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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244화 (244/1,108)

244화

목철이 계속해서 청산유수처럼 말을 이어 가자 1처의 관원들 모두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모든 게 이른바 ‘기풍 바로잡기’ 운동이란 걸 몰랐다. 그들에게 들리는 건 범한 제사가 마음을 정말로 독하게 먹었으니 자신들이 1년 동안 재미를 봐온 걸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만 들렸다. 그리고 또 경도 관리들에게 밉보이는, 위험하지만 영광스러운 일에 다시 몸을 바쳐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이에 1처 관원들의 얼굴에는난처함과 분개의 감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들은 단 한마디의 구시렁거림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 6부 관원들이 지닌 관료풍의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표정 변화는 있을지언정 아주 강한 통제력으로 제자리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진평평 원장이 직접 훈육해 만들어 낸 감찰원, 이곳의 기질과 본질은 언제나 천하에서 가장 견고한 밀정의 부대이기 때문이었다.

목철이 발언을 마쳤다. 그러자 범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미소를 지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지금 나서서 이야기하라.”

하지만 침묵뿐이었다. 감찰원의 일반 밀정과 일반 조사 인원 그리고 범한이라는 행운아 사이에는 거대한 신분 격차가 있었다. 그러니 감히 앞으로 나서서 반박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범한이 빙그레 웃으며 유인책을 썼다.

“지혜란 여러 사람이 함께 모아야 하는 법! 원장 대인께서 내게 1처를 맡기신 건 여기 동료들을 신임했기 때문이네. 본관은 바빠서 일반 관청에서 와달라 청해도 잘 안 간다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범한이 이 말을 마치자 후원에 모여 있던 관원들이 살짝 긴장감을 풀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제사 대인은 웃음 속에 칼을 숨겨 뒀다던데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방은 고귀한 신분에 천하에 이름이 난 큰 인재 아니던가. 어떻게 감찰원이 하는 그런 음습하고 추악한 일에 정통할 수 있으랴. 이에 이들은 잠시 호응만 해주고 나중 일은 나중에 처리하자는 심정으로 속속 허리를 굽혀 절하기 시작했다.

“제사 대인의 명령을 삼가 따르겠나이다.”

범한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해서였다.

가까이 있던 목철은 범한의 눈에 서린 냉기를 보았다. 이에 범한이 부하들이 그다지 충성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며 불만에 차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급해진 목철이 다급하게 바로 앞줄에 서 있는 풍아에게 눈짓을 했다. 풍아는 그와 같은 성을 가진 먼 친척 조카였다.

풍아는 숙부님의 눈짓을 앞에 나서서 반대 의견을 말하라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높디높은 제사 대인을 향해 대놓고 반대 의사를 말할 수 있을까. 풍아는 두려움에 두 다리를 후들후들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숙부님이 지금껏 베풀어 주신 은혜가 생각나자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고는 대열 앞으로 나가 인사를 올렸다.

“제사 대인, 비록 1처의 업무가 경도 백관을 감찰하는 직을 수행하고 있기는 하나, 인정에 의한 왕래는 어쩔 수 없다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친척은 있기 마련입니다. 소인, 손위 처남이 지금 행마 감작사로 있사옵니다. 만약 저와 처남이 평소 왕래를 하지 않는다 해도 괜찮습니다. 하오나 이로 말미암아 처남은 집안에서 사나운 처와 계속 싸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웃기려고 한 말처럼 들렸지만 감히 웃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오늘따라 풍아가 왜 저렇게 간덩이가 부은 짓을 하는지 그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범한은 기뻤지만 낯빛만큼은 여전히 음침하게 유지하며 싸늘하게 꾸짖었다.

“너는 감찰원 조례를 개똥으로 아느냐! 어디서 모욕을 하는 게냐! 세칙만 봐도 나와 있느니라. 3대 이내 친척은 신고 등기 후 예외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한 건 무언가 찜찜한 게 있어서냐? 목철, 당장 네 먼 친척 조카를 끌어내 규율에 따라 처리하라!”

목철이 한숨을 내쉬고는 조카를 끌고 가 애통한 얼굴로 곤장을 쳤다.

범한이 싸늘한 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더 할 말 없느냐?”

