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사 선생님, 이런 중차대한 일은 함부로 허락해 드릴 수 없습니다.”
사천립이 씁쓸히 웃었다.
“낭자의 허락은 필요하지 않소. 오늘 이후로 내가 포월루의 큰 사장이란 걸 모두에게 알리시오.”
석청아가 의심하는 눈초리로 사천립을 바라보며 이를 으드득 갈았다.
“사 선생께서는 큰 사장님이 지금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이렇게 큰일은 직접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사실 사천립은 지난밤 문서를 쓸 때만 하더라도 이 문서 때문에 이와 같은 결과가 생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 범한의 강요에 마지못해 포월루에 오게 된 그는 자신의 작성한 문서로 이렇게 됐으니 자업자득이라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다잡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석청아의 의심 가득한 말을 듣자 순간 서글퍼지면서 화가 치솟았다.
“이 문서가 가짜라는 건가? 헛소리 지껄이면서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장부 검사하는 사람이나 데리고 오게.”
석청아는 백작가가 포월루에서 발을 빼려고 껍데기에 불과한 서생을 이용하는 거라 추측했다. 하지만 자신은 내막을 파악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했고 원 대가도 갑자기 사라진 상태라서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사 선생 밑에서 입에 풀칠하며 살아야 하는 제가 어찌 선생과 언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냉정함을 찾은 그녀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사천립의 표정을 살폈다.
“다만 포월루 지분 3할은…… 작은 사장님에게 있다는 걸 사 선생도 분명히 아시겠지요?”
3 황자가 포월루 지분 3할을 가지고 있으니 백작가는 함부로 건들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상황이 이렇게 됐음에도 그녀는 범한이 포월루를 정리할 생각이 없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말에 사천립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는 씨익 웃더니 짙은 눈썹을 실룩이며 말했다.
“번거롭겠지만 청아 낭자가…… 그 작은 사장이란 분에게 3할의 지분도 내가 인수한다고 전해 주시오.”
‘3할의 지분을 인수한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석청아가 버럭 화를 냈다.
‘백작가 지분을 양도하는 거야 간단하겠지만 어떻게 3 황자님의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지!’
한편 조금씩 기생집 사장의 역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천립은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3할의 지분을 인수하는 여러 방법을 가지고 있소. 지금 말하는 방법은 작은 사장의 체면을 생각한 방법이라는 걸 청아 낭자도 분명히 알아주길 바라오.”
석청아가 비꼬는 말투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요? 제가 사 선생에게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겠군요. 그런데…… 얼마에 인수하실 생각입니까?”
사천립이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십만 냥이요?”
석청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만한 가격이라면 공평한 거래라고 생각했다. 포월루가 앞으로 계속 영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분 3할을 십만 냥에 파는 거라면 괜찮은 조건이었다.
사천립이 고개를 저었다.
“설마 만 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석청아가 대경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천 냥이네.”
사천립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서생 신분이라…… 가진 돈이 별로 없다네.”
“말도 안 되는!”
석청아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무리 백작가라도 세상의 이목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3할의 지분이 누구 손에 있는지 잊지 마십시오!”
사천립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분 7할을 가진 사람은 나, 사천립이오. 백작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소. 그리고 나는 지분 3할이 누구 손에 있는지 관심 없소.”
석청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분 3할을 내놓지 않으면 어쩌실 겁니까?”
“첫째, 포월루에서 외국과 내통한 내용이 있는 편지가 압수될 수 있다고 하오. 무슨 죄와 관련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럴 수 있다 하오. 둘째, 경도에 당장 포일루가 새로 생길 것이오. 내게 지분 7할이 있으니 포월루에서 일하는 모든 점원, 안내인, 기생들을 내쫓은 뒤 포일루에서 다시 고용할 것이오. 청아 낭자가 보기에 포일루가 포월루를 무너뜨리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소?”
석청아가 단호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첫째가 가능할 거라 생각되지 않는군요. 게다가 그런 일로 백작, 아니 서 선생께서 포월루를 무너뜨리신다고요? 지분 7할도 함께 사라질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리고 둘째는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포월루 부지는 큰 사장께서 신중을 거듭해서 선정하셨고 인기 좋은 기생들은 포월루와 불변의 계약을 맺은 상태인데 떠나라 한들 떠나겠습니까?”
