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신화문 밖, 옥수강 강가에 있던 가마가 들어 올려지기 직전이었다. 어사들은 강제로 관복이 벗겨지고 바닥에 엎어져 곤장을 맞았다. 곤장이 묵직하게 떨어졌다가 천천히 올라오기를 반복하고, 그때마다 핏물이 선을 그리며 공중으로 따라 올라갔다. 그러다 그 핏물이 빗물과 만나니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현장이 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문관들 일부가 헐레벌떡 와보았다. 처참한 현장을 본 이들은 급히 입궁해 황제에게 간언했다. 그리고 황궁 문밖으로 나와 형 집행 장면을 지켜보도록 명받은 범한을 두려움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늘 일은 도찰원 어사가 먼저 일으킨 일이기는 하나, 황제 폐하께서 수년간 쓰지 않으셨던 곤장 형을 범한 때문에 동원하시다니. 그러니 그들에게는 황제 폐하에게 범한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는 계기였다.
범한은 후 내관 옆에 서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들 좌도어사에게는 동정심이 조금도 일지 않았지만 끔찍해서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관, 수하들에게 조금 살살 하라 소리쳐 주시오.”
후 내관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말했다.
“범 대인께서는 마음씨가 착하시군요. 대인께서 미리 말씀하셨는데 소인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나이까. 이미 잘 말해 놓았으니 저리 처참하게 때리기는 해도 근골은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범한이 아래쪽을 훑어보았다. 후 내관의 양 발끝이 바깥쪽으로 벌어져 있었다. 이는 ‘살살 때려라’라는 의미의 암호였다. 이에 범한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는 관여하지 않았다.
두 사람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좌도어사가 있었다. 황제가 체면만은 살려 준 그였지만 새파랗게 질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곤장을 맞지 않았지만 부하들에게 떨어지는 곤장 한 대 한 대가 자기 몸 위에 내다 꽂히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뺨이라도 얻어맞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범건 상서가 남겨 놓은, 우산을 받쳐 주고 있던 호위 무사들은 일찌감치 정신이 나가 버린 좌도어사 대인을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범한이 좌도어사에게 다가가 집안 호위 무사들을 물러나도록 했다. 그러고는 조금 연민의 눈빛으로 뢰명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쩌다가 이 일에 연루된 것입니까?”
범한이 속사정을 얼마나 아는지 알지 못했던 뢰명성 어사는 그냥 제자리에 멍하니 있었다.
범한이 한숨을 내쉬며 후 내관에게 잠시 곤장 집행을 멈추어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고는 황제에게 인정을 구하기 위해 홀로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봐줄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을 도발한 어사들을 풀어 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단순히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조정 백관들을 보고 있자니 필히 그리해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범한은 황궁 안쪽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원망 섞인 생각을 하며 분개하고 있었다.
‘황제 아버지! 곤장 형을 가지고 나를 저 관원들에게서 완전히 떨어뜨려 놓을 생각인가 본데, 절대 그럴 수 없지! 좋은 평판을 쌓으려고 2년간 고생고생했다고. 그런데 그게 곤장 몇 대로 사라지면 내가 너무 큰 손해를 보는 거겠지?!’
어둠뿐인 마차 안, 젊은이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는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내보인 인위적인 행동이었고, 남자라면 짓지 않을 살짝 수줍음을 띤 미소였다. 옅게 흩어진 속눈썹은 경묘의 벽화 속 인물처럼 자연스럽게 고풍스럽고 존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를 일이야.”
젊은이가 살짝 고뇌가 실린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많은 일들이 생각해 봐도 모르겠단 말이지. 예를 들어 그가 왜 나를 조사하려 했는지 말이야. 나는 그자가 마음에 드는데 설마 그는 몰랐던 걸까?”
그가 허리춤에 달린 향낭을 가볍게 만지며 점점 퍼져 오는 정향꽃(라일락) 향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마감해 놓은 마차 벽에 머리를 기대고 두 눈을 반쯤 감으며 말했다.
“내가 그자를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지만, 부친께서는 말 위의 생활에 익숙하신 분인데 왜 그렇게 그의 글재주를 중시하시는 걸까?”
