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여년-58화 (58/1,108)

058화 치열한 공방

관차가 공손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습니까?"

유씨 부인이 태연하게 말했다.

"범 공자가 폭행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할 수 없어요. 이건 없던 일이에요."

그러자 범한도 한마디 보탰다.

"맞아요. 저는 그런 일을 벌인 적이 없습니다."

유씨 부인이 이어 말했다.

"상서가에서 왜 우리 집안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려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러자 범한이 깊이 고민하는 척하며 말했다.

"며칠 전에 식당에서 갈등이 일어나 곽 공자에게 창피를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잘못한 일이지요."

유씨 부인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식당에서의 일이야 범 공자가 잘못한 거지. 하지만······ 설마 그것 때문에 곽 공자가 앙심을 품고 모함한다는 말인가?"

범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관차가 쓴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의 대화를 끊고 말했다.

"죄송하지만 상서가에서 제출한 소장에는 오히려 범 공자가 그 일로 앙심을 품고 어젯밤에 거리에서 폭행한 거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자 유씨 부인이 범한에게 물었다.

"식당에서 충돌이 어떻게 끝났지?"

"제가 상서가 호위병의 코를 부러뜨렸습니다."

범한이 자책하며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다른 일은 없었나?"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려 있어 지고 싶지 않아 그런 일을 저지른 것뿐입니다."

유씨 부인이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돌려 관차를 바라보았다.

"들었지요? 우리 범 공자가 앙심을 품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관차는 자신이 공당에 있는 소송 대리인을 대신에 상서가를 변호하는 처지가 되어 버리자 당황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그에게 유씨 부인이 은근슬쩍 은전을 쥐여 줬다. 그러고는 단호한 눈빛으로 관차를 바라봤다.

명문가 안주인으로서 갖춰야 할 자만과 기품을 뽐내며 유씨 부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도 경도부를 난처하게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갈 수는 없어요. 먼저 돌아가셔서 매 대인에게 곽 공자가 공당에 오면 저희 범 공자도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말하세요."

체포하지도 못한 채 은전을 받고 돌아갈 처지가 되자 관차가 다시 뭐라 말하려 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동료가 막으며 방법이 없으니 일단 물러가자고 설득했다.

관차들이 떠나자 백작가는 이전의 평화를 되찾았다. 응접실에는 유씨 부인과 범한만 남아 있었다. 범한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유씨 부인을 바라봤다.

오늘 유씨 부인의 일 처리 솜씨를 본 그는 속으로 서로 적이 아니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백작가는 대가문이긴 하지만 아버지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일을 처리하는 건 쉽지 않았다. 더구나 상서가 외동아들을 공격한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씨 부인은 혼자서 핵심을 조목조목 따지며 명확하게 일을 처리했다.

차를 마시던 유씨 부인이 담담히 물었다.

"왜 그런 일을 벌인 거지?"

범한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최대한 빨리 경도에서 이름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를 쓰는 것보다는 상서가와 소송을 하는 것이 더 빨리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리한 것입니다."

이건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때리더라도 신분은 드러내지 말았어야지. 일이 커지면 어떻게 하려고."

유씨 부인이 화가 난 말투로 말하자 범한이 공손히 답했다.

"이름을 알리고 싶어 그런 것인데, 맞는 사람에게 제 이름을 알리지 않으면 어떻게 이름을 날릴 수 있겠습니까?"

유씨 부인이 힐끔 바라봤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준수한 청년이 자기 아들보다 나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철없이 행동하지만 항상 기개와 침착함을 잃지 않는 범한을 보니 비범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씨 부인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범한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새어머니께서는 왜 저를 도와주신 건가요?"

범한의 직설적인 질문에 놀랐는지 유씨 부인이 고개를 들어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말했다.

"나는 비록 성은 유씨지만 백작가 사람이야."