모두 범한이 직위로 사람을 찍어 누르는 중인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밀정 중 어느 고집이 센 이가 앞으로 나와 예를 올리고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사 대인, 사건 조사는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만약 높으신 분께서 위협하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황궁의 태감들이 하는 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장은 침묵 그 자체였다. 1처가 사건을 처리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황궁과 관련 있는 관원과 부딪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감찰원이 아무리 강해도 여전히 황궁에서 부리는 졸개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 * *

범한이 평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의 이름을 대거라.”

세 음절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누구든 그대들을 협박하고 괴롭히면 그게 대신이든 권문귀족이든 범한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대라니! 지금의 경도에서 범한에게는 그런 말을 해도 될 만한 충분한 힘이 있었다. 물론 황궁에 있는 그들이 겉으로는 거만하게 굴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실제 상황이 닥친다면 아무리 3품 이상의 관원과 권문세족일지라도 범한이라는 위험한 인물과 부딪치는 걸 피하기 위해 그의 감찰원 부하들을 무시하지 못할 터였다.

왼손에는 감찰원의 권력을 쥐고 오른손에는 천하의 돈을 쥐고 있는데 대체 감히 누가 범한에게 밉보이려 하겠나.

* * *

범한은 조금 전 나선 관원이 살짝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일부러 목철을 압박했는데도 용감하게 나서서 말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범한이 속도를 늦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다른 생각도 있느냐? 죄는 묻지 않을 테니 모두 말해 보아라.”

그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지만 염치 불고하고 더 말했다.

“하관, 개인은 돈과 선물을 받지 않는 건 당연지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1처 명의로 받는 것은 무방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6부와 각 사의 관계가 조금 더 좋아질 수 있고 나중에 조사할 때도 편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1처 명의로 받은 돈과 물건을 나누면 그것 역시 보조금이 될 수 있어서입니다.”

범한은 관원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의 은전을 향한 애착이 너무나도 강해 저도 모르게 냉소를 지었다.

“봉록만 놓고 보면 너희들은 같은 품계의 조정 관료들보다 세 배나 많다. 비록 다른 관원들처럼 외부 수익원을 가질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는 감찰원 건립 초기에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녹봉을 높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건 불만거리로 삼을 게 못 된다!”

줄곧 그 뒤에 서 있던 소문무가 범한 제사와 조금 더 아는 사이란 걸 이용해 과감하게 나섰다.

“감찰원은 지금껏 다른 관원들의 배반과 백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왔습니다. 1처의 처지는 비교적 특수한 편이라 조정에서도 더 많은 도움을 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범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후원에 있는 감찰원 밀정들과 하급 관원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장내에 질식할 것 같은 적막이 흐르자 범한은 그제야 단어마다 힘을 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조정이 그대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대신 그대들이 조정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기를 바란다.”

소문무는 범한의 말에 깜짝 놀라 하려던 말을 먹어 버렸다. 그리고 깊은 뜻이 담긴 말에 부끄러움과 존경심이 동시에 밀려 올라왔다. 그렇다. 1처 관원들은 자기 속궁리만 하고 있으면서 조정이 왜 감찰원을 건립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전 앞으로 나와 말했던 관원도 순간 놀라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오랫동안 감찰원의 교육과 진평평 원장 대인의 훈계를 받아 왔건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처음 감찰원에 발을 들였던 때의 정신 상태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가슴이 뜨거워진 그가 왼손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모든 건 경국을 위해서다!”

“모든 건 경국을 위해서다!”

이는 후원에 있는 모든 이가 감찰원에 첫발을 들인 그날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말이었다.

범한에게서 안도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가볍게 오른 주먹을 쥐고 홀로 속으로 외쳐 보았다.

‘모든 건 삶을 위해서다!’

* * *

우중충한 하늘, 경도 전체가 음침하고 스산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높고 깨끗한 하늘과 산뜻한 공기는 온데간데없고 네댓새 차가운 비만 뿌려 댔다. 빗물은 민가의 기와와 처마에 쌓여 있던 먼지들을 쉴 새 없이 씻어 내 주었고 바닥 석판 역시 어느덧 빗물에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경력 5년 가을의 첫 싸늘한 기운이 이곳을 덮쳤다.

