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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72화 (172/175)

귀환자의 모든 것 172화

케르니안은 넋이 나간 채 신수들을 보았다.

악마들은 죽어 가고 있었고 자신의 육체는 현재 썩어가고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우터 갓이 패했다고? 인간 한준혁에게?

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케르니안은 정신이 붕괴되는 것 같은 충격감에 말도 나오지 않고 그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아우터 갓은 패했고 마계는 무너진다.

그것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도래한 현실이었다.

“얌전히 소멸해라. 케르니안.”

청룡이 차가운 눈을 빛내며 케르니안에게 창을 쥐고 걸어갔다.

케르니안은 전신이 벌벌 떨렸다.

청룡에게서는 믿을 수 없는 힘이 솟구치고 있었다. 황금빛 힘이 넘실거렸는데 그것은 한준혁 정도만이 가지고 있던 힘이었다.

신수 개인의 힘이 이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케르니안이 추측하기에 아마도 그것은 아우터 갓을 죽인 후, 준혁의 권능이 신수에게로 흘러 들어간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케르니안은 직감했다.

절대 자신의 힘으로 이 신수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더욱이 육체가 썩어가고 있는 현시점은 전투 불능이나 다름없었다.

케르니안은 날개를 활짝 펴면서 창문을 깨고 악마성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곤 전력으로 신수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질주했다.

달리는 동안 죽어 가는 악마들의 풍경이 케르니안의 눈앞에 펼쳐졌다.

마계가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 케르니안은 영혼이 찢기는 듯했다.

“이럴 수가…… 대체 한준혁 네가 어떻게……!”

케르니안이 울분을 터트릴 때, 화려한 빛이 번쩍이며 주작의 힘에 의해 이동한 기린이 마법 사슬로 케르니안의 두 다리를 속박했다.

케르니안은 급격히 둔화되며 팔을 허우적거리다 땅에 철퍽 엎어졌다.

진흙에 얼굴을 처박은 케르니안이 절망으로 얼룩진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주작의 공간계 힘에 의해, 게이트를 뚫고 나타난 청룡의 창이 케르니안의 복부를 찔렀고, 공중에서 나타난 현무의 검이 케르니안의 목을 꿰뚫었다.

“끄르륵……!”

신수들의 무기에는 천계의 힘마저 묻어 있었다.

케르니안의 육체뿐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불태우는 힘에 극한의 고통을 느꼈으나 두 신수의 물리적 공격에 의해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사방에서 죽어 나가는 악마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케르니안은 시야가 어두워지는 걸 보고 소멸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그르륵…….”

한준혁에 대한 원망 한마디조차 내뱉지 못한 채, 마신 케르니안은 죽음에 이르러 이내 기린의 마법으로 영혼마저 완전히 소각되듯 소멸되었다.

* * *

집무실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보고서를 처리하고 있던 선우는 노크 소리에 이어 비서가 들어온 걸 힐끔 보고 얼굴을 들었다.

“무슨 일이야?”

비서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미소 지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협회장님.”

선우는 옅게 웃으며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뜻이지?”

“던전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던전은 총 일곱 개뿐입니다.”

선우가 벌떡 일어섰다.

“던전 안에서 사냥 중이던 헌터들은?”

“마수들이 사라지고 던전에서 엑시트 게이트가 열렸다고 해요.”

선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형이 떠난 후부터 고작 3개월이었다.

100일도 채 되지 않는 날 만에, 형은 비로소 그토록 꿈꿨던 대미를 장식한 것이다.

“고생하셨습니다. 협회장님.”

비서가 다시금 꾸벅 인사했고, 선우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집무 테이블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이것들은 다 필요 없게 됐네.”

선우가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서류를 보며 말했다.

“휴가라도 다녀오시는 건 어떠세요?”

비서가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선우는 서류를 보던 채로 얼굴을 가로저었다.

“던전이 사라지고 난 후, 만약 더 월드 시스템이 사라지고 헌터들의 능력이 일반화된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선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비서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상황은 심각해질 수 있어.”

비서가 놀란 얼굴로 선우를 보았다.

“그 점은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파천 길드의 백인호 마스터를 호출해. 긴급 팀을 꾸려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비서가 빠르게 협회장실을 나갔다.

선우는 협회장실 뒷문 쪽을 열고 테라스로 나갔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보며 선우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던전이 사라진다는 건 이제 곧 형이 돌아온다는 얘기였다.

형이 차원을 넘어간 동안, 선우는 형의 빈자리를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해 바쁜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바쁘게 살다 보니 3개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벌써 결착을 짓고 돌아온다는 것이 오히려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

선우는 테라스에 팔을 걸치고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뱉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하자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더 월드 시스템이 사라지고 헌터들 모두가 힘을 잃는 거지만 만약 헌터들의 능력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된다면 최악의 범죄들이 속출할 가능성이 있었다.

