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다만······.
수를 놓은 실력이 정말로······ 이게 뭐야!
수실이 성글게 채워져 있었다. 실 옆에 콕콕 나 있는 수많은 작은 구멍은 수놓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망설였는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수실이 삐뚤빼뚤해서 상징물들이 뜻하는 바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자태를 뽐내야 할 원앙은 물속에 사는 웃긴 괴물이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복숭아꽃을 추가하는 바람에 급기야는 해체주의식 작품으로 변하고 말았다.
범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수건을 뚫어지게 살펴보았다. 파란 물결은 몇 개의 물결무늬로 이루어진 선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이건 수를 꽤 잘 놓은 편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노란색 실을 쓴 거지? 설마 황하가 물새로 변하는 과정을 수로 표현한 건가?’
꾹 참아 가며 이리저리 살펴보던 범한은 결국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웃음소리가 저택 안에 울려 퍼졌다. 진즉에 그 이유를 알고 있던 임완아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새 시누이의 방으로 도망가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수치스럽게도 자신을 비웃는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화가 단단히 나 영웅 같은 기개로 성큼성큼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허리에 얹어 두었던 한 손을 엄지와 검지만 접고 쭉 뻗어 딱밤이라도 때릴 기세로 범한의 코에 손을 들이대며 한마디 했다.
“웃지 마요!”
임완아는 화가 잔뜩 나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있었다. 한데 그 모습이 더 웃겼던 범한은 어느새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배를 움켜쥔 채 의자에 앉은 채로 오뚝이처럼 몸을 앞뒤로 굴리기 시작했다.
임완아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순간 자기도 이 상황이 너무 웃겼다. 이에 바로 앞으로 튀어 나가 범한 손에서 손수건을 빼앗았다. 하지만 범한은 빼앗기지 않고 꽉 움켜쥐며 손수건을 자기 품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겨우겨우 웃음을 멈추고 정색하며 말했다.
“완아, 좋소이다. 당신이 내게 처음 수를 놓아 준 것이고, 이왕 이렇게 준 거 도로 가져가지 말아요.”
임완아는 고귀한 신분으로 어려서부터 황궁에서 자랐다. 항상 보모와 궁녀들이 시중을 들어 주었으니 바느질 같은 여자들이 하는 노동을 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 범한은 아내가 실력이 형편없음에도 자신을 위해 손수건에 수를 놓아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안에 담긴 깊은 사랑이 느껴져 매우 감동하고 있던 터였다.
이에 사랑스럽다는 듯 아내의 두 손을 잡고 발갛게 된 손가락 끝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슴이 아픈 듯 대파의 흰 대처럼 새하얀 손가락에 후후 바람을 불어 주었다.
“다음부터는 수 같은 거 놓지 마요. 내가 대신 놓아 주리다. 담주에서 할 일 없을 때 며칠 배운 적 있거든요.”
범한의 다정한 표정에 임완아는 마음이 따스해져 왔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범한의 몇 마디 말 때문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상공은 생긴 것도 나보다 예쁜데 어떻게 또 여인들이 하는 일까지 할 줄 아는 겁니까. 게다가 이렇게나 세심하고······.”
임완아의 입이 오그라들면서 곧 울 것만 같았다.
“범한, 당신 때문에 나 못 살겠어!”
“이런 바보.”
범한이 사랑스럽다는 임완아의 부드러운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만약 그런 일로 못 살겠다고 하면 경도의 지체 높은 가문 아가씨들은 몽땅 자살하란 말입니까? 대체 누구랑 비교를 하는 겁니까? 나 같은 천재하고 비교하는 건가요? 그런데 어쩌죠? 이 상공은 무공 실력도 장군보다 뛰어나고, 시도 잘 쓰고, 형장에서 소란도 피웠고, 우아하게 앉아 수도 놓을 줄 알고······. 내가 누구라서? 바로 불세출의 천재라서!”
범한이 자화자찬을 늘어놓자 임완아가 울음을 뚝 그치고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범한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며 말했다.
“너무 기고만장하군요!”
범한이 말 못 할 모욕감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당신을 아내로 맞았으니 당연히 있는 힘껏 기고만장해야지요.”
임완아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얼른 손을 뻗어 범한의 품 안을 더듬었다. 그러자 범한이 황급히 자신의 몸을 정탐하는 임완아의 손을 막으며 말했다.
“이미 줘놓고 빼앗아 가려고요?”
순간 임완아의 눈에 자신감이 스쳤다.
