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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415화 (415/1,108)

415화

명씨 가문의 여섯째 어르신은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다. 평소에 씨름 하는 것을 좋아하고 담력도 큰 편이어서 그가 용기를 내보았다.

“어머니, 우리 형제들 중 몇몇은 가문 상단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각자의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고요. 설령 딴 주머니를 차고 있다고 해도······ 그 별 볼 일 없는 양은 보태도······ 쓸모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그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의 코앞에서 찻잔이 산산조각 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여섯째 어르신은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상석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에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큰 노마님이 서릿발 날 날리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양이라고? 그동안 그 공금으로 너희들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봤는지 알기는 하는 거냐? 너희들의 처남들까지 소주성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되어 있거늘······ 너희들도 모두 명씨 가문의 혈육이라 지금까지는 내가 모른 척해준 것이다. 조상들께서 세운 규칙 때문에 가문 상단을 맡을 수 없어, 불쌍해서 계속 은전을 주었더니만······ 한데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모두 무릎을 꿇지 못할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명청달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두 개의 팔걸이의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큰 노마님의 표독스러운 목소리에 모두들 벌벌 떨었다.

“이 약삭빠른 놈들아! 큰 나무가 무너지면, 너희들에게 좋은 일일 것 같으냐? 내 일찌감치 분명히 말하지 않았더냐. 내일 낙찰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우리 가문은 몇 년은 버티겠지만 결국에는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물러서지 말고 난관을 타개해 나가야지······ 그러니 이 중차대한 시점에 감추는 게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작은 노마님이 후원에 있는 아들들을 가슴이 미어지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몸을 옆으로 숙여 큰 노마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형님, 화내지 마세요. 저 아이들도 어찌 해야 할지 알 거예요.”

그러자 후원에 있는 명씨 가문 남자들이 깜짝 놀라 바닥에 머리를 연신 내리치며 사죄했다.

“잘못을 알았으면 됐다.”

큰 노마님이 천천히 의자에 몸을 누이며 뜬 듯 감은 듯한 눈을 하고는 말했다.

“조금 더 있다가 돌아가 보거라. 그리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내일 아침이 밝기 전에 은전을 회계 방에 가져다 놓거라. 한 집 당 20만 냥, 여섯째는 15만 냥을 가져다 놓거라.”

큰 노마님의 말에 둘째, 넷째, 다섯째는 속이 무지하게 쓰렸지만 그래도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셋째는 달랐다. 그가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는 받아쳤다.

“어머님, 왜 여섯째만 15만 냥을 내놓으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큰 노마님이 눈을 부릅떴다.

“여섯째는 가장 어린데도 최근 두 해 동안 수비 대인과 왕래도 하고, 씨름을 좋아 해 은전을 더 많이 써서 그렇단다. 형이 되가지고서 뭘 그런 걸로 따지는 게야!”

그러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듯 셋째가 숨을 씩씩 내쉬었다.

“그렇다면 저는 평소에 은전을 안 쓰는 줄 아십니까?”

사실 모두들 큰 노마님이 자기 친아들은 끔찍이 아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든 이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셋째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셋째는 작은 노마님의 소생이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자 작은 노마님이 셋째에게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셋째는 근래 들어 쓸 은전이 부족했던지라 고개를 치켜들고 억지로 버텼다.

그러자 큰 노마님이 버럭 화를 내며 꾸짖기 시작했다.

“기생집에서 돈을 쓴 것도 모자라 그 매춘부들을 집안으로까지 끌어들이지 않았느냐. 그게 제대로 은전을 쓴 것이더냐?!”

하서비 모자가 처참한 결말을 맞은 것만 봐도 큰 노부인이 남자에 대해 어떤 결벽증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을 혐오했다.

“그렇다면 큰 형님은요?”

“나는 장자잖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명청달이 미소 지은 얼굴로 형제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당연히 최대한 정성을 보여야겠지. 내가 50만 냥을 내마.”

큰형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형제들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로써 명원에서의 가족회의는 바로 끝을 맺었다. 형제들 중 몇몇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 가 은전을 준비했다. 모두들 제법 두툼하게 딴 주머니를 차고 있었지만, 그래도 하룻밤 사이에 그 많은 액수를 준비한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셋째는 형제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우는 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모두들 자기 코가 석자였다. 더군다나 큰 노마님의 엄명이 있었으니 누구 하나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셋째에게 마음을 쓸 여유가 없었다.

* * *

“시간이 너무 빠듯하네요.”

작은 노마님은 자기 거처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에 큰 노마님의 거처에는 장자네만 남게 되었다. 명청달이 보일 듯 말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흠차 대인이 너무 갑작스레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우리에게 대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습니다.”

큰 노마님이 아들을 잠시 바라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 황실 금고 저택에서 잘 대처했더구나. 적어도 하룻밤을 벌지 않았니.”

명청달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룻밤은 너무 짧습니다. 더군다나 오늘 하······ 서비의 수를 보니, 아직 여력이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 벌일 일전은 어쩌면 위험할 것 같아요. 형제들이 은전을 가져온다 해도 겨우 백만 냥이 넘을 뿐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그 정도로는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명석란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지며 자신이 들은 게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대꾸했다.

“아버지, 과거에 묶음 식인 8개 항목 입찰에 참여했을 때도 4할의 보증금을 냈습니다. 그리고 그 액수는 5백만 냥이었지요. 한데 올해는 작년보다 2할이나 더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숙부님들이 100만을 더 내놓을 거고요. 그런데도 부족한 것입니까?”