던전이라는 합법적 사냥터가 사라지고, 일자리를 잃은 헌터들에게 힘이 남아 있다면 그건 곧 걸어 다니는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부디 그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던전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점에도 선우는 자신이 가진 헌터로서의 능력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마수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이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 마수는 던전 안에 갇혀 있다.

던전 브레이크의 확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저히 내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일터를 잃은 헌터들은 범죄에 가담될 확률은 높을 수밖에 없기에 초기 진압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산불처럼 급속도로 확산될 여지가 있었다.

선우는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 빠르게 협회장실로 돌아왔다.

무거웠던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곳에서 새로운 문제가 만들어지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끊임없이 해결해야 한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반대편에서 칼날이 날아온다.

선우는 협회장실에서 공식 발표를 위한 발표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파천 길드를 중심으로 팀이 완성되는 순간, 공식 발표문이 방송을 통해 퍼져 나갈 것이다.

선우는 반짝이는 눈으로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쳤다.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 동안에도 던전은 사라지고 있을 것이었다.

* * *

준혁의 전담 매니저 지우는 TV를 보며 긴장감이 역력했다.

현재 실시간 뉴스에서는 던전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미 이 상황에 대해서는 협회 측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들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 사건으로 인한 파장이었다.

현재 헌터 사업을 하는 기업. 혹은 헌터 사업에 지분이 있는 회사들의 주가는 마치 벼랑 아래로 추락하듯 폭락하고 있었다.

이로 인한 세계 시장의 충격과 더불어 경기 침체. 헌터들의 실업에 의한 파장은 곧 폭동으로 변질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뉴스가 보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한 곳이 헌터들에 의해 자금이 탈취당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방송국 측에서도 이 뉴스를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이미 던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이 헌터들이었고, 그런 만큼 생계의 위협을 받은 헌터들이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미리 경비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심은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협회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외출을 삼가고 신변 보호에 주의할 것을 긴급 소식으로 전파했으며 한선우 협회장은 공식 석상에서의 발표를 앞두었다.

이로써 사실상 헌터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역사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한선우 협회장 공식 브리핑이 시작됩니다.

TV 상단에 나타난 글자를 보며 테블릿으로 현재의 도심 상황을 체크하던 중.

“지우 누나!”

익숙한 목소리가 지우의 귓속으로 들려왔다.

지우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고, 캐슬 거실로 신수들이 차례차례 들어오고 있었다.

백호가 달려와 지우를 끌어안았다.

“꺄악! 백호야. 다들 무사해? 안 다쳤어?”

지우가 코알라처럼 달라붙은 백호를 떼어 내면서 물었다.

신수들이 하나같이 문제없다는 듯 지우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으아 죽겠다.”

백호가 거실 소파에 철푸덕 늘어지게 앉았다.

“지우 누나. 우리 너무 힘들었어. 몸도 마음도…….”

백호가 눈이 반쯤 풀린 채 만세를 한 채로 널브러졌다.

“귀환자님이랑 케일 님은?!”

“주인님이 먼저 캐슬로 가라고 하셨어요. 오래 걸리지 않아 오실 거예요. 주인님도. 케일 님은 혼자 있고 싶다고 별장으로 가셨고요.”

“……괜찮은 거지?”

지우가 불안감을 감추며 물었고, 신수들은 하나같이 문제없다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래. 잘됐다. 정말 고생들 했어. 우선 가서 씻고 쉬어. 피곤해 보인다 정말.”

지우는 신수들을 올려보내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신수들이 막상 돌아오자 실감이 나질 않고 기분이 묘했다.

곧 귀환자님도 돌아올 것이다.

던전이 사라진 후, 신수들은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게 될까?

안전해진 만큼 예민하게 구는 대중의 역설적 태도는 이미 겪은 바가 있었다.

지우는 TV를 돌아보았다.

한선우 협회장. 그리고 곧 돌아올 귀환자님.

그들이라면 충분히 새로운 역사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지우는 다시 소파에 앉아 도심의 헌터 범죄를 검색하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 * *

텅 빈 대기실.

선우는 수트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방송을 준비 중에 있어, 이제 곧 공식 석상에 나가 던전의 시대가 이제 곧 막을 내리게 될 것임을 알려야 했다.

새로운 시대로 가려면 격통의 시기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 안에서 살아남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되었음을 인지하고 선우는 대기실에서 나왔다.

수많은 사람이 복도에 나와 있었다.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선우는 공식 석상으로 향했다.

좁은 복도에 몰려 있는 사람을 지나 방송실로 들어가자 실시간으로 보도 중인 뉴스 카메라 앵글 안에서, 선우를 비추는 플래시가 번쩍번쩍 빛났다.

선우는 심호흡을 하고 단상 앞에 섰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으로서 범죄와의 전쟁 선포를 단행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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