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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409화 (409/1,108)

409화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 총독 설청도 서둘러 왔다. 줄곧 후원에서 꾸물거리던 어사 곽쟁도 드디어 바깥 대청으로 왔다. 이로써 황실 금고 개찰 일을 주재하고 감시하는 주요 고관 네 사람이 드디어 한 자리에 모였다. 곽쟁은 현재 경도에서 제법 잘 나가는 도찰원 좌도 어사는 아니었지만 각 로를 순찰하고 있어 어느 정도 권력은 쥐고 있었다. 그는 범한과 아직 원한 관계에 있던 지라 범한과 마주하게 되자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네 명의 고관들이 서로 인사를 올릴 때, 범한의 차분하고 냉정한 눈에서도 잠시 험악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 네 명의 고관 중 경도에서 온 황 내관은 황궁을 대표했고, 강남 총독 설청은 조정 쪽을, 어사 대부 곽쟁은 언관을 대표하고 있었다. 한편 범한은······ 여러 세력을 대표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황실 금고 전운사, 감찰원, 심지어는 태상사라는 황족을 관리하는 기관까지 대표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 모두는 조정과 황제 폐하를 대표하고 있었다.

범한은 두 번째 의자에 앉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설청과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상황으로 보아 지켜보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누구든, 또 어느 세력이든 단번에 입찰을 끝내버릴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또한 역사를 가지고 있던 황실 금고의 개찰 과정은 매우 효과적으로 공평함을 보장하고 있어서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공평했다. 돈 있는 상인이라면 황실 금고가 내놓은 16개 항목의 판매권을 쟁취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는 범한의 생각이었지만, 나머지 세 사람의 생각도 그와 동일했다. 황 내관과 곽쟁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비록 은근히 불안한 건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범한이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무슨 짓거리를 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명씨 가문이 과거와 똑같은 지분을 차지하도록 보증하러 나왔기 때문이었다.

내관과 어사, 이들은 원래 역사적으로 물과 불처럼 서로 섞이기 힘든 층위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묵계라도 이룬 듯 이 둘은 같은 진영에 서 있었다. 한데 두 사람은 숨은 복잡한 사정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고, 제일 마지막으로 황실 금고 문턱을 넘은 하서비라는 하 당주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설청은 달랐다. 강남 총독은 구경이나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무대 아래에 있는 거상과 그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자상한 모습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구경꾼 입장에서 거들먹거리고 있으면 연극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음 편히 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즉, 현 상황은 한쪽에서 하는 연기에 수많은 사람이 장단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었다.

* * *

황실 금고 대저택의 육중한 문이 서서히 닫히자 문 밖에 있는 병사와 감찰원 관리들이 물샐 틈 없는 보안에 들어갔다. 과거 황실 금고 입찰은 일반적으로 하루면 끝이 났다. 하지만 조정의 규칙에 따르면, 각각의 상단은 가격을 결정하기까지 최대 이틀이라는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쾅!, 하며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범한이 웃는 얼굴로 귀를 막으며 저택 밖에서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봄날의 우레를 바라보았다.

우레는 천공을 가르며 솟구치더니 낮게 깔린 구름 아래에서 번쩍였다. 그리고 맑고 날카로운 소리를 멀리 떨어진 지면에까지 도달하도록 해 수많은 사람들을 놀라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지난밤 밤새 힘들게 일하고 잠들어 있던 소주성 기생들은 우레 소리에 놀라 욕을 해대고는 이불 속에 머리를 깊숙이 묻고 다시 잠을 청했다. 거리에서 부모에게 동물이며 사람 모양을 한 비싼 엿을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착한 아이가 아니어서 하늘이 벌을 내리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으아앙, 하고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후원에서 뒷다리를 들고 나무에 오줌을 싸고 있던 검둥개는 우레 소리에 놀라 앞다리를 바닥에 바짝 대고 엎드리더니, 털이 보송보송한 다리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봄날의 우레는 일부 사람들의 귀에는 다른 의미로 들렸다. 소주성 북쪽 나루터에 모여 명을 기다리고 있는 각 가문의 고문과 대행수들, 그리고 이들뿐만 아니라 찻집에서 오늘 입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소주성 거주민들은 모두들 성 남쪽 방향으로 고개를 향한 채 보이지도 않는 저택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들 황실 금고의 공개입찰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던 것이었다.