“내 걸 뺏으려는 게 아니라 당신 걸 빼앗으려는 거지요.”
범한은 순간 깜짝 놀랐다. 임완아가 자신의 품에서 꽃무늬 두건을 꺼내고 있었다. 그건 범한이 상경을 떠날 때 해당타타의 머리에서 훔쳐 온 것이었다. 임완아가 범한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상공이 내 걸 가져갔으니 이거는 내가 보관할게요!”
범한의 머릿속에서 웅! 하는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아내가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참아 가며 몰래 이 손수건을 만든 이유를 이제야 알아차려서였다. 바로······ 질투심 때문이었다. 자신과 해당타타 사이에 남녀 간의 일은 없었지만 물증이 여기에 떡하니 있었으니. 범한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대체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아 더듬거리며 몇 마디 겨우 내뱉을 뿐이었다.
“완아, 오해했어요. 전에 해당타타는 별로 특색 있게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었잖아요. 당신 상공인 내가 어떻게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들었겠어요!”
그러자 임완아가 콧방귀를 뀌었다.
“당신은 취향이 남달랐어요. 애초에 나를 만날 때마다 예쁘다고 칭찬하는 게 너무 이상하기는 했어. 그런데 그때는 아첨 잘하고 남 칭찬하는 거 좋아한다고만 여겼었죠. 그런데 나중에 약약이를 통해서 알게 됐죠. 당신은 정말로 나를······ 예쁘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바로 그거예요. 상공의 안목은 남들과 달라요. 그러니 어떻게 당신 말을 믿겠어요!”
범한이 화를 냈다.
“대체 어떤 놈이 내 아내에게 못생겼다 한 거요!”
범한이 평소 하던 모습 그대로 임완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보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요!”
범한이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설마······ 내 안목이 정말로 문제가 있는 거예요?”
임완아가 입을 가리고 웃다가 갑자기 정색했다.
“말 끊지 말아요.”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해당타타의 두건을 흔들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이건 이제 내 거예요. 괜찮겠죠?”
범한이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임완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 문 입구 쪽에서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해당타타 낭자를 이 집으로 들이든가, 그 마음을 접든가! 사내대장부가 매일 이 머릿수건이나 끌어안고 그리워하기나 하고 말이야! 당신 행동이 너무 박력 없고 소심해서 아내인 나조차도 부끄럽다고요!”
범한이 손을 입술에 댔다가 임완아를 향해 날리며 비웃었다.
“그 말뜻은 내가 당신보다 훨씬 순수하고 깨끗하다는 거네요.”
임완아가 혀를 차더니 화를 냈다. 그 순간 범한은 중요한 일 하나가 생각나 긴장하며 물었다.
“완아, 당신 생일이 얼마 전에 지났잖아요. 우리가 혼인했을 때 당신 나이가 만 열여섯도 안 됐었지요?”
임완아가 이상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범한이 가슴팍을 툭툭 토닥이며 말했다.
“그러면 됐어요. 된 거예요.”
* * *
다음 날 사남 백작가 밖 마차 안.
“대인,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
사천립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자기 스승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냐하면 스승이 오늘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어서였다. 지금 대체 뭘 계산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매우 음험한 미소였다. 경도 상황이 안정되지도 않았는데 스승께서는 설마 아직도 관둘 생각이 없으신 건가?
범한은 수가 놓인 손수건을 보고 있었다. 손수건 위 이상한 모양의 물새를 보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속은 좀 쓰린 상태였다. 해당타타가 머리에 두르고 있던 두건을, 그것도 9등급 상의 강자가 하고 있던 것인데. 그걸 직접 훔쳐 오는 건 범한에게도 정말로 큰 모험이었다. 한데 처에게 몰수당하는 게 최종 결과라니!
범한이 고개를 들어 사천립과 등자월의 궁금증에 찬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이를 한번 악물고는 사납게 말했다.
“가보세! 포월루에 가 보세. 본관이 가정사가 순탄치 않아 기분을 좀 풀어야겠네. 그리고 간 김에 포월루 낭자들과 함께 수를 놓는 것에 대해 이야기도 좀 나눠 봐야겠네.”
포월루 여인들은 자수를 놓지 않았다. 대신 그녀들이 취급하는 건 자수 바늘이었다. ‘공력이 심후하면 쇠 절굿공이도 바늘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가 그녀들의 장사 비법이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의 공력과 능력은 꽤나 괜찮을 것 같았는데······.