범한은 손바닥을 비비며 신풍관 2층에 앉아 있었다. 시선은 창밖에서 촘촘히 내리고 있는 빗물을 향한 채 길 맞은편에 있는 1처 관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시선을 옮겨 다른 쪽을, 그러니까 대리사라는 관아를 바라보았다. 범한은 1처 관아와 대리사 관아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1처는 너무나도 조용해 보였다. 하지만 드나드는 감찰원 관원들의 낯빛이 침착한 걸 보니 처음에 보았던 모습과는 달라져 있는 것 같았다.

기풍 바로잡기가 시행된 지 이미 며칠이 지난 시점. 물론 범한은 몇 마디 구호 제창만으로는, 감찰원 조례를 다시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감찰원 관원들의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에 아무도 모르게 관원들이 자기 성찰과 자기 개선을 하고 있는지 계속 살펴보았고, 일부 관원들은 가차 없이 잘라 버렸다. 또한 일부 관원들은 7처로 보내 심문을 받게 했다. 그러자 1처 전체의 기풍이 드디어 효과적인 반전을 이루었다. 마치 정밀한 기계처럼 1처 관아가 유효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범한은 1처 내에 있는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에 목철이 방 하나를 비우고 통째로 내주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대신 1처 대문을 나서서 경도에서도 유명한 신풍관 2층으로 갔고 그곳에서 거리가 보이는 방을 하나 빌렸다. 그리고 매일 그곳으로 올라가 간식이나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범한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1처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곧장 처리할 수 있어서였다.

탁자에 찜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대략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의 찜기 안에는 왕만두가 딱 하나 들어 있었다. 이 왕만두에는 소가 잔뜩 들어 있었고 만두피를 여민 곳에는 모두 열여덟 개의 주름이 만들어져 있었다. 작지 않은 크기에다가 새하얀 피 안에 맛있는 즙까지 풍성하게 담겨 있어 보기만 해도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범한이 왕만두 위로 가볍게 입바람을 불었다. 그런 후 만두피에서 주름이 한데 모인 곳, 그러니까 만두를 여며 놓은 용안(龍顔)이라 불리는 한가운데에 젓가락을 대고 피를 벌리자 안에서 신선한 육즙이 흘러나왔다.

범한이 밀짚 대롱을 들고 고개를 갸우뚱한 채 물었다.

“대롱으로 마셔야 하나?”

“델 수 있습니다.”

[원문은 “탕(湯)부터 마셔야 하나요?”/“뜨겁습니다(燙: 데울, 뜨거울 탕)!”로 말장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범한이 다음에 웃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를 돕고자 설명을 덧붙입니다.]

일꾼이 대롱을 줘놓고 질문을 잘못 알아듣고 덴다고 하자 범한은 순간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젓가락으로 용안 부분을 인정사정없이 벌렸다. 안쪽에는 조금 전 흘러넘쳤던 즙과 더불어 맛난 고기소가 담겨 있었다. 범한이 작은 접시로 받치며 고기소를 꺼낸 후 다시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의 그릇에 담아 주었다. 그런 후 아첨하듯 말했다.

“대보는 제일 착한 사람이니 고기가 너무 뜨거우면 안 돼요. 그러니까 먹을 때 여러 번 입바람을 불어서 식혀야 해요.”

대보는 말을 참 잘 들었다. 양 볼을 볼록하게 부풀리더니 그릇에 놓인 고기에 열심히 입바람을 불었다.

“후! 후! 후!”

장인 임약보가 사직해 낙향하자 그가 살던 저택은 한산하고 쓸쓸해졌다. 이에 범한이 북제에 있는 동안 대보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남 백작가에서 보냈다. 그런데 범한은 집으로 돌아와 며칠이 지나도록 대보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이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임완아에게 물어보니 그가 귀국했을 때를 생각해 임대보를 원래 살던 저택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했다.

범한은 기분이 조금 나빴다. 자기 체면을 생각해서 사람들이 임대보를 괴롭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임약보 전 재상의 저택이자 임씨 가문 저택인 곳에 있는 종들은 교활하게 나쁜 짓 하는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곳에서 임완아의 먼 친척 형제들이 임대보를 돌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범한으로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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