누구도 그의 말을 이어받아 답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의 말에 대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젊은 귀족은 그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느낌에 계속 함몰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지?”
“왜일까?”
그가 수줍은 미소를 서서히 거두면서 향낭에서도 손을 떼어 코끝을 두어 번 문질렀다. 손끝에 남아 있던 잔향을 모조리 코에 담아 두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이런, 안 되겠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젊은이가 한탄하며 고개를 돌리더니 옆에 놓여 있던 청포도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손을 쭉 뻗어 포도 가지를 집어 올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포도를 집어 던졌다.
“아버님께서 그놈을 너무 좋아하셔!”
“나보다 더 좋아하시다니!”
신경질적으로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던 그가 황궁의 태자와 신양의 고모 생각이 나자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옆에서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명을 기다리는 어사에게 말했다.
“화해하거라.”
어사 하종위는 이번 행동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터라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2 황자의 눈에서 진절머리가 난다는 기색이 잠시 번뜩이는 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 후 2 황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도찰원 어사들은 곤장을 맞아 살점이 찢기고 피를 철철 흘렸다. 그러니 이 일은 자연스레 경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소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황궁에서 새로 출간한 신문에서도 당시 상황을 담담하고 간단하게 묘사해 놓았다. 관 내부에서 작성한 관보에는 모든 게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었다.
이 일은 모두에게 황제 폐하가 감찰원의 권위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준 게 되었다. 그리고 범한이라는 젊은이를 황제 폐하가 옹호하고 있음을 재차 강하게 천명한 것이기도 했다.
어서방에서 앉을 자리가 생겼고, 감찰원에도 직위가 있고, 어사에게 탄핵을 당하자 황제 폐하께서 곤장 형을 내려 체면까지 살려 주고. 범한, 이 휘황찬란한 황금색으로 써진 이름에 다시 짙고 두툼한 검은 테두리가 둘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범한은 대다수 관원들조차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
어사들이 곤장을 맞던 날, 이 젊은 제사 대인이 어서방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이야기도 밖으로 새어 나갔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그가 악감정을 모두 잊고 어사들을 살리기 위해 인정에 호소하며 황제 폐하에게 곤장 형을 멈추어 줄 것을 부탁했다는 것도 소문으로 퍼져 나갔다. 또한 당시 형 집행을 담당했던 후 내관은 어사들을 살리기 위해 범한 제사 대인이 몰래 부탁한 것 때문에 석 대씩 덜 때렸다는 사실을 외부에 말하고 다녔다.
한편 범한은 자신이 도찰원에게 인정을 베풀었다며 자랑하고 다니기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범한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내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그가 이 불쌍한 어사들의 목숨을 살려 준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암암리에 범한 편에 섰던 경도 사림과 태학 학생들 역시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며 범한에 대해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경국 백성들은 감찰원이 폐하의 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리고 어쩌면 범한 시선의 휘황찬란한 명성 때문에도 줄곧 어둠 속에만 있던 이 기관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감찰원에 대해, 적어도 1처에 대한 인상이 점차 개선되어 나간 것이었다. 흑과 백 사이에는 과도기 상태란 것이 있을 수도 있구나. 그리고 정의와 사악이라는 두 진영 속에서도 각각의 매력이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회색의 침묵, 이것이 바로 감찰원이라고.
* * *
황궁에서 국화 감상을 하러 놀러 가기까지는 아직 여러 날이 남아 있었다. 범한이 고개를 반쯤 갸웃한 상태에서 자기 집 정원에 앉아 무언가를 추리해 보고 있었다. 하나는 임완아가 무엇을 수놓고 있는 것인가였고 다른 하나는 범사철, 요 망할 놈이 최근 무슨 짓을 하고 싸돌아다니는가였다. 그러다 가끔씩 자신과 매우 비슷한 2 황자가 지금도 입가에 살며시 부끄러워하는 미소를 머금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데 2 황자 생각을 하니 기분이 상당히 불쾌했다. ‘살며시 부끄러워한다고? 천진난만하다고? 이건 내 거라고!’라고 범한은 생각했다. 한데 문득 자기보다 훨씬 존귀한 신분인 2 황자가 같은 기질을 지녔다는 게 생각나자 속에서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도련님.”
