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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410화 (410/1,108)

410화

응접실에는 전운사 회계 담당자와 경도 호부에서 온 장부 내역을 계산하는 나이 많은 관원이 있었다. 이들 중 호부 관원은 상단이 낙찰 받은 항목 및 낙찰 받은 상단이 건넨 은표를 조사했다. 이는 바보처럼 은전으로 가득 채운 십여 개의 상자를 직접 들고 와 낙찰 금액으로 내는 이가 수 년 간 없었기 때문인데······.

* * *

이 점에서 보면, 황실 금고의 입찰은 사실 기생집에서 기생 경매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황실 금고에 있는 기생은 몸값이 비쌌을 뿐이었다. 어찌되었든 이는 상단에게든, 관리들에게든 낯선 광경은 아니었다.

이 순간 저택에 있는 관원들은 사방을 바삐 오가고 있었다. 그들 손에는 각 상단에게서 건네받은 문서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애당초 가능성은 극히 적었지만, 그래도 감찰원 관원들은 부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이 모든 걸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오가고 있는 건 북쪽으로 보내는 주류 관련 입찰 문서였으며, 세 번째 가격 제시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오늘 영남 웅씨 가문에서 온 사람은 당주인 웅백령이다. 그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다른 이가 앞서 두 차례 낸 가격을 보고 있었다. 그의 안면부 근육이 살짝 수축되며 있는 것이 눈물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울고 싶은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영남의 웅씨 가문은 경국 남쪽에서 상업을 해오던 곳이라 지리적으로, 기회 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북쪽까지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넓힐 기회가 없어 사업 범위를 넓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최씨 가문이 몰락해 다른 상인들에게도 북쪽 판매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 웅백령은 이번 입찰에서 필승의 의지를 다지고 있던 터였다. 이에 앞서 범한의 항목 세분화 제안에 가장 크게 반대한 것도 그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후회하고 있었다. 자기 혈족들에게 은전을 충분히 마련해두라고 일렀지만 앞서 두 차례 호가에서 그는 이미 압도된 상태였다.

화가 치밀었는지 웅백령의 양 눈에는 붉게 핏발이 서 있었다. 이번 입찰에서 판매권을 따가지 못한다면, 이는 단순히 올해 돈을 덜 벌게 되는 문제만 발생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가문이 명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산을 피해 북쪽으로 가겠다는 계획이 늦춰지게 되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약속을 깨고 감히 자신이 노리고 있던 판매권을 빼앗아간 사람이 뼈에 사무치게 미웠다. 하지만 미운 마음이 불타오르는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두려운 마음에 경계를 했다. 왜냐하면 그자의 뒷배가 흠차 대인이어서였다. 한데 정작 문제는······ 그자가 대체 어디에서 그 많은 돈을 가져왔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을열 여섯 번째 방!”

그가 맨 뒤에 있는 조용한 방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을열 여섯 번째 방에 있는 하서비 일행은 줄곧 조용히 있었지만 사업권을 빼앗아가는 데 매우 악랄한 수단을 동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대체 누구의 도움을 받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류의 북쪽 판매권의 1년 이문이 얼마나 되는지 정말이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자기 가문이 제기할 수 있는 금액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 앞서 두 차례 값을 써낼 때 매번 자신이 제시한 것보다 바로 위의 가격을 제시했다는 것이었다.

웅백령이 순간 좌절감에 휩싸여 생각했다.

‘대를 이어 장사를 해온 내가 강도 두목만도 못하다는 건가?’

옆에 있던 나이든 대행수들도 패색 짙은 얼굴로 그를 일깨워주었다.

“어르신, 그만 하시지요. 가격을 더 높였다가는······ 이문이 남지 않습니다.”

잠시 생각을 해보던 웅백령은 어느 순간부터는 잔뜩 성이 난 사람의 눈을 하고 있었다. 웅씨 가문이 이번 입찰을 통해 원했던 건 돈보다는 장사를 하는 길을 뚫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을열 여섯 번째 방에 있는 강도에게 맞서기로 결정했다.

“이 가격을 써 넣으시게.”

웅백령이 수신호를 보냈다.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결정을 내린 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강도짓 하던 녀석이 훔쳐온 은전이라 아까운 게 없는 건지······ 그래도 밑지고서라도 내가 하려는 장사를 뺏을 필요는 없겠지.”

