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오죽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뎌 국수 가게에 가까이 다가갔다.
“자네를 찾아 남쪽으로 갔는데 찾을 수 없었네.”
그러자 무명옷을 입은 남자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내뱉었다.
“나도 남쪽에서 자네를 찾았는데 찾을 수가 없었네.”
오죽은 맨발이었고 무명옷을 입은 남자는 짚신을 신고 있었다. 오죽은 머리를 뒤로 꽉 묶고 있었고 무명옷을 입은 남자는 상투를 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입고 있는 옷이나 얼굴은 달랐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비슷했다. 아마도 누군가가 지금 두 사람을 보았다면 무정한 살인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둠 속에 숨어서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처럼 두 사람은 상대가 먼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서로를 찾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을 먼저 찾으려 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사냥꾼과 호랑이 사이의 대결에서는 누가 먼저 발견하느냐에 따라 누가 이 세상에 남을지가 결정되는 법이었다.
“내가 남쪽에 있다는 걸 누가 알려 줬군.”
무명옷을 입은 남자는 오죽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다른 말을 했다.
“흔적을 남겨서는 안 돼.”
“그분은 이미 너무 많은 흔적을 남겼어. 신묘로 돌아가게. 나는 자네를 죽일 생각이 없어.”
무명옷을 입은 남자는 오죽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줄곧 신봉해 오던 도리와 충돌하는 듯 그의 차가운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일반 사람이라면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럼 자네도 나와 같이 돌아가지.”
“나는 잊어버린 일들이 있어 떠오르길 기다리는 중이네.”
억양의 변화 없이 무미건조하게 말한 무명옷을 입은 남자와 달린 오죽의 목소리는 약간 화가 난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말투는 상당히 이상했다. 조금만 주의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다면 이들이 의문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치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거나 자신의 논리적 판단 능력에 확신이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뛰어난 사고력을 지닌 것인지 두 사람은 일반 사람들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 갔다.
두 사람은 최후의 담판을 진행하는 듯 입술은 움직이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담판이 결렬되자 오죽이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내디뎠다. 이제 두 사람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무명옷을 입은 남자가 물러서지 않고 무표정하게 쇠막대기를 쥐고 있는 오죽의 손을 바라봤다. 그 창백한 손에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때 가게 안에서 치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국수 가게 사장의 머리가 떨어진 솥에서 시뻘건 거품이 치솟더니 아궁이 아래로 흘러넘친 것이다. 흘러내린 물이 불붙은 숱에 닿으면서 소리를 내었고 순식간에 코를 찌르는 연기가 자욱하게 일었다.
오죽이 마침내 움직였다. 그가 눈을 덮은 검은색 천이 실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더니 손에 든 쇠막대기를 날카롭게 부러진 겨울 대나무처럼 무명옷 입은 남자의 가슴을 찔렀다.
이상하게도 오죽은 평상시와 다르게 목이 아닌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직도를 들고 있는 무명옷을 입은 남자의 손도 움직였다. 두 사람이 거의 같은 힘과 속도로 충돌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오죽과 무명옷을 입은 남자가 맹렬한 기세로 부딪쳤다.
두 사람의 속도는 너무나도 빨라서 사람의 눈으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두 사람이 눈 깜빡할 사이에 한차례 겨룬 뒤 대치하고 서 있었다.
두 사람에게만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처럼 빠른 공격은 상처 입기 전 범한이나 6처 그림자 검수, 심지어 해당타타까지도 반응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죽었을 것이다. 이런 경지는 4대 종사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실력이었다.
이렇게 빛처럼 빠른 공격이 이뤄짐에도 불꽃이 번쩍이기는커녕 오히려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오죽의 옆구리에 박힌 칼날을 타고 무언가가 땅에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쇠막대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무명옷을 입은 남자의 가슴을 관통했다.
오죽은 먼저 움직인 터라 속도가 상대보다 아주 약간이지만 빨랐기에 두 사람이 충돌할 때 왼쪽 무릎을 굽힐 여유가 있었다. 아주 간발의 차였지만 치명적인 차이였다.
