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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73화 (173/175)

귀환자의 모든 것 173화

본래 준혁이 걸을 때마다 땅에 얕게 깔린 물들이 찰랑거렸으나 지금은 한 점 흔들림 없이 잔잔했다.

준혁의 등에는 대천사 아니르의 날개가 달려 있어 날아다니는 것은 물론 공간이동까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서였다.

이 물은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아우터 갓과 연관이 있는 듯했다.

어디를 가나 이런 기분 나쁜 물들이 깔려 있었다.

그 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이동하던 준혁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부근에서 아우터 갓의 존재감이 느껴져서였다.

준혁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고, 그 즉시 준혁의 시야는 암흑을 뚫고 은둔한 아우터 갓을 찾아냈다.

마치 복어를 닮은 녀석이었다. 동그란 구체의 외형을 하고서 느릿느릿하게 허공을 둥둥 떠다니던 녀석은 놀란 눈으로 준혁을 보다가 급히 방향을 선회했다.

아우터 갓이라고 하기에는 기막힐 정도로 둔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순식간에 공간을 이동해 놈의 부근으로 이동하자 아우터 갓은 경악한 듯 바르르 떨리는 몸으로 암흑의 힘을 펼쳐 냈다.

수천 개의 날카로운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틈을 타 도망가려 했지만, 준혁은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로 아우터 갓의 후면을 심검으로 베어 냈다.

대천사의 힘이 깃든 심검은 단 한 칼에 아우터 갓을 찢어발겼다.

아우터 갓이 마치 피와 같은 보랏빛의 소멸체를 뿌리며 아래로 추락했다.

마치 유리잔이 떨어져 깨지듯이 귀여운 외모의 아우터 갓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졌다.

이후, 여섯 마리의 아우터 갓을 더 사냥하고나자 아무리 암흑세계를 활보해도 아우터 갓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준혁이 찰랑거리는 지상의 물에 내려왔을 때, 준혁의 육신으로부터 대천사 아니르의 혼이 빠져나왔다.

“암흑세계의 아우터 갓 대부분은 정리되었다.”

대천사 아니르가 준혁을 마주 본 채로 말했다.

“아직 더 남아 있는 놈들을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르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의 시간도 없을뿐더러, 이 이상 아우터 갓들을 죽이기 위해 차원을 넘는다면 인간계의 빛은 모두 사라질 거다.”

“그럼 언젠가 놈들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겠군요.”

“그때는 이미 지구라는 행성은 사라져 있을지도 모르지.”

인간의 영역으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의미였다.

대천사 아니르의 말대로, 준혁의 긴 여정은 여기까지였다.

“덕분에 나의 오랜 숙원을 해결할 수 있었다.”

대천사 아니르는 투구를 쓰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준혁은 마치 그가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준혁 역시 대천사 아니르를 마주한 채 미소 지었다.

“고마웠습니다.”

“아니, 나야말로. 한준혁 네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순간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천사 아니르가 고개를 돌리자 차원의 문이 열렸다.

인간계로 가는 문이었다.

“어쩌면 넌 천계의 신이 될지도 모르지.”

“……?”

준혁의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을 때 대천사 아니르는 천천히 빛나는 날갯짓을 하며 돌아섰다.

“그대가 만든 빛의 영광은, 천계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너의 세계를 완성해라. 한준혁.”

섬광과도 같은 빛을 뿜으며 대천사 아니르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지 가늠할 수 없는 대천사 아니르를 떠올리며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의 세계라…….”

준혁은 미소를 지으며 대천사 아니르가 만든 차원의 문을 넘었다.

* * *

한국의 협회장 한선우는 실시간 브리핑을 통해 헌터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또한 그와 동시에 헌터 범죄와의 전쟁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에 대해서는 한국 협회와 파천 길드에서 수사 전권을 부여받은바, 그들은 각성자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 어떠한 범죄보다 헌터 범죄가 엄격한 처벌을 받게 되리란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카메라 불빛이 번쩍이며 기자들의 질문이 폭풍처럼 쇄도했다.