등자경이 공손하게 보고했다.
“도련님의 뜻에 따라 심 낭자를 정원 쪽으로 이사시켰습니다.”
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최근 들어 심 낭자에게서 이상한 행동은 없었는가?”
그러자 등자경이 답했다.
“정신적으로 조금 슬프고 침울해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범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나 대신 말 좀 전해 줘요. 언씨 가문 댁에 가서 언 대인 부자를 식사에 초대한다고 말이죠.”
“어르신께도 알려 드려야 할까요?”
등자경이 범한을 슬쩍 보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범한이 웃기 시작했다.
“당연하죠. 언약해 대인께서 함께 식사하게 된 걸 부친께서 아시면 많이 기뻐하실 겁니다.”
등자경은 그러겠노라 대답했지만 이내 참지 못하고 알리고 말았다.
“그 하종위라는 어사대부가 또 왔습니다. 도련님, 오늘도 안 만나실 건가요?”
범한이 눈을 떴다. 무슨 생각 중인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범한은 하종위를 알고 있었다. 경도로 온 초기 일석거에서 그와 만났었다. 그 당시 경도에서도 유명한 인재였던 그는 예부 상서 곽유지의 외아들 곽보곤에게 빌붙어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과 교류할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었는데 이제 보니 권력에 심취한 문인이라 그런 것이었다.
하종위가 왜 어사대부가 된 것인지에 대해 범한은 그 숨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요 며칠 매일 찾아오는 이유도 모두 그 귀한 주인님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홍성도 피하고 만나 주지 않자 2 황자마마는 살짝 조급증이 난 게 분명했다.
“만나 봅시다.”
범한이 손을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찰원에서 준비 중인 일도 거의 다 마무리되어 가는 중이었다. 그러니 상대방을 만나 자신의 태도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적어도 선전 포고는 하고 싸우는 게 되는 것이었다.
* * *
범한은 한참을 걸었는데도 아직도 정원을 벗어나지 못하자 짜증이 밀려 올라왔다. 그러다 드디어 앞채에 도달했고 문득 자신이 북제에서 돌아온 날 밤이 떠올랐다.
‘그때는 대체 얼마나 빨리 뛰었던 거지? 누이가 정말로 집을 나갈까 걱정이 되어서 그랬나? 아니면 마누라가 바람이라도 났을까 봐 걱정되어서 그랬었나?’
이런 웃긴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가을로 접어든 나무 사이로 난 길이 조금은 짧아진 것만 같았다. 앞채 서재로 가보니 어사대부 하종위가 벌써 서재에 들어앉아 있었다.
범한을 발견한 하종위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가슴팍까지 모으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범한 대인께 인사드립니다.”
범한이 손을 내저었다.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닌데 인사가 너무 과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봄 그날 이후로 하종위는 종종 사남 백작가를 방문했었다. 어쩌면 범씨 가문의 일원이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몇 가지 사실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눈동자에 담겨 있는 범약약을 향한 마음을 일찌감치 범한이 읽어 버렸다는 것, 그리고 비밀이 많은 그의 성격을 범한이 너무 싫어해 이상하리만치 간단히 선을 그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몇 번 방문했지만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자 하종위는 곤란해하며 알아서 물러났었다. 그러니 경도에서 유명한 인재 하종위가 사남 백작가 사람들에게 낯선 사람일 리는 없었다.
하종위가 서재에 단 두 사람밖에 없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하관, 앞서 있었던 일 때문에 왔습니다.”
“앞서 있었던 일?”
범한은 한마디만 말하고 입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눈썹을 살짝 씰룩이며 흥미롭다는 듯 하종위 어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손을 휘휘 내젓고는 상대방이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종위는 얼굴이 거무스름한 게 딱 보기에도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 같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경도에서 생활하고, 관료로서 반년 가까이 고생하다 보니 어느덧 진중한 분위기가 많이 풍기고, 저 잘난 줄 아는 오만한 느낌은 조금 줄어들어 있었다.
특히 유난히 맑은 눈동자와 딱 봐도 가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바른 생활 사나이 같은 얼굴은 누가 봐도 친밀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범한은 그런 그의 얼굴을 경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