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74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이 사라졌다.
더 월드의 시스템 역시 폐기되어 더 이상 헌터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로써 던전의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려 본래 자본주의 시대로 회귀했다.
화려한 삶을 살았던 헌터들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반정부 세력이 되어 범죄에 가담하였다.
하지만 협회장 한선우의 선제적인 대응으로 인하여 범죄율은 급격히 하락했고 신수들의 활약에 의해 범죄자들의 강도 사건들은 빠르게 진압되었다.
덕분에 현재 범죄율은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었고 파천 길드의 주도 아래 움직이는 수사팀은 범죄 헌터들을 잡기 위해 추적 중에 있었다.
S급 헌터 최우현은 TV에서 파천 길드가 범죄 헌터를 잡기 위해 파견한 수사팀에 대해 보도 중인 걸 보고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최우현은 수사팀을 피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서울시 외곽의 폐공장에 숨어들었다.
낡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최우현은 담배를 뻑뻑 피웠다.
이대로라면 촘촘한 수사망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어떻게든 항구까지 가서 배를 타고 해외로 넘어가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빌어먹을 신수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이 정도로 탈출이 어렵진 않았을 텐데.”
파천 길드 팀은 신수와 함께 닥치는 대로 범죄 헌터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줄줄이 헌터 수용소로 연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쩌지? 이대로라면 항구로 이동하는 중에 잡히고 말 거야.”
빡빡머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팀의 리더인 S급 헌터 최우현은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머리를 굴렸다.
네 명의 팀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런 최우현을 지켜보았다.
총 다섯 명의 이 헌터팀은 던전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범죄를 기획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범죄에 뛰어들었고, 은행 강도로 천문학적인 거액을 탈취했다.
하지만 탐욕은 끝없이 자랐다.
헌터로서 일반인들로 이루어진 은행을 터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기에 몇 번의 범죄를 더 이어 갔다.
그리고 완벽히 탈출 계획을 세워 해외로 도주하려는 순간 신수들의 등장에 의해 순식간에 탈출 경로가 막히고 말았다.
“방법이 없어. 결국 정면돌파를 하는 수밖에.”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우릴 찾고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 움직이자는 얘기야?”
파랗게 염색한 헌터의 물음에 최우현이 도끼눈을 떴다.
“언제까지 이렇게 처박혀 있자는 얘기야? 우리를 잡을 때까지 놈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하긴, 벌써 이렇게 3개월이나 지났으니.”
빡빡머리가 회의적인 표정으로 머리를 쓱쓱 문질렀다.
파란 머리 헌터가 머리를 박박 긁으며 벌떡 일어났다.
“죽고 말 거야. 그 신수 새끼들이 우리를 전부 잡아갈 거라고.”
최우현이 흥분한 파란 머리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그럼 너 혼자 이 자리에 남아. 우린 갈 테니까. 그렇게 할래?”
파란 머리가 씩씩거리며 최우현을 보다가 그의 멱살을 뿌리쳤다.
“누가 안 간대?! 상황이 엿 같잖아!”
“네가 흥분하면 실수가 생긴다. 그럼 너 때문에 우리 팀원이 끝장나는 거야.”
“…….”
“침착해라. 제발.”
파란 머리가 진이 다 빠진 얼굴로 담배를 피웠다.
최우현이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우선 차량을 타고 가다 보면 검문하는 놈들을 만나게 될 거야. 헌터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일반 경찰들이겠지. 헌터라고 해 봐야 어쭙잖은 것들일 테고.”
“설마…… 재끼자고? 경찰을?”
“어차피 잡히면 끝장이야.”
“하지만 재끼는 순간 추격에 가속도가 붙을 텐데?”
“그러니 다 죽여야지.”
최우현이 살기가 도는 눈으로 동료들을 보며 말했다.
동료들은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최우현을 보았다.
“하지만 살인을 하면 잡혔을 경우에…….”