오늘 변장은 일찌감치 끝냈기 때문에 범한 일행은 1처에 들러 일반 마차로 갈아타기만 했다. 덜그럭거리던 마차는 성 서쪽 외진 곳에 위치한 3층 건축물 앞에서 멈추었다. 그러자 일찌감치 나와 있던 일꾼이 재빠르고 능숙하게 말고삐를 넘겨받았다. 이어 말끔한 차림새의 안내인이 범한 일행을 맞았다.
범한은 오늘 눈썹 쪽을 살짝 변형했다. 그리고 범사철을 흉내 내 왼쪽 뺨에 작은 마맛자국을 만들었다. 그러자 아주 작은 변화임에도 범한의 얼굴은 훨씬 어두침침해 보였다. 이곳은 정보가 발달하지 않은 사회였다. 그러니 범한은 자신이 아무리 경도에서 유명한 범한 제사일지라도 이곳 사람 중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여겼다.
포월루는 평범한 목조 건축물을 3층 이상으로 개조해 놓은 곳이었다. 그리고 층간 간격을 좁히는 방법을 통해 건물의 안전성을 높였다. 이 포월루 건물은 높이가 높고 폭은 좁은 형태였다. 그래서 건물 앞에 서면 건물 뒤쪽에 있는 하늘이 보일 정도였다.
범한은 한눈에 이 건물에 쓰인 목재가 북쪽에서 가져온 상급의 나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건물로 발을 내디뎠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문 앞에 세워져 있는 기둥을 손으로 만지며 자신의 판단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1층 대청에는 벌써 적지 않은 손님들이 와 있었다. 손님을 접대하는 한쪽에 한 장 정도 높이의 낮은 대가 있었고 그 위에 소박하게 꾸민 여인들이 금을 타고 있었다. 맑은 금 소리는 기분 전환을 해주기에 충분했다.
보면 볼수록 이 기생집이 범상치 않다는 생각에 범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세 사람이 안내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뒤쪽에 있는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범한이 먼저 난간 쪽에 자리를 잡고는 등자월과 사천립에게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범한은 난간에 기대앉아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난간 아래쪽으로 푸른색과 금칠을 활용해 그린 선계 궁전 그림이 있었다. 새로 문을 연 기생집에서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화려하게 치장을 해놓았다니. 범한은 주인이 참으로 돈이 많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분명 황자 중 한 사람과 관련 있을 수도 있다는 목철의 판단이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포월루는 분명 기이한 게 있었다. 그리고 그 기이함은 바로 고상함과 특이함에서 나왔다.
이때 특이함이란 기생집 하면 떠올리게 되는 그런 게 없다는 뜻이었다.
포주가 호객을 하지도 않았고, 기생 어미가 짙게 분을 바르고 맞으러 나오지도 않았다. 심지어 얇은 사만 뒤집어쓰고 가슴을 드러낸 농염한 여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담담하고 신선한 게 전혀 기생집 같지 않았다. 범한이 경도로 온 지 1년 반, 그동안 가무와 여색을 파는 곳을 몇 차례 가보기는 했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난간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가슴이 살며시 떨려 왔다.
이 기생집 건물인 기루는 길을 끼고 서 있었지만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또 건물 뒤쪽에는 길고 좁은 형태의 호수가 있었다. 바로 경도에서도 유명한 수호(瘦湖: 마른 호수라는 뜻)였다.
난간 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호숫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가을바람이 살짝 차가운 것이 상쾌하면서도 마음을 편안히 해주었다. 범한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하겠는지 난간을 두드리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는 밖을 살펴보았다.
기루 뒤쪽, 호수 양쪽으로 가을에 접어든 나무 사이로 여러 개의 작은 정원들이 숨어 있었다. 가끔씩 회백색의 담벼락도 보였는데 이 역시 단아함의 극치였다. 시력이 좋은 범한의 눈에 작은 정원들 뒤쪽으로 오수 하수구가 보였다.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 수많은 낭자들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앞쪽에 놓인 포월루 건물은 단순히 손님을 맞아 장사하는 주루이던데 아무래도 진짜 즐거움이 있는 곳은 바로 저 자그마한 정원 내부인 듯 보였다.
누군가가 찾아오는 명산이 되려면 산 앞에 안개라도 짙게 깔려 줘야 절경을 찾아온 여행객들의 마음이 최대한으로 고양되는 법.
포월루의 3층 목제 건물이 명산 앞 운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건물 뒤쪽에 작은 정원들을 배치해 꽃을 찾는 기루 유객들의 들뜬 마음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자극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