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화 감찰원
경도에서 전국의 정무를 처리하는 각부 관아는 대부분 천하대도(天河大道)라는 도로 동쪽 지역에 몰려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거주하는 백성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천하대도는 유난히 탁 트이고 널따란 도로였다. 그리고 이 도로 양측에는 목조로 된 아름다운 건축물, 성대한 건축물이 늘어서 있었다. 이들 건축물 내부는 바로 전국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분산된 중심지였다. 예를 들어 도로 입구에 들어선 옛 군부(軍部)가 그러했다. 군부 입구에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수사자 석상이 놓여 있었다. 이 석상은 태양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치켜세운 채 쏟아지는 햇살을 정면으로 맞고 있었다. 본래는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하려 한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선사 시대의 거대한 괴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괴이한 느낌을 자아내 경국 군대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 주지는 못했다.
경국 권력의 진짜 중심지는 성 북쪽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황궁의 높이는 하늘 높이 솟은 요망탑(嘹望塔) 말고는 그 어떤 관아보다도 높았다. 하지만 두껍게 둘러쳐진 궁궐 담벼락과 그 안에 드넓게 들어선 광장과 어우러져 대단히 신성한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경국 관리들은 황궁에 기거하는 출중한 재능과 웅대한 계획을 지닌 황제께서는 관리들과 관련된 소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장 무섭고 가장 큰 권한을 휘두른 권력 기관은 따로 있었다. 그곳은 다른 어떤 관아도 황궁도 아닌, 성 서쪽에 위치한 네모반듯한 건물 안에 있었다. 외벽이 회흑색으로 칠해져 있어 보기만 해도 음산하고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건축물 안에 말이다.
바로 이곳에 감찰원이 들어서 있었다. 경국은 3원 6부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3원은 감찰원, 교육원, 그리고 옛 군부가 승격되어 만들어진 군사원이었다. 이 3원 가운데 가장 큰 권력을 지닌 기관이 바로 감찰원이었다. 감찰원은 독립된 수사권과 체포권이 있으며, 심지어 일부 사건에 관해서는 황제의 명을 받아 심판권도 가졌다. 게다가 그 어떤 기관도 감찰원을 관리 감독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감찰원은 그야말로 줄에 매이지 않은 풀어 놓은 맹수와 같았으며, 황제가 쥐고 흔드는 특수한 비밀 기관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 감찰원은 원래 황제가 공공연히 이용하는 특무 기관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경국의 관리들은 항상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관리들이 보기에 이번 황제는 감찰원의 음험한 진 원장과 무수한 밀정들, 그리고 암암리에 활약하는 무서운 실력자들을 휘어잡은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리들은 대체 누가 과연 어떻게 이 맹수의 목에 끈을 묶고 통제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황제의 실력이 이 정도로 막강하다 보니 관리들은 감찰원으로부터 온갖 수모와 고초를 당하고도 속으로만 ‘감찰원은 맹수가 아니고 음험하고 비열한 들개다.’라고 되뇌기만 할 뿐이었다.
이 순간, 빛이 단 한 점도 새어 들어가지 않는 감찰원 방 안에서는 매우 비밀스러운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담주 항구 방화 현장에서 발견된 자객은 분명 감찰원에서 보낸 자였습니다. 관할지는 동산로였습니다. 타지에 있는 조직의 사무는 원래 4처에서 책임지고 있습니다만, 내무부 조사 내용을 보니 제4처의 한 관원이 대인 댁 두 번째 부인과 먼 친척 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임무는 그리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개가 감찰원 원장을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신분은?"
노인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이었다.
가느다랗게 뜬 눈 사이로 보이는 비개의 연갈색 눈동자에는 전혀 확신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런데도 비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사건을 알고 있는 여덟 명 가운데 누설할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오죽 대인이 아가씨의 측근이기는 하나 당시에는 외부에 실력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고, 요즘 들어서는 그분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오죽 대인과 유일하게 일면식이 있는 섭류운 대인도 지금은 1대 종사의 신분이기 때문에 여행차 담주에 갔다가 두 분이 우연히 다시 만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겁니다. 그러니 오죽 대인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의 신분을 알아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원장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뼈마디가 불거진 앙상한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날 밤 오죽을 본 검은 기사들을 자네에게 모조리 없애라 했었지. 하지만 자네는 살려 주자고 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아니었어."
비개가 씩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독약에 과하게 노출되어 엷은 갈색으로 변한 눈동자에서 잠시 기이한 빛이 번뜩였다.
"그날 밤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비개는 적어도 겉보기에는 자기 앞에 있는 벼슬이 높은 권력자 노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분과 경력을 이 노인이 쥐고 있는데도 말이다. 비개가 웃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필요 없는 살육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옛날에 아가씨께서 하신 말씀인데 벌써 잊으셨습니까?"
"그랬지!"
마치 지난날 즐거웠던 일들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노인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매우 음산한 지령이 실려 있었다.
"동산로는 4처의 명을 받아 움직이고 문서상으로는 모두 서명을 받았을 터이니 절차는 모두 다 밟은 셈이지. 그러니 동산로 쪽에는 이번 일과 관련해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어. 나머지 사람들이나 알아서 처리해야겠어."