범한은 그 말이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라는 걸 알았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응접실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 * *

"이미 사람을 시켜 매 대인에게 편지를 보내 두었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아마 사남 백작께서도 소식을 들으셨을 거야.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은전 몇 냥을 보상하는 것으로 끝나겠지."

잠시 뒤 유씨 부인이 피곤한 듯 눈을 감으며 말했다.

"오후에 집사와 함께 경도부로 가도록 해. 등자경은 어젯밤에 너와 함께 다녔으니 오늘 같이 가면 괜히 이목을 끌 수 있으니까 여기 있게 하고."

범한이 유씨 부인의 아름다운 뺨을 바라봤다. 그는 집안 배경도 좋고 능력도 있는 그녀가 왜 자신의 아버지와 혼인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정오가 지나자 백작가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쳐 놓았다. 뇌물을 줘야 할 곳에는 뇌물을 줬고 동원해야 하는 인맥은 모두 동원한 상태였다.

종을 보내 곽보곤이 들것에 실려 공당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지자 유씨 부인이 마차를 준비시켰다. 그러고는 사람을 불러 모아 범한의 마차를 빙 둘러싸게 해서 마치 승리한 장군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관아로 가게 했다.

마차에 앉은 범한은 공당에 가는 일이 걱정되지 않았다. 다만 경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말썽을 일으켰기에 사건을 수습하기가 힘들 거라는 걱정은 있었다. 처음 곽보곤을 혼내 줘야겠다고 생각한 건 범약약에게 심상치 않은 추파를 던질 때였다. 이후 고민하던 그는 정왕가 시 모임에서 모욕을 받자 결심을 굳혔다.

더구나 곽보곤을 때림으로써 자신의 원하는 효과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먼저 조정에서 사남 백작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사남 백작은 항상 은밀하게 일을 진행했기에 그는 아버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직접 물어본다고 해도 사남 백작의 성격상 속 시원한 대답을 해줄 리 없었다. 그래서 범한은 이번 사건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다음으로 이 사건을 통해 경도 사람에게 백작가 서자가 망나니라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황실도 자신을 안 좋게 볼 것이다. 훌륭한 인재로 소문이 나 황실의 환심을 사기를 원하는 사남 백작의 바람과 달리 나쁜 소문이 퍼진다면 황실에서 파혼을 단행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닭 다리를 뜯던 여인과 혼인할 수도 있었다.

물론 곽보곤을 정말 때리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마차가 경도부에 이르자 범한은 붉은색 나무 울타리 밖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걸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종들이 밀치며 길을 텄지만 흥분한 사람들을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도착한 공당 안에는 재판에 사용하는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뒤에 있는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동해 일출 그림과 벽에 세워진 고문 기구들이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사건을 구경하려 몰려온 사람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었다. 일찌감치 붉은색 나무 울타리 앞을 차지하고 앉은 사람도 보였다.

그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범한이 자신과 함께 온 백작가 문객, 정탁에게 물어봤다. 정탁은 오래전에 강남 일대를 휩쓸었던 유명한 법률 고문이고 현재 경도 부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그래서 유씨 부인이 이 사건의 적임자로 그를 범한과 함께 보낸 것이었다.

범한이 사람들이 모인 이유를 묻자 정탁이 웃으며 설명했다.

"오늘처럼 상서가와 백작가가 소송하는 건 보기 드문 광경이니 모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거지요."

범한은 자신의 소송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 왔다. 고개를 젓고 있는 그에게 정탁이 조용히 물었다.

"도련님, 비록 백작가에서 미리 손을 써두었지만 그래도 제가 마지막으로 한번 여쭙겠습니다. 정말 곽 공자를 폭행하셨습니까? 부윤 대인 앞에서는 부인하셔야 하지만 저에게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도련님을 변호해 드릴 수 있습니다."

범한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정 선생님을 속이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정말 곽 공자를 때린 적이 없습니다."

범한이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본 정탁이 감탄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잠시 뒤 안에서 범한이 궁금해하던 명성이 자자한 매집례가 나와 앉았다. 그리고 얼마 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미라와 함께 상서가 변호인이 종이부채를 흔들며 나왔다.