경력 6년 봄, 황실 금고의 공개입찰은 사실 시작부터 유난히 순조롭지 못했다.

우선 황실 금고 전운사가 작년에 각 상호(商號)의 잉여 결손 상황을 총결산했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레 격려사가 적지 않게 쏟아졌다. 그리고 연설을 맡은 전운사 부사 마해가 최씨 가문에 대한 조정의 조사 상황을 엄중하게 통보했다. 이는 계단 아래에 있는 상인들을 향해 조정이 너희들을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 잊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모두 과거의 규율을 따른 것이었으므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마해가 오늘 입찰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을 발표하자 저택 내부는 한바탕 왁자지껄해졌다. 상인들이 너도 나도 일어나 반대 의사를 표했고, 정당(正堂)에 있던 주요 고관 네 사람도 모두 의견 충돌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전운사에서 원래 16개였던 항목을 34개로 더 세분화 하고 올해부터는 묶음 식의 입찰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갑작스럽게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큰 변화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아래쪽에 앉아 있는 상인들에게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처사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매번 입찰하기 3개월 전에 강남의 거상들은 일찌감치 사적으로 연합을 했다. 그리고 이때 서로 간의 화목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서로가 지켜야 할 경계와 영역을 정했다. 예를 들어, 영남의 웅씨 가문은 올해 북쪽으로 가져 갈 주류 항목을 어떻게든 쟁취하려 했고, 천주의 손씨 가문은 해외로 가지고 나가 파는 도자기의 판매권을 원했다.

오늘 전운사의 뜻에 따라 16개 항목을 34개 소항목으로 세분화 하면 겉으로는 각자가 원하는 최저선은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씨 가문에게 돌아가기로 되어 있던 8개 항목은, 그러니까 묶음 식으로 두 차례 진행되기로 되어 있던 물품은, 세분화 하면 어느 누구든 다른 이의 몫을 빼앗아 가기 위해 눈이 벌게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묶음 식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그리 많지 않은 은전을 가지고도 이문이 가장 많이 남는 항목의 판매권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누군가가 명씨 가문의 몫에 눈독을 들인다면, 명씨 가문에서는 어떻게 나올까? 분명 그들도 다른 상단의 몫을 빼앗으려 들 것이다. 상인은 원래 천성적으로 이익을 쫓는 이들이니, 오늘 황실 금고 입찰은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이들 강남 상인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던 건 바로 혼란이었다. 명씨 가문은 이미 최씨 가문이 지녔던 몫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선언을 해놓은 터였다. 덕분에 다른 상인들 입장에서는 오늘 제대로 한몫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계획이 다른 누군가 때문에 어그러지는 걸 원치 않은 것이었다.

상인들이 봤을 때, 흠차 대인이 이와 같은 변화를 준 목적은 간단했다. 첫째, 모두가 더 많은 몫을 챙기기 위해 눈이 벌게지도록 만들어, 가격을 높여 놓기를 바라서였다. 둘째, 세분화해서 진행하면 모든 항목에 필요한 계약금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마지막으로 저택에 들어온 하서비에게도 한 몫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줄곧 침묵하고 있던 을열 여섯 번째 방에 흠차 대인의 대변인이 있다는 사실을 이들 간교한 상인들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 입장에서 흠차 대인이 돈을 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불공정하고 타당해 보이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다니, 너무나도 악독한 방법 아니던가!

* * *

“범 대인, 이번 논의는 이곳에서 정하기에는 타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황 내관은 범한에게 체면이 깎인 후였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차분한 태도로 빙그레 웃는 표정까지 쥐어 짜내며 말을 이어 갔다.

“과거 규칙에 따라 16개 항목이면 16개 항목이지, 어찌하여 세분화 한단 말입니까? 그건 경도 쪽에 생각을 물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자 범한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몇 마디 한 후 다시 고개를 돌려 설청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총독 대인, 항목을 세분화 하고, 묶음 식의 입찰을 하지 않는 건 실은 더 많은 사람에게 참여할 자격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은 조정에게도 이익이라 생각됩니다만.”

설청이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가 난처한 기색을 지어보였다.

“말이야 그렇다 해도, 대동소이한 것 아닌가. 내 보기에는 범한 대인이 먼저 조정에 상세히 뜻을 밝히고 황궁에서 의논을 거친 후 내년에 천천히 시행해도 늦지 않을 것 같군.”

