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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385화 (385/1,108)

385화

한참 설명하던 단달이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어 버리자 그가 물었다.

“아직 말하지 않은 다른 원인도 있는 것인가?”

단달이 그의 눈치를 힐끗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 더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감찰원의 운영 비용이 급속하게 증가한 것도 원인입니다. 제사 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 감찰원의 운영 비용은 직접 황실 금고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황실의 수입이 최근 몇 년간 늘지 않은 상황에서 감찰원 비용이 늘어난 데다가 앞에서 말한 여러 요인이 겹치다 보니 수입이 감소한 겁니다. 게다가 사실 황실 금고가 조정을 대신해 돈을 벌어들인다고는 하지만 이전처럼 수입을 내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범한이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황실 금고의 피를 빨아먹는 요인 중 하나가 감찰원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터였다. 생각해 보면 3처에서 매일 대규모 살상 무기를 연구, 제작하는 것이나 2처 관리들이 위장해 사방에서 소식을 수집하려면 상당히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게다가 5처와 6처의 경우 전혀 수입을 내지 못하는 고질적인 적자 부서였다. 진원에서 절름발이 노인이 절세 미녀들을 끼고 제왕보다 더 화려한 생활을 하는 데에도 분명 황실의 금고 돈이 들어가고 있을 터였다.

그가 어쩔 방법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감찰원 일이 알려지면 창피만 당할 테니 언급하지 말고 다른 원인만 조사하게.”

단달과 범한 뒤에 있는 소문무는 범한의 솔직한 말에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판매 경로나 해적 문제는 내가 해결하도록 하겠네.”

범한이 단달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문제는 내가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 그러는데 3대 작업장 담당자를 포함한 금고 관리인들과 수입 문제에 대해 의논해 볼 수는 없는 건가? 이들은 근무지를 떠날 수 없어 항상 강남에만 발이 묶여 있는 처지이니 차라리 조정에 이 점을 고려해 봉록을 후하게 주면 되지 않겠는가?”

단달은 자신의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범한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말했다.

“3대 작업장은 황실 금고의 모든 생산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황실 금고 상품은 전부 그들 손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그렇다 보니?”

범한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설마 그들이 이 건으로 협박이라도 일삼고 있단 말인가?”

“감히 어떻게 협박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단달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다만 조정이 황실 금고 관리를 엄격하게 해서 공정이나 배합 비율 등은 상·중·하 3급 금고 관리인들만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 머릿속에 있는 것이 곧 조정의 돈줄인 셈이니 약간 잔꾀를 부려 황실 금고 생산량을 줄일 수는 있겠지요. 지금까지 황실 금고에서 그들의 지위는 특별했고 조정도 그들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라 좀······ 거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렇군.”

범한이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과거 섭가에서 품팔이 일꾼으로 일하던 자들이 지금 횡포한 기술 관료가 되어 있다는 거야?’

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황당하고 기가 막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협박이 아니면 뭔가? 장 공주는 이들을 어떻게 대우했지?”

단달이 잠시 생각하다 미간을 찌푸렸다.

“장 공주께서는 생산량이 떨어지지 않기만 바라시며 금고 관리인들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셨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지위가 너무 높아서······. 물론 6년 전에 그들이 정말 주제를 모르고 날뛰자 장 공주께서 문제를 일으킨 금고 관리인들을 죽이신 적은 있었습니다. 그 뒤로 금고 관리인들도 겉으로는 고분고분 행동하면서 뒤로 몰래 돈을 빼돌렸지요. 이들은 같은 급의 관리들은 무시하지만, 조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범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냉소를 지었다.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 건 지위가 너무 높아서 그러는 것이겠지······. 일단은 제일 먼저 그들이 정신을 차리게 해줘야겠구먼.”

이렇게 태연하게 말했지만 사실 그는 골치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확실히 그녀의 장모인 장 공주는 뛰어난 관리인이 아니었다. 대형 기업을 이런 식으로 관리했으니 황제 폐하가 매일 앓는 소리를 내고 아버지가 텅 빈 국고를 보며 괴로워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말을 들은 단달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혈기왕성한 제사 대인이 모든 걸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금고 관리인들의 죄를 공론화한다면 판매 경로는 둘째 치고 생산량과 상품의 질도 보증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그가 공손히 두 손을 맞잡고 간곡히 말했다.

“대인, 신중하게 접근하셔야 합니다. 일단은 회유한 다음 천천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미 결심이 선 범한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생각할 수 없네. 열흘 뒤에 소주로 돌아가 황실 금고 공개 입찰을 주관해야 해서 시간이 없어. 열흘 안에 그들을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이후 자네들이 일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매일 이곳을 뛰어다니면서 관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네.”

단달이 답답하다는 듯이 궁둥이를 들썩이며 설명했다.

“이 일은 단박에 해결하기 힘듭니다. 설사 금고 관리인들이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면서 작업장 안에서 암암리에 다른 짓을 꾸미거나 아니면 해서는 안 될 짓을 해서 황실 금고 생산량을 낮춘다면 저희는······ 원인을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만일 황실 금고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대인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범한은 단달이 자신의 앞에서 솔직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감찰원 관리는 확실히 강남로 관리들보다 주관이 뚜렷했다. 그가 손을 흔들어 상대방의 충고를 중단시키고는 웃으며 설명했다.

“걱정하지 말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되지 않겠는가?”

