 괴상야릇한 대화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내가 알 수 있는 건······ 정말로 그가 자신을 버릴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황성 정문으로 쳐들어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후 대전을 지키는 금군과 싸우고, 또 황궁의 홍 태감과 한 대판 겨뤄야 하죠. 아니면 당장 소주성으로 달려와 내 일을 망치든, 나를 죽이든 해야 한다고요!”

범한은 언성까지 높아져 매우 심각한 어투였다.

“버림받았다는 표현 말인데요.”

해당타타가 범한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군산회는 분명 이렇게나 일찍 경도 2 사제의 신분이 폭로되는 건 바라지 않았을 거예요. 오늘 내가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비밀을 말할 일도 없었겠죠.”

해당타타의 말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문제가 터졌고 암살에 나선 경묘 2 사제가 실패했다고 생각한 적들이 버릴 건 버리려 할 것이란 의미였다. 다시 말해, 모든 문제가 해당타타 앞에서 폭로되어 버렸으니, 범한을 가지고 경국 황제의 주의력을 끌거나, 군산회의 나머지 존재를 숨기려 할 것이란 뜻이었다.

범한이 싸늘하게 웃었다.

“경묘 2제사는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 감이 있는데······. 황제 폐하께서는 어쩌면 별것 아닌 사람일 수 있거든요. 어디서 나온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자신감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하실 뿐이죠. 내가 타타라면, 그 대머리가 무사히 도망가게 놔두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말 몇 마디로 타타가 더 이상 캐묻지 않도록 만들다니. 경묘 2제사에게는 유세객의 재능이 있었군요.”

평범한 말 같았지만 사실은 해당타타의 응큼한 속마음을 질책한 것이었다. 그리고 범한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해당타타가 경묘 2제사와 나눈 대화 중 일부를 털어놓지 않았다고 대놓고 말한 것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경국 내정에 관한 일이고, 해당타타는 북제 사람이었으니, 그녀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어떤 내용은 털어놓지 않았다고 본 것이었다.

한데 해당타타는 화를 내기는커녕 나지막한 목소리로 해명을 했다.

“군산회는 분명 명씨 가문을 보호하려 그런 거였어요. 명씨 가문의 큰 노마님도 안지의 충동질 계획에 걸려들어 다른 사람을 시켜 하서비를 죽이도록 한 거고······ 전부 예상했던 일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죠?”

범한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생각지도 못하게 해당타타가 인정사정없이 자신의 음험한 생각을 까발려 버려서였다. 이에 범한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맞아요. 명씨 가문이 공격하도록 압박한 거예요. 하지만 명씨 가문에서 그 정도의 고수를 움직일 줄은 예상치 못했던 거고······. 내가 군산회란 곳을 너무 얕봤던 거죠.”

오늘 밤 강남거 앞에서는 사망자와 중상자가 나왔다. 우선 하서비가 소주성으로 데려온 강남 수채 장정 중 8, 9할이 살벌한 칼 아래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감찰원 관원도 하서비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6처의 일곱 검수 중 한 명이 사망했고, 네 명은 혼수상태에 빠져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범한이 감찰원을 맡은 후 발생한 가장 큰 손실이었다. 범한은 생각대로 되지 않자 자책하기 보다는 분노가 치밀었다. 모든 게 자신의 계획대로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상대방의 실력을 저평가해 이런 결과를 맞아서였다.

그리고 범한을 가장 화나게 했던 건······. 범한은 일단 명씨 가문이 손을 쓰러 나타나면 그걸 빌미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 계획이었다. 한데 이 모든 게 강남거 앞 큰길에서 모두 망가져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해당타타의 말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경묘 2제사라니!

경묘 2제사는 기껏해야 황실하고만 왕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범한이 이번 일을 빌미로 명씨 가문을 조사하려 해도 이번에는 불가능했다. 죄를 뒤집어씌우기라는 감찰원의 가장 능숙하면서도 음침하고 더러운 수단을 동원해도, 이번 일을 가지고는 조정과 경도 관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다.

다시 말해, 강남의 부유한 일족인 명씨 가문이 경묘 2 사제를 살수로 동원했다는 사실을 믿어줄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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