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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251화 (251/1,108)

251화

사천립은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아 화제를 돌려 버렸다.

“1처에서 사건 조사를 할 때 과거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왔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한밤중에 사람을 체포해 온다고요. 하오나 대인께서는 그와 같은 소식이 퍼져 나가는 건 전혀 막지 않으시더군요. 누군가가 물어보면 사실대로 다 말해 주시기도 하고. 저는 그리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범한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왜인가?”

사천립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감찰원은 황제 폐하의 특무 기관입니다. 백관들을 위협할 수 있는 건 경국 법률이 정한 특권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큰 이유는 신비감과 음험, 어두운 느낌 때문입니다. 세인은 무지하니 이해하기 어려울수록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인께서는 일부러 1처가 하는 일을 외부에 공개하고 계시니 그와 같은 느낌이 많이 줄어들면 조정과 백성이 감찰원을 가볍게 볼 수도 있습니다.”

범한이 보기에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감찰원 1처의 새 조례 중 어느 조항에 반대하는지 나도 알고 있다네. 예를 들어 정보 발표 같은 것들이겠지. 감찰원이 계속 어둠 속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처럼 행동하면 일을 처리하는 데 훨씬 더 유리하다는 건 나도 인정하는 바일세.”

범한이 자신의 의견에 찬성하자 사천립은 살짝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설마 세상 사람들 눈에 괴물로 비치기 싫어서 그러는 건가? 세인들의 평판을 뒤집기 위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바로 이어진 범한의 말은 조금 전 그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알려 주었다.

“나도 세상 사람이 감찰원을 어찌 보는지는 관심 없지만 그대가 알아 둘 게 있다네. 내가 맡고 있는 건 전체 감찰원이 아닌 1처 하나뿐이라네. 1처는 경도에 있으니 황족들에 대한 밀정 활동을 제외하면 실은 그 어떤 일도 은폐하기란 어렵단 말이지. 그리고 경도 관원들이 앞잡이처럼 이야기를 퍼뜨리면 민간 백성들이 그것에 이런저런 살을 붙여 나가고. 어찌 되었든 1처의 신비감은 유지가 안 되는 거니 차라리 공명정대해지는 편을 택한 거지. 그 대신 감찰원 1처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더 강화되는 거고.”

범한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갔다.

“하나 나는 조사 결과만 발표하는 방법을 쓰고 있네. 그러니 과정까지 공명정대할 필요는 없는 거지. 조사 과정에서는 어떤 어둠의 수단을 쓰든 나는 다 허용하고 있고. 그러니 그대에게 하려는 말은 나는 무슨 성인 같은 게 되고 싶은 건 아니란 말이지.”

사천립이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기 스승님은 관리 사회의 폐단을 과감히 벗겨 내기 위해 잠시 보류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범한은 사천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부터 1처에서 조사한 모든 안건 중 마무리 지은 것은 대리사나 형부로 보낼 것이네. 그러니 그때마다 그대는 문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네. 매 안건 그 원인에 대해 상세히 써주게나. 그러면 그걸 공고문용으로 쓸 걸세. 공고문을 붙일 곳은 내 이미 알아 놨지. 바로 1처와 대리사 사이에 있는 벽이라네.”

사천립은 황당해 입이 떡 벌어져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그게······ 규정에 맞는 일입니까? 형부에서 발행한 범죄자 수배 벽보도 아니고 조정에서 붙이는 방도 아닙니다. 그런데 감찰원이······ 공고문을 벽에 붙여 내건다고요?”

범한이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

“감찰원이 아니고 1처에서 하는 거네! 아까 내가 조금 더 광명정대하게 한다 말하지 않았는가? 설마 내게 소설이나 써서 4처에 팔아먹을 준비나 하라는 것인가?”

그러자 사천립이 즉시 기쁜 기색으로 답했다.

“그것참 최고로 좋은 방법이네요. 백성들의 궁금증도 풀어 줄 수 있고 생경하고 범접하기 힘든 1처의 분위기도 은근하게 유지할 수 있고요. 게다가 대인께서는 책방을 가지고 계시니 하시기에 가장 편한 방법이기도 하군요.”

범한이 화가 나 기분 나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러자 사천립이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뒤따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질문을 던졌다.