명청달이 씁쓸하게 웃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그 여덟 개 항목을 꼭 가져가려 한다는 걸 흠차 대인이 안다는 거란다. 그러니 하서비는 아무렇게나 금액을 부른 것이다. 더군다나 물건 생산과 판매는 모두 그들 내부에서 하는 일이니, 우리를 밑지게 만들 수도 있는 거지.”

명란석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똑똑한 사람이니 명씨 가문이 왜 그 항목 반드시 가져와야 하는지에 대해 물을 리 없었다. 세력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동이성 쪽만 놓고 봐도 명씨 가문은 그 여덟 항목을 꼭 낙찰 받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이성이 황실 금고 제품을 위해 1년 동안 지불하는 대가가 몇 백만 냥을 훌쩍 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태평 전장에서는 소식이 있느냐?”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큰 노마님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명청달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들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준비가 조금 부족했습니다. 하서비의 은전도 모두 태평 전장에서 나온지라 우리에게는 약속 어음만 발행해줄 수 있을 뿐, 일람 출급 어음은 내줄 수 없습니다. 한데 우리가 내일 당장 필요한 건 일람 출급 어음이니······ 어머니께서도 아시다시피 그들도 꺼리고 있는 것이지요. 앞서 전장 대행수가 찾아와 우리에게 내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30만 냥이라고 말했습니다.”

큰 노마님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전장에서 은표 차용증을 써주면 어찌 되었든 현금인 은전으로 교환이 되어야만 한다. 하서비가 먼저 어마어마한 액수의 은표를 발행해 갔으니, 다른 사람에게 차용증을 써줄 때는 그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전장에서 하는 일은 현금인 은전으로 지불할 능력이 있음을 보증해주는 것이므로, 이는 곧 신용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어서다.

이런 긴장 된 국면만 아니라면, 동이성과 명씨 가문의 관계를 봐서라도 태평 전장은 허위로 은표를 발행해 줄 수도 있었다. 물론 이는 위험성이 매우 크고 또 거친 일처리 방식이었다. 그리고 일단 범한에게 제대로 찍히면, 황실 금고 전운사에서 입찰 개시 후 하서비의 은표와 명씨 가문이 건넨 은표를 가지고 가장 치졸한 방식으로 지불 청구를 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엄청난 양의 은전을 조달해야 하는데······ 아무리 신선 같은 능력을 발휘해도 태평 전장으로서도 단시일 안에 그 많은 은전을 소주까지 가져오는 건 불가능했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태평 전장은 그냥 망한 거나 다름없었다.

태평 전장은 각 나라들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따져본다면, 그 어느 나라 조정도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악랄한 수단을 쓸 리 없었다. 하지만 이번 황실 금고 입찰 주관자는 범한이었다. 가장 예측하기 힘들고, 가장 모질고, 막나가는 범한 말이다. 그러니 태평 전장으로서는 맞아 죽는다 해도 위험을 무릅쓸 리 없던 것이었다.

순식간에 후원에 죽음과도 같은 고요가 흘렀다. 명씨 가문의 3대 인물이 모두 긴장하기 시작했다. 설마 내일······ 그동안 명씨 가문이 해오던 사업을 일곱째가 모두 빼앗아 가는 걸 눈뜨고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것인지. 황실 금고의 판매권을 잃으면,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한 토착 지주일 뿐인 명씨 가문은 언제든지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처지가 될 수 있었다.

이 무서운 사실에 큰 노마님의 이맛살이 갈수록 더욱 깊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이름 하나가 생각난 그녀가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최근 요 며칠, 그 초상(招商) 전장에서 사람이 다녀갔었느냐?”

그러자 명란석이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가 태평 전장의 큰 고객인 걸 알면서도 몇 차례 찾아와 물어보고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꿈쩍도 않을 알았는지, 바로 물러났습니다.”

큰 노마님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구나.”

어머니가 줄곧 태평 전장을 관리를 해온 것 때문에 그동안 명청달은 초상 전장과 거래를 틀 것을 적극 주장해왔던 터였다. 이에 어머니의 말에 순간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았지만, 그래도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신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정말로 무슨 문제가 있다면, 그리 나오지 않았겠지요.”

그러자 큰 노마님이 무슨 곤란한 문제를 생각하는 것처럼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한참 후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초상 전장에 사람을 보내 거라. 아니다. 보내지 말거라. 란석이 네가 직접 찾아 가서 오늘 밤에 일람 출급 어음을 얼마나 조달해 줄 수 있는지 알아 보거라.”

“알겠습니다. 어머님.”

명청달이 살며시 웃으며 대답을 하고는 여전히 궁금한 게 있었는지 질문을 던졌다.

“하서비 쪽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그러자 큰 노마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나도 너도 그 사람을 모른다. 우리 명씨 가문에서는 모르는 사람인데 무엇 하러 대응을 하느냐? 이 일에 대해 너는 끼어들지 말거라. 흠차 대인에게 휘둘리지 말란 말이다······ 지금 흠차 대인은 우리 명씨 가문이 크게 반응을 보이길 바라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하느니라.”

명청달이 두 손을 맞잡아 쥐고 위아래로 흔들며 감탄했다.

“역시 어머님은 영명하십니다.”

명청달은 내일 입찰과 관련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회계를 보는 방으로 가 몇몇 형제들이 일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명란석은 성으로 들어가 그 신비하고, 소문만 무성한 동이성 배경의 초상 전장을 찾아야 했다. 이에 두 사람은 후원에 더는 오래 머무르지 않고 인사를 한 후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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