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구금되어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없었다. 그리고 금의위에 에워싸인 마차 한 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 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금의위는 자신들의 시조인 소은이 더 이상 과거처럼 용맹함을 발휘할 수 없는 노인임을 그리고 그런 그가 이 마차 안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한데 마차 위에 무언가가 붙어 있었는지 별안간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어찌나 맹렬한지 잠깐 사이 마차 전체를 휘감아 버릴 정도였다. 앞쪽에 있던 말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소리조차 낼 수 없게 되자 말은 마차를 매단 채 앞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그 순간 칼이 번쩍였다. 두 마리 말이 그대로 주저앉더니 두 번 턱턱,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말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심중은 싸늘한 눈빛으로 불길에 휩싸인 마차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소원병 부지휘사가 대인을 한번 쓱 보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대인, 얼른 불을 끄셔야 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소은을 살리라 하셨습니다.”
심중이 슬며시 웃으며 손을 휘휘 휘두르며 불을 끄려는 부하들의 행동을 말렸다. 그러고는 소원병을 자기 곁으로 불러들인 후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한데 황태후께서는 소은이 죽기를 바라신다네.”
소원병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앞서 자신이 한 말이 조금 섣부른 언행이었음을 알아차려서였다. 곧이어 그는 심중의 눈빛에 이상한 기색이 나타나는 걸 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심중 대인이 작게 혼잣말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 오래 갇혀 있었으니 벗어나지 못할 바에야 죽음이라…… 어쩌면 괜찮은 선택일 수도 있겠군.”
불길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그리고 잠시 후 마차가 길 위로 무너져 내리면서 검은 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센 열기는 금의위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불길이 사그라지자마자 금의위 소속 검시관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마차 안에 있는 시체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보고했다.
“소은이 맞습니다.”
심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다리에 있는 상처는 새로 생긴 것인가?”
“네. 두 달 이내에 생긴 것입니다.”
“치아는?”
“무도하강에서 인계받을 때 기록한 것과 일치합니다. 세 개가 없습니다.”
심중은 살짝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은이 이렇게 죽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의 미소는 조금은 기괴했고 조금은 냉담해 보였다.
* * *
상삼호는 성 남쪽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에서 부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옆에 있는 찻상 위에는 선물 명단이 놓여 있었다. 안채에서도 아득하기는 했지만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기는 했다. 상삼호의 부인이 미간에 살짝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나으리, 황태후마마의 생신이니 며칠 동안은 상경을 떠나시지 못합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평소 같으면 이맘때 저택 안은 분명 평온했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은 부인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상삼호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못 떠나겠지요.”
“이번 생신 때 드릴 선물은…….”
부인이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제대로 챙기지 못했겠군요. 부인, 가서 짐이나 싸세요.”
부부가 말을 나누고 있는 사이 갑자기 기골이 장대한 장수가 빠른 걸음으로 안채로 들어왔다. 부인은 그가 총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측근인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새벽이 다 된 시간에 말도 없이 불쑥 들어오자 자신의 불길한 생각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이에 살짝 당황한 그녀가 상삼호를 잠깐 바라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하셨습니까?”
상삼호는 성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위엄 있게 시커멓고 굵은 송충이 눈썹을 날카롭게 치켜세우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 장군은 조정에 충성해 왔어요. 한데 일이란 건 어쨌든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으니 내가 다소 제멋대로군 건 윤허해 줘야 할 겁니다.”
그러자 부인은 군말하지 않고 조용히 뒤편에 있는 방으로 물러갔다. 그러고는 다시는 황태후의 생신 선물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총독님, 저택 밖에 감시하는 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상삼호의 최측근들은 그를 대장군이 아닌 총독이라고 고집스레 부르고 있었다. 지금 말한 사내는 원래 성씨가 없는 고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상삼호가 그를 눈 덮인 숲에서 데려와 이만큼 키워 주고는 ‘상삼’이라는 자신의 성씨를 붙여 주고 이름도 ‘파’라고 지어 주었다. 그러니 그와 상삼호와의 관계는 상삼호와 소은의 관계와 비슷했다. 차이라면 상삼파는 상삼호에게 친근감보다는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소식을 기다려 보자꾸나.”