그는 간발의 차이로 한쪽 무릎 꿇은 뒤 손에 든 쇠막대기를 치켜들어 상대방의 가슴에 꽂았다.
그때 골목 뒤편 정원에서 인기척이 작게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오죽과 무명옷을 입은 남자에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두 사람은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것처럼 무심하게 상대방의 몸에 꽂혀 있는 무기를 거둬들였다. 이때 무명옷을 입은 남자의 가슴에서 끼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어딘가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중상을 입었음에도 무명옷을 입은 남자는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지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가 어린아이처럼 멍하니 자신의 가슴에 난 상처를 내려다보고는 자신이 오죽보다 느렸던 이유를 생각했다.
일격에 적을 제압하면서 중상을 입게 된 오죽도 마찬가지로 무표정했지만 입가에 희미하게 감정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상대방이 이 세계에서 더는 생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상대보다 빠를 수 있었던 것은 사전에 계획해 둔 덕분이었다. 범한의 신분을 폭로해 상대방이 오늘 이곳에 오도록 유인한 그는 신발도 신지 않고 상투도 틀지 않는 등 모든 걸 철저하게 준비해 두고 있었다.
―속세에 물들지 마라.
신묘 안에 있는 이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 * *
밤이 되자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몇 개의 그림자가 담을 넘어 골목에 조용히 착지했다. 등에 장검을 차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당장이라도 사람을 공격할 수 있도록 대형을 갖추고 주변을 경계했다.
갑자기 골목에 나타난 사람은 범한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호위였다.
안전을 확인한 고달은 검을 거둬들이고는 내리는 눈을 맞으며 국수 가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피로 물든 솥과 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람의 머리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어서 그는 머리가 잘려 나간 시신을 살펴보고는 저도 모르게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상처를 봤을 때 머리는 아주 빠른 일격에 잘려 나간 게 틀림없었다.
눈이 옷을 뚫고 목에 들어온 것인지 순간 고달은 목덜미가 서늘해지면서 소름이 돋았다. 그는 만일 자신이 이런 상대를 만났다면 손도 써보지 못한 채 죽었을 거란 걸 알았다. 주변에 남은 흔적을 보면 두 명이 싸웠고, 그것은 이와 같은 신묘한 경지에 있는 사람이 두 명이란 소리였다.
눈발이 점차 거세지면서 솥에 있는 핏물의 온도도 내려갔고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차가워졌다. 골목에 있는 작은 국수 가게의 광경은 너무도 처참했다. 죽은 사장의 시신은 널브러져 있었고 식어 버린 솥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눈 내리는 밤 작은 골목에서 종사는 아니지만 종사급 실력을 갖춘 두 명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가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니. 이건 천하에 다시는 없을 기묘한 사건이었다.
야간 근무를 서는 감찰원 관리가 꾸벅꾸벅 쪽잠을 자고 있었다. 추운 겨울밤에 보는 감찰원 건물은 더욱 음산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놀라 일어난 관리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리며 잠을 쫓았다.
감찰원에는 당직을 서는 관리들이 많았다. 더구나 요 며칠 범 제사 일 때문에 진 원장도 진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감찰원에 머무르며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고 있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 진 원장이 자신이 잠든 모습을 본다면 좋을 게 없었다.
한편 진 원장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사실 그는 최근 몇 년간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방 안 난로에 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음에도 연신 무릎에 덮은 양털 담요를 가슴까지 끌어 올렸다.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기척에 깬 진평평은 게슴츠레 눈을 뜨고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남자를 바라봤다.
“여긴 어쩐 일인가?”
오죽이 옆구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걸 보고는 그가 흰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나 슬픔이 아닌 경악과 공포가 담겨 있었다.
“무슨 일인가?”
‘오죽이 상처를 입다니 대종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데.’
그러면서 진평평은 속으로 지금처럼 골치 아픈 상황에서 적이 대종사의 도움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감당할 수 없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오죽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림자를 다시 부르게. 내가 상처 입힌 존재는 내가 남쪽에 있다고 알고 있었네. 범한이 죽으면 경국도 망할 거네.”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세 가지 말만 남긴 그는 앞에 있는 절름발이 노인이 자신의 뜻을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입은 상처 때문에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어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신속하게 감찰원에서 빠져나갔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진평평은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다. 난로의 붉은 불이 도깨비처럼 타오르면서 창백하고 핼쑥한 그의 얼굴을 붉게 물들었다.