단달과 소문무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제사 대인이 뭘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금고 관리인들이 담당하는 일에 대해서 감찰원은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때 소문무의 머릿속에서 번뜩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황실 금고는 원래 섭가의 사업이었잖아. 설마······ 후손인 제사 대인도 방법을 알고 계신 건가?’

의혹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범한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에게 내일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게 준비하라는 지시만 내리고는 뒤채로 갔다. 그곳에서 맛없는 죽을 두 그릇 비운 그는 해당타타에게 저녁에 자신과 함께 3대 작업장에 가보자고 요청했다.

이미 부하들이 통행증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기에 저녁에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가볼 수 있었다. 그가 해당타타에게 같이 가자고 한 것은 선의를 베풀고 싶었다기보다는 황실 금고의 훌륭함을 북제에까지 알리고 싶은 욕심과 훌륭한 경호원을 옆에 두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 * *

닭이 울고 날이 밝았다.

황실 금고 전운사 정사부의 뒤쪽 담에서 사람 그림자가 지나가더니 범한과 해당타타는 밤새 탐험을 마치고 서재로 돌아갔다.

범한이 어두운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밤마다 풍악을 울리며 놀고 관리는 엉망으로 하다니······.”

범한을 따라 3대 작업장을 보고 온 해당타타는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군수 시설과 같은 작업장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비단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사람이 아니라 방직 기계로 만들고 있었다. 그것도 수력을 사용해서 말이다. 그녀는 강물의 힘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오늘 보고 들은 것들을 떠올려 보던 그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미 사라져 버린 섭가 여주인의 위대함을 새삼 실감했다. 그녀가 마음이 일렁이는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뜨거운 눈빛으로 범한을 바라보았다.

범한은 이 황실 금고를 만든 섭가 여주인의 친아들이었다.

범한은 해당타타만큼 놀라거나 신기함은 없었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경국 황실 금고는 자신이 이전 세계 기업들과 비교하면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만약 경국 황제가 영리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모든 산업이 지금까지 유지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놀란 것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금고 관리인들이 엄청나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마음이 가려워지면서 만약 저들의 입에 들어가는 은전을 자신이 가지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장 공주가 걱정했던 일은 그에게는 전혀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금고 관리인들이 아는 기술은 그에게 협박의 무기가 될 수 없었다. 사실 지금 그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그들을 대신할 사람으로 누구를 세울 것이냐였다.

지식은 힘이고 잠재력이며 돈이었다. 이것이 황실 금고에 처음 온 날 범한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떠오른 생각이었다.

* * *

경국의 황실 금고 전운사는 국내에서 가장 독립적인 곳이었다. 그야말로 하나의 왕국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근무하는 관리들도 모두 조정에서 발령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강남은 경국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또 황실 금고 내부에서 받는 유혹이 너무나도 컸다. 그래서 어느 관리든 결국에는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다. 감찰원 관리는 그나마 중립을 지켰지만 전운사 내부 관리들은 일찌감치 독립된 왕국의 한 일원이 되어 버렸기에 이들은 황실 금고에 조금의 변화도 발생하는 걸 원치 않았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장 공주의 측근으로 있어 온 황실 금고 관리들은 황제의 명에 의해 이곳의 권한이 장 공주에게서 범한에게로 옮겨 간 것에 대해서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겉으로 순종하는 척하면 작은 범 대인도 황실 금고의 근간을 흔들지는 않을 테니 지금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황실 금고의 근간이란 무엇일까? 그건 금광이나 은광도 아니었고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이나 외부 상인들도 아니었다. 바로 3대 작업장에서 일하는 고급 장인들과 금고 관리인들이었다.

황실 금고의 3대 작업장은 강남 여러 주 사이에 분포되어 있었다. 갑(甲) 작업장은 유리 제품, 고도의 정밀함을 요구하는 공예품, 도자기,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향수, 독주를 생산해 냈을 뿐만 아니라 이 밖에도······ 유리 제품과 같은 유형의 상품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하게 생산해 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곳은 사치품 생산 공장이었다.

을(乙) 작업장은 면이나 비단의 대량 생산, 볍씨 연구, 강철 제조 등 규모가 큰 생산 작업을 진행하는 곳으로 1차 산업과 2차 산업이 결합된 생활품을 생산했다.

마지막으로 병(丙) 작업장은 3대 작업장 중 보안이 가장 엄격한 곳으로 선박 제조와 군에 필요한 발전된 무기 생산을 책임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흑기들에게 보급된 가벼운 연발 화살도 병 작업장에서 생산한 것이었다. 게다가 더 멀리에는 감찰원 3처와 황실 금고 연구 부서가 끊임없이 화약 연구 제조를 하고 있었다. 다만 섭가에서 작업장을 열었던 초기 화약의 연구 제조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던 것인지 지금까지 감찰원에서도 초보적인 수준에만 머물 뿐 총과 같은 수준의 무기는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경국 백성들의 총명함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섭가 여사장이 무언가를 알리지 않은 게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3대 작업장은 조잡하지만 하늘에 박힌 별처럼 민북 지역 곳곳에 배치되어 끊임없이 상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상품들은 각각 나누어져 민간 상인들에 의해서 북제, 동이성, 작은 제후국, 바다 밖 낙후한 왕국까지 가서 팔렸다. 한마디로 황실 금고는 만족할 줄 모르는 아귀처럼 끊임없이 전 세계 돈을 긁어모으는 동시에 전 세계에 더 나은 생활을 알리고 사치를 전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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