상삼호는 차분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굴에도 차분함만 있을 뿐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상삼파는 명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바깥 동정을 살피는 동시에 후속 대책을 준비했다.
* * *
한참 후 상삼파가 다시 안채로 돌아오더니 무릎을 세우고 바닥에 꿇어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패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가려지지 않는 슬픔이 그의 목소리를 뚫고 흘러나왔다.
의자 팔걸이 위에 올려 두었던 오른손이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상삼호는 이내 두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런데 어찌나 힘을 주어 감았는지 눈가에 명장의 실제 나이를 고스란히 알려 주는 국화꽃 같은 주름이 피어났다.
그는 뒤편에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침대 옆에 불안하게 앉아 있는 처를 바라보며 잠시 웃고는 말했다.
“이미 늦은 시간입니다. 왜 아직 자지 않고 있어요?”
부인이 살짝 불안한 미소를 띠었다.
“잠이 오지 않네요.”
그러자 상삼호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상경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며칠 뒤 입궁해서 황태후마마께 어떤 선물을 드릴지나 상의해 봅시다.”
* * *
여명이 밝아 오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 난잡하게 어질러진 작은 뜰은 정리에 들어갔다. 주변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던 금의위 역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조용히 흩어졌다. 불타 재가 된 마차와 땅에 있던 시신의 머리는 이미 진무사의 전문 요원들이 맡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후 이곳은 다시 안정을 찾았다. 제국의 강대한 조직에게는 경천동지할 굉음 사건을 덮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었다.
담벼락 쪽에 있다가 다친 금의위는 아직 바닥에 누워 가끔씩 잠긴 소리로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다. 폭발로 인한 결과는 실로 처참했다. 대부분이 죽었으며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리가 거의 끝나고 안정을 찾았을 무렵 누군가가 다친 금의위를 들어 올려 북쪽 성 방향에 있는 관아로 향했다. 의원들도 긴장한 채 그 뒤를 따랐고 들것들은 지네처럼 가느다랗게 대열을 이룬 채 앞으로 나아갔다.
범한은 여전히 조심스레 나무 위에 매복해 있었다. 그동안 그는 온몸의 근육을 꽉 경직시켰다가 이완시켰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나무에 매달려 있느라 반응이 느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범한은 골목을 지나고 있는 들것에 실린 부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전생에 영화 <양들의 침묵>과 <레옹>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저 노인이 도망가고 있는데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무 아래 전쟁터는 이미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금의위는 마차로 옥천하강의 강물을 떠다가 커다란 들통으로 물을 부어 가며 거리를 닦기 시작했다. 그러자 재와 핏자국은 순식간에 깨끗하게 씻겨 나가고 물기를 머금어 축축한 석판 바닥만이 남았다.
주위에서는 온통 금의위가 망을 보고 있었고 관련 관아에서는 각각의 민가를 상대로 입막음에 들어갔다. 이에 세 갈래 길로 난 골목에는 다른 수상한 움직임이 없었다. 뚫린 벽도 임시로 보수되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진무사는 최대한 빨리 이 구역을 원래 모양대로 돌려놔야 하는 것이었다.
황궁에서는 이 사건을 들추려 하지 않았다. 담무 등 몇 명이 장렬히 자결했으니 상삼호를 모함하는 것도 이제는 조금 어려운 일이 된 터였다. 게다가 군 측의 태도도 고려해야 했으므로 일단은 한동안 이 사건을 덮어 두려 했다.
짹짹, 새벽을 알리는 새소리가 들리자 금의위들은 고개를 들고 아직 어둑어둑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새가 너무 일찍 일어났는데 저 녀석들도 여기에서 무슨 일이 터졌던 걸 아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 * *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범한은 관자놀이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냈다. 그리고 불면증 걸린 새의 울음소리에 속으로 투덜거리며 조심스럽게 여명이 밝아 오기 전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런 후 멀찌감치 떨어져서 부상자를 옮기기 위해 북쪽으로 이동 중인 금의위의 대열을 따라갔다.
