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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263화 (263/1,108)

263화

“망월루는 어떤 곳이지요?”

범한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목철이 살짝 음란한 표정을 내보이자 범한은 웃으며 꾸짖었다.

“그 나이에 집에 돌아가 손주나 돌봐요! 그런 생각은 그만하고!”

그러자 목철이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망월루는 기생집입니다. 경도에 생긴 지 1년도 안 된 곳이지요. 1처에서 몰래 조사해 보았는데 배후에 대단한 인물이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최근 그곳에서 누군가가 몰래 계획을 꾸미는 듯한 커다란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범한은 기생집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리고 유정강 쪽은 정왕 세자 이홍성의 세력권이었고. 비록 지금 2 황자와 암암리에 맞붙고 있기는 해도 이렇게 빨리 이홍성과 절교하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로 지내다 보면 또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목철의 말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대단한 인물요? 얼마나요?”

목철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그 기생집에는 좀 사악한 기운이 있습니다. 간덩이가 부었더라고요.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고 있고요. 겨우 몇 달 만에 여자들도 꽤 많이 죽어 나갔는데 경도 부윤이 찍소리도 못 내는 걸 보면 배후 인물이······ 분명 황자 중 한 분입니다.”

범한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망월루의 배후가 태자인지 아니면 2 황자인지 알지 못해서였다. 한편 1 황자는 군에서 날마다 사람들과 무예 겨루는 거나 좋아할 뿐이었고, 황제 폐하께 상도 두둑하게 하사받았으니 한동안 돈이 궁할 일은 없어 보였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범한은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살 수는 없었다. 이에 2 황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범한이 목철에게 말했다.

“시간 내서 조사해 봐요. 정말로 말한 대로라면 그 고급 기생집은 황자와 경도 관리의 접선 장소일 거예요. 거기로 몇 명 투입해 봐요.”

목철이 고개를 내저었다.

“관리가 엄격한 곳입니다. 또 새로 생긴 곳이고요. 그러니 단번에 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감찰원은 관리들만 감찰해야 하니 민간 상인을 상대로는 불가능합니다.”

범한이 살짝 분노한 사람처럼 목철을 쓱 바라보았다.

“감찰원에서는 기녀들을 관리 감독할 수는 없지요. 하나 기녀가 속한 관아는 관리 감독할 수 있어요. 그러니 요는, 더 밀착해서 감시하란 말입니다.”

범한은 목철에게 모든 걸 다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범한이 보기에 2 황자는 너무 겸허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이에 범한은 그가 중요한 패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 황자가 언젠가 그 패를 꺼낼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공무를 마친 후 범한은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조금 골치 아픈 듯 마차에 올라타더니 곧장 정왕부로 향했다.

오늘 범한의 가족들은 모두 정왕부에 가 있었다. 오늘은 정왕의 생일이었고, 유일하게 범건 상서 일가만 손님으로 초대되었다. 범한은 이홍성을 어떻게든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왕부 쪽에서 보여 준 정과 관심 때문이라도 이번에는 그곳에 가야만 했다.

왕부로 들어서는 순간 범한은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1년 반 전에 이곳 호숫가에서 두보의 시를 읊은 게 떠올랐다. 그런 후 황궁 밤 연회에 갔고, 장묵한에게 객혈을 하게 만들었고, 북제에서 책을 받아 오게 되었다. 순간 그 모든 일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조용하고 고귀한 느낌이 가득한 이 왕부에서 시작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다시 문득 그 마차에 있던 진귀한 서적들이 생각났다. 그 책들을 태학에 증정해 놓고 지금껏 가볼 여유도 없었다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홍성이 어느새 자신을 맞으러 나와 있었다. 그것도 서서 꽈리 물을 한 사발을 들고 왕부 밖에 서 있었다.

범한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사발을 받아 들고 마시고는 웃으며 말했다.

“왕부로 들어서기 전에 이것부터 마시게 될 줄 알았습니다.”

범한이 처음 정왕부에 왔을 때였다. 가마 멀미 때문에 토할 것 같은 걸 이 꽈리 물을 마시고 회복되었다.