“헌터 범죄는 어차피 강도짓만으로도 20년 이상을 썩어야 돼. 변호사를 구해도 소용없어. 이미 범죄가 너무 확실하니까.”
최우현이 독기가 오른 눈으로 동료들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잡히면 이러나저러나 인생이 끝장나는 거야. 겁난다면 이 자리에 남아. 우리가 해외로 떠나든 잡혀가든. 그 이후에 자수를 하든지. 그건 마음대로 해. 방해만 하지 말란 뜻이다.”
동료들이 침묵했다.
모두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대해서.
최우현은 그들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줬다.
담배를 두 개 피 정도 피우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동료들은 모두 오늘 밤 폐공장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번 범죄로 인해 벌어들인 금액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서였다.
설령 붙잡혀서 징역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만한 각오를 할 만한 돈이었다.
“세상은 헌터의 시대에서 자본주의로 변했어. 밀항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우린 미국에서 최고의 수준으로 살아갈 수 있다.”
최우현의 말에 동료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 최우현이 말하는 바가 얼마나 대단한 무게감을 갖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어서였다.
일단 결정이 내려지자 최우현의 팀은 빠르게 나갈 준비를 했다.
그들은 짐을 챙기고 다섯 명 모두 돈다발이 든 가방을 차량에 옮겼다.
이후 세 대의 SUV 차량이 폐공장을 벗어나 국도를 타고 항구로 가기 위한 이동을 시작했다.
최우현은 가장 선두 차량의 조수석에 탑승해 있었고 운전대를 잡은 건 빡빡머리 사내였다.
최우현은 무전기를 들고 뒤따라오는 차량에게 전달하기 위해 계획을 전달했다.
“차량을 검사한다고 하면 우리가 먼저 내려서 최대한 시선을 끌 거야. 놈들은 무전기를 들고 있을 테니까, 무전을 칠 시간을 주면 안 돼. 최대한 빨리 처리할 거다. 그 사이에 너희들은 뒤의 차량의 목격자들을 전부 죽여. 우리는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있을 테니까. 명심해. 단 한 명도 살려 둬선 안 돼.”
마음을 먹은 이상 거릴 낄 건 없었다.
실수가 생겨선 안 되는 만큼 오직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한 감각만이 있을 뿐이었다.
폐공장에서 차량이 출발한 지 한 시간.
예상대로 경찰들의 범죄 헌터를 찾기 위한 간이 검문소가 보였다.
네 대의 일반 시민 차량이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경찰은 총 여섯. 역시 모두 무전기를 들고 있어.”
빡빡머리가 말을 뱉고는 숨을 참았다.
극도의 긴장감이 올라와서였다.
앞선 네 대의 차량이 모두 검문을 통과하고 선두 최우현 차량의 검문 차례가 됐다.
똑똑.
경찰이 노크를 하고 창문을 내리라는 손짓을 했다.
빡빡머리가 창문을 전부 내렸다.
“실례합니다. 신분증 확인 좀 하겠습니다.”
경찰이 차량 안을 내다보며 말할 때 최우현이 문을 벌컥 열고 내렸다.
“야 이 새끼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나 국회의원 강만식이 아들이야!”
최우현이 경찰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경찰들이 인상을 팍 썼다. 단순 음주운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경찰들이 인상을 썼다.
“당장 길 안 터? 엉?”
최우현의 연기에 눈살을 찌푸리던 경찰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하나둘, 그를 빤히 보았다.
어디선가 봤던 얼굴 같은데, 어두워서 긴가민가해서였다.
그 순간 거리를 확보한 최우현이 티셔츠 안의 바지 틈에 숨겨 둔 칼을 꺼내기 위해 움직이려는 순간.
콰아앙!
뒤쪽 동료 차량들이 있는 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차량 두 대가 가드레일을 부수고 얕은 산길 내리막 아래로 쿵쿵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트렁크가 박살이 나면서 허공에 돈이 풀풀 날렸다.