길게 이어진 길에는 행인도, 전생에서처럼 길거리에 빗자루질하는 소리도 없었다. 범한은 거리 쪽에 있는 2층 높이의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누구도 자신의 종적을 발견하지 못할 거라 믿고 있었다.
들것을 든 사람들은 아주 멀리 이동한 후 다른 뜰 안으로 들어갔다. 한데 이곳이 북 진무사인지 아니면 13관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부상자들은 방 몇 칸에 나뉘어 들어가 치료를 기다렸고 피 묻은 옷을 입고 있는 의원 몇 명이 이 방 저 방을 바삐 드나들었다.
범한은 우회해 뒤쪽으로 다가가 담벼락 모퉁이 아래 놓인 여러 개의 대광주리 뒤편에 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석에 있는 방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범한의 귀에는 똑똑히 들려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호흡을 가다듬더니 방에서 느릿하게 기어 내려왔다. 그 사람은 바닥으로 내려온 후 조심스럽게 자신의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그리고 요패를 확인하고는 서쪽 거리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범한은 금의위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모자로 머리를 꽁꽁 감싼 상태였지만 새하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삐져나와 흩날리고 있었다. 느릿한 발걸음에 맞춰 살짝 나부끼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밤바람에 더욱 처량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금의위 옷을 입은 자가 점점 멀어져 가는 동안 범한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싸늘한 눈빛만 살짝 드러내고 있었다. 상대방은 조금 이상한 걸음걸이로 길을 걷고 있었고, 이로써 범한은 자기 때문에 부러진 늙은 동지의 두 다리가 아직 제대로 낫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범한은 계속 따라갔다. 두 사람은 길게 뻗은 조용한 길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갔다. 길 입구마다 지키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소은은 입고 있는 금의위 옷과 방에서 사람을 죽여 빼앗은 요패 덕분에 아슬아슬하긴 해도 무탈하게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범한도 어둠 속으로 사라진 유령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를 뒤따르며 가볍게 관문들을 뚫고 지나갔다.
그러던 중 소은이 어느 평범한 민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자 그 뒤편에서는 범한은 다른 평범한 민가의 옥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런 후 두 사람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날이 더 밝아 오기 전에 금의위가 포진되어 있는 거대한 망을 뚫고 상경성 서쪽 문 앞까지 이동했다.
* * *
성문이 열리자 문밖에서 벌써 반 시진 동안 기다리고 있던 농민들이 마을 이장들이 내준 통행증을 건네며 밀려 들어왔다. 그러자 소은은 이 난리를 틈타 농민들 사이에 섞여 높이 솟아 있는 성문 담벼락 밖으로 나갔다. 그로부터 잠시 후, 이 난리에서도 살아남은 노인은 어렵사리 상경성 서쪽에 위치한 연산 산자락에 도착해 있었다. 이곳은 수풀이 어지럽게 우거진 곳이었다.
범한은 멀리서 그를 쫓고 있었고 예리한 두 눈으로 앞에서 나아가고 있는 늙은 동지의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소은이 낡아 빠진 옷으로 갈아입고 산에서 나왔다. 옷자락에는 시골 노인처럼 부뚜막 그을음이 검게 묻어 있었다. 등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땔감을 지고 있었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기 시작할 때였다. 태양이 조용한 숲을 비추기 시작하자 잠깐 사이에 엷은 안개가 걷히고 한없이 깨끗하고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소은의 모습은 아침 일찍 부지런하게 땔감을 구하러 온 늙은 농민처럼 보였다. 조금도 스무 해 전에 천하를 호령하던 밀정 우두머리처럼 보이지 않았다.
범한은 차분하게 나무 위에 앉아 소은의 구부정한 몸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걸 냉랭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 소은은 늙고 신체 기능도 예전보다 못하며 머리 회전도 조금 떨어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침 이슬도 마르지 않은 이른 새벽에 대체 누가 땔감을 구하러 온다는 걸까. 진짜 농민이라면 땔감을 구하러 산에 들어가는 때는 저녁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