오죽이 남긴 세 가지 말에는 아주 중요한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먼저 그림자를 다시 부르라고 한 것은 자신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 더 이상 범한을 보호할 수 없으니 진평평에게 약속대로 그림자를 시켜 범한의 안전을 보호해 달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오죽에게 상처를 입힌 그 사람도 이미 죽은 거로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오죽의 성격상 자신의 상처가 아무리 심하더라도 범한을 지키기 위해 경도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오죽에게 상처를 입힌 것일까? 만약 대종사 중에서 이런 짓을 했다면 오죽이 굳이 상대방의 정체를 숨기려 하지 않았을 테니 대종사들은 아니었다. 진평평은 순간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가 지금 하는 추측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이지만 지금까지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이었다.
오죽이 범한을 엎고 경도를 떠나던 그날 밤 오죽과 진평평은 어떻게 하면 범한을 이름 없는 위협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다만······ 신묘는 왜 오죽이 남쪽에 있다고 알고 있었던 거지?’
진평평이 미간을 찌푸리며 모든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범한이 경도에 오고 2년 동안 진평평은 여러 번 오죽의 행방을 물어봤었고 그때마다 범한은 오죽이 남쪽에서 섭류운을 찾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진평평 말고 이 거짓말을 아는 사람은 그가 예전에 보고했던 경국 황제뿐이었다.
오죽의 두 번째 말은 진평평에게 이 점을 상기시킨 것이었고 마지막 세 번째 말은 엄연한 위협이자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폐하.”
진평평이 입가 주름을 실룩거리며 한탄했다.
“항상 소신의 예상에서 벗어나 주시니 감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잠깐의 시간 동안 진평평은 황제의 진짜 의도를 추측하고 따져 보았다. 황제가 행방이 묘연한 신묘와 어떻게 연락을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위대한 황제 폐하께서는 오죽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일대 제왕인 그는 자신의 서자가 대종사급 실력을 가진 사람을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상당히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만일 대종사 중 한 명이라도 날뛰게 된다면 조정의 통치 능력이 흔들리게 될 거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었다. 대종사 한 명으로는 황궁에 진입해 황족을 죽일 수 없었지만 지역 곳곳을 누비며 군대의 포위를 피해 각 지역의 관리들을 죽일 수는 있었다.
만일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황제는 겁을 먹고 영원히 황궁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을 것이고 성지도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었다. 연이어 죽어 나가는 관리들을 대신하려는 사람이 없고 황제의 뜻도 전달되지 못한다면 조정이 붕괴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과거 고하는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 북제 왕공 귀족들과 관리들을 혼자만의 힘으로 막아 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사고검은 검 하나만 가지고 수년간 동이성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검이 가진 위력으로 두 대국 사이에 낀 작은 제후국들이 존립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또 제멋대로인 듯 보이지만 가장 총명한 섭류운은 끝이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세상을 계속 여행하고 다니고 있었다. 이는 경국에서 섭씨 집안을 후하게 대접해 주며 황제가 경도 방위를 교체하고 싶다는 핑계로 그에게 더러운 술수를 선동해 달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실을 잘 아는 섭류운은 여러 해 동안 경도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천하를 정벌하려 한다면 경국 황제는 섭씨 집안을 볼모로 삼아 섭류운에게 나서라고 강요할 거였고, 북제는 만백성들의 생명을 볼모로 고하에게 지켜 달라 부탁할 것이었으며, 동이성은 사고검을 이용할 것이었다. 이에 3국은 어느 정도 균형 있는 협상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오죽은 세 명의 대종사와는 달랐다. 그는 황족의 명을 받들지 않았고 백성들을 보호할 필요도 없었다. 범한 한 사람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그는 황제의 위협이나 서로의 이익을 신경 쓰지 않았고 협상할 여지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