정원은 어느새 안정을 되찾았다. 세 번째 호가 경쟁이 끝나 이제는 그 누구도 이번 입찰에 참여할 수 없었다. 모두의 눈은 영남 웅씨 가문과 을열 여섯 번째 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황 내관과 곽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범한을 슬쩍 보기는 했다. 하지만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한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방금 전 입찰에 오른 건 작은 항목에 불과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건, 범한이 부수입을 좀 챙기더라도 명씨 가문과 자신들의 이익만 해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관원 둘이 각각 두 개의 방에서 소가죽 문서 봉투를 받아다가 조용히 응접실로 가져갔다.

모두 긴장 속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이번 16개의 입찰 항목 가운데 가장 돈이 되는 항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택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을열 여섯 번째 방의 낌새가 이상하다는 건 알아채기 시작했다. 이에 사람들은 을열 여섯 번째 방이 사업권을 따내러 온 것인지, 아니면 흠차 대인을 대신해 낙찰 가격을 올리기 위해 온 것인지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 * *

“을열 여섯 번째 방, 하씨 가문, 37만 냥으로 낙찰······.”

돌계단 위에 서서 의례를 진행하는 전운사 관원이 무표정하게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음성만큼은 대단히 감상적이었다. 심지어는 마지막에 낙찰이란 단어를 말할 때는 사뿐하고 경쾌하게 내뱉어 그가 마치 연기를 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해주었다.

정원에 순식간에 쥐죽은 듯한 고요가 밀려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놀란 마음을 수습한 사람들이 하늘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내며 놀라워했다.

“37만 냥이라니! 북쪽에서 주류나 파는 건데······.”

예전 수익으로 계산을 해본다면, 이는 분명 손해였다. 영남의 웅씨 가문이 내놓은 금액은 30만 냥으로, 자신들이 가진 돈을 다 걸고 호가 경쟁에 참여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영남의 웅씨 가문은 을열 여섯 번째 방에게 지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일로 상인들은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이 알게 되었다. 을열 여섯 번째 방의 하서비는 흠차 대인의 부탁으로 가격을 올리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사업권을 따기 위해 자신들과 제대로 겨루러 온 것이라고 말이다.

순간 사람들은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한편 그 순간 영남 웅씨 가문의 방에서는 끄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의자에서 바닥으로 미끄러진 것만 같았다.

그러자 모두들 겁에 질리고 놀란 마음에 소리가 들려온 방 쪽을 바라보았다.

웅씨 가문의 주인인 웅백령이 기듯이 바닥에서 일어나 찻잔에 든 식은 차를 입으로 들이붓고는 숨을 헐떡이며 입을 뗐다.

“강도 자식······ 염병할! 37만 냥이나 쓰다니. 강도는 역시 강도군. 장사하러 나서 놓고도 비적 티를 하나도 못 벗다니. 역시 악랄해!”

중당 한가운데에 놓인 팔걸이의자에 앉아 있던 범한이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높은 가격이라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앞서 두 차례 가격을 써낼 때 하서비는 웅씨 가문을 찍어 누를 수 있는 아주 적당한 선에서 가격을 불렀었다. 그런데 막판에 무려 7만 냥이나 더 높여 부르다니.

범한에게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의 인내력을 벗어난 범위라 그런지, 범한은 속으로 탄식을 내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그 가격을 부른 게 하서비의 결정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모두 을열 여섯 번째 방에 넣어 둔 나이 많고 교활한 호부 관원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경도 아버님 쪽에서 몰래 보내준 전문가들로, 이들이 영남의 웅씨 가문의 결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때문이었다.

* * *

머지않아 을열 여섯 번째 방에서 비단 함이 나왔다. 비단 함은 응접실로 건네져 심의와 검사를 거쳤다. 15만 냥에 달하는 은표가 확실했다. 태평 전장에서 발행한 것으로 인감도 위조된 것이 아니었다. 영감이 속이지 않은 것이었다.

이제 모두들 조용한 을열 여섯 번째 방에 상인 노릇하는 강도가 앉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비적 같은 상인 녀석은 인정사정없이 황실 금고 판매권을 강탈해 가는 중이었다. 놈은 피비린내가 풀풀 나는 은전으로,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은전을 가지고 사람들을 때려 부수는 중이었다.