미라를 본 범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부하들이 저렇게까지 심하게 때렸나 생각했다. 분명 동정심을 얻기 위해 과장한 게 틀림없었다.

미라는 바로 어젯밤에 구타를 당한 곽보곤이었다. 그는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콧등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의원에게 치료를 받아도 소용없었다. 사실 범한이 마지막 일격 때 사용한 정기는 다른 정기와 다르게 난폭해서 단시간 내에 나을 수 없었다.

범한은 곽보곤 앞에서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붕대 사이로 드러난 곽보곤의 두 눈이 당장이라도 씹어 먹고 싶다는 듯이 그를 노려봤다.

범한은 곽보곤의 살기등등한 눈빛은 무시하고 옆에서 한가롭게 부채를 흔들고 있는 변호인을 바라봤다. 그가 정탁에게 누구냐고 나지막이 물었다. 상서가 변호인으로 온 사람은 경도에서 명성이 자자한 송세인이었다. 주로 고관대작들의 사건을 처리해 주기 때문에 ‘비싼 입’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높은 자리에 앉은 경도 부윤 매집례가 경당목을 쳤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리자 왁자지껄하던 공당 안과 밖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몰려 있던 구경꾼들은 재미난 구경을 망치고 싶지 않은지 입을 다물고 공당을 바라봤다.

"모두 온 건가?"

매집례가 느긋하게 물었다. 이미 양측이 모두 참석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사건을 어떻게 끝낼지에 대한 계획도 있었지만 일단은 규정에 따라 진행해야 했다. 그가 위엄 있는 눈빛으로 공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누구든 경도부 관아에 온 이상 내 말을 들어야 할 거다.’

매집례의 질문에 공당에 있는 원고와 피고가 차례로 대답하자 송세인이 소장을 건넸다. 매집례는 힐끗 보는 척하다가 소장을 정탁에게 넘겨준 뒤 범한을 한번 바라봤다. 정탁이 가져온 소장을 살펴보던 범한은 자신의 예상과 차이가 없자 고개를 끄덕인 뒤 소장을 돌려줬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송세인이 두 손을 맞잡아 인사한 뒤 말했다.

"저는 어떻게 백작가 범 공자가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서 있을 수 있는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예를 취하지도 않고 공손히 절하지도 않는 품행을 보니 어젯밤의 참혹한 사건이 일어난 이유도 이해가 갑니다."

범한이 송세인에게 물었다.

"공당에서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해야 합니까?"

범한은 담주에서 경국 법률을 공부했으므로 일부러 물어본 말이었다.

"당연하지요. 범 공자는 조정을 무시하려는 겁니까?"

송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범한을 바라봤다. 사실 송세인은 이번 소송을 맡고 싶지 않았다. 비록 앞에 서 있는 범한에게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는 백작가가 가진 힘이 무서웠다. 하지만 상서가와 인연이 깊었기에 사건을 거절할 수 없었다.

범한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송 선생께서는 왜 무릎을 꿇지 않으십니까?"

눈을 가늘게 뜨고 범한을 바라보던 송세인은 그가 소심한 겁쟁이일 거라 짐작하고는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에 합격해 공명을 받은 사람은 관아에서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 조정의 상례입니다."

그러자 범한이 부윤 매집례에게 손을 맞잡아 인사하며 말했다.

"수재도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요?"

송세인이 범한의 말을 듣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상서가에서 조사를 했을 때는 범한이 원시에 참여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왔는데 어떻게 수재란 말인가. 그가 부채를 흔들며 물었다.

"제가 여쭙겠습니다. 범 공자께서는 언제 원시에 응시하셨습니까?"

범한이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작년 담주에서 시험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경도에 오기 전에 사남 백작이 사람들을 보내서 시킨 일이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따랐던 범한은 오늘에서야 이유를 알고는 아버지의 철두철미함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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