노인은 미소 띤 채 계속 중얼거렸다.
"내가 보호해야 할 사람인데 도리어 내가 가진 권력을 동원해 죽여야 하다니. 단순한 우연인 건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떠보고 있는 건가. 이제 보니 그 두 번째 부인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어!"
노인이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4처의 언약해가 관리 감독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서명을 남발하더니, 결국 제 자식까지 죽이는 멍청한 짓을 한 거군! 3년 치 녹봉을 감봉당한 것도 모자라 큰아들마저 타지로 보내게 만들다니. 언빙운인가 하는 자가 북방으로 내쳐진 바람에 직책이 높은 녀석만 돌아오게 됐어."
말을 마친 감찰원 원장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문서를 집어 들었다. 내무부에서 이미 준비해 둔 것이었다. 그는 문서에 최종적인 결론을 기입하고 자신의 이름 석 자, ‘진평평’을 적어 넣었다.
비개는 원장이 무미건조하게 서명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알기에 이번에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아 냈다. 원장의 필체는 겉보기에는 무척 여성스럽고 우아해 보였다. 하지만 서명한 문서의 내용은 살벌하기 그지없어 몇몇 고위 관료들은 이제 곧 죽음으로 내몰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들보다 훨씬 더 높은 관리의 아들은 적국으로 잠입해 들어가 유난히 가치 있는 정보를 캐내지 않는 한 절대 돌아올 수 없는, 죽는 것보다 더 처참한 신세로 살아가게 될 게 뻔했다.
노인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범건 때문에 이제 와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될 줄이야. 비개 자네는 유능한 자를 뽑아 그 두 번째 부인과 그자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조사하도록 하게."
범건은 사남 백작의 본명으로 바로 범한의 아버지였다.
비개가 미간을 찌푸렸다. 연갈색 눈빛이 살짝 떨렸다.
"안 됩니다. 그들은 그 아기가 이미 죽은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내 뜻을 오해했구나. 내 생각에도 그들은 범한이 아가씨의 아들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어."
원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황제 폐하께서는 우리에게 귀족, 문관과 거리를 유지하라고 늘 당부하셨네. 그때 비개 자네를 매우 은밀히 담주로 파견하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발각되었을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어. 태후도 재상도 우리 감찰원과 사남 백작과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것 같아.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세력들도 두 번째 부인의 손을 빌려 우리와 범 대인이 이번 일에 반응할지 떠보고 있는 것 같아. 어찌 보면 전부 당연한 거야. 그러니 우리가 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겠지. 알겠는가?"
이 순간 비개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감찰원 원장 대인이 담주에서 벌어진 자객 살인 사건을 고의로 소문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 * *
노인이 바퀴 달린 의자를 밀며 창문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창문을 가리고 있는 검은 장막의 한 귀퉁이를 잡고 들어 올렸다. 그가 밖을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상자에 관련해서는 오죽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는지는 중요치 않네. 북방에 있는 적의 손에 들어가지만 않았으면 그걸로 된 걸세."
"아쉽게도 우리 쪽에서는 상자의 크기며 모양에 관한 정보가 없습니다."
비개는 이내 감찰원 원장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노인이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내가 지옥으로 떨어지면 속히 따라와 나와 함께 마작이나 둬 주게나."
진평평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
비개는 원장 대인이 늙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아직 창창한 나이의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웃으며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근데 저는 착한 사람이라 나중에 하늘나라로 갈 겁니다."
그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밀실 한쪽 구석에서 마치 바람처럼 나타나더니 검은 장막을 아래로 당겨 강한 햇빛이 노인의 몸을 비추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자는 움직일 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바로 수년 전 지장법사를 단칼에 벤 고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개가 그 검은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원장 대인과 바둑을 두러 오셨나 봅니다."
* * *
창밖 세상은 햇살이 찬란히 쏟아지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황궁의 유리 기와도 햇빛을 받아 투명한 금빛으로 반짝였다.
하지만 감찰원 창문 앞 도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건물 맞은편 방향으로 붙어 걸어갔다. 마치 이곳의 어둡고 음습하고 기운이 자신에게 들러붙을까 염려하는 것 같았다.
감찰원 문 앞에는 돌을 쌓아 만든 널따란 비석이 있었다. 그 위에는 황금으로 칠해 놓은 글귀가 있었다.
‘나는 경국의 모든 백성이 속박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타인이 학대당할 때 굴복하지 않고, 재난과 악의 침략을 받았을 때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된 일이 있다면 두려워 말고 그것을 바로 잡고자 하는 마음을 지니기 바란다. 흉포한 도적들에게 아첨하지 않고······.’
낙관에는 ‘섭경미’라는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섭경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경도의 모든 주민은 다음과 같은 사실만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감찰원이 건립될 때 함께 세워진 이 비석은 영원히 황금빛으로 반짝일 것이며, 저 멀리 보이는 황궁의 금빛 기와들과 함께 빛나리란 것을 말이다. 감찰원과 황궁 안의 모든 어둠을 감춰 버릴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