단지 을열 여섯 번째 방에 있는 강도가······ 대체 얼마나 많은 판매권을 강탈해 갈 속셈인지만 아직 정확히 모를 뿐이었다.

이어진 상황은 명씨 가문 이외의 모든 이들을 절망으로 몰아가 버렸다. 강남 수채 대두목 하서비가 강도의 풍격을 완벽하게 발휘한 것이었다. 하서비의 손에 쥐어진 은표는 칼이 되고, 절묘하게 책정된 가격은 주먹이 되어, 그에게 맞선 상인들을 피로 얼룩진 길 위에 일렬로 늘어놓아 버렸다. 돌계단 위에 서 있는 관원이 의례를 진행할 때마다 비단 함은 계속해서 응접실로 들어갔다.

이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일순간 착각에 빠져들었다. 무수히 많은 은표가 공중에 아름답게 흩날리는 가운데 큰 칼을 뽑아 든 하서비가 ‘나 보다 돈 더 많은 놈 있어?’라고 음흉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두 시진이 지났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작은 항목 하나를 제외하고 하서비가 나머지를 낙찰 받았다. 그중에는 최씨 가문이 북쪽에서 가지고 있던 노선 세 개가 들어 있었다. 그는 웅백령을 좌절시킨 데서 그치지 않고 천주 손씨 가문을 새하얗게 질려버리게 만들었으며, 나머지 상단은 혼비백산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로써 하서비는 그들에게 오늘 입찰 경쟁에 참여한 게 아니라 살인강도를 만나러 온 기분을 맛보게 해주었다.

이쯤 되자 상인들은 그제야 범한이 처음 제안했던 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은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후반부에 아직 중요한 항목 열 개가 남아 있기는 했다. 그래서 만약 판매권을 더 잘게 세분화 했더라면, 아무리 명씨 가문이 그 열 개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들에게도 몇 개는 꿀꺽 삼킬 수 있는 기회는 있었을 텐데 라고 말이다.

차라리 명씨 가문과 체면불고하고 싸울지언정, 을열 여섯 번째 방에 있는 강도와 맞붙지 말걸. 강남 상인들은 이제야 절실하게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 사이 범한은 평온한 표정으로 팔걸이의자에 앉아 설청과 이런 저런 이야기나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범한도 속으로는 하서비가 질투가 나 죽겠는 판이었다.

‘은전으로 사람을 깨부수다니. 이런 깜찍하게 재밌는 게임에 내가 분장을 하고 직접 나설 수 없다니! 하서비는 기분 째지겠군!’

깜짝 놀라 한동안 멍하니 있던 황 내관과 곽쟁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웃는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똑같은 생각을 했다.

‘범한 이놈······ 대체 그 은전을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 아무리 봐도 경도에 있는 호부 상서가 깨끗한 것 같지는 않구나!’

다섯 번째 입찰 과정이 진행되었다. 이번 것은 북쪽으로 보내는 유리 제품으로 원래 최씨 가문이 갖고 있던 판매권이었다.

을열 여섯 번째 방의 방문이 다시 열리며 소가죽으로 된 문서 봉투가 전달되었다.

강도 놈과 놀아줄 생각이 싹 달아난 상태였던 상인들은 강도가 어서 배불리 먹고 물러나기만을 그냥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줄곧 조용히 있던 갑열 방 첫 번째 방의 문이 열렸다. 명가가······ 영문을 모르겠지만, 계획보다 앞서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낙찰을 바라는 건 아니다. 하나 시간은 끌어야 한다. 적어도 오늘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시간을 끌어야 해.”

명청달이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옆에 있는 아들에게 말을 이어 갔다.

“상대방이 이미 기선을 잡았다. 그러니 우리로서도 조금 더 조심해야겠지. 저 자에게 대응할 방법을 마련하려면 하룻밤만이라도 벌어야 한다.”

명란석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을열 여섯 번째 방이 지닌 은전 양을 걱정 중인 아버지께서 하룻밤만이라도 은전을 더 조달할 시간을 확보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명청달은 계속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내가 왜 을열 여섯 번째 방에 있는 강도 때문에 이렇게나 불안해하는 걸까? 그리고 저 하서비라는 놈은 어째서 볼수록 눈에 익은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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