세자 이홍성이 범한의 두 눈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했다.

“요즘 감찰원 대권을 쥐고 잡아들이고 싶은 이는 몽땅 잡아들인다던데. 어째 정왕부 밖에서 꽈리 물 파는 장사꾼은 자네 집으로 잡아가지 않는 것인가?”

세자의 말에는 가시가 숨어 있었다. 이에 범한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이 난관에 부딪히게 될 줄 이미 예상했습니다. 하여 물을 건네주시는데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저를 주먹으로 때려눕히실 줄 알았거든요.”

이홍성이 콧방귀를 뀌고는 범한과 나란히 왕부로 들어서며 말했다.

“내 마음이 시원치 않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겠지?”

이홍성이 범한을 잠시 바라보고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둘째께서도 모르겠다 하시네. 태자마마 사람도 아니면서 하필이면 왜 그런 일들에 신경 쓰는가?”

그러자 범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씁쓸히 웃었다.

“제가 온갖 사람에게 미움 살 짓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그분께서 압박하는 게 아니고요?”

말을 마친 범한은 가을 하늘에 무겁게 내려앉은 구름을 가리켰다. 한데 쭉 뻗은 손가락에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내가 바보인가?”

정왕 세자가 진지하게 범한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번거롭겠지만 말해 주게나. 내가 정말로 바보인 거 같아 그러니.”

범한이 그의 요청에 따라 진지하게 답해 주었다.

“제가 보기엔, 어떤 면에서는 정말 바보이십니다.”

이홍성은 범한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 이유를 두고 물은 것이었다. 한편 범한은 상대방이 굳이 황자들 권력 쟁탈전에 참여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정왕부의 식물들은 가을임에도 처연한 느낌 없이 여전히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오히려 약간 누런 빛깔을 띤 융단을 길 양쪽 바닥에 깔아 놓은 것 같았다. 원예를 좋아하는 정왕이 수고롭게 가꾼 결과임을 범한도 잘 알고 있었다. 범한이 풀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를 보십시오. 저런 게 인생이지요.”

이홍성이 멸시와 조소가 섞인 말투로 받아쳤다.

“매일 집에서 정원이나 돌볼 생각이라면 둘째께 부탁해 강남의 땅을 자네에게 주도록 하겠네.”

범한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최근 있었던 일들은 제 생각이 아니라고요. 믿지 않으시는군요.”

이홍성은 항상 따스하고 햇살같이 말간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범한이 흘린 정보에 결국에는 이맛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최근 조정 동향이 범한 때문이 아니라면 황제 폐하의 뜻이라니. 생각해 보니 그 일들은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면 설마 황제 폐하의 2 황자에 대한 총애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인가.

범한이 이홍성을 쓱 보고는 말했다.

“물론 제 사심이 발동한 것도 있습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제가 둘째분께 호감이 없다는 걸 말입니다.”

이홍성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네가 경도에 온 초기에 나와 둘째분은 모두 예의를 차려 준 편이었네. 물론 성심성의껏 대해 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네. 하나 적어도 동궁 쪽보다는 우리와 더 친해져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자 범한은 소리 내어 잠시 싸늘하게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저택 안으로 들어왔지만 정왕의 생신 연회가 아직 시작되지 않아 곧장 후원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세자의 비밀 서재로 갔다. 범한은 탁자 한쪽에 걸터앉더니 눈가에 싸한 느낌을 풍기며 이홍성을 주시했다.

차를 가져온 종이 물러나고 서재에 두 사람만 남았다.

“예의를 차려 주셨다고요? 도찰원이 저를 건든 것도 예의를 차려 주신 것입니까?”

이홍이 잠시 흠칫했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도찰원이라······ 그건 고모님의 뜻인데 사실 자네도 그 이유는 알지 않는가. 누가 자네에게 경도로 돌아오자마자 고모님과 둘째분 사이의 그런 일들을 조사하라 했나?”

범한은 외양간 길 사건과 관련한 걸 폭로하지 않고 그냥 고개만 내저으며 말했다.