지금 당장 수사가 시작되고, 경호 헌터들의 배치 문제에 대한 진행 문제가 시급한 상황이라 기자들 질문은 모두 패스했다.

선우는 회견장을 빠져나오며 대기하고 있던 파천 길드의 백인호 마스터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건물 밖에서 선우와 백인호 마스터의 투 샷을 잡기 위해 기자들의 카메라가 연신 플래시를 터트렸다.

“VG은행 강도 사건에 대한 자료입니다.”

선우는 백인호에게서 넘겨받은 파일을 확인하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수사팀은 움직이기 시작했지?”

“브리핑 전부터 지시해 둔 상태입니다.”

선우와 백인호가 주차장에 들어갔을 때, 파천 길드원들이 기자들의 접근을 차단하면서 외부 출입구까지 차량이 나갈 수 있도록 통제를 시작했다.

주차장에는 선우와 백인호뿐이었다.

선우는 차량 부근에서 자료를 모두 확인했다.

백인호 마스터가 가져온 자료는 은행 사건뿐만이 아니라 이후, 브리핑까지 계속된 범죄 사건들에 대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헌터 쪽 노조가 생기면서 협회로 거금을 요구하고 있다 보니 파천 길드원으로는 다소 한계가 있습니다.”

허리에 손을 얹고 잠시 생각에 잠긴 선우는 백인호의 어깨를 잡았다.

“우선 은행부터 집중 마크해.”

“어디로 가십니까?”

“캐슬로 간다.”

선우는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캐슬로 향했다. 기자들은 선우와 떨어질 생각이 없는 듯 대놓고 선우의 차량을 뒤쫓았다.

아직 귀환자가 등장하지 않은 상황이라, 모든 카메라는 선우를 향하고 있었다.

* * *

준혁이 캐슬 정원의 땅을 밟았다.

돌아오기까지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준혁에게는 상당히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아우터 갓을 죽이는 것은 나름의 의미도 있었지만 아우터 갓이 죽을 때마다 퍼트리는 어둠과 죽음의 감각은 대천사 아니르의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히도 불쾌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두 눈으로 캐슬 정원 풍경을 보자 비로소 이제야 모든 싸움이 끝났다는 게 실감 났다.

싱그러운 풀냄새와 깨끗한 공기가 폐부 속으로 들어오자 살아 있다는 게 실감이 날 정도였다.

초겨울이라 잎새들이 말랐다.

벌써 겨울이구나.

준혁은 그렇게 속으로 뇌까리며 캐슬 본관으로 향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신수들이 모두 캐슬에 모여 있을 것 같았다.

“헙, 귀환자님!”

준혁을 본 집사가 깜짝 놀라 뛰어왔고 직원들이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허둥지둥 준혁을 마중 나오기 위해 뛰어왔다.

준혁은 가벼운 인사를 하며 캐슬 본관의 거실에 이르렀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어디 있죠?”

연무장은 비어 있었으니 신수들이 캐슬 본관에 모여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저 그것이…….”

집사가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현재의 분위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던전이 사라지자 헌터들의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헌터가 만든 노조가 점점 그 수위를 강하게 높이고 있어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한선우 협회장이 신수들의 힘을 빌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준혁은 소파에 털썩 앉아 뒷목을 긁적였다.

딱히 자신이 나서기에는 애매하고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일이었다.

“식사를 준비할까요?”

집사의 물음에 준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금 쉬고 싶네요.”

이제 막 캐슬로 돌아온 터라 준혁도 상당한 피로도를 느끼고 있었다.

아우터 갓을 죽이는 것도 그렇지만 육신에 대천사 아니르를 담아 두는 것은 극심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 그것 자체가 상당히 힘겨운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사용하시던 스마트폰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집사는 캐슬 직원들에게 자리를 비우라고 말을 전달시켰다.