사천립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청아 낭자는 지금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소. 지금 포월루 큰 사장은 나요. 무슨 계약이든 내가 끝났다고 말하면 끝난 거요.”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 석청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천립이 천천히 일어나 창문을 열고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포일루의 부지는 굳이 멀리 갈 것 없이 포월루 옆, 여기 호수 옆에 할 생각이오. 내가 오늘에서야 포월루를 인수하러 온 이유는 지난 이틀 동안 저기 부지를 계약하느라 바빴기 때문이오.”
석청아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악덕 상인 역할에 완전히 빠져든 사천립이 창밖으로 손을 뻗어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계속 말했다.
“그쪽이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면 다 함께 망하는 수밖에……. 포월루 지분 7할이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나는 잃어도 상관없다오.”
이 말을 내뱉으며 사천립이 자조 섞인 미소를 띠었다. 자신이 언제부터 서생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권력에 기대어 남을 협박하는 삶에 빠져들게 된 것일까? 그의 말은 석청아에게 노골적인 위협이었고 현실적인 상황에서 석청아나 3 황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다.
포월루 옆에는 이미 감찰원 관리들이 파견되어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 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사천립은 인수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 공자는 능력이 출중한 만큼 3 황자가 지분 3할을 내놓지 않는다면 열흘 안에 포월루를 도산시킬 것이었다.
“낭자는 이 일의 배경을 잘 모르지 않소. 그러니 헛된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사실 석청아가 3 황자에게 이 일을 전할 필요도 없었다. 범한이 포월루를 인수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은 일찌감치 백작가의 자체적인 경로로 황궁에 있는 의 귀빈의 귀에 들어간 상태였다. 매일 의 귀빈 앞에서 벌로 책을 베끼고 있는 3 황자로서는 자신의 돈을 지키고 싶어도 당장 상황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사천립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석청아를 향해 서생의 온화한 성품을 드러내며 말했다.
“나는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이오. 앞으로 이곳에 남아 전심전력으로 일해 준다면 나도 섭섭지 않게 대우해 주겠소.”
하지만 석청아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작은 사장이 손실을 보지 않도록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비록 작은 사장은 어린아이였지만 그 아이가 가진 신분을 생각하면 이 일은 가당치도 않았다. 경도에서 재산을 강제로 뺏기는 일은 흔했지만 감히 누가 황자의 재산을 강제로 뺏을 수 있단 말인가.
“먼저 작은 사장님께 말씀드린 뒤 결정하겠습니다.”
그녀가 이를 갈며 계속 말했다.
“하지만 장부에 돈의 흐름은 항상 명확하게 계산해서 문제가 없도록 하죠.”
사천립이 고개를 끄덕이자 포월루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던 석청아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모두 평상복을 입은 감찰원 밀정들이었다. 밀정이 포월루를 인수하러 온 상황에서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한편 무리에 섞여 들어온 턱수염이 긴 남자가 포월루 주변 상황과 경영 방법을 보더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너무 놀란 석청아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숨을 헐떡이며 속으로 자신이 온 힘을 다해도 범 제사가 3 황자의 돈을 집어삼키는 걸 막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순간 화가 치솟은 그녀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경여당 셋째 섭 사장이 직접 와서 장부를 계산하는 이상 포월루는 결국 전부 사씨 성을 가진, 아니 그 죽일 범씨 성을 가진 놈에게 넘어가게 되겠어. 흥! 욕심내며 한입에 삼키려고 하다가는 목구멍이 막혀서 물도 마시지 못할 거다.’
경여당 대행수들은 황실 금고를 위해 조언하고 각 왕부의 자금을 불려 주고 있었지만 정작 수년간 정면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한편 석청아란 여인은 일개 기생에서 천신만고 끝에 맨 꼭대기 위치인 기생 어미라는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이는 모두 그녀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항상 열심히 배우고 경영에 관해 깊이 연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녀도 경여당의 나이 많은 대행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녀 역시 섭가 노인들을 깊이 존경하고 흠모했다. 이는 천하 선비들의 장묵한을 향한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에 석청아는 금전 출납부를 가지고 잔머리를 굴리려던 생각을 멈추었다. 그리고 완패를 선언하기 위해 나긋나긋한 자태로 앞으로 나와 예의 바르게 인사를 올렸다.