“스승님! 그렇다면 이 제자, 감찰원에서 일하게 된 것입니까?”

범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천하의 문인 중 음험하고 후안무치한 특무 기관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자는 없었다. 이에 범한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대는 나의 개인적인 비서일 뿐일세. 내 아버님께 말씀드려 잠시 호부에 꽂아 줄 터이니 다음에 다시 이야기함세. 염려 말게나. 세상 누구도 자네에게 감찰원의 못된 개새끼라 손가락질하며 욕하지는 않게 해줄 터이니.”

* * *

사남 백작가 뒤채에는 누가 봐도 놀랄 만큼 넓은 화원이 있었다. 범한이 이곳에서 산책을 하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둠의 수단으로 광명정대한 결과를 얻는다고?”

범한은 자신은 비굴한 성인(聖人)은 아님을 스스로 인정했다. 물론 경국 백성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 관료 사회에 만연한 부패 풍조를 조금 억제하려 한 것은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남쪽의 그 큰 강들의 강둑이 미처 손쓰기도 전에 순식간에 무너지지 않도록 하려 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1처의 기풍 바로잡기는 자신의 사심에서 비롯된 측면이 더 많았다.

범한은 시선(詩仙)이라는 칭호와 함께 최근 들어 새로운 문인의 태두라고도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감찰원이 20년 동안 쌓아 온 더럽고 추악한 악명 때문에 범한의 명성은 어떻게든 손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1처를 조금이라도 더 광명정대하게 바꾸려 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긍정적인 명성은 훗날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어둠과 공명이란 단어를 생각하다 보니 범한은 저도 모르게 북제에 있을 때 해당타타와 나누던 말이 생각났다.

―어둠은 저에게 검은 눈을 주었지만······ 저는 그 눈을 통해 빛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범한은 별안간 북제 쪽 상황이 걱정되었다. 해당타타가 과연 자신이 짜준 일을 제대로 했을는지. 한데 오죽 아저씨는 아직까지 실종 놀이 중이고 고하 역시 상경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없었다.

화원 안, 범한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인 몇몇이 담소를 즐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오늘은 맑게 갠 날이었다. 가을날 메뚜기가 아직 푸른 풀잎 사이에서 목숨을 걸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무 위의 매미도 이게 마지막 햇살인 걸 알았는지 목청이 터지게 노래를 불러 대는 통에 여인들의 말소리는 그 속에 묻혀 버렸다. 임대보는 화원 한쪽에서 개미를 잡고 있었고 범사철은 가문 학당에서도 집에서도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범한이 실눈을 뜨고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섭령아가 와 있었다. 그는 속으로 남몰래 앓는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저 여자가 자신을 한 번 제대로 도와줬다고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놀러 온다고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섭령아 옆에서 수줍어하고 있는 유가 군주를 봤을 때는 진짜 고역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열두 살짜리 꼬마 아가씨가 열세 살이 되더니······ 아직도 꼬마 아가씨이기는 하지만 제발 자신을 흠모하는 눈길로 바라봐 주지않았으면 했다.

최근 며칠 동안 범한은 이홍성의 초대를 몇 번이나 거절한 상태였다. 언빙운의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이홍성을 피해 숨어 지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저 어린 아가씨, 즉 유가 군주를 피해 숨어다녀야 한다. 범한이 체내의 정기를 운기해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오죽의 몽둥이 아래에서 연마한 경공을 이용해 누렇게 시들어 가는 풀들 위로 몸을 날려 아무도 모르게 저택 담벼락을 넘어갔다.

* * *

경도 심정도에 왕계년이 은전 120냥을 들여 사둔 저택이 있었다. 범한은 그 집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앉아 편안하게 허리를 폈다. 이곳이야말로 범한에게는 가장 은밀한 은신처였다. 계년조와 진평평 원장 말고는 집안사람들도 그가 자주 이곳에 와서 공무와 사무를 처리하는 걸 알지 못했다.

등자월이 정중하게 두 개의 죽통을 책상 위에 놓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자신이 왕계년처럼 제사 대인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알아서 밖으로 나간 것이었다.