최우현은 멍한 표정으로 사고가 난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서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신수 청룡과 현무. 그리고 주작이었다.
경찰들 중 번호판 조회를 담당하는 경찰이 대포차인 것을 확인. 범죄자일 가능성이 있어 신수들에게 즉각 연락을 취한 결과였다.
이에 그 즉시 최우현 팀의 밀항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동료들이 하나같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차량에서 빠져나와, 도망치기 시작하는 범죄자들을 현무가 뒤쫓았고, 청룡은 경찰들 사이에 서 있는 최우현에게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최우현은 숨이 가빠졌다.
1차 검문에서 이렇게 맥없이 잡혀 버릴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허탈감과 분노가 뒤섞여 올라와 최우현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이 더러운 신수 새끼들……!”
최우현이 아랫배 쪽의 바지 틈에 숨겨 둔 칼을 꺼내 들고 청룡에게 뛰어들었다.
이판사판의 공격이었다.
청룡은 가벼운 손찌검으로 S급 헌터의 뺨을 후려쳤다.
손바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둔탁한 소리가 나면서 허공에 두 바퀴를 회전한 최우현이 의식을 잃고 바닥에 철퍽 쓰러졌다.
기절한 최우현을 내려다보던 청룡은 걸음을 옮겨 산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청룡이 한 팔에 두 명씩 허리에 끼고서 올라오고 있었다.
전원 검거였다.
놀란 표정으로 구경하던 경찰들에게 청룡이 인사했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저희는 이만 수용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아, 예…….”
경찰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
신수의 압도적인 힘을 처음 눈앞에서 지켜본 경찰들이라 그들은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현무가 청룡의 앞에 섰을 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작이 게이트를 만들어 냈다.
청룡과 현무가 국내 최대 범죄자들을 데리고, 게이트를 넘어 사라졌다.
이내 게이트 문이 닫히고 나자 경찰들은 한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닦았다.
“장난 아니네.”
“이야. 꽤 유명한 범죄 헌터들인데도 한 방에 정리했어.”
경찰들이 감탄하며 곧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무전을 치고 차량의 범죄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움직였다.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추가 지원팀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수용소에 범죄자들을 넘겨주고 나오자 건물 밖에 협회장 한선우가 있었다.
청룡과 현무, 그리고 주작은 의아한 표정으로 선우를 보며 다가갔다.
“협회장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달을 올려다보고 있던 선우가 미소를 지으며 신수들을 돌아봤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현무가 물었다.
“같이 퇴근하려고 왔지. 고생 많았어. 국내 최대 은행강도 팀 잡았다며?”
“어려운 일도 아니죠. 주작이 있으니.”
현무가 자랑스레 주작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주작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캐슬로 가십니까?”
청룡이 물었고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범죄 수사는 그만해도 돼. 쉬면서 휴식기를 가져. 나머지는 파천 길드 팀에서 다 해결할 수 있는 정도니까.”
“그래도 급한 일 생기면 언제든지 호출 주세요.”
현무가 팔짱을 끼고서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맙다. 아, 그리고 내일 오전부터 캐슬에서 파티가 있을 거야.”
“파티요?”
“크리스마스니까.”
크리스마스라는 말에 청룡과 현무가 의아한 표정이 되었고, 주작이 크리스마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신기해하는 신수들 앞에 신이 난 듯 떠들었던 주작이 게이트를 열었다.
“얼른 가자.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며야 하거든!”
주작이 상기된 얼굴로 말하자 청룡과 현무가 웃으며 선우를 보았다.
“먼저 가시죠, 협회장님.”
현무가 신사처럼 허리를 숙여 손짓했다.
“덕분에 편하게 가네. 고맙다, 주작.”
“별말씀을요!”
선우가 먼저 주작이 만들어 준 게이트를 통과 청룡과 현무도 캐슬로 가기 위해 게이트를 넘어섰다.
선우를 데리고 온 운전기사는 신기한 듯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가 복귀를 위해 홀로 차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