“아까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 사심도 있었다고요. 장 공주마마와 둘째분 사이의 일을 조사한 건, 세자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황실 금고의 돈을 그 두 분이 가져가서입니다. 제가 내년에 빈껍데기를 물려받기를 바라시는 것입니까?”

이홍성이 말했다.

“어찌 말해야 할까? 자네는 장 공주마마의 사위가 아닌가. 그분께 자식이라고는 완아 하나뿐이고. 그런 고모님께서 설마 자네를 궁지로 몰아넣으려 하실까? 한발 물러서게나. 모두 평안히 살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물론 한발 물러설 수 있습니다.”

범한이 이홍성을 바라보며 정말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갔다.

“세자님이 걱정되어서 그럽니다. 그 둘째분 옆에 선 건 분명 그분께서 황제가 되셨을 때 동궁마마보다 능력이 있을 거라 생각하셔서겠지요. 성품이 온화하고 상냥해 보이니 그분이 황위를 이으시고 나면 정왕가도 더 편해질 거란 생각이실 테고요. 하오나 지금 이렇게 계속 둘째, 둘째, 부르시는데 그분이 나중에 정말 황제라도 되신다면 이렇게 불렸던 걸 없던 일로 하실까요?”

이홍성이 웃었다.

“그 말이 자네 입에서 나와 다행이군. 그렇지 않고 다른 이가 했다면 분명 졸렬하게 도발한 거라 여겼을 게야.”

범한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진지하게 말씀드린 건데. 제가 허튼소리를 했다 여기셨겠지만······ 봄에 유정 강가에서 이런 일들에는 연루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런 후 이홍성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알고 있거든요. 하나 정왕이라는 신분에 얽매여 있으시니 손에 연지분은 수없이 묻히고 계셔도 병졸은 하나도 없으시지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계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오나 지금 쥐고 있는 힘이 저보다 못하시면서 어찌 황자님들 사이에서 자유로이 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이홍성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자아도취에 빠진 감이 있기는 하지요. 어쩌면 세자께서는 속으로 저를 비웃으실 수도요. 하오나 황제 폐하께서 마음을 움직이셨으니 둘째분께서는 이제 좋은 날 다 지나갔습니다. 그러니 세자께서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세요.”

범한이 이홍성의 어깨를 토닥이며 간절하게 말을 이어 갔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다름이 아니라 모두 약약이 때문이지요.”

이홍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무표정하게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무언가 느끼는 게 있었다. 이에 잠시 후 조용조용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네는 둘째분을 모르네. 그분에게도 실은 부득이한 사정이 있지. 다시 말해 나와 그분은 의리로 맺어져 있어서 어찌 되었든 헤어질 수 없는 사이네.”

그러자 범한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

정왕의 생신 연회가 시작되었다. 거대한 둥근 식탁 위에 다양하고도 유명한 음식들이 올랐다. 정왕이 상석에 앉아 긴 수염을 휘날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부유한 상인처럼 입은 터라 평소 보던 꽃이나 기르던 농부 모습의 왕야가 아니었다. 오히려 강남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돈 많고 할 일 없는 황가 상단의 소금 상인처럼 보였다.

정왕은 자신의 아들과 범한이 함께 걸어 들어오자 웃으며 손을 휘저어 범한을 불렀다.

“내 옆자리에 앉거라.”

범한은 정왕이 해대는 이상한 말들을 정말 싫어하는 터라 죽을상을 하고 옆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처 임완아가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편 누이 범약약은 완아 옆에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범한은 조금 전 파렴치하게도 누이의 이름을 팔아 이홍성의 마음을 잠시 누그러뜨렸던 일이 생각나, 순간 자신이 뼛골까지 경멸스러운 인간처럼 느껴졌다.

범한은 바로 술잔을 들고 정왕에게 한 잔 올렸다. 그런 후 다시 맞은편에 계신 아버지, 새어머니 유씨 부인에게 한 잔씩 올렸다. 이는 지각한 것에 대한 사죄였다.

생신 연회에는 정왕가와 범가 딱 두 집안의 사람들만 참석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른들과 겸상을 하는 자리였던 터라 세자와 범한 모두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했고, 이에 음식이 풍성히 차려졌음에도 도무지 입맛이 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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