셋째 섭 대행수는 턱에 국수 가락 같은 새하얀 수염이 나 있어 나이가 쉰은 된 것 같았다. 그런 그가 흐뭇한 얼굴로 석청아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옆에서 이 광경을 보게 된 사천립은 섭 대행수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대체 스승님께서는 이 호색한 노인네를 데려다가 무얼 하시려는 거지?’
셋째 섭 대행수가 찬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낭자는…… 분명 이 기루의 일을 맡아 보는 사람이겠군요? 건물의 입지 조건하며 채도, 내부 꾸밈까지 살펴보았는데 정말이지 모든 게 천재적이오. 정말 감탄했소이다. 낭자가 계속 이곳에 머물고자 한다면 내, 범 제사께 알리리다. 이 정도면 나 같은 늙은이는 필요 없어 보이는군.”
그러자 석청아가 난처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건물 안에 있는 건 모두 큰 사장님께서 손수 챙기신 것이라 이 아낙은 한 것이 없습니다.”
셋째 대행수가 안타까운 기색으로 탄식했다.
“큰 사장이란 분께서는 참으로 경영에 귀재이시군요. 한데 어쩌다가…… 범…… 그분께 잘못을 저…….”
다행히 그는 나이가 많아도 정신만은 또렷했다. 하마터면 도를 넘은 말을 내뱉을 뻔한 순간, 사천립의 눈빛에 담긴 ‘멈추시오!’라는 신호를 얼른 알아채고는 이내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여기까지 와서 진짜 고수를 만나 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낸 채 주변을 더 둘러보았다.
경영의 도는 모름지기 세세한 부분에서 그 진가가 나타나는 법. 스무 해 동안 경여당의 음지에서 경영을 해온 늙은 대행수에게도 포월루는 떳떳하지 못한 장사였다. 그렇지만 환한 건물 내부와 뒤에 위치한 호수, 호숫가의 별채들, 점원과 안내인의 들고남, 예의범절, 지나치게 요염하지도 않고 추태도 부리지 않는 기생들……. 그야말로 손님들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이 모든 걸 주도한 분은 장사의 비결을 심도 있게 깨우친 이였다.
늙은 대행수가 감탄을 연발하자 사천립도 어느새 고개를 가로저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사남 백작가의 둘째 도련님은 권력과 돈 있는 집안의 그저 그런 자제가 아니었어. 참으로 절묘하군. 백작가의 형제가 모두 세인을 능가하는 재주를 지녔다니 말이야.’
황궁에서는 줄곧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니 석청아로서는 3 황자의 돈을 제멋대로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데 건물을 매입하러 나선 이들은 도착한 상태니 이제 장부를 대조해 보겠다며 내달라고 할 차례인데.
경국의 상단 대다수가 보여 주기 용 장부와 비밀 장부를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셋째 섭 대행수 앞이라 석청아는 감히 장난질을 칠 수 없었다. 하지만 포월루의 은전 거래 내역은 향이 몇 개 타는 만큼의 시간을 들여 이미 정확히 계산해 놓은 터였다. 그리고 은전 1천 냥당 3할을 지분으로 환산한 양도 잠시 떼놓았다. 그러니 이제 3 황자로부터 소식이 당도하면 이 포월루는 완벽하게…… 사천립의 것이 될 터
석청아는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포월루의 총관리인은 경여당의 셋째 대행수가 될 거라 생각했다. 한데 그녀의 생각과 달리 셋째 대행수는 그냥 마차를 타고 떠나 버려 이는 석청아에게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를 더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다. 문이 열리고 포월루의 새 주인이 등장했는데 그녀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상문이라고?”
석청아는 순간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 말을 잃었지만 이내 정신을 수습했다. 상문은 범한 제사가 강제로 데려간 후 줄곧 소식이 없던 터였는데 이제 보니 반격할 준비를 했던 거였다.
사천립이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그렇다. 오늘부터 상문 낭자가 포월루의 총관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