설청도 반대를 하자 범한은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이에 아래쪽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는 상인들을 바라보다 잠시 저들이 안쓰럽고 밉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항목을 세분화한 건 상인들이 생각했던 이유 때문이 아니어서였다.

범한은 명씨 가문이 하나로 묶어 놓은 8개 항목 안에서 제일 돈이 될 만한 두 개 항목을 하서비에게 주기 위해 탐색전을 해본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이유는 다른 상인들을 생각해서였다.

이들 상인들은 최씨 가문에서 남긴 6개 항목은 자신들이 가져갈 것이니, 명씨 가문에서 그것에는 대들지 않을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한데 잠시 후 하서비는 최씨 가문이 가지고 있던 6개 항목을 모두 꿀꺽 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정작 나머지 상인들에는 형편없는 두 개 항목만 남는 것이었다. 사전에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영남 웅씨 가문과 천주 손씨 가문은 이번에 거액의 은전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들은 최씨 가문이 쥐고 있던 노선을 접수하기 위해 칼을 갈아 왔다. 그러니 잠시 후 자심들이 헛수고했음을 알게 된다면, 이들은 분명 큰 손해를 입을 게 뻔했다.

최씨 가문이 무너진 일로 오늘 황실 금고 입찰에 참여한 상인은 세 배나 늘어 있었다. 그러니 범한의 본의는 이들 상인들도 차지할 게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목을 세분화 한다는 제안을 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범한의 생각과 달리 그런 그의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이는 상인은 없었다.

이들 상인들은 잠시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이리도 강경하게 반대를 한 것이리라. 하지만 범한은 선한 마음을 거절당하자 분한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이런 와중에 옆에 있던 황 내관과 곽쟁이 두어마디 말을 보태고 한바탕 설명을 해댔다. 상인들은 여전히 과거 관례대로 일처리가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머지 고관 세 사람 역시 ‘규칙’이란 두 자를 들먹이며 옛 방식을 고집했다. 이에 범한도 결국에는 포기를 했다. 이른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후퇴라고, 가끔씩은 이렇게도 해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부사 마해가 고개를 돌려 난처한 기색으로 범한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범한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관두라는 뜻을 내보였다.

상인들은 매우 기뻐하며 범한을 향해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흠차 대인, 영명하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범한은 상인들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생각했다.

‘이따가 울지나 마시오들.’

범한 옆에 앉아 있는 설청은 미소 지은 얼굴로 수염이나 매만지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정당에서 가까운 방과 가장 멀리 있는 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앞서 혼란이 일었을 때 그 두 방에서 가장 평온한 태도를 보여서였다. 설청은 하서비가 범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었다. 다만 범한이 어떻게 그 많은 은전을 준비했으며, 명씨 가문이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할 뿐이었다.

입찰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일부 상인들은 벌써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영남의 웅씨 가문의 당주는 하마터면 제일 먼저 울음을 터뜨리는 불쌍한 인간이 될 뻔했다.

높은 돌계단 위에 서 있던 황실 금고 전운사의 관원이 의례에 따라 말을 했다. 그러자 각 방에서는 입찰 가격을 내놓기 시작했다. 가격을 제시할 때는 당연히 기생집에서 아가씨를 고를 때처럼 ‘오십 냥!’, ‘백 냥!’이라고 소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정에서 진행하는 일이니 그에 합당한 규율을 따라야 했다. 이에 입찰에 참여하려면 상단은 의례를 진행하는 관원의 말이 떨어진 후 먼저 작년 이윤과 올해 예상 시세를 고려해 대동하고 온 나이 많은 대행수와 함께 꼼꼼하게 계산부터 해야 했다. 그런 후 종이 위에 정한 액수를 정확히 기입한 후 소가죽 문서 봉투에 넣고 봉했다. 그리고 그것을 전운사 관원에게 전달하면, 관원은 정당 왼편에 있는 응접실에 소가죽 봉투를 건넸다.

상인은 총 세 번에 걸쳐 값을 제시할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제시한 호가(呼價)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첫 번째 호가 경쟁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면, 다음번에 더 높은 가격을 써낼 수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에 제시한 가격을 가지고 낙찰자를 결정했으며, 매우 간단하게 최고가를 쓴 사람이 낙찰 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낙찰 받은 상인은 결과가 매우 흡족할 수도, 매우 못마땅할수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4할이나 되는 계약금을 응접실에 가져다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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