캐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암흑세계에서의 전투가 꿈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오면 부족한 수면을 채우기 위해 침대부터 장악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준혁은 정원으로 나가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잠시 호수를 바라보던 준혁은 스마트폰을 들고 뉴스를 검색했다.

기사에는 헌터들의 범죄를 협회의 주도 아래 파천 길드와 신수들의 활약이 빛을 발하는 소식들로 가득했다.

미손 띤 얼굴로 뉴스를 보던 준혁은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드래곤 케일이 졸린 얼굴로 허공에 둥둥 뜬 채 준혁의 벤치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눈 밑이 시커멓게 죽은 케일은 준혁의 옆자리에 무릎을 끌어안으며 앉았다.

“왔네?”

케일이 호수를 보면서 말했다.

“어디서 나온 거야?”

“별장.”

최설화가 지내던 별장을 그녀가 떠나고 케일이 쓰고 있는 듯했다.

“쉬고 있지, 왜 나왔어? 많이 졸려 보이는데.”

“난 신수가 아니잖아. 너랑 계약되지 않았으니까. 그 끔찍한 것들이랑 전투 후에 후유증이 남았어.”

케일이 지긋지긋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불면증에 두통까지…… 최악이야.”

“힐러 치료는?”

케일이 황당하다는 듯 준혁을 보며 웃었다.

“드래곤인 나보고 인간의 치료를 받으라고?”

“안 될 것도 없잖아?”

“인간의 마법이 내게 통할 리가 없잖아. 내가 훨씬 상위에 있는데.”

“그런가?”

“그런 거지.”

케일이 반쯤 초점이 흐린 눈길로 호수를 보고 있을 때 준혁이 케일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응? 뭐 하는…….”

준혁의 손끝을 통해 신성력이 케일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황금빛 기류가 커다랗게 넘실거리며 케일에게 스며 들어가자 케일은 깜짝 놀라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 오오, 오오옷!”

케일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구겨져 있던 얼굴이 점차 펴지기 시작했다.

준혁의 신성력에 의한 회복이 즉각적으로 그 효과를 느낄 만큼 분명해서였다.

잠시 후, 준혁의 신성력을 전해 받은 케일은 다 죽어 가던 얼굴에서 당장이라도 구름을 뚫고 하늘로 솟구칠 것처럼 활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변화했다.

“졸리지도 않고 두통도 사라졌어.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고위 권능의 마법으로도 회복하지 못했던 것을 단숨에 고쳐버린 준혁을, 케일은 마치 위대한 명의를 만난 것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보았다.

“괜찮아졌어?”

케일이 기쁜 얼굴을 위아래로 크게 끄덕였다.

“그럼 가서 신수들 좀 도와.”

웃고 있던 케일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어졌다.

뺨이 씰룩이는 게 참 재밌었다.

“……뭐, 뭐라고?”

“놀면 뭐 해? 밥값은 해야지.”

케일이 질린다는 듯이 가자미눈을 하고선 준혁을 째려보았다.

“도시에서 미쳐 날뛰는 놈들은 너무 약해서 재미가 없단 말이야. 오히려 너무 약해서 스트레스받는다고.”

“일은 재미로 하는 게 아니야. 필요에 의해 하는 거지.”

“그럼 왜 너는 노는데? 나도 팽팽 놀고 싶단 말이야.”

“너한테 힘을 다 줘 버려서 힘이 하나도 없거든.”

“와아, 진짜 너는…….”

“싫으면 안 해도 돼.”

“정말?”

“캐슬에서 나가기만 하면 되니까.”

케일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캐슬 본관을 향해 둥둥 날아갔다.

“짐 싸는 거야?”

준혁이 돌아보며 묻자.

“일하러 가려면 씻고 준비해야지!”

활기찬 컨디션으로 빽 소리를 지르는 케일이었다.

준혁은 웃으며 벤치에 편안하게 기댄 채 호수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조금은 잠이 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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