죽통 색상이 둘 다 비슷한 걸로 보아 상경 근처 연산 산자락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였다. 입구를 밀랍으로 봉해 놓은 것도 비슷했고 완벽하게 밀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사이 한 번도 뜯어 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다만 대나무 마디에 새겨져 있는 은밀한 기호는 정보를 전달하는 밀정들만 알 수 있도록 해놓은 표식이었다. 그러니 이 두 개의 극비 서한은 각각 북쪽 계통의 두 개의 독립된 노선에서 온 것이었다.

범한이 죽통을 들고 우선 진지하게 밀봉 상태부터 살폈다. 밀랍 위에는 왕계년이 반령신운이라는 서체로 쓴 것이라 위조가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드디어 마음이 놓인 범한이 죽통을 열어 안에 있던 두 개의 서한을 꺼냈다.

하나는 사리리가, 나머지 하나는 해당타타가 보낸 것이었다. 범한은 해당타타와 편히 연락하기 위해 그녀만을 위한 단일 연락 노선을 만들어 놓은 터였다.

사리리의 서한에는 중요한 정보 같은 건 없었다. 그녀는 범한과 해당타타의 계획대로 천일도에 귀의는 한 상태였지만 입궁하려는 노력은 아직 성과를 보지 못한 중이라고 했다. 북제 상경성에서 심중이 죽고 그의 가문이 망했지만, 이는 황태후 세력에게 큰 타격을 준 것 말고는 그리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건 아니라고도 했다. 상삼호는 계속 집에 감금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서한 말미에 북제 국사 고하가 이미 상경성으로 돌아와 줄곧 폐관(閉關) 중이라고 했다. 그의 행동을 두고 감히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사리리는 그 절대 강자가 분명 다친 거라고 깊게 믿고 있었다.

범한이 잠시 웃었다. 이 세상에 인육을 먹는 괴물과 싸울 만한 사람은 나머지 세 명의 종사 말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해당타타의 서한에서는 그 대종사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물론 범한과 해당타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었으니 그녀가 무언가를 말해 주기를 바란 건 없었다. 다만 그 상서로운 일을 제대로 처리했는지만 궁금했을 뿐이었다.

범한은 생각을 좀 해보다가 붓을 들어 해당타타에게 그때의 약조를 지킬 것을 재촉하는 내용으로 답장을 썼다. 해당타타에게는 매우 쉬운 일이었고 범한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리리에게 쓴 답장에는 다른 내용은 전혀 쓰지 않고 오로지 이청조의 시만 한 수 적어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했다.

사실 1처 일을 처리하는 요 며칠 동안 범한이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범약약과 이홍성의 혼사 문제였다. 그런데 세자의 인품이나 쌍방의 정치적 입장 충돌 여부는 범한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최대 관건은 딱 하나, 바로 ‘누이가 이홍성을 좋아할까?’였다.

범약약은 이미 자신의 태도를 밝혔다. 싫어한다고. 범한에게도 다른 오라비들처럼 청춘기 여성의 종잡을 수 없는 분노를 향해 ‘설마 네가 정말로 시집을 안 가겠어?’라는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범한은 그보다는 뼛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보호 본능이 더 크게 작용했다. 이에 누이가 싫다고 했으니 간단하게 생각해 아예 이 혼사를 깨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범한에게는 경도로 온 후 가장 번거로운 일에 직면한 것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지정한 혼사이니, 서로 어울리는 집안의 자녀들이 맺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혼사를 가지고 무어라 트집을 잡을 여지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 범한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 2 황자 쪽을 주시하면서 시시각각 상대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거기에 이홍성을 연루시켜 그것을 빌미로 혼인을 무른다. 둘째, 동생 범약약의 계획에 따르되, 황제에게 이득이 될 만한 것 중 무시할 수 없는 것을 제시하고 범약약은 잠시 경도에서 떠나 있도록 한다.

전자의 방법은 얼마나 많은 소란이 일지 모를 일이었고, 후자의 방법은 너무 뜬구름 잡는 방법이라 범한도 제대로 할 자신이 없었다.

“한 장군이 공을 세우는 데 만 명의 병졸이 죽어야 한다 했는데 내가 혼사 한 건 깨자고 수많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걸까?”

범한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정말로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 가서는 오죽 아저씨께 누이 범약약을 데리고 천하를 떠돌아다니며 여행이나 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겨우 이까짓 일로 황제 폐하께서는 사남 백작가의 재산을 몰수하고 범씨 일족을 참수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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